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 시내를 돌아다니다보면 특이한 점들이 있다. 가게나 집들 앞에 미니어처 사원이 있는데, 그 앞에 우리나라의 제사상 차리듯이 음식이나 꽃을 올리고 향을 피우는 것 정도는 좀 이해가 되긴 했다. 그런데 길거리에서도 아무 곳이나 먹을 것이 올라가 있는 것은 조금 이해가 안 된다. 비슷한 의식(?)이라면 조금 이해 할 수는 있는데, 길거리의 철제 박스(?) 위에 나란히 있는 요구르트나 벽에 튀어나온 철사에 걸어놓은 음료수 같은 것은 왜 이곳에 이렇게 두는 것인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사진으론 찍지 못했는데, 담벼락 위에 있는 음료수도 봤었다. 지나다가 목마른 사람 아무나 마시라는 것인지, 아니면 불교국가답게 지나가는 스님을 위한 것인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모습이지만, 확실한 것은 매우 흥미롭고 재미있다는 것이다.
아침에 조금 늦게 일어난 것 같아서 조식을 줄까 했지만 메뉴판으로 안내하는 것을 보니 늦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래서 free냐고 확인 차 물어봤는데 아니란다. 헐. 어떻게 된 거냐 하니까 주인으로 보이는 할머니가 오더니 숙소 엄청 싼 거라서 조식은 안 된다고 한다. 헐헐. 그럼 햇반이랑 이런 거 데워먹게 여기에 있는 냄비 10분만 물좀 끓이게 해 달라고 하니까 이것도 안 된단다. 헐헐헐. 주방에 있는 것도 아니고, 복도에 ‘쓰시오~’ 한 것처럼 내 놓은 것을 안 된다고 하다니... 옆에 있는 젊은 여자 직원은 커피포트라도 쓰게 해 주는 것은 어떠냐고 말하는 것 같았는데 할머니가 화를 내면서 세븐일레븐이나 가라고 성질을 부린다. 헐... 정말 어이털리고 치사해서 그냥 방에 들어왔다. 그리고 우린 어제 갔던 어묵국수집으로...
숙소에 들어와서는 얼른 나가자고 했다. 그래서 짐을 챙겨서 바로 나왔다. 요구르트를 마시면서 들어와서 개미라도 꼬이게 침대 밑에 쭉 뿌려놓을까도 생각했지만 그냥 관 뒀다. 태국에서 처음으로 만나 본 불친절한 사람인 것 같았다. 항상 모든 사람이 미소를 지어주고 친절했는데... 나가면서는 말없이 키를 리셉션 위에 툭 올려놓고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고 나갔다. 할머니는 없었지만 괜한 다른 직원한테 성질부리기...ㅎㅎ
어제 밤에 숙소를 계속 알아봤는데 없다고 해서 처음 묵었던 뉴씨암으로 다시 가야하나 고민이 되었지만 다시 조금 알아보기로 했다. 깔끔하고 크고 저렴했던 람푸하우스로 갔는데, 어젠 full이었지만 오늘은 방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공동욕실. 그래서 그냥 패스했다. 뉴씨암이 다 좋은데 와이파이가 유료라 꺼려졌던 건데, 그냥 뉴씨암으로 하기로 했다. 다시 가니 우리를 기억 못 하는 듯 했고, 방까지 확인시켜주는 것을 우리도 그냥 모른 척 하고 방 확인 후 계산을 했다. 109호에서 103호로 이사. 아쉬운 점은 더블침대가 아니라 싱글침대 두 개 붙여져 있다는 것. 그래도 훨 낫다. 조용하고 화장실도 있고 깨끗하니...
계속 고민이 되던 아유타야도 그냥 조금 늦은 것 같아서 오늘은 짜오프라야강에서 배를 타고 저기 아래까지 내려가 보기로 했다. 우선 선착장으로 걸어가기. 항상 돌아간 것 같은 길을 이번에는 대학교를 관통해서 가 보기로 했다. 못 들어가게 하지는 않을 것 같았는데 그래도 어떻게 하다 보니 경비아저씨의 눈을 피해서 들어갔다. 쭉 직진을 해서 들어가니 항상 ㄷ자로 돌아갔던 길을 바로 가게 되었다. 타 티엔 선착장까지 가면서는 버블티도 마시고 고기쪼가리(?)도 샀다. 그리고 타 티엔에서 먹고 싶었던 망고밥과 아내가 좋아하는 오징어구이도. 그리고 바로 옆 공원에서 점심을 먹었다. 고기는 그냥 짭짤하니 맛있었고, 오징어는 항상 실망시키지 않는 그 맛, 정말 이상할 것 같았던 망고밥은 의외였다. 찰밥에 코코넛밀크까지 뿌려줘서 과연 무슨 맛일까 했지만 달콤했고, 망고랑 같이 먹는 게 엄청 이상하지는 않았다.
점심을 간단하면서도 거하게 먹고 배를 탔다. 우리가 탈 배는 주황색 깃발. 사판탁신까지 내려가 보기로 하고, 비싼 파란 깃발 배를 두 대 보내고 주황색을 탔다. 사람이 정말 많았는데 이번에도 아주머니는 우리에게 오지 않았다. 사람이 내릴수록 안쪽으로 들어갔는데, 아주머니는 더욱 더 오기 힘든 위치고 가게 되는 셈이었다. ... 이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그래서 그냥 강변을 구경하며 남쪽으로 내려갔다. 강물은 더럽지만 그래도 강변 구경은 꽤 볼만 했다. 방콕 와서 짜오프라야 강에서 배 타면서 구경 안 해봤으면 조금 아쉬웠을 정도의 경치와 분위기?
배는 사파탁신에 도착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렸다. 어디로 갈지 특별한 목적지는 없어서 그냥 우선 걸었다. 높은 빌딩 보이는 쪽으로. 그런데 이쪽에 있는 큰 빌딩 꼭대기에 시로코가 있었다. 64층 빌딩 옥상에 있는 레스토랑... 음료수만 마셔도 몇 천 밧이라는, 허름한 옷차림은 안되고 잘 입어야만 입장 가능하다는 그곳... 나시에 샌들 차림인 우리가 빌딩에는 들어갈 수 있을까 고민했지만, 다행히 빌딩은 제지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들어갔는데 꼭대기를 한 번 가보고 싶었다. 아내는 절대 안 된다고, 안 될거라고 했는데, 내가 좀 졸라서 엘리베이터쪽으로 가보자고 하니 직원이 친히 엘리베이터도 잡아주는 것 아닌가.
우리 말고도 두 사람이 더 탔는데, 이 사람들은 무슨 카드키를 넣으면서 층을 눌렀다. 아, 호텔이 같이 있는데 방 키를 넣어야만 그 층으로 갈 수 있는 것 같았다. 보안이 매우 철저했다. 우리는 꼭대기층을 눌렀는데 이곳은 별 다른 조치 없이도 갈 수 있었다. 꼭대기에 내리니 레스토랑이 있었는데 아직 문은 열지 않았다. 우리의 차림을 제지하는 사람도 없었다. 통유리로 된 벽 밖으로 시로코라는 레스토랑이 보였는데 야외 식당이었고, 그 밖으로는 방콕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오는 곳이었다. 밖에 가고 싶은 마음에 나는 너무나도 깨끗한 통유리를 인지하지 못한 채 이마부터 무릎까지 부딪히고 말았다. ... 아내한테 엄청 혼나고 그냥 유리는 유리 밖으로 보이는 시내를 구경만 좀 하다가 내려왔다.
내려와서는 그냥 시내 구경을 하면서 한참을 걷다가 다시 배를 타기 위해 돌아갔다. 선착장으로 가는 골목에는 학교가 있었는데, 여기서 학생들이 군것질을 엄청 많이 하기에 뭔가 했더니 식빵구이였다. 우리가 아는 그 맛이겠거니 했지만 우리도 두 장을 사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숯불에 버터를 바른 식빵을 노릇하게 구워서 연유랑 초코시럽을 뿌려주는데 맛이 없을 수가 없지...
배를 타서는 또 다시 요금을 내지 않았는데, 우리에게 아주머니가 요금을 내라고 별다르게 말을 하지 않아서 그냥 가만히 있었다. ... 이거, 의도치 않게 배는 모두 무임승차를 하게 되었다. 강을 따라 올라가다보니 해는 왓 아룬 뒤로 넘어가고 있었고, 지는 해를 바라보는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카오산으로 가는 선착장에 내려서 가다보니 바디스크럽을 카오산보다 싸게, 시간은 더 많이 하는 집이 있어서 아내가 받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숙소에 짐을 놓고 아내는 바디스크럽을, 나는 카오산로드로 가서 발마사지를 받기로 했다. 그리고 끝나고 숙소에서 만나거나 내가 데리러 가기로...
처음으로 떨어져 있는 거라서 조금 걱정도 되었다. 나는 얼른 카오산으로 가서 발마사지 1시간을 받았다. 사람이 많아서 지금 안 되는 줄 알았는데 금세 무전기로 마사지사 한 명을 호출한다. 음... 가게는 다 달라도 뭔가 인근 가게들끼리 ‘마사지연합’을 이루고 있는 것 같았다. 한 시간 동안 마사지를 받는데 크게 나쁘지는 않았는데 엄청 좋지는 않았다. 발에 호랑이연고를 얼마나 발라대는지, 처음엔 코가 뚫리는 기분이었다가 나중에는 눈도 뚫리는(?) 기분... 그리고 마지막 10분 어깨 마사지는 너무 아팠다. 지난번에 받은 30분 발마사지가 정말 좋았던 것 같다. 마사지를 다 받고 숙소로 오니 아내는 방금 도착했다고 했다. 아내는 바디스크럽은 등만 받았는데 시원했고, 그 다음에 한 전신 오일마사지가 너무 좋아서 계속 잠이 들 정도였다고 했다.
저녁 먹을 때가 되어 밖으로 나갔다. 방콕에 오니 정말 ‘놀고 먹고 자고’만 하는 것 같다. 근데 뭐 여행이 이런 거 아닌가, 놀고, 먹고, 자고, 그리고 또 먹고. ㅎㅎ 오늘도 인도 음식점으로 갔다. 태국음식도 같이 하는데 어제는 9시 넘어서 가서 못 먹어서 오늘은 조금 일찍 갔다. 인도음식을 잘 하니 태국음식도 잘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똠얌꿍에 도전해보기로! 생선요리도 한 개 시키려고 했는데 다 떨어졌다고 해서 그냥 모닝글로리랑 밥을 시켰다. 4년 전인가, 인도네시아에서 먹어본 똠얌꿍은 식초물 같아서 안 좋은 기억이 있었는데, 과연 어떤 맛일지. 새콤하고 매콤하다고 하는데...
이런저런 수다를 하다 보니 음식이 나왔고 우리 둘 다 떨리는 마음으로 똠얌꿍 한 수저를 떠서 먹어봤는데, 대박. 대박 맛있었다. 새콤했지만 식초 같지는 않았고, 매콤했지만 혀를 마비시킬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맛은 완전 신세계. 주문했던 모닝글로리가 나왔는데, 이것도 완전 맛있어서 밥 한 공기를 더 시켜서 뚝딱 해치웠다. 완전 든든하게. 항상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 길거리 인도음식점.
밥을 먹고는 별다른 구경 없이 숙소로 돌아와서 잤다. 카오산도 이제 너무 익숙하다. 그런데 이런 익숙함이 좋기도 하다. 내가 온 여행지를 충분히, 아주 푹 알아가는 느낌. 바쁘게 돌아다니는 것도 많은 것을 보니까 좋은 면이 있을 수 있겠지만, 느리게 다니면서 이런 것도 좋은 것 같다. (그래도 방콕에 오래 있으면서 라오스, 특히 루앙프라방에 더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온 것이 계속 아쉽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