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 일정이 굉장히 긴 편이기 때문에 그런지 조금만 돌아다니면 숙소로 오는 시간이 많아졌다. 일어나서 아침만 먹고 숙소로 왔다. 원래는 잠깐 짐을 챙겨서 나가려고 했는데, 아침을 늦게 먹다 보니 이제 나가면 해가 한창 뜨거울 때 돌아다녀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낮잠을 잤다. 처음에는 같이 잤는데, 나는 잠이 잘 오지 않아서 아내가 잠든 것을 확인하고 밀린 블로그를 썼다.
방콕에서는 은근히 돌아볼 게 많은데 우리는 방콕을 더 많이 한 것 같다. 10박 11일이라는 일반 여행자(?)들이 할애하는 시간보다 더 긴 시간 동안 방콕에서 있다 보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오늘 우연찮게 방콕 여행책자를 보게 됐는데, 체크하면서 찾아다닌 것은 아니지만 은근히 할 건 다 했다.
1. 짜오프라야 강 보트 투어 = 했음
2. 타이 스마일 = 느껴봄
3. 태국 요리 = 똠얌꿍 등 그래도 몇 개 먹어봄
4. 왕궁 & 왓 프라깨우 = 비싸서 들어가 보진 않았지만 담 너머로 보긴 봤음
5. 카오산로드 = 길 외울정도로 돌아다녔음
6. 타이마사지 = 받아봄
7. 나이트라이프 = 지나가면서도 충분히 느껴봄
8. 왓 포 = 입장하지는 않았지만 발바닥은 봄
9. 차이나타운 = 못 가봤지만 알 것 같음
10. 짜뚜짝 주말시장 = 지난주에 다녀오고 이번 주에 또 갈 거임
11. 암파와 수상시장 = 내일 모레 갈 거임
12. 스카이 하이(Sky High) = 시로코에 올라가기만 해서 봤음
13. 왓 아룬 = 올라가봄
14. 짐 톰슨의 집 = 오늘 가려고 했으나 입장 시간이 늦어서 실패
15. 아시아티크 = 다녀옴
16. 푸 카오 텅 = 지나가면서 봄
17. 에라완 사당 = 책자에 ‘대단한 사원도 아니고 유물이 가득한 박물관도 아니’라고 해서 패스
18. 쏭끄란 = 시즌이 아니라서 해당 아님
19. 아유타야 = 다녀옴
20. 콰이 강의 다리(깐짜나부리) = 내일 갈 거임
이렇게 정리해 보니 TOP 20중에 16개를 했거나 할 예정이었다. 짐 톰슨의 집이 은근 괜찮다고 하는데 이건 시간 내서 한 번 가봐야겠다. 긴 시간 있는 게 조금 지루한 것은 아닌가 싶었지만 쉬엄쉬엄 은근히 다 돌아봐서 뿌듯했다. 짧은 시간에 쫓겨서 돌아본 것도 아니라서 여유롭기도 했고. 방콕에서 방콕만 하는 줄 알았는데 방콕을 많이 본 것 같아서 다행이다.
어제 뭘 할지 정하지 않아서 그런지 우리는 매우 늦게 일어났다. 그래도 체크아웃 시간 보다는 일찍 일어나서 나가면서 하루 연장은 신청했다. 일단 아침을 먹으러 홍콩누들로 갔다. 맛도 좋은데 와이파이까지 되니 금상첨화. 방콕에서의 남은 일정을 어떻게 할지 인터넷을 참고해서 정해봤다. 그래서 오늘은 쉬엄쉬엄 지내고, 금=깐짜나부리, 토=매끌렁시장, 암파와 수상시장, 일=짜뚜짝시장, 월=푸켓으로 ㄱㄱ로 계획을 세웠다.
밥을 먹고 나와서는 다시 숙소로 들어갔다. 그리고 낮잠. ... 처음에는 같이 자다가 나는 잠이 안와서 아내가 잠든 것을 확인하고 밀린 블로그를 썼다. 그리고 나는 잠들고 아내는 일어나는 것 같았으나 다시 또 잠들고. 방콕에서 잠을 제일 많이 잔다.
뜨거운 태양은 조금 사그라 들었고 후끈한 열기만 남아있을 무렵 우리는 다시 숙소를 나섰다. 깐짜나부리 투어 예약을 하기 위해 숙소 근처 여행사로 갔는데, 여기는 500밧에 티켓비용 별도였다. 그래서 내가 별도냐고 물어봤는데 “Yes”라고 대답하는 게 아니라, 완전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면서 “You pay"라고 세 번이나 그런다. ... 기분히 괜히 상해 나왔다. 500이면, 다른 곳 보다 50 비싼 것이기도 했다. 그래서 아내와 자주 지나가던 길에 있는 한인 여행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인 여행사. 처음 카오산로드 왔을 때, 숙소 바로 옆에 있는 한인투어 아저씨가 참 별로였다. 나는 에라완 국립공원에 가고 싶어서 관련 투어에 대해 물어봤는데 에라완은 볼 것 하나도 없는데 뭐 하러 가냐는 식으로 말해서 정이 뚝 떨어졌다. 나이 지긋하신 분이였는데 정말 참 별로... 그래서 방비엥에서 불친절하진 않았지만 딱히 정이 느껴지진 않았던 한인민박 아주머니, 여기 방콕에서 만난 한인식당 겸 한인투어 사장님을 통해 ‘한인00’이 그리 좋다는 느낌은 갖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오늘 물어본 한인 아저씨는 좀 달랐다. 깐짜나부리 투어에 대해서 물어보려고 한번 들어가 보기로만 했는데 40대 정도로 보이는 아저씨가 ‘친절히’ 우리를 맞아주었다. 말도 놓지 않으시고 투어 상품에 대해 설명해주시고, 다른 곳과 차이 나는 점은 왜 그런지도 알려주셨다. 아, 얼마 만에 느껴보는 한국인의 정인가. 내일 투어 예약을 하고 나왔는데, 잠시 우리의 남은 일정을 위해 아저씨 뒤에 있던 방콕 여행 책자를 보면 좋을 것 같아서 다시 들어가 잠시 빌려달라고 하니까 이것도 흔쾌히 승낙. 별거 아니지만 괜히 감동이었다.
뭔가 큰 숙제를 한 개 한 것 같은 느낌과, 내일 뭘 해야 할지 정했다는 기쁨에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여행책자를 잠시 보면서 짐 톰슨의 집은 표 판매를 오후 4시까지만 한다는 정보를 접하고 시간을 보니 딱 4시가 지나가고 있었다. 낮잠을 안 잤다면 갈 수 있었겠지만, 그냥 다음에 가기로 하고 아시아틱에 가기로 했다.
이제는 익숙한 짜오프라야강 수상버스를 타고 사판탁신 부두로 갔다. 오늘은 표 파는 아주머니가 딱 우리 앞에 와서 뱃삯을 냈다. 그런데 우리 앞에 앉은 아주머니는 타고나서 계속 강물만 바라보며 뱃삯을 내지 않았다. 아, 현지인 중에서는 이렇게 아주 의도적인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려서 아시아틱 무료 보트를 기다리는데 사람이 매우 많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타고 있던 배를 타고 아시아틱 부두까지 가는 건데... 사람이 많아서 배 한 개는 그냥 보내고 다음 배를 타고 아시아틱에 도착. 최근에 개장한 곳이라는데, 그냥 깔끔하게 상점들이 빼곡하게 들어와 있었다.
여기는 비유를 하자면 깔끔하게 정리된 짜뚜짝 시장이랄까? 시장 구경하는 맛, 그리고 강변 구경하는 재미, 그리고 옆에 있는 관람차가 멋진 포인트였다. 아내가 관람차를 타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타자고 했는데, 은근히 내 핑계를 대면서 안 탄다고 해서 타지는 않았다. 연애를 할 때 에버랜드에서 관람차를 탄 적이 있었는데, 내가 타는 내내 무서워해서 아내에게 그리 낭만적인 기억으로 남아있지는 않나보다. ... 나는 이런 안전벨트가 없이 느리면서도 높이 올라가는 놀이기구가 무섭다. 롤러코스터는 잘 타는데...
그래도 가게들 사이사이를 구경하다가 젤라또도 먹고, 또 여기저기 지나다니다가 배가 고파서 태국 음식점에 들어갔다. 사람이 많아서 약간 기다렸다가 자리에 앉았다. 현지인에게 인기가 많은 식당 같았다. 우리는 익숙한 똠얌꿍, 모닝글로리, 쏨땀을 시키려고 하다가, 똠얌꿍은 무슨 면 들어간 똠얌으로, 모닝글로리는 그린커리로 바꿔서 시켜봤다. 면 들어간 똠얌은 괜찮았는데, 그린커리는 완전 태국의 맛이었다. 향신료 맛 보다 그냥 뭔가 느끼하고 입맛에 엄청 맞지는 않았다. 그냥 모닝글로리 시킬걸...
그래도 아내랑 맛있게 다 먹고 나와 아이스크림도 먹었다. 카오산로드로 가는 버스는 15번. 정말 15번 버스는 만능이다. 카오산로드에서 씨암도 가고, 사판탁신도 가고, 아시아틱도 가고... BTS 고가 아래로 비슷하게 지나가서 BTS 타고 가는 거랑 같은 효과다. 올 때는 길도 막히지 않아서 거리가 멀어서 그렇지 금방 왔다. 오는 동안 아내는 밀린 블로그에 쓸 내용을 정리하고, 나는 창밖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얼마 전부터 버스만 타면 보이는 스님석, 그리고 종교와 삶에 대해 드는 생각들. 오늘 아침에 밥 먹을 때도 서빙 하는 젊은 직원이 가게에 작게 있는 사원 모양의 그런 곳에 물을 떠놓고 하며 짧게짧게 기도를 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이것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시장 포장마차 아래에도 적은 음식이라도 차려놓고 의식 같은 것을 하는 사람들... 불교라는 종교는 태국 국민들의 마음속에 아주 깊이 자리 잡은 것 같았다. 어제 블로그에 썼던 것처럼 이들에게는 불교가 종교가 아니라 삶 그 자체라는 것... 그렇다면 크리스찬이라고 하는 나는 내가 믿는 종교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갖고 살아야 할까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단지 주일이라고 하는 일요일에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리고 사람들 만나고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잠시 기도하는 것이 나의 종교생활 전부인 것인지, 그 이외의 시간들에 대해 나는 어떤 관점을 갖고 어떤 삶의 모습과 태도를 가져야 할지... 뭐, 이렇게 쓰는 이야기들 역시 그동안 교회에서도 오랫동안 나누었던 주제이긴 하다. 그런데 불교국가인 태국에 와서 이런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니 뭔가 새로웠다. 그리고 이들의 삶을 보면서 다시금 돌아보니 더욱 새로웠고...
내일이면 여행의 딱 절반이 되는 날이다.여행을 시작한 날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흘러버렸다. 여행을 시작하고 첫 주에 아내와 함께 나눴던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그동안의 우리의 삶이 어땠는지, 그리고 이번 여행을 통해서 우리가 앞으로의 삶에 대해 어떤 가치관을 가져야 할지, 그리고 돌아가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알게 되는 여행이 되면 좋겠다고 한 이야기. 알게 모르게 많은 것들을 보면서 이것저것 느끼고 있는 것 같은데...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서 내가 어떤 삶을 살게 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뭐, 이건 어쩌면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서까지 모를 수도 있겠다. 그래도 남은 기간 동안 이제 그동안의 여행을 조금씩 정리해보며 앞으로의 계획도 세워봐야겠다. 여행을 마치고 나면, 특별히 하는 게 없어도 어쩌면 이렇게 여유롭게 생각을 정리할 시간조차 없을 것 같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