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바다 위에 섬들 몇 개(?) 떠 있는 것이 하롱베이일 것이라 단정짓고, 사진에서 보던 거랑 별반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하고 2년 전에 하노이에 왔을 때 하롱베이를 가지 않았던 것인데, 오늘, 하롱베이에 직접 와보고나서야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롱베이의 3,000여개의 섬들이 유네스코로 지정되고, 투어로 보는 것은 일정 지역만, 몇 백개에 불과하다는데, 전체적인 그 규모가 얼마아 될지 정말 상상이 안간다. 사방을 둘러보고 있으면 섬들로 가득 차서 수평선이 보이질 않는다. 한눈에 살펴보는 광경도 멋있었지만, 섬들 하나 하나를 자세히 봐도 신기했다. 섬 중간에 칼 자국처럼 난 단면은 분명 지각운동에 의한 것일텐데, 이곳에서 어떻게 이런 섬들이 생겼으며 저런 모습을 가지게 되었을지 정말 신기할 따름이다.
배를 타고 이동하는 내내 감탄이 나왔다. 하롱베이의 수 많은 섬들을 보며 아내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세상엔 참 아름다운게 많은데, 우리가 죽을 때까지 세상의 이런 아름다운 것들 중 절반은 보고 죽을 수 있을지... 아내는 절반은 보고 죽자고 한다. 또 다시 결혼할 때의 청첩장 문구가 생각이 난다.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함께 보자는 것. 어쩌면, 이런게 바로 행복하게 사는 것 아닐까 싶다. 우리 부부는 청첩장에 썼던 '연금술사'의 한 문구처럼 세상의 아름다움을 함께 보는 것에 목표를 두고 살면,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을까 싶다.
아침 일찍 일어나 쌀국수를 먹고 호텔 로비에서 기다리니 투어 가이드가 와서 우리를 데려갔다. 근처에 있는 25인승 버스로 옮겨타고 여기저기 호텔을 돌아다니며 오늘 하롱베이로 가는 사람들을 태웠다. 4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해서 다른 곳에서 큰 버스로 옮겨탈줄 알았는데 이 차로 하롱베이까지 간단다. 우리는 제대로 된 의자에 앉았지만, 간이 의자에 앉은 사람도 있는데... 뭐, 어쩔 수 없지.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였다. 미국, 콜롬비아, 독일, 호주, 싱가포르, 그리고 우리 한국까지... 가는 동안 독일 사람과 스페인 국적의 미국에서 온 사람(?)이 급 친해져 악수하고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뭔가 개방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new friend라고 하는게 신기하기도 했다.
지루한 버스는 아시안 하이웨이 1번 국도(AH1)를 달리다 오른쪽으로 빠진다. 졸다 깨다 졸다 깨다 휴게소에 들렸다. 기념품도 있는데 뭐 별로 살건 없었고, 다시 버스를 타고 출발. 또 한참을 달려 하롱베이 선착장에 도착했다. 작은 배에 타고 조금 가니 큰 배가 있었다. 3층짜리 배. 여기에 숙소도 있고 식당도 있고 한거다. 방을 배정 받았는데 우리는 화장실이 딸린 좋은(?) 방이었다.
가이드는 3가지의 액티비티가 있는데, 동굴, 수영, 카약, 이 세개를 오늘 다 하면 바쁘게 움직여야 하고, 오늘 동굴과 수영, 내일 카약을 하면 한가하긴 한데 내일 6시 30분에 카약을 해야 한다고 했다. 사람들에게 선택하라고 하니 2개 1개로 하자고 했다. 우리는 대세에 따르기로...
점심은 6명자리 4개 테이블에 나눠서 적당히 앉았는데, 우리는 싱가포르 남자 두 명과 같이 앉게 되었다. 점심-밥을 비롯한 생선과 각종 요리들이 나왔는데 꽤 푸짐하고 맛있었음-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서로의 여행이야기부터 시작해 여러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서로의 직업을 물어보다가 이사람들이 싱가포르에서 화장품 어쩌구저쩌구 이런 얘기를 해서 나는 화장품 개발하는 사람인줄 알았는데 판매원이었다. 게다가, 내가 직장 그만두고 왔다고 하니까 갑자기 카톡 친구하자고 해서 번호도 따이고 뭐 그랬는데, 한국에서 인터넷 접속해서 물건 사면 저렴하고 일정 부분 수수료도 챙길 수 있다고 한다. 더 들으면서 파악하게 된 것은 다단계! 헐...ㅋㅋ
다단계 이야기를 듣다보니 어느샌가 하롱베이의 수 많은 섬들 사이로 배는 도착했고, 우리는 적당히 대화를 끊고 갑판으로 나가 섬들을 구경했다. 여기서도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하는데, 다단계는 없었고, 어떤 미군과 조금 친해지게 되었다. 사진을 찍어주고 Where are you from? 하는데 갑자기 이 외국인이 "평택"이란다. 잉? 평택? 이상해서 내가 계속 "평택? 경기도 평택?" 이러니까 yes, yes 한다. 그래서 Are you US army? 하니까 yes란다. 아하... 헐. 완전 신기했다. 신년 휴가를 받아서 놀러왔다고 한다.
배는 동굴 근처로 갔고, 다시 작은 배로 옮겨 타서 동굴이 있는 섬 선착장으로 갔다. 하롱베이에 온 사람 전부가 다 여기에 모여있는 것 처럼 동굴로 올라가는 계단 가득 사람들이 서 있었다. 매우 복잡했지만 가이드를 따라서 동굴을 돌아다니면서 구경을 했다. 신기한 바위들, 원숭이, 부처님, 거북이, 거시기(?) 등등 다양한 모양의 바위가 있었다. 그리고, 동굴을 나와서 보는 하롱베이의 풍경도 정말 장관이었다.
동굴탐험을 끝내고는 해변으로 갔다. 작은 산 또는 언덕을 올라가도 되고 수영을 해도 된다고 했다. 나는 산을 좀 오르고 싶었지만 아내가 힘든지 계속 혼자 가라고 한다. ... 차마 그럴 수 없어서 그냥 해변에 있기로 했다. 그냥 가만히 앉아 있었다. 수영하는 사람들 구경하면서... ... 해변을 구경하다 보니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붉은 해가 하롱베이의 섬들 사이로 떨어지는데, 이런 풍경을 보는 것도 뭔가 좋았다. 오랜만에 보는 일몰이었다.
해가 지고 나니 다시 작은 배를 타고 큰 배로 와서 저녁을 먹었다. 저녁은 콜롬비아 커플(필름메이커, 프로듀서)와 다단계, 그리고 우리까지 6명이서 밥을 먹었다. 밥을 먹고 나서는 봉춤을 추는 카라오케(?)를 즐기든 낚시를 하든 선택이었는데, 우리는 그냥 방으로 왔다. 그리고... 잤다. 쿵짝쿵짝 시끄러운 음악소리도 잊은채...
창 밖에는 하롱베이의 섬들만큼 많은 수의 정박한 배에서 나오는 불빛이 바닷물에 반짝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