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가기 위해 공항철도를 기다렸다. 삐리리리리리리. 지하철 오는 소리가 들린다. 47일 동안 들어보지 못했던 소리. 그런데 몸이 반응한다. 무섭다. 한 달 반 정도 이곳을 떠나 있었으면 조금 어색할 것도 같았는데 너무 익숙하다. 이젠 여행지에서 배낭을 꾸리는 일이 익숙해졌다 싶었는데 더 익숙한 곳으로 와버렸다. 깨기 싫었던 꿈속에서 나온 느낌이랄까. 아, 이렇게 이번 여행도 끝이다. 공항과 멀어져가며 이제 점점 현실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나의 다음 여행은 언제가 될까. 기약 없는 다음 여행을 괜스레 기대하며 집으로 향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부지런히 분보남보를 먹으러 떠났다. 걸어갈 수는 있는 거리였지만 그래도 가깝진 않았다. 마지막 날이라고 카메라도, 핸드폰도 챙겨 나오지 않았다. 달랑 돈만... 이젠 완전 현지인처럼 다닌다. 핸드폰도 없으니 지도도 볼 수 없었는데 가다가 길을 잃었다. 너무 많이 와버린 느낌이었다. 다시 돌아가 천천히 길을 되새겨서 겨우 분보남보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제부터 좋지 않은 속과 이젠 머리도 아파서 나는 별로 당기지 않았다. 분보남보에 갑자기 꽂힌 아내 것만 한 개 주문했다. 소고기 비빔면, 분보남보. 완전 맛있었지만 몸이 이래서 잘 먹지 못하는 게 너무 아쉬웠다. 아내는 한 개를 다 먹지 못하고 나랑 나눠먹어서 조금 부족한 게 아쉬워 보였다. 그래도 더 먹지는 않는다고 한다.
얼른 숙소로 돌아가 짐을 싸고 내려왔다. 한국으로 가는 짐. 묵직한 배낭과 보조가방, 카메라가방까지 잘 메고 길거리로 나왔다. 무거웠지만 서로 많은 말없이 앞뒤로 씩씩하게 걸으며 롱비엔으로 향했다. 거리가 엄청 멀진 않았지만 그래도 가깝지는 않은 거리. 너무 익숙해져버린 베트남 길거리를 걸으며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버스 타기 전에 예전처럼 반미를 사기로 했는데 딱 버스정류장에 반미 파는 아주머니들이 많이 있었다.
적당한 크기의 빵을 골라 얼마냐고 물어보니 한 개에 5천동이란다. 엥, 5천동? 말도 안 된다. 내가 전에 여기서 2천동에 샀는데 한 개에 5천동이라니. 아니라고, 너무 비싸다고 베트남말로 하니까 3개에 5천동이란다. 그래서 9개를 샀다. 더 사고 싶었는데 아내가 처음엔 말려서 그만 샀는데, 돈도 남고 많이 사서 한국에서도 나눠주면 좋을 것 같아서 다시 돌아가서 7개를 더 샀다. 짐도 많은데 무겁진 않지만 반미도 한 봉지 크게 들고 버스를 기다렸다.
공항으로 가는 17번 버스가 도착하고 얼른 맨 뒷자리로 가서 가방을 풀고 앉았다. 공항까지 먼 길이었지만 익숙해져서 이젠 길도 좀 보였다. 그래도 지루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좀 졸기도 했다. 거의 다 와서 아내를 깨우고 준비하는데 공항을 못가서 버스가 멈추더니 다 내리라고 한다. 잉, 큰길로 나가서 조금만 더 가면 공항인데 뭐지. 버스 기사에게 공항 안가냐고 하니까 여기가 종점이라고 내리라고만 한다. 어쩔 수 없으니 일단 내렸다. 그리고 우리에게 달려드는 쎄옴 기사들... 혹시나 싸면 탈까 해서 얼마냐고 물어보니 3만동이란다. ㅎㅎㅎㅎ 어이가 없었다. 그냥 가니 2만동. 그래도 안타. 그래서 그냥 또 갔는데 이젠 따라오지 않는다. 뭐, 상관없었다. 조금만 걸으면 되니까... 가는 길에 택시도 우리에게 경적을 울리며 타라고 했지만 안탔다.
큰 길을 건너 저 멀리(?) 보이는 공항을 향해 걷는데 미니셔틀버스가 멈춰서 타라고 한다. 공항으로 간다고 하니 일단 탔다. 처음엔 무료인줄 알았는데 한 사람당 7천동을 받는다고 한다. 음... 뭐 돈은 있었고, 여행 처음이었으면 얼마 되지 않아도 좀 그랬을 텐데 이제 우리에게 7천동쯤이야... 가는 길에 젊은 베트남 남자랑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반미 산 이야기, 왜 17번이 저쪽에 섰는지, 이건 그 남자도 모른다고, 어딜 가는지 등등 떠들다보니 우리가 내릴 터미널에 도착했다.
공항은 1월에 왔을 때보다 많이 정비가 된 듯 보였다. 안으로 들어가니 중간층 식당가는 여전히 공사 중이었지만 3층 카페 같은 곳은 정상적으로 영업을 하는 듯이 보였다. 우리가 탈 제주항공 발권 창구를 찾아 이동했다. 이미 사람들이 많이 줄을 서 있었다. 한국에서 출국할 때처럼 수하물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창구가 있나 해서 물어보니 그런 건 없고 그냥 줄을 서라고 했다. 하는 수 없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사파에서 만났던 희수가 우리를 찾아왔다. 먼저 도착해서 발권 다 하고 수하물도 보내고 들어가기 전이라고, 남은 돈으로는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려고 했는데 천동이 부족해서 옆에 외국인에게 빌렸다고...ㅋㅋ 안에 들어가서 만나기로 하고 일단 헤어졌다.
우리 순서가 돼서 정상적으로 발권을 하고 출국 심사도 마쳤다. 면세점. 구경하려고 했는데 아직 이곳은 공사하고 있는 곳이 많았다. 그래서 남은 돈이라도 쓸 겸 돌아보는데 이거 왜 이렇게 비싼지, 면세점이 면세가 아니다. 시내보다 3-4배는 비싼 가격에 뭘 사야 할지 모르겠다. 끝까지 구경을 마치고 다시 돌아와 결국 빵 두 개를 사는 데 그쳤다. ...
비행기를 기다리면서는 빵도 먹고 반미도 먹었다. 우리 비행기는 뭔가 문제가 있어서 한 시간정도 연착이 되었고 지루하게 기다리는 시간도 그만큼 늘어났다. 드디어 탑승구가 열리고 우리는 비행기로 들어갔다. 아, 이제 진짜 마지막 비행기구나. 만감이 교차했다. 한 달 전에는 여기서 라오스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시작하는 느낌이었는데 이젠...
좌석도 좁고 기내식도 주지 않는 비행기였지만 연착 된 게 엄청 미안하긴 한지 연신 사과를 하면서 승무원들도 뭔가 더 친절해 진 느낌이다. 비행기는 서서히 움직였고 속도를 높여 이륙을 했다. 안개가 많아서 땅이 잘 보이진 않았고 비행기는 금세 구름 속으로 들어갔다. 가는 길에는 공짜로 주는 물을 계속 마시며 배고플 땐 반미를 먹었다. 스크린도 없는 지루함은 미리 다운받아 핸드폰에 넣어 둔 영화를 보면서 달랬다. 이러니까 시간은 잘 가는 것 같았다. 어느새 비행기는 착륙을 했고 우리는 비행기를 내렸다.
짐이 없으니 바로 입국 수속을 밟고 나왔다. 먼 길을 다녀오는 딸과 사위를 보기 위해 편찮으신 몸을 이끌고 장모님께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조금 늦은 시간이지만 밥을 먹고 가자고 해서 지하 식당가로 갔는데 문을 닫아서 다시 위로 올라왔지만 식당에 사람이 꽉 차서 그냥 얼른 들어가기로 했다. 몸도 편찮으신데 우리는 알아서 먹고 얼른 들어가셔서 쉬게 해 드리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전철을 타고 집으로... 오는 길에 장모님께서는 그래도 집에서 밥을 챙겨 먹으라고 설렁탕과 밥, 김치까지 중간에 내리셔서 아내에게 전해주고 가셨다. 우리는 조금 더 가서 전철을 내려 한 달 반의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왔다.
우리 집.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긴 싫었지만, 그래도 우리 집에 오니 집이 최고다. 얼른 밥을 먹고 씻고 뜨뜻한 매트 위에 누워서 잠을 청했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베트남에 있었는데... 이제, 다시 현실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