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의 처음이자 마지막 홈스테이를 하면서 재미있는 것을 많이 봐서 너무 좋다. 불편하면 어떡하나, 사고라도 생기면 어떡하나 걱정도 했지만 호텔에서 안자길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한 집에서만 잔 것이지만 이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사는 모습들을 자세히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어제는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엄마가 아들의 운동화를 사들고 와서 아들이 잘 챙겨놓는 모습을 보았는데, 나의 어릴 적 모습도 생각나면서 기분이 묘했다. 엄마가 없을 때는 큰딸 호아이를 비롯한 애들이 우리에게 간식도 챙겨주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괜히 대견하기도 했다.
아침에는 신기한 구경도 했는데, 다음 주면 돌아오는 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모습이었다. 심심해서 윗집으로 놀러갔는데 여기에 호아이랑 막내아이가 있어서 집 안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부엌 구경도 했다. 남자들이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순대 비슷한 것도 만들고 바나나 잎에 싸는 떡 같은 것도 만들었다. 여긴 여자들이 밖에서 물건 팔고 이런 일을 하고 집안일은 남자가 하나?
아침을 먹는데 우리 가이드가 왔고 헤어지기 전에는 다 같이 기념사진도 찍었다. 이 사진은 호아이 메일로 전해주기로 하고 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정이 들었는지 너무 아쉬웠다. 뭐, 이별에 아쉽지 않은 이별은 없겠지만 조금 더 머물면서 쉬고 이 친구들하고 얘기도 더 하면 좋겠다는 아쉬움... 기회가 될지 모르겠지만 다음을 기약하면서 우리는 다시 트래킹 코스, 산길로 향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밖에 구경을 했다. 여유로운 시골마을의 기운이 온 몸으로 들어오는 것 같았다. 집 앞에는 전통복장을 입은 사파 여인들이 서 있어서 말을 걸면서 인사를 했다. 할줄 아는 베트남어라고는 몇 개 안되지만 그냥 열심히 나불나불. Toi la LEE를 제일 많이 해서 이제 이건 발음도 점점 좋아지는 것 같다.
집에서 조금 더 나가 옆에 흐르는 개울도 구경을 하다가 윗집으로 올라갔다. 호아이랑 막내가 여기서 테이블을 닦고 있어서 구경을 갔다. 여기 사는 사람도 있어서 인사를 하고 집안을 구경해도 되냐고 하니 괜찮단다. 부엌에는 남자들이 고기를 손질하느라 분주했다. 마당에서는 불을 지피고 바나나 잎에 싼 떡을 굽는 것 같았다. 집 내부는 호아이네 집이랑 똑같았다. 2층 구조도 같았지만 호아이네는 2층에 침대가 있었고 이집은 창고로 쓰고 있었다.
구경을 웬만큼 하고 내려와서 밥을 먹고 나갔다. 가기 전에는 다 같이 기념사진을. 호아이에게 보내준다고 하고 시골길을 걸었다. 비는 멈춘 것 같아서 우비는 놓고 왔다. 그런데 걸은지 30분 정도 지났을까, 비가 온다. 그것도 많이. 헐... 돌아갈 수는 없고 여긴 완전 시골이라서 우비 파는 가게나 사람도 없었다. 일단 장화는 계속 신고 와서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옷이 젖고 있었다. 카메라는 점퍼 안으로 넣었지만 점퍼도 계속 젖고 있었다. 다행히도 두툼한 면 점퍼였는데 내부는 안 젖어서 카메라는 그래도 안전했다. 아내는 방수처럼 보이는 바람막이였는데 안에까지 쏙- 다 젖고 있었다. 뭐 다른 일행들도 마찬가지...
얼른 오두막 쉼터로 가서 비를 피했다. 같은 코스로 움직이는 사람들인지 다른 일행들까지 이곳에 모였다. 우비를 제대로 입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고, 뭐 사정은 다들 비슷했다. 가이드는 우리에게 언제 떠날지 말해달라고 했다. 비는 그칠 기세가 아니었지만 그냥 우린 빗방울이 조금 잦아들고 얼른 가자고 했다. 가는 동안 활짝 개어서 해도 잠시 났지만 비가 다시 세차게 내리기도 했다. 그런데 해가 보일 때는 사파에 와서 처음으로 해를 봤다는 즐거움에 기분이 좋았고, 비가 내리면서 몸이 흠뻑 젖어갈 때에도 나름대로 기분이 좋았다. 뭔가... 이 때 아니면 내가 언제 비를 맞으면서 다니겠나 하는 그런 것? 그런데, 정말 비를 이렇게 맞아본 적이 언제인지 모르겠다. 빗방울이 머리를 적시고 눈 옆으로 흘러내리는데도 기분이 좋은 건 여행이 아니라면 느낄 수 없을 것 같다.
비가 오든 말든 우리는 계속 쉼터에 잠시 들리기도, 비를 맞으며 사파의 흙길을 걷기도 했다. 길은 순탄치 않았다. 심한 오르막에 흙길, 개울길을 넘기도 했고 장화가 푹푹 빠지는 길도 지났다. 그래도 재미있었다. 아니, 그래서 재미있었다. 중간에 폭포(계곡?)에 들려서는 기념사진도 찍고 잠시 쉬었다. 몹시 가난한 아이들이 있었는데 과자를 줘도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로 받아들고 잘 먹지도 않는 모습이 불쌍하다 못해 뭔가 섬뜩한 느낌까지 들었다. ...
우리는 몇 개의 난코스를 더 지나서 드디어 포장된 길로 나왔다. 어떤 작은 마을이었는데 여기서는 다시 물건을 사달라는 사람들이 엄청 달라붙었다. 아까 지났던 폭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가려는데 희수는 어떤 사람에게 물건을 좀 사고 있었다. 마을 산길을 오르면서 풍경을 구경하는데 아주머니들이 계속 따라온다. 그래도 우린 풍경을 구경하면서 갔다. 뭔가 불편한 이런 마음만 빼면 아주 모든 것이 완벽한 것 같은...
마주 오는 소를 지나서 조금 더 올라가니 점심을 먹을 식당에 도착해서 자리에 앉았다. 그와 동시에 수많은 아주머니와 아이들. 온갖 팔찌와 두건, 테이블보 같은 것을 사라고 다들 징징징... 안산다고 해도 계속... 희수는 아까 두건하고 팔찌를 5만동에 샀다고 해서 우리도 두건 한 개 사기로 했다. 나이 많은 아주머니에게 가격을 물어보니 10만동부터 시작한다. ㅎㅎㅎ 계속되는 협상 끝에 5만으로 구입. 그런데, 아주머니 기분은 썩 좋지 않은 것 같다. 괜스레 또 미안해진다. ...
점심은 라면이 나왔다. 베트남식 라면이었는데, 그냥 맑은 라면 맛에 맛없지는 않고 먹을 만한 정도였다. 그렇다고 배부를 정도도 아니고. 후식으로는 과일도 나왔다. 밥을 다 먹고 호텔 픽업 차를 기다리면서 여유 즐기는데 물건 파는 할머니가 또 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냥 나한테 완전 몸까지 들이대면서 물건을 사달란다. 헐. 아니라고, 아니라고 하는데 아예 먹을 것을 달라는 것처럼 손짓까지 한다. 마치 ‘먹을 것 좀 사먹게 돈 좀 줘!’하는 듯한 제스추어. 당황스럽다. 과자를 주니 헛웃음을 지으면서 받아들고 주머니에 넣는다. 사파 3일 중에 가장 적극적인 강매 및 갈취시도 느낌이다. 몇 차례 더 손사래를 치고 할머니는 돌아갔다. 아쉬운 표정으로... 이따가는 조금 조용한 할머니도 왔는데 우리가 물건은 안산다고 하니 옆 테이블에 남은 과일을 주머니에 넣어서 돌아갔다. 휴...
이렇게 기다리다가 호텔 픽업 미니밴이 와서 얼른 올라탔다. 가이드와는 작별인사를 했다. 우리 단체사진은 호아이에게 전해준다고 하니 메일주소를 아냐고 해서 안다고 하고 바이바이. 미니밴은 길을 따라가다 다른 사람을 더 태우고 잠시 어딘가에 멈췄다. 유명한 곳이니 시간을 줄 테니 구경을 하라고 했다. 우리는 독일 친구들과 함께 내려 길을 걸었다. 멀지 않은 곳에 밧줄로 된 다리가 있었다. 입장료가 있었지만 독일 친구들은 다 들어간다기에 우리도 같이 들어갔다. 사실 입장료는 5천동이라 전혀 문제는 아니었다.
내부를 잠시 구경하고 건물을 지나 다리로 갔다. 아래는 비가 와서 그런지 황토물이 세차게 흘러가고 있었고, 밧줄로만 만들어진 다리가 그 위를 가로질러 놓여 있었다. 한 명씩 가보기로 하고 내가 사진을 계속 찍어줬다. 밧줄이 튼튼해서 끊어질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조심조심 가운데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끝에는 그냥 나무에 묶여 있는 것이라서 가는 의미가 없었다.
구경을 마치고 다시 미니밴으로 돌아와 호텔로 향했다. 가는 길은 산을 올라가는 길이라서 다시 멋진 사파의 풍경을 구경할 수 있었다. 절벽에는 큰 호텔이 지어지는 것도 볼 수 있었는데, 그 호텔에서 보면 멋지겠지만 결국 이곳도 관광지로 변하면서 자연 환경이 하나씩 사라지고 있다는 것에 조금 그랬다. 뭐, 이미 나도 관광지로 변해버린 호텔에서 머무르고 있는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호텔로 돌아와서는 홀딱 젖은 옷을 어떻게 해야 할까 했지만 희수가 기꺼이 자신의 방을 내어줘서 우리는 샤워도 하고 빨래도 할 수 있었다. 희수는 내일 홈스테이를 하고 우리와 같은 비행기로 귀국하는 일정. 샤워를 마치고 세 명의 빨래를 모아 호텔 앞에 맡겼다. 다행히 건조기도 있었고 더 다행인 것은 가격도 비싸지 않았다. 원래 건조는 더 비싼데 시내와 같은 가격이었다. 빨래는 6시쯤 찾으러 오라고 했고 우리는 밖을 구경하기로 했다. 희수는 일정에 없어서 가지 못한 깟깟 마을을 간다고 해서 오토바이를 빌려서 그곳으로 향했고, 우리는 걸어서 호수에 가 보기로 했다.
몽족 여인들 없이 완전 자유의 몸으로 길을 나서니 보이지 않은 것들이 마구 보이기 시작한다. ‘이곳에 이렇게 예쁜 카페가 있었나?’ 할 정도로 구경거리가 많았다. 얼마 내려가지 않아 광장에 도착했는데 너무 배가 고파서 뭘 먹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바로 옆에 있는 식당가로 들어갔다. 우리는 분짜를 찾았다. 앞 가게에서 호객행위를 했는데 우리가 찾는 분짜는 없으니 옆 가게로 가라고 했다. 우리는 분짜 파는 가게를 찾아서 분짜 1개와 스프링롤을 시켰다. 스프링롤 가격이 꽤 비싼 것 같아서 서비스로 한 개 더 주면 안 되냐고 물어봤는데 안 된다고 해서 그냥 나도 알겠다고 했다. 흥정 실패. ㅎㅎ
음식은 주문과 즉시 만들어져서 꽤 오래 걸렸다. 주방이 완전 개방되어 있어서 들락날락을 몇 번 했는데도 우리 음식이 안 나왔다. 대박인 것은 우리 스프링롤은 바로 말아서 바로 튀겼다는 것.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렸던 분짜와 스프링롤이 나왔다. 그런데, 분짜가 우리가 생각했던 분짜가 아니었다. 숯불고기는 없고 그냥 면에 고기, 그리고 야채가 나왔다. 그래서 이게 분짜가 맞냐고 물어보니 맞단다. 잉... 뭐, 더 따질 수 없으니 그냥 먹었다. 그런데 사실 뭐 분(Bun), 면에, 짜(Cha), 숯불고기, 분짜인데, 면 안에 고기를 넣었으니 이것도 어쩌면 그냥 맞게 잘 나온 것일 수도...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냥 먹었는데, 맛있었다. 뭔가 새로운 맛. 북부 산악지대의 분짜는 이런 맛인가 하는 생각... 스프링롤도 대박크고 대박맛있었다. 역시 비싼 이유가 있었다.
배를 든든히 채우고 나갔다. 옷을 다 빨고 있어서 반팔을 입어서 춥긴 했지만 그래도 하노이에서 사온 목도리 덕분에 조금 나았다. 호수로 가기 위해 성당을 지나 쭉 들어갔는데 길이 안 나온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바디랭기지로 정말 어려운 호수를 설명해서 물어보니 다른 길이라고 해서 일단 그 길은 나왔다. 광장에 있는 표지판을 보고 호수 위치를 파악한 후 다시 출발. 멀지 않은 곳에 크지 않은 호수가 있었다. 크기는 작았지만 엄청 아름다웠다. 멀리 산이 감싸져 있고 집들이 총총 박혀있는 게 마치 알프스 느낌, 가보진 않았지만 북유럽 느낌... 날씨만 좋았으면, 그리고 옷만 따뜻했으면, 그리고 중요한 시간만 더 많았으면 여기서 멍 때리면서 놀면 좋았을 텐데 옷도 춥게 입고 마지막 날이라 시간도 없고 해서 느낌만 잠시 느끼고 호텔로 돌아갔다.
길을 오르는 길에는 깟깟에 다녀오는 희수도 만났다. 방으로 가서 옷을 찾아오고 짐 정리를 했다. 그리고 1층 식당으로. 마지막 저녁식사였다. 밥을 먹는데 희수랑 같이 온 다른 한국 여자분이 있어서 인사를 하고 넷이 같이 앉았다. 밥을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참이나 하다가 올라갔다. 우리는 짐을 완벽히 정리해서 내려와 로비에서 시간을 때웠다.
돌아가는 차에 대해 로비에 물어보니 우리 영수증을 보여 달라고 했다. 같이 있는 독일 친구들도 영수증은 이미 하노이에서 냈고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독일 친구들은 여행사 명함을 가져와서 해결한 것 같았고 우리는 명함마저 없었다. 다행히 카메라에 영수증을 내기 전에 찍어놓은 사진이 있어서 이걸 보여줬는데 별로 도움은 안 되는 것 같았다. 직원이 여기저기 막 전화를 하더니 9시 전에 픽업을 해줄 테니 여기에 있으라고 했다. 우리도 문제 해결!
9시까지 로비에 놓인 숯불을 가지고 불장난도 치다가 이래저래 시간을 때웠다. 9시 즈음 돼서 미니밴에 사람들을 태웠다. 그리고 우리가 버스를 내렸던 곳으로 출발. 내려서도 명단을 부르면서 차에 태우는데 우리 이름은 제일 마지막에 불렀다. 한국 분도 먼저 가고, 독일 친구들도 가서 작별 인사를 했는데 결국 우리도 같은 버스에 타는 것이었다. 짐을 싣고 올라갔는데 이미 사람들이 많이 타 있어서 2층에 앞뒤 눕는 자리를 선택했다. 뒤쪽도 있었지만 여기는 화장실 때문에 시끄러울 것 같았다.
이곳에서도 베트남 사람들 몇 명이 탔다. 어떤 사람이 물을 받아가서 우리도 물을 받았다. 버스가 출발하고 아내는 금세 잠들었다. 나는 처음에는 잠이 안 왔는데 나도 모르게 어느 샌가 잠이 들었다. 베트남 같지 않은 베트남 북부의 시골마을, 사파, 오게될 줄 몰랐는데 이곳에서 정말 좋은 추억을 남기고 돌아간다. 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