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은 다 하노이 같이 시끄러울 줄 알았는데 이런 곳이 있다니, 정말 신기하다. 산 속에 있는 베트남 북부의 시골마을, 깟깟이다. 너무나도 평화롭고 여유로운 분위기가 물씬 풍겨서 우리가 마치 루앙프라방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비가 조금 온 날씨라 안개인지 구름인지 하늘부터 산봉우리까지 가득 찼지만 우중충하다는 느낌보다 차분하고 고요한 분위기다. 계단식 논에는 벼가 하나 없이 물만 있었지만 마치 하늘로 올라가는 계단 같다. 하노이에서 투어로 오는 것이 아니라면, 그냥 여기서 며칠씩 멍 때리면서 푹 쉬어도 기분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버스는 새벽 3시쯤 사파에 도착했다. 2시쯤에는 잠을 깼는데, 버스가 산길을 올라가서 그런지 흔들렸기 때문에... 은근히 잠자리 가리고 예민한가보다. 버스 안에 있는 화장실도 다녀오고 6시정도까지는 계속 잔 것 같다. 여명이 밝아올 무렵, 버스 안에 있는 사람에게 내리라고 해서 짐을 찾고 버스 앞에서 기다렸다. 뭐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른 채 그냥. 잠시 후, 우리랑 같이 왔던 대학생 친구는 가이드가 와서 데려갔다. 같이 다닐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우리도 뭐 사람이 데리러 오겠지 하는 생각으로 좀 더 기다렸다. 그러자 봉고차에서 사람이 내려서 우리 이름을 확인하고 차에 타라고 했다. 오예, 봉고차.
안개가 가득 끼어서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오른쪽엔 뭐가 있는지도 모르겠고, 왼쪽에는 건물들이 조금 있는데 잘 보이지도 않는다. 앞도 거의 안보이고... 잠시 후 길거리에서 차가 잠시 섰는데 몇 명이 더 우리 차에 탔다. 그런데 반가운 얼굴, 어제 만났던 에콰도르 여자애, 엘리사다. 남자애는 어디 갔냐고 하니까 여자친구랑 다른 데로 갔다고 했다. 아, 연인이 아니었구나. 서양사람 몇 명이 더 타고 다시 출발했다. 그리고 봉고차는 우리가 묵을 숙소, 사파 써밋 호텔 입구에서 내려줬다.
호텔은 오래된 듯 보였으나 리모델링을 한 것인지, 관리가 잘 된 것인지 깔끔했다. 체크인을 하고 키와 식권을 받았다. 오늘 아, 점, 저, 내일 아침, 모레 저녁. 일단 숙소로 가서 짐을 풀고 샤워를 했다. 날씨가 꽤 추웠다. 얼른 옷을 입고 아침을 먹으러 식당으로 내려갔다. 식당은 작지는 않았고 아침은 조식뷔페였다. 여행 와서 먹었던 조식 중에 가장 좋은 듯 했다. 한국 아저씨, 아줌마들도 있었고, 젊은 여자 한 명도 혼자 밥을 먹고 있었다. 우리도 적당한 곳에 자리 잡아서 엄청 많이 먹었다.
들어가서 나갈 준비를 하고 나왔다. 문 밖에는 몽족 여자들이 엄청 많이 서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투어를 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장화를 빌리고 있어서 아내가 우리도 빌려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는데 꼭 필요할까 싶었다. 한 사람에 3만동 정도면 비싼 건 아니어서 고민하다가 그냥 빌렸다. 사이즈 맞는 것을 찾아 몇 번을 신었다 벗었다 해서 불편하지 않은 장화를 골랐다.
우리 투어 팀이 모여서 가이드가 배정되고 출발했다. ‘수’라는 이름을 가진 20대 초반의 친절한 젊은 여자 가이드였다. 몇 명이 모여서 길을 나섰는데 이 때 완전 맨투맨 마크하는 것처럼 문 앞에 서 있던 몽족 여자들이 달라붙는다. 이름이 뭐냐, 나이는 어떻게 되냐, 어디서 왔냐 등등등등 질문이 끊이지 않는다. 하도 귀찮아서 내려가는 길에는 아까 식당에서 봤던 젊은 여자분하고 인사를 해서 우리끼리 한국말로 계속 이야기를 하니 말은 안 걸고 계속 따라오기만 한다. 깟깟마을로 가는 길은 계속 내리막길이었다. 길을 점점 내려가면서 아까 말을 걸던 사람들은 점점 물건을 꺼내며 우리에게 사달라고 했고, 딱히 살만한 물건은 없어서 우리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호텔과 멀어져 갈수록 사람들도 점점 따라오지 않았다. 다만 거의 마지막까지 꼬마애가 따라와서 사달라고 하는데 영어를 꽤 하는 애였다. 우리가 베트남 말로 말하면 나는 그런 말 모른다고 하면서 영어로 계속 그냥 물건만 사달라고 했다. 도저히 떨어지지 않아 그냥 우리가 가져온 초콜릿을 몇 개 주면서 보냈다. 휴...
깟깟마을은 입장료가 있었지만 투어 비용에 모두 포함되어 있는 것 같았다. 입구(?)를 지나 계단을 내려가니 깟깟마을의 풍경이 보였다. 그냥 시골마을이었지만 좋았다. 조용한 분위기 이런 게 마음을 안정시켜 주는 느낌이었다. 시골마을답게 손으로 일을 하는 몽족 사람들의 모습을 구경하는 것도 신기했다. 가는 길에는 직접 베틀을 짜는 할머니네 집에 가서 집 내부도 구경하고 했다. 작은 브라운관 텔레비전에 옹기종기 모여서 TV를 보는 아이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베를 짜는 모습도 처음 봤는데, 손과 발이 척척 움직이며 한 올씩 만들어지는 게 정말 신기했다.
중간에는 깟깟마을의 병원도 들렸다. 환자는 없었지만 그냥 낙후된 병원 시설을 볼 수 있었다. 방은 4개였고, 입원실, 분만실, 진료실 두 개 정도로 보였다. 진료실 한 곳에서는 마을 여자들이 모여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병원을 나와 다시 길을 걸었다. 흙길로 내려갈 때는 장화를 빌린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가면서는 물건을 파는 몽족 여인들을 계속 만날 수 있었는데 엄청 강요하지는 않아서 마음이 편하면서도 묘하게 불편하기도 했다. 색깔이 있는 천들을 직접 손으로 하는데 손에 물이 엄청 드는 것 같았다. 손을 보니 어떤 여자는 남색으로, 또 다른 여자는 붉은 색으로 물이 들어 절대 빠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산을 거의 다 내려가니 계곡물이 흐르면서 폭포도 있었다. 시원해 보이는 게 꽝시폭포보다는 규모가 작았지만 볼만했다. 여기서 조금 쉬다가 11시 정도가 되었는데 가이드가 안에 들어가서 공연을 보라고 해서 자리를 잡고 공연을 봤다. 몽족 젊은 남자, 여자들이 전통복장을 입고 우산을 들고 공연을 하는 건데, 남녀의 사랑 이야기 뭐 이런 스토리가 있는 것 같았다. 노래에 맞춰 우산을 돌리면서 안무를 하는 정도였는데 뭐 이것도 볼만했다. 중간에 졸음이 왔다는 게 좀...
졸다 깼는데 가이드가 이제 가자고 해서 밖으로 나가서 다시 산길을 지나갔다. 투어에 별 내용은 없고 그냥 이렇게 가이드를 따라 다니면서 경치를 구경하는 게 전부였다. 뭐 유적지를 계속 가는 것도 아니라서 가이드의 설명이 필요한 곳도 없고, 그냥 역할이라면 우리의 길 안내 정도였다. 근데 이러면서 경치를 구경하며 힐링하는 그런 투어? 나쁘지 않았다. 다음에 하노이에 온다면 하노이에 있기보다는 그냥 사파에서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처음에 들어왔던 입구 쪽으로 돌아와서 길을 따라 산을 올라갔다. 몇 시간동안 걸어서 그런지 오르는 길이 힘이 들었다. 장화를 신어서 발이 더 불편하기도 했다. 가다 쉬다 하면서 열심히 수를 따라갔다. 겨우 호텔까지 도착해서 작별인사를 하고 숙소로 올라갔다. 오후 일정은 자유시간이라서 그냥 우리는 잠을 자기로 했다. 일단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왔다. 점심은 그냥 베트남식 밥과 고기 같은 거...
오후 내내 잤다. 저녁시간 전까지 계속 자고 저녁을 먹으러 다시 식당에 내려갔다. 메뉴는 점심이랑 비슷한 거로 먹었다. 그리고 다시 숙소에 올라가서 쉬었다. 추워서 침대에 전기장판 켜 놓고 이불 속에만 있었다. 사파까지 와서, 밖에 돌아다니면서 구경하는 것도 좋았는데, 이렇게 따뜻한 이불 속에만 있는 것도 기분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