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을 잃었다. 타반마을 가는 길에 들린 식당에서 나이가 조금 있는 서양 아저씨가 서빙도 하면서 일을 해서 호기심에 물어봤다. 어디서 왔냐고 하니 뉴질랜드에서도 10년, 영국에서도 10년 정도 살았다고 했나 그랬고 여기서도 7년이나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물어봤다. 왜 여기에 있냐고. 그러자 하는 말, Why not. ... 뭔가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러게, 안 될 이유가 없는데 나는 이상하게(?) 생각하고 그 이유를 물어봤던 거였다. 그런데 그 사람은 그냥 나에게 왜 안 되냐고 되물은 거지. 아... 이런 게 삶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인가?
아침도 조식을 완전 많이 먹었다. 특히 연유를 타서 마시는 커피가 일품이었다. 3잔은 마신 것 같다. 배부르게 먹고 짐을 싸서 내려왔다. 오늘은 홈스테이를 하는 날이라서 짐은 창고에 맡겨놔야 한다. 안전하냐고 물어보니 CCTV도 있고 안전하다고 한다. 작은 가방에 세면도구만 챙겨서 나왔다. 어제 함께 돌아다닌 분은 오늘도 호텔에서 자는 거라서 우리랑 다른 팀이 되었고, 희수라는 새로운 친구를 알게 되었다. 23살의 여대생 친구. 물리를 전공하고 있어서 반가웠다. 오늘은 가이드도 새로 바뀌었다. 수는 어제 함께 돌아다닌 분과 팀이 돼서 갔고, 우리는 나이가 조금 있는 여자인 삼(산?).
오늘도 어김없이 호텔을 나서자마자 몽족 여인들이 달라붙었다. 어제와 같은 레파토리. 그냥 영혼 없이 대답을 하면서 길을 갔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비가 좀 많이 오는 것 같았다. 그래서 바로 2만동으로 우비를 샀다. 그냥 비닐로 허접하게 만들어진 우비,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어제랑은 다른 길로 계속 내려갔는데 오늘은 몽족 여인들이 떨어져나가지 않았다. 제대로 된 길로 가다가 완전 흙길로 접어들었는데 이 때마다 몽족 여인들이 붙잡아줬다. 나는 제법 잘 가서(?) 도움을 받지 않았고 아내는 중간에 몇 번 잡아주긴 했지만 대부분 그냥 사양했다. 희수는 완전 한 명을 보조로 붙이고 길을 갔다.
비는 오지, 길은 완전 진흙길이지, 게다가 중간에 소똥도 완전 크게 있지, 최악의 조건이었다. 그래도 안개는 조금씩 걷히면서 풍경이 살짝살짝 보이는 게 멋있었다. 만약 화창한 날씨였으면 최고였을 듯. 힘든 길이 계속 되면서 옷을 버리는 사람들도 속출했다. 어떤 서양 남자는 하얀 옷을 입고 왔는데 쭉 미끄러졌는지 옷에 진흙이 다 묻었다. 지팡이까지 갖고 있으면서... 그래도 기분은 좋아보였다. 단화를 신고 온 서양 아주머니도 바지 밑단이 다 젖었다. 나도 중간에 몇 번 미끄러져서 손에는 흙이 묻었는데 옷은 대체로 괜찮았다. 조금씩 튄 것 빼고는...
수랑 같은 코스여서 어제 만났던 분까지 4명이서 같이 다니기도 했다. 힘든 흙길이 끝나고는 서로 이야기도 하면서 길을 계속 내려갔다. 빗방울이 계속 떨어져서 카메라를 꺼내서 모두 다 사진은 찍지 못했지만 정말 멋있었다. 마음속으로 잘 새기고 충분히 느끼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내려가는 길 뷰 포인트에서 사진도 찍고 장화도 중간에 대충 씻고 하면서 계속 걸었다.
그러다 어떤 마을에 도착했는데, 여기는 붉은 계열의 옷을 입은 여자들이 많이 보였다. 다른 소수민족 마을이었다. 발전소도 있었고 큰 수도관도 있었다. 마을 회관도 있었다. 길에는 많은 여자들이 나와서 물건을 팔려고 했지만 여전히 딱히 살 것은 없어서 사지는 않았다. 작은 마을을 지나쳐 다리를 건너 점심 먹는 곳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여기까지도 따라 들어와서 물건을 팔려고 했다. 얼른 지하 식당으로 내려갔다.
지하로 내려왔다고 했지만 여기도 밖을 그대로 볼 수 있는 곳이었고 테이블 만 있을 뿐, 위층과 다르지 않았다. 음식을 시키고 기다리는데 꼬마들이 엄청 달라붙는다. 안산다고 해도 가질 않는다. 그런데! 어제 그 끈질겼던 꼬마가 또 왔다. ... 엄청 안산다고 얘기해도 안간다. ... 정말 음식 나올 때까지 한참이나 있다가 음식이 나와서 우리가 밥을 먹기 시작하자 갔다. 우리는 오늘도 이 아이에게 과자를 쥐어줬다. ...
점심은 그냥 베트남식 음식이었고 맛있었다. 다 먹고 기다리면서는 서양인 직원 아저씨와 둘이 이야기를 했다. 여기에 왜 있냐고 다시 물어보니 그냥 이곳이 좋다고 했다. 7년 전에는 여행으로 왔지만 다시 오게 되어서 머물게 됐다고... 내 듣기 실력이 부족해 정확히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자기가 여기 주인은 아니지만 여기서 일 하는 것이 여기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어서 있는 거라고 했다. 뭔가 멋있었다. 살던 곳이 있는데 그 삶을 정리하고 사파에서 머물러 있는 것... 우리도 그럴 수 있을까?
점심을 먹었는데도 비가 엄청 많이 온다. 그래도 계속 있을 수 없어서 삼이 선택하라고 했다. 지금 갈지 아니면 기다렸다가 갈지. 뭐 기다린다고 해도 별 수는 없을 것 같아서 우리 팀은 떠나기로 했다. 같이 오던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간 것 같고 홈스테이 팀이 정리가 된 것 같았는데, 나, 아내, 희수, 독일인 남자 둘에 여자 한 명, 총 6명이었다. 독일 친구들은 우비도 없고 그냥 옷이 다 젖고 있었다. 우리는 우비가 있어서 그나마 상황이 좀 나았다. 가는 동안 비는 좀 그쳤다.
계속해서 시골길을 따라 걷는 코스였는데 보는 풍경들이 90년대 초에 시골에 가서 봤던 기억들이 떠오르는 풍경이었다. 정말 말 그대로 우리나라 옛날 시골 풍경. 흥미로운 것도 있었는데, 대나무로 만든 작은 발(?)에 돼지 한 마리가 들어있었는데, 삼에게 물어보니 내일 잔치를 해서 잡아먹을 것이라고 했다. 와우...
시골길을 계속 구경하면서 가다보니 어느새 우리가 머무를 곳에 도착했다. 그냥 일반 가정집이었고 우리는 여기서 오늘 홈스테이를 한다고 했다. 나무로 된 집이었고 1층은 방 아닌 방으로 여기 가족들이 사는 곳 같았고, 2층에는 담요가 쭉- 깔려 있고 모기장이 있는 것을 보니 홈스테이 하는 사람들은 2층에서 머무르는 것 같았다. 여행을 하면서 현지인다운 현지인 집에 직접 들어와서 여기저기 살펴보니 너무 신기했다.
삼은 우리의 일정을 설명해줬는데, 5시쯤에는 감자튀김을 먹고 저녁시간이 되면 밥을 먹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에게 옷을 말리라고 하면서 불도 피워줬다. 처음에는 캠프파이어 같은 불인 줄 알았는데 그냥 철로 된 대야에 숯을 때는 것이었다. 우리는 옷이 젖지 않아 그냥 비옷만 밖에다 널어놓고 올라왔고, 독일 친구들은 불 옆에서 옷을 말렸다. 삼은 컴퓨터를 했다.
우리는 위에서 좀 쉬었다. 할 일이 없는 게 노트북이 있었다면 블로그를 쓰면 딱이었지만 그럴 수 없어서 그냥 희수에게 내 블로그를 소개시켜주었다. 와이파이는 엄청 빵빵했다. 나는 집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구경을 했다. 장작이 쌓여 있는 것도 뭔가 운치가 있어 보였고, 작은 정자에 해먹이 있었는데 다 찢어져서 제대로 누워있을 수는 없었다. 주방에서는 남매가 우리의 감자튀김을 장작불에 튀기고 있었다. 여자애 이름은 호아이(Hoai)였고 남자애는 남동생이었다. 그리고 어린 남동생이 한 명 더 있고,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남동생이 한 명 더 있었다. 그러니까 호아이는 3남 1녀에 장녀.
쉬고 있는데 감자튀김이 다 됐다고 해서 내려갔다. 우리랑 독일 친구들 6명만 테이블에 앉아서 감자튀김을 먹었다. 기름에 마늘을 같이 해서 튀겼는지 감자에서 마늘 향이 엄청 많이 났는데 이것 때문에 더 맛있었다. 순식간에 다 먹고 우리는 뭔가 좀 어색해서 서로 자기소개를 했다. 머리가 긴 애는 토니였고 나머지 둘은 이름이 생각이 안 난다. 어려운 이름이었다. 그리고 어색한 분위기를 더 깨기 위해 독일인 여자애가 카드 게임을 하자고 해서 원카드를 했다. 처음엔 카드를 갖고 오긴 했는데 뭘 해야 할지 몰라 했지만, 내가 우노를 하자고 했다가 원카드를 하게 된 것이다. 규칙은 얘네들이 말하는 것도 있었는데 그냥 한국식 원카드 규칙을 다시 설명해주고 했다. 4-5판 정도 했나? 할 때는 재미있게 했는데 잠시 쉬는 시간을 갖고 나서는 다시 하기 어려웠다. 저녁을 먹기 전에 내가 카드 찾기 마술을 보여준 것을 끝으로 우리는 더 이상 카드놀이는 하지 않았다.
저녁시간이 돼서 또 다 같이 모였다. 여기 가족들은 부엌에서 따로 먹고 우리만 테이블에 앉았다. 저녁은 또 베트남식으로 여러 야채볶음과 돼지고기, 닭고기 등이었는데 푸짐했다. 너무 푸짐해서 밥도 먹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양. 결국 다 먹지 못했지만 정말 맛있게는 잘 먹었다. 저녁을 먹고 나서는 삼이 집으로 갔다. 내일 온다고 했고, 여기 아주머니는 영어를 못해서 우리를 찾기 힘들 테니 밖으로 돌아다니지 말라고 했다.
저녁을 먹고는 애들이 유튜브에서 동영상을 보기에 내가 지난번에 베트남 왔을 때 찍었던 숫자 노래 영상을 찾아서 보여줬다. 완전 좋아한다. 그리고 다른 베트남 영상들도 보여줬다. 그리고 이참에 숫자 노래 가사를 정확히 알아야겠다고 생각해서 호아이에게 가사좀 써달라고 했다. 그래서 호아이 메일로 들어가서 내 메일로 가사를 적어달라고 했다. 성조가 6개나 있는 베트남어를 쓰는 모습이 신기했다. 영어로 쓰고 무슨 버튼을 누르니까 성조가 표시됐다.
TV는 계속 틀어져 있었는데 마침 내일 날씨 안내가 나왔다. 사파 지방도 나왔는데 비가 온다고 예보를 했다. 헐... 뭐, 어쩌겠나,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씻고 잤다. 화장실은 깨끗하고 편리하게 되어 있어서 좋았다. 겨울이라 모기가 없다고는 했지만 그냥 모기장은 치고 잤다. 추웠지만 담요는 따뜻했고 잠은 잘 왔다. 홈스테이라서 불편할 것 같았지만 불편한 것은 없었다. 오히려 며칠 더 여기서 그냥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