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은 자리라고 생각하는 곳에 한 시간 전부터 앉아서 마리나베이샌즈에서 하는 원더풀(Wonder Full) 분수쇼를 감상했다. 어제 반대편에서 볼 때는, 그냥 음악 좀 나오고 거기에 맞춰서 분수 좀 발사하고 레이저 몇 번 쏘는 게 전부일 것 같았다. 뭐, 이런 분수쇼는 일산 호수공원에서도 하고 예전에 라스베가스 벨라지오 호텔에서 훨씬 더 큰 규모의 분수쇼를 본 적이 있어서 큰 기대는 안했었다.
시간이 되어 분수가 나오는데 이건 그냥 분수쇼가 아니었다. 물을 얇게 펼쳐서 쏴 그곳을 스크린으로 사용해 스토리가 있는 분수쇼였다. 내용은 탄생부터 시작해서 성장 과정을 하나하나 계속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런 이야기 가운데 불도 나오고 레이저도 나오고 비눗방울도 나왔다. 영상에 나오는 성장 과정들을 보면서 나의 어릴 적부터 차근차근 머릿속에 오버랩 되면서 기분이 묘했다. 나도 저런 유치원 시절이 있었는데, 나도 초등학생일 때가 있었지, 커서 결혼도 작년에 했지... 나의 인생에 대해서도 생각날 뿐 아니라, 부모님에 대한 마음도 함께 들었다. 날 저렇게 키우셨겠지 하는 생각과 우리 부모님도 점점 나이가 들고 계신다는 생각들...
눈물이 찔끔 날 정도는 아니었지만 매우 훌륭한 내용이었다. 화려하고 웅장한 분수쇼일 것이라 예상했는데 내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 그래도 좋았다. 오히려 가슴을 울리는 이런 내용의 분수쇼를 보여주는 것이 나은 것 같다. 어설픈 화려함과 웅장함 보다는 감성을 자극하는 분수쇼. 정말로 wonder full이었다.
일어나서 홍콩가는 표를 예매하려고 했는데 이럴수가, 봐 두었던 싼 표가 없었다. 베트남 비자 받는데 30만 원정도 들어서 20만 원정도로 홍콩 왕복을 할 수 있어서 홍콩에 가려고 했던 것인데... 이럴수가... 왜 어제 저녁에 바로 할 생각을 못했을까...
아침을 먹으면서도 계속 고민이 되었다. 홍콩에 이렇게 비싸게 갈 필요는 없을 것 같고, 그럼 싱가포르에서 이틀 더 버티다가 호치민으로 들어가야 하나, 말레이시아로 가서 들어가는 것을 생각해 봐야 하나 계속 고민 고민 고민. 이렇게 될 거였으면 예약해 놓은 일정을 바꾸지 않았어도 됐었는데...ㅠㅠ 꼬인 게 한 두 개가 아니었다.
11시가 조금 넘어서 지금 머무르고 있는 호텔에 우리가 오늘 다른 곳에서 하루 자고 다시 오면 안 되겠냐고 물어봤는데 안 된다고 했다. 음... 이런...ㅎㅎ 예약을 변경한 호텔에 다시 변경 취소를 하는 방법도 있었는데 3-4차례의 메일이 오고가며 아고다까지 끼고 해서 다시 요청하기가 참 뭐했다. 아내와 엄청 고민을 하다가 그냥 라오스로 다시 가기로 했다. 남부지방 팍세, 시판돈을 가서 베트남으로 들어가는 것을 살짝 염두에 두고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직항은 없어서 에어아시아로 싱가포르-쿠알라룸푸르, 쿠알라룸푸르-비엔티엔으로 했다. 결국 이것도 30만원 정도. ...
일정 변경을 끝내고 짐을 싸서 미련 없이(?) 나왔다. ... 아내와 나는 말이 별로 없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그냥 우리 둘이 너무 고민하면서 결정을 얼른 하지 못한 결과였다. 전철을 타고 우리의 다음 호텔로 향했다. 친절한 데스크에서 우리 예약이 변경된 내용을 직접 확인해주고 방을 주었다. 확실히 조금 더 비싼 호텔답게 방도 깔끔하고 뭔가 다르긴 달랐다.
센토사섬에 가기 위해 나왔는데 아침에도 왔던 비가 다시 조금 내리는 것 같았다. 비를 피할 겸 차이나타운 쪽으로 가서 내일 머무를 숙소를 한 번 알아보기로 했다. 빈 방은 많았지만 딱 원하는 그런 가격대는 없었다. 일정이 꼬이면서 생각지도 않던 지출을 하게 되어서 너무 비싼 곳에서는 머무르기 좀 그랬다. 50달러의 도미토리를 찾아서 일단 후보에 두기로 했다.
차이나타운을 돌아다니면서는 부처님의 치아를 모시고 있다는 불아사에 들어가 봤다. 그런데 부처님의 치아는 볼 수 없었고 그냥 불상들만 있었다. 규모가 꽤 크다는 것 말고는 딱히 볼만한 그런 것은 없었다. 차이나타운을 더 돌아다니면서 기념품을 사고 전철역으로 내려갔다. 센토사섬으로 가기 위해 하버프론트 역으로...
내려서 케이블카를 타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비쌌다. 비싼 것도 문제였지만 돈이 없었다. ... 갖고 있는 돈보다 더 비쌌던 케이블카는 포기하고 그냥 모노레일을 타고 들어가기로 했다. 비보시티로 가서 표를 끊고 모노레일을 타고 센토사로 들어갔다. 유니버셜스튜디오가 있다는 센토사 섬은 그 자체로 그냥 큰 놀이동산 같았다. 이것저것 탈 것들이 많이 있었고 리조트도 있었다. 우리는 놀이기구는 하나도 타지 않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재미가 없었다. 그런데 뭐 재미가 없었던 게 놀이기구 탓만은 아니겠지... 우중충한 날씨 탓도 있겠고 우리의 계획이 꼬여버려서 머릿속이 복잡한 것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겠지...
쭉- 한 번 돌아보는 정도만 하고 다시 모노레일을 타고 나왔다. 마리나베이로 가기 위해 베이프론트역으로 가서 호텔에 들어가보려고 했는데 길을 잘못 들어서 카지노로 가게 되었다. 오랜만에 가보는 카지노였다. 카메라를 맡기고 여권 검사를 하고 카지노에 입장했다. 일단 마실 것이 공짜라서 한 잔씩 뽑아 들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음료수도 마시고 구경만 했다. 그러다가 누가 게임을 끝내고 그냥 버리고 간 1센트가 남아있는 기계가 있어서 우리가 바우처로 뽑아서 가져갔다.ㅎㅎㅎ
1센트를 따고(?) 저녁을 먹었다. 소고기 철판 볶음밥과 야채국수를 시켰는데 어제보다 맛있었다. 7시 정도가 되어서 어제 분수쇼 하던 곳에 자리를 잡고 한 시간 동안 기다렸다. 그리고 시작된 분수쇼. 규모 면에서는 라스베가스에서 보던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감동적이었고 좋았다.
분수쇼가 끝나고는 시티은행을 찾아갔다. 저기 보이는 빌딩 맨 위에 있는 citi가 있는 쪽으로만 걸었다. 가까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그래도 빌딩 숲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남은 일정과 예산을 고려해서 160달러만 인출하려고 했는데 금액 선택이 되지 않아 그냥 여유롭게 200달러를 인출했다. 이렇게 또 돈이 많아지니 기분이 살짝 좋아진다. 역시, 돈의 힘인가...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는 아내와 더 이상 아쉬워하지 말기로 수 없이 얘기했다. 걷다가도 서로 모르게 한숨을 푹- 쉬면서 왜 우리가 결정을 했으면서도 행동을 빠르게 하지 못 했나 후회가 되기도 했지만 더 이상 너무 괴로워하지 않기로... 그러면서 이야기했다. 앞으로 고민은 짧게, 행동은 빠르게 하기로...
차이나타운을 지나면서 숙소 한 곳이 더 보이기에 물어봤는데 가격도 50달러대에 조식도 포함이었다. 그리고 아까 물어본 숙소보다 더 깔끔해보였다. 그래서 이곳으로 하기로 결정을 하고 내일 오겠다고 하면서 돈도 미리 지불을 했다. 우리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는 토스트박스에서 토스트세트를 시켰는데 계란을 주는 게 너무 신기했다. 지난 번 토스트박스에 갔을 때 살짝 익힌 계란에 사람들이 빵을 찍어먹는 것을 봤는데 무슨 맛인지 궁금하기도 했었다. 우리도 그릇에 계란을 깨고 빵을 찍어서 한 입 먹어봤는데, 맛있었다. 그냥 빵에 계란 찍어먹는 맛인데 맛있다. 그래서 시켰던 토스트를 다 먹고 또 한 개 더 시켜서 남은 계란을 다 찍어먹었다. 그리고 새롭게 알게 된 카야잼이라는 것도 맛있었다. 카야토스트에서 카야가 뭐냐고 물어보니 코코넛잼이라고 했는데 맛있었다.
일정은 꼬였지만 그래도 새롭게 계획을 세우고 재미있는 경험 많이 하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