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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야기/독후감V

대한민국 엘리트 주의를 말하다. 공부논쟁 독후감

by inhovation 2025. 5. 25.

No. 205

공부논쟁

김대식, 김두식 지음

창비 펴냄

 

매니악하게 책을 많이 읽고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꾸준히 독서를 해 오면서 좋아하는 저자가 몇 있다. 이 책 "공부논쟁"의 저자 중 한 명인 김두식 교수는 내가 좋아하는 저자 중 한 명이고, 오래 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책, "욕망 해도 괜찮아"의 저자이다. 그리고 이 책을 같이 쓴 김대식 교수는 김두식 교수의 형이다. 동생 김대식 교수는 현재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형 김대식 교수는 서울대 물리학부 교수로 있다가 현재 울산과학기술원 물리학과 특훈교수로 있다. 무슨 책을 읽을까 쇼핑하던 중, 불현듯 김두식 교수가 생각이 났고, 저자로 검색을 하다가 재미있을 것 같아서 "공부논쟁"과 다른 책도 샀다. 이 책은 대한민국에서 엘리트라고 부를 수 있는 두 형제가 공부에 대해 허심탄회한 대화를 기록하고 있다.

 

지랄총량의 법칙, 인생을 설명해주다!

No. 151 욕망 해도 괜찮아 김두식 지음 창비 펴냄 얼마 전 지인과 여행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베트남 배낭여행을 앞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나의 이야기를 더 나누게 되었다. 대학교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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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가 서로 주고 받는 대화를 그대로 옮겨놓은 책이라, 대화에 참여하여 듣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정말 잘 읽힌다. 책의 전체 내용을 한 줄로 정리해보자면 '고학력 석박사들의 현실에 대한 관찰과 고찰'정도로 요약하고 싶다. 예전에 어디선가 들은 말인데, 우리나라에서 제일 자존감이 낮은 집단이 서울대 박사과정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공부하는 사람들이 자존감이 제일 낮다니? 그 이유는 본래 이들은 해외로 박사를 가려고 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라서 자존감이 낮다는, 그런 설명이었다. 서울대 박사과정은 커녕, 서울대도 못가봐서 내가 실제 직접 이들에게 들은 것은 아니지만, 꽤 그럴듯한 설명이긴 했다.

 

@교보문고

 

김대식 교수는 서울대에서 오랫동안 재직하며 보아온 이런 현실들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동생과 우리나라의 엘리트주의와 이런 사회에서 공부를 하는 것에 대한 논쟁일 펼친다. 이 책은 형제의 성격을 알고 읽어야 재미있는데, 형 김대식 교수는 과감하고 돌격대장 스타일, 동생 김두식 교수는 약간 조심스럽고 성찰하는 스타일이라고 해야 할까, 여튼 두 형제의 성격이 정 반대라고 한다. 나는 뭔가 김대식 교수의 스타일을 더 좋아하는지, 책을 읽으며 밑줄쳐 놓은 것들을 보면 김대식 교수의 주장이 더 많은 것 같고, 공감도 더 많이 되었다.

대식: 저는 그런 모든 구속이 싫습니다. 내가 가진 모든 걸 빼앗더라도 내 생각은 빼앗을 수 없습니다. 자기 생각을 한다는 건 그만큼 소중한 거예요. 교수, 박사, 변호사 이런 타이틀이 없어도 술자리 친구 몇명에게 자기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면 자유인이에요. 이름 뒤에 무슨 대단한 타이틀이 걸려 있다 해도 어떤 상황이 무서워서 말을 못하면 그건 자유인이 아니죠.
대식: 지난 30년간 우리가 얼마나 빨리 발전했는지 몰라요. 우리 세대만 해도 유학 가야 할 필요가 조금은 남아 있었지만 이제는 아니라고 봐요. 그래서 그런 주장을 하는 거죠. 배워 와야 할 시기가 지난 이후에도 유학을 계속하는 건 종속이거든요. 배워야 하기 때문에 배우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안 배워도 되게 국력이 비슷해졌는데 계속 배우는 건 종속이에요. 그 폐해가 이미 나타나고 있어요.
대식: 지도교수가 만들어놓은 집을 과감하게 박차고 나와 자기 집을 짓는 노력을 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은 그걸 하지 못해요. 쉬운 길을 선택하는 거예요.
대식: 서울대에서 배출한 박사들이 지방 국립대에 가서 교수를 해요. 서울대 교수 자리는 유학 다녀온 친구들에게 빼앗기고 다른 대학으로 가는 거죠. 그런데 이 사람들은 그 지방 국립대 출신들과 많이 달라요. 근본적으로 애교심이 약해요. 자신이 왜 여기까지 내려왔나 억울해하는 마음이 있어요. “내가 서울대에서 우수한 학생들을 가르쳤다면 훨씬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을 텐데, 지방대 애들로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어. 내가 연구를 제대로 못하는 것은 연구 여건이 나빠서야.”
그러면서 최고가 되기를 포기하고 대충 살아요. 실적이 안 나오는 건 모두 환경 탓이 되는 거예요. 해외유학파 교수가 서울대에서 불평하는 것과 똑같은 한탄을 서울대 박사인 교수가 지방대에서 늘어놓아요. 교수를 뽑을 때가 되면 자기가 키운 지방대 박사를 뽑지 않고 서울대 출신 박사를 뽑아. 이거 정말 재미있지 않나요?

 

또 흥미로웠던 것은, 우리나라에서 공부를 해서 석사, 박사가 되는 것에 대한 두 형제의 대화였다. 김대식 교수는 우리나라에서의 공부가 항상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는 수단으로 쓰이는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대식: 대학 출신, 미국 박사라는 것 자체가 나쁜 건 아니에요. 공부로 끝장을 보면 문제가 없죠. 그런데 공부가 항상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기 위한 수단인 게 문제예요.

 

이런 주장을 보니 예전에 읽었던 막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학문"이 생각 나기도 했다. 박사학위를 받고 공부로 끝장을 봤는데, 나는 더 어떤 것을 원하고 있는 것인가.

 

박사를 할 것인가, 아니면 학문을 할 것인가

No. 160 직업으로서의 학문 막스 베버 지음 전성우 옮김 올해 2월, 2년 간의 석사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학위를 받았다. 회사를 다니지 않았다면 소위 '고학력 실업자' 신세를 면치 못했겠지만,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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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김대식 교수와 김두식 교수는 이공계에서의 노벨상, 법학계에서의 학문과 실무의 교류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러면서 김대식 교수는 우리나라의 선비문화스러운 공부를 지적하고, 김두식 교수는 교류로 인한 시너지를 언급하는데, 우리나라에서 그렇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이 조금은 안타깝고 답답했다.

대식: 왜 일본에 노벨상이 많고 우리는 없냐?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어요. 우리나라 교수는 선비예요. 선비들은 공부를 통해서 더 높은 관직에 올라가려고 해요. 공부에 뜻을 둔 학자들도 나이가 들면 관직을 탐해요. 이런저런 정부 위원회의 위원장, 대학총장, 국회의원, 교육부장관, 총리를 꿈꾸죠. 독일이나 일본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에요. 웬 교수 출신 장관, 정치인이 그렇게 많아요. 교수가 훨씬 더 좋은 직업인데 왜 장관을 꿈꾸는지, 독일이나 일본에서는 이해를 못 해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게 전통이에요. 선비문화가 그런 거니까요.
두식: 법학처럼 현실과 밀접하게 연관된 학문에서는 학계와 실무의 적절한 교류가 반드시 필요해요. 미국에서도 로스쿨 교수 하다가 판사가 되는 경우도 있고, 검사 하다가 학장이 되는 경우도 있어요. 상호교류가 가능한 거죠. 다만 미국 연방대법관은 종신직이라 교수가 될 일은 없죠. 정치학 교수 하다가 국무부에 들어가서 실무를 하는 경우도 있어요. 실무를 하면서 ‘내가 말로만 떠들던 것과 현실이 다르구나’ 하고 깨달을 수도 있죠. 우리나라의 문제는 교수가 정치를 하면 바로 장관이나 국회의원으로 간다는 데 있어요. 행정부에 국장으로 가서 정치나 행정을 배우고 돌아온다면 학교에서도 휴직시켜줄 이유가 충분해요. 그 경험을 기초로 학생들을 더 잘 가르칠 수 있을 테니까요. 국립대 교수의 경우에는 어차피 나라에서 봉급 나가는 건 마찬가지니까, 그런 기회를 더 장려할 수도 있겠죠.

 

내가 교수는 아니지만 그래도 박사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고민도 해 볼 수 있었다. 나는 박사로서 어떤 '나의 집'을 지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정교수가 못 된 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어요. 당연히 권력은 정교수에게 있어요. 그가 시키는 대로 하면서 살아야죠. 그러나 동시에 독립적으로 자기 연구도 해야 해요. 자기 집을 지어야 하니까.

 

대학원을 졸업하고 나는 지금까지 어떤 나의 집을 짓고 있었을까. 어떻게 생각하면, 남들이 다 짓는대로 따라 짓는 집이 튀지도 않고 편한 방법일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 하나보니 완전 마이웨이 하고 있다. 좋게 말하면 나만의 집을 짓고 있는 것 같기도 한데, 또 다른 면에서 보면 상당히 괜히 마음이 불안한 게 없지 않다.

 

이야기가 꽤 무르익어가며 책은 마무리가 된다.

대식: 아니, 이렇게 끝내려고? 그럴듯한 말로 마무리해야 하는 거 아니야?
두식: 뭐라고 마무리해도 진부하다고 할 거잖아. 이 정도면 충분해. 밥이나 먹으러 가자.
대식: 오케이. 동생도 좀 컸네.
두식: 물론 이렇게 매일 성정하는 거지.

 

다양한 이야기들 가운데 우리나라 엘리트 교육의 현실을 시원하게 이야기해 주는 것이 인상 깊었다. 그리고 이미 그런 교육 환경 속에 노출되어 오염된(?)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이런 교육 환경이 지속된다면, 우리 아이들은 어떤 교육을 받게 해 주어야 할지도 함께 고민이 되는 책이다.

 

ps. 책의 마지막에 제일 빵 터졌던 부분은 아래 내용이다.

창비 젊은 편집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워낙 인상 깊어서 내 대학원생이나 행정요원으로 삼고 싶다는 비밀스러운 생각도 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