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에서 마지막 날, 처음으로 우리 돈을 걸고 카지노에서 놀아보기로 했다. 남은 돈은 많이 있었지만 소심하게 10달러만 넣었다. 어제 대박을 안겨준 기계에 넣고 버튼을 누르면서 당첨이 되길 기대했지만 순식간에 5달러가 날아가 버렸다. 경쾌한 멜로디와 함께... 돈을 뽑고 다른 기계로 옮겨갔다. 그러나 순식간에 다시 2달러가 쉭. 옆에 있는 기계에서 마지막 대박의 꿈을 안고 시도해봤지만 쓸쓸한 GAME OVER만 화면에 뜰 뿐이었다. 너무 허무했다. 이런 기분 알면서도 왜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역시 대박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어제는 정말 운이었던 것 같다. 이런 소소한 운 때문에 사람들이 대박을 노리고 카지노에서 돈을 쓰는 것이겠지. 모두 다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래도 우리가 엄청 큰돈을 날린 것은 아니니까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플라이어 한 번 타는데도 한 사람에 33달러였는데, 10달러 쓴 건 그냥 즐겁게 게임 한 판 했다고 생각하기로... 아니면 적어도 우리가 카지노 안에서 갖고 나온 물 몇 병과 수차례 마셨던 음료수 값에 대한 지불이라고 생각하지 뭐...
조식을 먹기 위해 일찍은 아니지만 그래도 엄청 늦게 일어나지는 않았다. 토스트와 시리얼을 우유에 말아먹고 다시 방으로. 2층 침대를 받았지만 1층에서 아내와 같이 자는데 바깥쪽에서 자느라 계속 떨어질 것 같아 잠을 좀 설쳤다. 그래서 그런지 밥을 먹고 나니 졸음이 왔다. 원래 거의 이러지 않는데 체크아웃 하기 전까지 잠을 자기로 했다. 아내는 의외의 결정에 놀랐지만 2층에서 혼자 편하게 자라고 했다.
11시 알람에 일어나 대강 씻고 짐을 챙겼다. 11시 40분 정도가 되어 체크아웃을 하고 짐은 게스트하우스 창고에 맡기고 나갔다. 비가 조금씩 온다. 음... 우비 입기는 애매하고 일단 걷기로 했다. 싱가포르에 볼거리는 많이 있지만 그닥 땡기는 게 별로 없었다. 빗방울이 점점 굵어진다. 건물 밑에 잠시 몸을 피해 고민을 했다. 싱가포르 국립대학교에 한 번 가볼까 했지만 비가 오니 쉽진 않을 것 같다. 오차드로드에 가서 쇼핑몰을 구경할까 했지만 방콕에서 쇼핑몰 많이 봤고, 더샵스랑 크게 다를 것 같지 않아서 내키지 않았다. 그러다가 결정한 것은 카지노ㅋㅋㅋ
어제 20달러 땄으니 20달러 다시 잃는다 해도 큰 상관이 없었다. 차이나타운에서 지하철을 타고 카지노에 도착, 일단 음료수부터 거하게 마셔주고 기계들에서 잔돈 남은 것이 있나 살피고 다녔다. 낮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이 별로 없어 돈이 남아있는 기계도 없는 것 같았다. 20달러를 해볼까 하다가 마음이 약해져 결국 10달러만. 그러나 순식간에 잃고 카지노를 나왔다.
카지노를 나와 밖을 보는데 비가 여전히 오는 것 같다. 어찌할까 고민하며 더샵스를 서성이다보니 비가 그쳤는지 사람들이 돌아다닌다. 우리도 더샵스를 나와서 아트사이언스박물관에 가봤다. 무료면 보고 아니면 그냥 나오기로... 여러 전시회를 하고 있었는데 그냥 나왔다. 머라이언 앞에서 낮에 찍은 사진이 없어서 가보기로 했다. 마리나베이를 돌아 머라이언 앞에서 사진을 몇 장 남기고 강을 따라 올라갔다. 우연히 기념품 가게를 발견해서 작은 머라이언 모형을 한 개 사고 나왔다. 조금 더 걷자 스타벅스도 나와서 머그컵 한 개를 샀다.
아시아문명박물관이 근처에 있어서 가기로 했다. 횡단보도가 잘 없고 이정표도 보이지 않아 길을 잃는 듯 했으나 공사중인 보도를 끼고 가다보니 박물관이 보였다. 우리가 들고 있는 지도를 제시하면 4명까지 무료라고 했으니 무료겠지. 들어가는데 입장료가 무료라는 안내문이 있었다. 잉, 뭐지. 안내데스크에 가서 물어보니 우리의 지도를 봤는지 특별전을 하는 곳은 지금 주는 스티커를 가슴에 붙이고 들어가면 된다고 한다. 이건 돈을 내는 것 같았다.
조금, 아니 많이 생소한 동남아시아의 문명에 대한 조각들과 설명들, 여러 전시품들이 있었는데, 결론적으로는 오차드로드의 쇼핑센터 간 것 보다 훨씬 잘한 일 같다. 여행을 오기 전에 조금씩 들었던 란싼왕국이나 아유타야왕국 등등에 대한 설명, 그리고 쉬운 영어로 설명이 되어 있던 전통문화에 대한 것들이 생소해서 그런지 더욱 재미있었다.
1시간 남짓 구경을 하고 나오니 날은 완전히 개어 있었다. 점심때에는 배가 고프지 않았는데 3시가 넘어가니 둘 다 배가 고팠다. 카지노에서 마신 음료수가 이제 다 소화 된 듯. 어제 저녁에 갔던 텔룩에이어의 음식점센터(?)로 다시 갔다. 야채와 어묵, 튀김 중에서 6가지를 선택해서 국물로 요리를 해 주는 것과 볶음밥을 시켰는데 완전 맛있었다. 일단 향신료가 둘 다 강하지 않아서 아내 입맛에도 맞았고 나도 엄청 맛있게 잘 먹었다. 저렴하고 푸짐한 것도 맛에 기여를 했을 듯.
숙소로 오는 길에는 어제 또 점심에 들렸던 길거리 음식점에서 당근케이크를 사먹으려고 했으나 다 떨어져서 얌케이크라는 것을 먹었는데 감자 맛이었다. 아내의 맛 평가는 당근케이크가 훨씬 맛있다고 한다. 나도 역시 동감. 텔룩에이어 옆 골목(?)으로 왔는데 한인마트를 비롯한 한인식당이 줄지어 있었고, 한국인 여행자들도 많이 봤다. 이곳이 한인타운인가...?
5시쯤 숙소에 돌아와서는 인터넷을 하면서 그동안의 일정을 정리했다. 너무 돌아다녀서 그런지 막 헷갈리고 그런다. 그래도 해본 적은 없지만, 바둑에서 복기하는 마음으로 차근차근 정리했다. 6시가 좀 넘어서 공항으로 가기로 하고 짐을 찾아 나왔다. 이제 배낭이 익숙해진 것 같다고 아내에게 말하자 아내도 격하게 공감한다. 한 달 넘게 우리와 함께 한 배낭, 새거였는데 이제 검정도 묻고 좀 사용한 감이 드러난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 길에 한 번 갈아탔는데, 퇴근시간과 겹쳐서 그런지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자리도 겨우 앉고 공항까지 가는 길은 가깝지만은 않았다. 중간에 공항으로 한 번 더 반대편 기차로 갈아타야 해서 ‘창이 에어포트’로 가는 사람은 갈아타라고 방송이 나왔는데, 이 때 갑자기 뭔가 울컥한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또 공항으로 가서 비행기를 타고 다른 나라로 간다는 게 그냥 갑자기 기분을 이상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여행의 일정이 점점 끝나간다는 사실에 아쉬운 마음이 번져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공항에 내려서 우리가 탈 비행기가 있는 터미널1로 갔다. 시간에 맞게, 그러나 약간 일찍 도착해서 체크인 할 때 줄도 서지 않고 바로 티켓팅을 했다. 출국 수속을 밟고 면세점 구경을 했다. 역시 나의 눈을 사로잡는 전자기기 매장. 엄청 구경하고 화장품 매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아내는 사지 않는 것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는 생각인지 들어가지도 않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만 한다. 저 끝까지 갔다가 우리가 탈 게이트로 가는 길에는 저녁을 먹었다. 불고기도시락은 익숙한 소불고기 맛이었고, 맛있는 국물을 생각해서 시킨 면은 카레면이었다. ... 그래도 맛있게 다 먹고 2층 푸드코트로 또 올라갔다. 여기에 식당이 더 많았는데 이미 먹은 게 아까울 정도였다. 양도 조금 적기도 했고 해서 우리는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한 개 더 시켜서 나눠먹고 게이트로 갔다.
조금 기다려 비행기에 탑승, 쿠알라룸푸프로 가는 에어아시아 비행기다. 최근에 대만에서 또 항공기 사고가 나서 불안했는지 아내는 자리에 앉자마자 두 손을 꼭 모으고 기도를 하는 것 같았다. 나도 두 손을 꼭 잡고 기도를 했다. 난 추락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했는데, 아내는 무사히 도착할 수 있게 기도했단다.
비행기는 무사히 이륙했고 30분 만에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해서 무사히 착륙했다. 내려서 출국수속 하는 곳까지는 뒤에 있던 한국인 대학(원)생들과 같이 왔다. 혼자 온 남자 대학생, 남자 둘에 여자 한명이 온 팀. 싱가포르에만 있다가 가는 것이라고 한다. 이런저런 여행 이야기를 하며 빠이빠이. 모두 내일 아침 비행기로 한국에 간다는데, 한 명은 그냥 공항 안에서 대기하고, 세 명은 출국도장 받고 나가면 있는 캡슐룸에서 조금 잠을 잔다고 한다. 우리는 그냥 출국도장 받고 공항 안에서 시간을 때우기로. 5시간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