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에서 버스만 타고 다니면서 재미있었던 점은, 스님이 탈 경우에 돈을 받지 않고, 문 바로 앞자리에 누군가 앉아 있으면 자리를 꼭 양보해 준다는 것이다. 버스비를 받으러 다니는 아주머니가 앉아 있는 사람에게 강제로 일어나라고 할 정도... 처음엔 너무 신기했다. 일어나라고 하는 아주머니도, 일어나서 자리를 양보해주는 승객도, 그리고 너무나도 당연하게 앉는 스님도.
그런데, 오늘 그 비밀을 알았다. 사람이 많이 타지 않은 버스를 탔는데, 아내가 반 장난 식으로 문 앞자리는 스님자리니까 그 뒷자리에 앉자고 했다. 그래서 문에서 두 번째 자리에 앉았는데, 문 앞자리 창문에 조금 생소한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아내랑 입을 떡 하니 벌릴 수밖에... 주황색 스티커에는 승복을 입은 스님 표시가 있었다. 반대편에는 흔히 볼 수 있는 노약자와 임산부그림.
완전 신기했다. 95%가 불교 신자라는 태국, 방콕의 버스에서 발견한 스님 전용 좌석. 비교적 다양한 종교가 섞여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불교라는 종교가 생활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어 있는 이들의 삶, 태국 사람들에게 불교는 특별한 ‘종교’가 아니라 ‘삶’ 자체가 아닐까...
아유타야 투어 상품도 많이 있었지만, ‘투어’를 싫어하는 나는 아내와 함께 직접 아유타야에 찾아가기로 했다. 알람은 7시에 맞춰놨지만, 여행 와서 살만 찌고 있는 무거운 몸(?)을 일으킨 건 8시가 다 되어서였다. 준비를 하고 숙소를 나섰다. 아침을 먹고 모칫 버스터미널로 바로 가야 해서 아유타야에 갈 짐도 다 챙겨서 나왔다. 옆으로 메는 가방이 조금 번거로워서 백팩을 비우고 중요한 것들을 다 여기다 넣었다.
아침은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항상 먹던(?) 어묵국수를 먹기로 했는데 문이 닫혀있었다. 이럴 수가, 항상 아침에 열어서 오후쯤 문을 닫는 가게였는데... 아쉬운 발걸음을 뒤로 하고 오다가 본 ‘홍콩누들’이란 식당으로 갔다. 주방이 밖에 있고 식당이 안쪽엥 있는 그런 가게였다. 주방이 깨끗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컨셉인 듯 했는데, 식당 내부도 완전 깔끔했다. 우리는 밥종류와 완탕, 그리고 딤섬을 시켰다. 아내가 딱 좋아하는 맛. 물론 나도 맛있게 잘 먹었다. 향신료 강한 태국 음식보다 맛도 더 깔끔하고 담백한 맛도 있으면서 좋았다.
밥을 먹고는 터미널로 가는 시내버스 3번을 기다렸는데 바로 왔다. 길은 많이 막히지 않고 버스터미널에 내릴 때 까지 40분이 조금 넘게 걸렸다. 터미널 상가(?)를 지나서 건물로 들어가니 매표소 아주머니들이 창구 안에서 호객행위(?)를 한다. 일단 가서 ‘아유타야’라고 말하니까 인사이드라고 해서 들어갔다. 수십 개의 창구들 가운데 아유타야행 버스는 어디서 표를 끊어야 하는 것일까 헤매는 차에 안내창구가 보였다. 아주머니는 3번 건물 45번 창구로 가라고 한다. 밖으로 나와 여기저기 돌아다니니 옆으로는 4번, 5번 건물이 보였고 우리가 있던 곳이 3번 같았다. ... 그래서 다시 안으로 들어와서 지나가는 다른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21번으로 가란다. 21번으로 가니 다시 옆 창구로 안내... 이건 뭔가;;;
우여곡절 끝에 아유타야행 미니버스(봉고차)를 한 사람당 70밧에 예매할 수 있었다. 출발은 10분 후에, 앞에 앉아있으면 아주머니가 부른다고 했다. 요구르트를 한 개 마시면서 기다리니까 아주머니가 부른다. 그리고 앞에 있는 남자를 따라가라고 한다. 터미널 밖으로 나오니 봉고차가 있고 타라고 한다. 이게 인터넷에서만 보던 ‘롯뚜’라는 건가. 재미있는 건 이게 아유타야까지 가는 버스는 아니고 가면서 중간 중간 계속 사람들을 태웠다. 마치 그냥 일반 버스처럼. 아, 고속버스의 개념이 아니고 완행버스의 개념. 자다깨다를 반복하다가 갑자기 아유타야에 왔다고 우리를 깨워서 비몽사몽 롯뚜에서 내렸다.
아유타야. 옛 아유타야왕조의 수도였는데 버마의 침입으로 많이 파괴되고 현재의 방콕으로 수도를 옮겼다고 하는데, 마치 경주 느낌 나는 것일 거라고 생각했다. 잔디밭에 첨성대 있고 왕릉이 있는 그런 것처럼, 잔디밭에 무너진 탑들과 목이 잘린 불상들이 있는, 내가 인터넷에서 본 사진도 그런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내린 곳은 그냥 길바닥이었다.
잠도 덜 깬 채로 일단 내리니 롯뚜는 떠났다. 옆에 있던 아저씨에게 방콕 가는 것은 어디서 타야고 하니까 반대편에서 타면 된다는 정보를 얻고 정류장 의자에 아내랑 앉아서 잠을 깨고 있었는데 어떤 여자애가 접근했다. 한국사람이라고 하니까 서툰 발음으로 두 손을 합장하듯 가슴에 모아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한다. 나는 뭐 일일 가이드해주는 사람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자기는 툭툭 기사라고 한다. 20대 여자애가 툭툭기사라니, 조금 놀랐다. 그러면서 4시간 투어를 해준다고 지도를 펼쳐들고 말을 건다. 아내는 얼른 그냥 가자고 했는데 나는 몇 마디를 좀 더 나눠봤다. 우리에게 어떻게 갈 거냐고 해서 자전거를 빌린다고 하니 멋진 탑들은 다 외곽에 있어서 엄청 힘들다, 10km나 떨어져 있다 등등의 겁(?)을 줬다. 아내가 그냥 계속 재촉해서 내가 그냥 알아서 우리가 간다고 하니 표정이 싹 바뀌면서 말도 안하고 등을 돌린다. ... 무서운 ㄴ...
우리는 호객행위를 하는 다른 툭툭기사들을 피해 일단 패밀리마트로 들어왔다. 과자 한 개랑 음료수 한 개를 사고 직원에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도를 보여주면서 여기가 어디인지 물어봤다. 대충의 위치가 파악되자 우리는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내렸음을 알게 되었고, 일단 아유타야 중심부(?)쪽으로 가기로 했다. 패밀리마트를 나와 잠깐 뒤를 돌아보자 아까 그 여자애가 손짓을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냥 발걸음을 옮겼다.
차도, 오토바이도 별로 안다니는 아유타야 시내(?). 이곳을 걷는 사람은 내외국인을 불문하고 우리 둘 뿐이 없었다. 나는 이런 곳을 상상한 게 아닌데... 걸어가는데 다른 툭툭 아저씨가 몇 번이나 무시를 했는데도 말을 건다. 자기는 투어리스트 폴리스라고 하면서 어디를 가냐고, 쇼핑 강요 없이 1시간에 200밧으로 가이드를 해준다고 한다. 경찰 맞냐고 물어보니 허접한 작은 두꺼운 종이에 프린트된 경찰 마크(?)를 보여준다. 우리는 자전거를 타러 갈거라고 하니까 이쪽으로 가면 자전거 빌리는 곳이 없고 아까 그 애처럼 10km를 가야 한다고 겁을 준다. 그냥 알겠다고 하고 우린 다시 튼튼한 두 다리로 걸어갔다.
가다 보니 길가에 무너진 탑이 있었다. 세 개의 탑이 있었는데 모두 다 파괴된 모습. 처음으로 본 ‘아유타야다운’ 모습이었다. 그럼 우리는 이제 이런 탑들을 찾아 나서면 되는 것인가...
가는 길에 자전거가 세워져 있어서 빌리는 곳인 줄 알았는데 파는 곳이었다. 그러나 시내 중심부로 가면서 자전거 빌리는 곳은 꽤 여러 곳이 나왔고 자전거를 탄 관광객들도 많이 보였다. 자전거를 빌릴까 했는데 상태가 별로 안 좋아서 빌리지는 않고 그냥 지나갔다. 점심때가 지났지만 배는 고프지 않았다.
또 지나가는 길에 건너면에 관광객이 많은 탑이 보여서 한 번 들려보기로 했다. 여기는 아까와 다르게 입장료가 있었다. 50밧. 엽서들을 봤는데 인터넷에서 많이 보던 불상 머리만 나뭇가지 속에 들어있는 사진이 있었는데, 여기가 바로 그곳이었다. 오예. 완전 그냥 모르고 왔는데 얻어걸린 셈이었다.
돈을 내고 들어간 곳이라 그런지 확실히 크긴 컸다. 피사의 사탑처럼 기울어진 탑, 무너진 탑, 목이 잘린 불상들 등등 내가 생각했던 아유타야의 모습이었다. 찬찬히 살펴보다 보니 나뭇가지 속에 들어있는 불상 머리가 보였다. 아... 신기했다. 앉아서만 사진 찍어야 한다고 해서 우리도 기념사진을 찍는데 한국인 투어팀이 왔다. 가이드는 태국 사람. 우리는 몰래 따라다니면서 들을까 했는데 서툰 한국어에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 보이는, 아니 어쩌면 전문적인 지식을 한국어로 설명을 하지 못하는 가이드의 모습에 그냥 떨어져 나왔다. 가이드가 없어도 그냥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버마군에 의해 파괴된 탑들과 금이 뜯겨져 입 부분만 반짝이는 불상, 타버려서 그런지 까맣게 그을린 흔적들은 당시의 침략이 얼마나 잔혹했는지를 충분히 알 수 있어 보였다.
왓 마하탓을 보고 나서는 중심부에 버스터미널을 먼저 찾기로 했는데 터미널은 보이지 않고 롯뚜 정류소만 보인다. 롯뚜 기사들이 우리가 방콕에 가는 줄 알고 부른다. 우리는 가서 그냥 배차 시간만 물어봤는데 5시 30분에 끝난다고 했다. 1시 정도였으니 구경 할 시간은 조금 여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오다가 본 자전거 빌리는 곳에 갔는데 다시 봐도 상태가 썩 맘에 들진 않았다. 한 대당 50밧. 그래서 한 번 방비엥에서 빌리지 못한 오토바이를 물어보니 한 대당 250밧이라고 한다. 자전거를 타고 또 몸살이 날 아내를 위해(?) 나는 과감하게 오토바이를 빌리기로 했다.
옆 가게에서 우리를 위해 마지막 한 대 남은 오토바이를 빌려와서 일단 기름을 넣고 가라고 했다. 60밧 정도면 하루 종일 돌아다닌다고... 태어나서 처음 타보는 오토바이. 시동 거는 법도 몰라 아주머니께서 설명을 해 주시고... 허허허. 아내는 계속 걱정을 했으나 나는 괜한 자신감(?)이 있었다. 시동을 걸고 혼자 살짝 돌아보니 생각보다 쉬웠다. 헬멧을 쓰고 아내를 뒤에 태우고 출발!
기름은 절반 정도 있어서 일단 넣지는 않기로 했다. 아내도 처음에는 긴장한 모습이었는데 안전하게 잘 가서 그런지 조금씩 여유가 생기는 것 같았다. 그래도 속도는 내지 않고 30-40km/h를 유지하면서 길 왼쪽에 바짝 붙어서 다녔다. 모든 차와 오토바이가 추월할 수 있도록 해주면서. 타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는데, 운전 방향이 반대라서 즉각적인 인지가 안됐다. 교차로에서 나올 때 항상 한국에서 살피던 방향을 먼저 보게 되는 습관. 이건 길을 건널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오히려 오토바이 자체보다 이런 게 더 위험한 것 같았다.
지도를 펼쳐들고 아까 호객행위를 하던 툭툭기사들이 추천한 곳에 가보기로 했다. 누워있는 불상을 보기 위해 골목을 지나 도착하니 이곳은 탑은 거의 다 터만 남은 상태였고 큰 와불만 떡 하니 놓여있었다. 그리고 여기서 기도를 올리는 현지 사람들. 이게 방콕 시내에 있는 왓 포보다 조금 작다고 한다. 우리는 발바닥에서 기념사진만 간단히 찍고 출발.
그리고 서남쪽 가장 끝에 있는 탑을 향해 출발했다. 이곳은 왓 마하탓처럼 담벼락이 없어서 밖에서도 충분히 잘 보였다. 그래서 그런지, 아니면 멀리 있어서 그런지 돈을 내고 들어가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앙코르와트를 닮은 탑, 이곳은 그래도 비교적 온전히 보존이 되어 있었다. 툭툭기사가 추천해 준 곳이라 그런지 확실히 멋있는 것 같았다.
오토바이를 타고 다시 다리를 건너가는 길에는 수많은 사원과 탑들을 볼 수 있었다. 지도에는 이 많은 것들이 다 표시되어 있었는데 딱히 일일이 다 멈춰 서서 볼만한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그냥 아내를 뒤에 태우고 오토바이를 타고 이렇게 다니는 이 순간, 이 느낌이 좋았다.
똑같은 길도 몇 번이나 다닐 만큼 굉장히 작은 아유타야, 실실 질릴 때 쯤 우리는 배가 고파져서 식당을 찾아 나섰다. 아까 걸어가면서 봤던 태국 식당. 똠얌꿍과 볶음밥을 시켰는데, 볶음밥은 그냥 내가 집에서 하는 야채 볶음밥 맛이었고, 똠얌꿍은 인도음식점에서 먹었던 것 보다 맵지 않으면서 더 새콤했다. 결론적으로는 여기도 맛있었다. 이렇게 우리는 똠얌꿍 매니아가 되는 것인가...
3시쯤 되어서 4시 반에 롯뚜를 타고 가기로 했다. 이번에는 아까 지나가다가 본 코끼리 우리에 가보기로 했다. 코끼리를 타보고 가는 것도 있었는데, 코끼리가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우리는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오토바이를 세우고 그냥 구경만 하는데 아기 코끼리(라고 해봤자 사람 키보다 큰 코끼리)하고 사진 찍는 게 있었는데, 한 사람당 40밧. 외국인들은 많이 찍었는데 우리는 그냥 구경만 했다. 앉아서 다리를 꼬고 입을 벌리고 코를 들어서 한껏 애교를 부리는 포즈. 귀엽게 보이면서도 참 힘겨워보였다.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짧은 낫 같은 막대기를 들고 있는 조련사였다. 저런 포즈를 취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훈련 과정이 있었을까를 생각해보니 소름이 끼쳤다. 자연에서 자라야 할 코끼리들이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것을 보면서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코끼리를 구경하고 나니 4시 정도가 되었는데, 기름이 거의 다 닳아가고 있어서 우리는 그냥 반납 하고 방콕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주차를 하고 헬멧과 키를 반납, 여권을 받았는데, 아주머니는 기름 확인 같은 것은 안하고 쿨하게(?) 인사를 했다. 오예. 기름 안 넣고 3시간 정도 오토바이 투어 성공!
롯뚜 정류장으로 가니 방콕으로 지금 출발한다고 하면서 우리를 앞자리에 태웠는데, 이미 뒤에는 다 외국인들이 타 있었다. 아, 그래서 지금 출발한다고 했던 거구나. 가운데 앉으면 아내가 불편하니 내가 가운데 앉았는데, 정말 불편했다. ㅋㅋㅋ 의자도 살짝 높고 목받침도 없는데다가 눈 앞에는 유리창에 붙여진 선팅 필름 때문에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아 멀미가 날 것 같았다. 그래서 앞을 보려고 엉덩이를 앞으로 빼거나 목을 옆으로 기울여서 한 시간 반 동안 방콕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잠을 잘 잤다. ... ㅋㅋ
아눗싸와리라고 하는 전승기념비 롯뚜 정류장에 내려서 우리는 씨암까지 걸어왔다. 버스를 타려고 했으나 버스가 오지 않아 군것질을 하면서 슬슬 걸어서... 다른 일반 관광객 같다면 상상도 못할 거리(?)였겠지만 그냥 우리는 이런 게 익숙하다. 익숙한 씨암, 여길 다시 오게 됐구나. 버블티를 한 개 마시고 아내 옷을 한 개 더 사려고 했으나 마음에 드는 게 없어서 그냥 카오산으로 가기로 했다. 15번 버스를 타고 오는 길, 이제 이 길도 익숙하다.
카오산에 도착해서는 저녁을 먹으러 아침에 갔던 홍콩누들에 갔다. 먹어보지 않은 딤섬과 다른 메뉴들을 시켰는데, 역시 맛있었다. 이제 우리에겐 홍콩누들이 진리가 되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는 빨래를 찾고, 버섯꼬치 3개랑 Chang 클래식이 아닌 다른 거를 샀는데, 클래식 보다 뭔가 부드럽고 맛있는 것 같았다. 버섯꼬치도 숯불에 구워줬는데 부담 없이 맛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내일 또 뭘 할지 정하지는 않은 채 잠이 들었다. 아직 방콕에서 다섯 밤이나 더 자야한다. ㅎㅎㅎ 아, 라오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