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2. 31
2014년의 마지막 날, 언젠가부터 이런 특별한(?) 날에도 아무런 느낌이 없다. 어렸을 때는 12:00가 딱 지나가는 순간에 뭔가 신기하기도 하고 그랬던 것 같은데... 오늘은 2014년의 마지막 날이자 여행 떠나기 하루 전이다. 오늘 아침에 유난히 잠에서 일찍 깼는데, '내일이면 베트남에 있겠구나'하는 생각에 기분이 묘하기도 했다.
환전은 어제 했다. 씨티 국제현금카드에서 돈을 인출할 계획이라 많이는 안했다. 베트남은 가봐서, 하노이 공항에서 바로 뽑으면 된다는 걸 아니 특별히 환전을 하지 않았고, 라오스는 달러로, 태국과 싱가포르는 현금인출기가 어디있는지 모르니, 시내 들어갈 돈 정도만 약간 환전했다. 태국이랑 싱가폴 지폐는 처음 봐서 생소하다 쳐도, 달러도 100달러짜리는 너무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뭔가 바뀐 것 같기도 하고 어색했다. 딱 이정도만 돈 쓰면 좋겠는데, 가서 현금 엄청 뽑게 되겠지...ㅋ...;;; 환전을 하니 여행에 한 발자국 더 가까워진 기분이다.
배낭은, 지금 이 글을 다 쓰고 노트북까지만 넣으면 되는 것 같다. 어제 한 빨래 중에서 마른 옷을 오늘 챙겨서 잘 넣었고, 기본적인건 다 들어있는 것 같으니 큰 문제될 건 없겠지. 뭐, 정말 없으면 가서 구해서 쓰면 되니까... 아내 배낭은 다 싸서 한 번 들어봤는데 좀 무거운 감이 있었지만, 그래도 아내가 직접 메어 보니 크게 무겁진 않다 했다. 다행이다. 내 가방은 노트북이 들어가기 전이라 아내 배낭보다 가벼웠는데, 무게가 어떨지, 체감상으로는 또 어떨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하루하루씩 계속 이동하는 여정이 아니니까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 다만, 기념품 사올 공간이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다.
저녁을 먹고 마지막 설거지를 한 후 청소를 깨끗하게 했다. 한 달 반 정도 비는 집은 동생이 봐주기로 했다. 계속해서 사람이 살던 집이니 크게 불편함은 없을테고, 우리가 여행을 끝나고 다시 돌아왔을 때, 오랫동안 비어있는 집이 아니었다는 느낌만 나게 해 주면 좋을 것 같다. 참 다행이다. 그래도 비는 기간 동안 집을 봐줄 사람이 있다는게...
오랜만에 학교에 가서 교수님과 점심을 먹고 커피 한 잔을 하고 왔는데, 참 가슴 뭉클한 말씀을 많이 해 주셨다. 나의 이런 결정에 대해 용감하다고 하시며 계속해서 응원의 말씀을 해 주셨다. 다녀와서의 일(?)도 걱정이지만 그보다 더 미래에 대해 이야기 해 주시며 잘 될 것 같다고 해 주시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사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면서 부담도 되고, (교수님 뿐 아니라 타인의) 기대에 못 미치는 것 같아서 좌절과 실망을 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내 삶은 내가 만들어 나가고, 지금 내 삶의 현실들이 모두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런 점에 있어서 교수님은 나의 생각을 존중해 주시고 격려해 주신다. 그래서 참 좋다. 전공도 다양한데다가, 경력도 다양하고, 생각과 행동도 남들과는 조금 다른 나의 다양성을 100% 인정해 주시니, 만날 때마다 즐겁고 힘이 많이 난다. (급 교수님 예찬글이 되었다...;;;)
여튼, 교수님을 만나뵙고 돌아오면서 우연찮게 메모장을 열어 쭉 읽어보게 되었다. 그중에 두 달 전에 쓴, 여행에 대해 고민하는 글이 있었다.
내가 어떻게 해야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거 아닐까
일을 하고 돈을 벌어야 하는 삶이 정상이고
장기간 여행 가는 것은 뭔가 비정상이라고 생각하니까
불안해하고 걱정하는 것은 아닐까
속된 일은 없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
내 인생 내가 사는 것,
우리 인생 우리가 사는 것,
잘못하고 있는 것 아니니 너무 걱정 말자.
고민하지 말자.
(2014. 11. 09)
오늘 교수님과도 이야기했지만, 우리는 대부분 남들이 사는 인생을 그대로 답습하려고만 하는지도 모르겠다. 20살엔 대학을 들어가고, 30살엔 직장, 그것도 대기업에 다니면서 결혼도 해야하고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남들과 비교하며 우월감을 갖거나 열등감을 갖는다. 열등감을 갖는 삶도 비참하지만, 이것 가지고 우월하다고 여기는 것 역시 얼마나 하찮은 삶인가. 나의 여행에 대해 타당한 이유를 갖다 붙이고 정당화하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지금, 서른 살을 눈 앞에 둔 스물 아홉, 20대의 마지막 순간에 있는 나는 '잘, 매우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내와 함께 일을 잠시 멈추고 여행을 가는 것이 무엇을 얻게 되고, 또 무엇을 잃거나 버리게 될지 확실히는 잘 모르겠지만, 내일부터 만들어 나갈 소중한 순간이 우리의 아름다운 추억이 되고, 앞으로 내 인생과 아내의 인생, 그리고 우리 가정을 이끌어줄 확실한 '무언가'는 될 것이라 확신한다.
즐거울 때나, 힘들 때, 항상 기억하려고 하는 말이 나의 좌우명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이지만, 지금은 아내의 좌우명을 기억하고 싶다.
"지금 이 순간을, 이 느낌을 기억하자"
20대의 마지막 이 순간, 이 느낌...
서른을 한 시간 앞둔 스물 아홉, 지금의 나에게 이런 말을 해 주고 싶다.
"10대 때 꿈꿔왔던 계획대로 20대를 살지 못했지만,
그래도 잘 살아왔다.
힘들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잘 버텨왔다.
20대를 잘 살아주고, 잘 버텨준 나에게
참으로 고맙다.
그런데,
20대에 꿈꿔온 30대의 계획도 있지만,
그렇게 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래도,
20대 처럼, 잘 살아보고 잘 버텨보자.
그리고 30대의 마지막 순간에 또 다시 말하고 싶다.
잘 살아주고, 잘 버텨준 나에게 고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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