일본군이 공사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무리한 철교 건설을 진행하여 수만 명의 희생자를 발생시켰다는 죽음의 철도. 지금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철교를 걸어 다니고 있을 뿐이었다. 날씨도 화창하고, 강물도 유유하게 흐르고, 나무들도 초록빛을 내고 있어서 그 당시의 희생과 아픔을 떠올리기란 더욱 힘들어 보였다. 어쩌면 그 당시에도 이 모든 것은 똑같았을지도 모르겠다. 화창한 날씨, 유유하게 흐르는 강물, 초록빛을 내는 나무들. 이런 상황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으로 대신한 죽음의 철도. 슬프고 안타까운 철교였지만, 그래도 아름다웠다.
오랜만에 일찍 일어났다. 6시. 깐짜나부리 투어를 신청해서 7시까지 여행사 앞으로 가야한다. 서둘러 씻고 길거리에서 팟타이와 볶음밥을 시켜 먹었는데, 볶음밥은 새로 지은 밥으로 해서 괜찮은 것 같았는데, 팟타이는 소스 때문인지 뭐 때문인지 약간 시큼해서 먹다 남겼다. 그냥 세븐일레븐에서 먹을 걸...
7시에 딱 맞게 도착하자 다른 투어를 가는 한국 여자분 혼자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둘. 7시에서 7시 30분 사이에 픽업을 한다고 했는데, 20분이 다 돼서야 롯뚜가 왔다. 그 여자분은 더 기다리라는 기사의 말에 우리 둘만 타고 깐짜나부리로 출발. 맨 마지막에 타게 되어서 떨어져 앉아야 했고, 나는 맨 뒤에 4좌석 남자 3명 틈에 앉아야 해서 정말 좁았다.
가는 길에는 방비엥을 다녀오신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좀 하다가, 옆 사람에게도 말을 시켜봤는데 대화가 툭툭 끊겨서 그냥 조용히 갔다. 오늘 새벽에 공항에 오고 바로 깐짜나부리로 가는 거라서 매우 피곤한 듯 했다. 가는 길 상태는 좋았지만 꽤 멀었다. 한참을 달려 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 차에는 이상이 없는 것 같았는데 바퀴를 뜯어서 뭔가 고치고 있는 운전기사. ... 20분만 쉰다고 했는데 차 수리 때문에 더 쉰 것 같다. 그래도 다시 바퀴를 잘 달고 다시 출발해서 잠시 후에 첫 번째 코스에 내려줬다.
우리나라 현충원 같은 곳이었는데 규모는 매우 작은 편이었다. 전쟁으로 인한 군인들이 묻힌 곳이었는데 대부분 해외에서 파병 온 군인들 같았다. 태어난 날과 순직 날짜가 적혀 있었는데 17살도 있었고, 대부분 20~30대 정도. 군인으로 순직하니까 나이가 이럴 수밖에 없었지만, 젊은 나이에 해외로 파병을 와서 이렇게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20분 정도 돌아보고 다시 사람들은 롯뚜에 올랐다.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죽음의 다리였다. 박물관을 구경할 사람은 하고, 아니면 조금 걸어가서 죽음의 다리를 보라고 했다. 박물관은 별도 입장료가 있고, 여행사 사장님이 볼 것 없다고 해서 우리는 패스하고 바로 죽음의 다리로 갔다. 그러나 이곳은 무서운 이름에 걸맞지 않게 주변 풍경은 너무나도 아름다웠고,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온 탓에 분위기마저 좋아 보였다. 우리도 다리를 건너 맞은편 끝까지 가 보았다. 나무들 사이로 난 철길이 참 아름다웠다.
한 시간 정도의 자유시간을 보내고 점심을 먹으러 이동했다. 차를 타고 한참이나 달렸는데, 에라완국립공원 근처에 있는 식당이었다. 그토록 가고 싶었던(?)에라완... 식당을 가면서는 한국에서 온 여대생 두 명과 나란히 앉게 되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방콕 이틀차인 친구들에게, 일주일정도 있었던 우리가 많은 정보를 전해주었다. 점심을 먹으면서도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메뉴는 닭, 계란, 야채 등등이 태국식으로 조리된 것이었는데, 특별히 엄청 맛없거나 한 것은 없었다. 계란부침이 제일 맛있었다. 그리고 후식으로 나온 파인애플이랑.
점심을 먹고는 근처 폭포로 간다고 해서 또 차를 타고 꽤 달렸다. 여행사 사장님 말로는 수영할 만한 곳은 아니라고 했는데, 태국 어린이들만 수영을 하고 있었고, 라오스에서 봤던 꽝시폭포나 블루라군 같은 곳은 아니었다. 그냥 작은 폭포 밑에 수심 1.5m정도 되는, 움직이면 흙탕물이 많이 생기는 그런 웅덩이였다. 수영은 할 수 있어도 딱 어린이 정도만 놀기 괜찮은 곳. 폭포를 보고 나서는 옆으로 또 철길이 나 있어서 따라 걸었다. 이곳도 나무들 사이로 난 철길이 아름답게 보였다. 태국으로 넘어와서 간만에 느끼는 여유로운 기분이었다. 투어를 안 했다면 이런 곳은 안 왔을 텐데 투어 한 게 처음으로 잘 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다음 코스는 콰이강의 다리 기차 체험이었다. 이곳에서는 기차 탑승 비용으로 100밧씩 냈다. 가이드 아주머니가 계속해서 서두르라고 한 이유는 이것 때문이었다고 했다. 기차 시간을 놓치면 안 되니까... 서둘러서 이동한 덕분이었는지, 차에서 내린 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기차가 왔다. 강을 볼 수 있는 자리는 오른쪽이라고 해서 탔는데 이미 이전 역에서 탔던 사람들이 대부분 오른쪽 자리에 앉아있어서 우리는 다른 외국인 부부랑 같이 앉을 수밖에 없었다. 오른쪽이긴 하지만 복도 쪽 좌석. 그래도 강을 보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특별한 경치가 있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고, 잠시 강변을 따라 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왼쪽은 산이라서 창밖으로 볼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 함정이었다. 기차를 타고 수십 분 정도 간 것 같은데, 그냥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또 여유로워보였다. 옥수수 밭 같은 곳에서 일 하는 사람이 손도 흔들어주고 자연을 보면서 가는 것이었다. 딱딱한 나무 의자, 덜컹거림이 심한 기차를 타는 체험도 신기하기도 했다.
3정거장을 지났나, 대부분의 관광객은 여기서 내렸다. 다시 롯뚜에 올라 가이드 아주머니의 태국식 영어로 투어가 끝났다는 안내와 한국어 인사를 들었다. 우리는 맨 뒤에 앉았는데 여기가 의자도 불편하고 매우 좁은 자리였다. 그래서 계속 잠을 자기가 힘들었다. 한참을 자도 절반도 오지 못했다. 그러다가 휴게소에 들려서 잠시 쉬고 다시 한참을 가서야 카오산로드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길이 막힌 것은 아닌데 가는 길보다 오는 길이 더 오래 걸린 것 같았다.
차에서 내려 한국 친구들과는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아마 그 친구들은 우리가 추천한 인도 음식을 먹으러 갔을 듯. 우리는 잠시 숙소에 들려 짐을 내려놓고 밥을 먹으러 나왔다. 홍콩누들에 갈지 인도음식점에 갈지 고민하다 우리도 그냥 인도음식점에 갔다. 오늘은 꼭 생선요리를 먹어보려고 주문했는데 잠시 확인을 해봐야 한다고 했다. 냉장고를 보고 돌아오는데 왠지 오늘은 생선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오예. 20분 정도가 걸린다고 했지만 생선요리 1개와 항상 먹었던 치킨티카마살라를 시켰다. 커리가 먼저 나와서 거의 다 먹어갈 때 쯤 생선요리가 나왔다.
향긋한 마늘향과 기름진 생선이 정말 맛있게 보였다. 살을 조금 뜯어서 아내를 먼저 줬는데, 아내가 정말 맛있다고 했다. 나도 한 입 뜯어 먹어봤는데, 이건 정말 대박이었다. 생선을 특별히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내가 지금까지 이런 생선요리를 먹어본 적이 있었던가. 머리에 붙어 있는 살까지 뜯어 먹고, 내장 부분을 뜯어내는데 같이 딸려가는 살 한 점이 아까워서 조심스레 분리한데다가, 꼬리랑 지느러미에 붙어있는 껍질은 물론, 남은 양념과 살점들을 싹싹 긁어 먹었다. 정말, 진짜 맛있었다. 지금까지 태국 와서 먹어본 요리 중에서 제일 맛있었다.
기분 좋게 저녁을 먹고, 계산을 하면서는 “생선 요리 최고”라고 하며 내일 또 보자고 했다. 내일은 다른 소스 생선 요리를 먹어볼 생각이다. 소화를 시킬 겸 카오산로드를 걷다가 세븐일레븐에서 먹거리를 사서 숙소 들어가기로 했다. 깐짜나부리에서 돌아오는 길에 외국인이 나눠줬던 팝콘을 2개에 30밧에 팔기에, 이거 두 봉지랑 요구르트를 사서 들어왔다. 이렇게 야식을 먹고 오늘 하루도 마무리. 점점 배만 나오고 있는 것 같다. 뭐, 원래 안 나온 건 아니었는데 더 나오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하루하루 기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