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에 없던 라오스, 비엔티엔에 비싸고 힙겹게 도착했다. 아침 비행기로 내려서 숙소를 구하고 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연히도 게스트하우스 최고층, 창가 쪽 방을 받아서 지금 발코니에 나와서 그동안의 일정을 회상하며 글을 쓰고 있는 것이 전부이다. 공항에서 쪽잠을 자느라 피곤했던 아내는 점심도 거른 채 잠을 잔다. 비엔티엔에 볼거리가 별로 없다고 해도 우린 본 것이 전혀 없는데 이러고 있어도 되나 싶다. 여행 와서 이러고 있는 게 조금 어색하긴 해도 그냥 이러고 있는 게 조금 좋기도 하다. 여행에서 꼭 뭘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니까.
한 달 쯤 전에 라오스, 특히 루앙프라방에서는 이렇게 여유를 부리면서 지냈었는데... 라오스에만 오면 뭔가 나도 여유가 생기는 것 같다. 정말 특별한 볼거리가 없어서 조급함 없이 이러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라오스’라서 이러고 있을 수 있게 되는 것인지... 오늘 저녁엔 메콩강을 보면서 멍 좀 때려봐야지.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는 그동안 쓰고 남은 싱가포르 달러를 모두 말레이시아 링깃으로 환전했다. 그리곤 바로 펄을 절반 정도 넣어주는 인심 좋은 공차에서 밀크티를 마시면서 티비를 봤다. 딱딱한 의자가 불편에 위층으로 올라가 버거킹에 갔는데 완전 푹신한 의자에 사람들이 다 죽치고 앉아서 또는 누워서 쉬고 있었다. 아니, 자고 있었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우리고 감자튀김 한 개만 시켜서 티비를 더 보다가 아내는 잠을 조금 자기로 했다. 둘이 자기엔 조금 불안해서 나는 티비를 마저 봤다. 직원들이 돌아다녔지만 의자에 누워서 자는 우리를 전혀 제지하지 않으니 뭔가 이상하다. 제지당해야 할 것만 같은데...
아내가 한 시간 남짓 자고 일어나 교대를 했다. 나도 한 시간 남짓 잤나, 4시 반쯤 일어나서 체크인 카운터를 보니 서서히 열리고 있어서 짐을 싸서 이동했다. 밥 먹을 곳을 찾고 다시 카운터로 가니 우리 카운터도 열려서 바로 티켓팅을 했다. 아침으로는 우동과 닭고기덮밥을 시켰는데 우동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라면으로 바꿨다. 닭고기 덮밥은 일식이었는데 푸짐하고 맛있었고, 라면이 대박이었던 것이 김치가 라면 위에 올려져 있었는데 우리나라 신김치 맛하고 완전 똑같았다. 아주 맛있게 먹고 어제 입국한 말레이시아를 바로 출국.
새로 만들고 있는 저가항공 전용공항이라 그런지 공사중인 곳이 곳곳에 있었고 특별히 구경할 만한 면세점은 없었다. 바로 게이트로 가서 짐을 풀고 또 쪽잠을 잤다. 눈만 잠깐씩 감고 있는데 꿈을 계속 꾼다. 눈을 떠 보니 기장과 승무원이 탑승을 하고, 곧 직원들이 와서 게이트를 열어서 비행기에 탔다. 만석이라고 했는데 만석은 아니었고, 그렇지만 우리 자리는 따로 떨어져 있었다. 11D, 21F. 빈자리로 이동해 아내와 같이 가려고 이륙하고 아내한테 갔는데 자고 있다. ... 그냥 나도 자리로 와서 잤는데 승무원이 매너 없게 입국카드 쓰라고 날 깨운다. 헐... 그냥 꽃아 놓고 가지. 아내한테 가서 여권을 받으려고 했는데, 아내 옆자리에 있던 아저씨가 그 옆 빈자리로 옮겨서 그런지 자리가 있었다. 낼름 자리를 옮기고 입국카드 쓰고 다시 나도 잤다. 착륙할 때가 다 되어서는 남은 돈을 다 쓰려고 비행기 안에서 과자 두 봉지, 브라우니, 에너지바, 물, 오렌지주슬 사는 사치를 부렸다.
9시가 되지 않아 비엔티엔공항에 무사히 도착했고 입국수속도 잘 마쳤다. 어디서 머무를지 안 써서 그랬는지 조금 뭘 물어봤지만 도장은 잘 찍어줬다. 바로 나와서 환전을 하고 택시 쿠폰을 끊었다. 어딘지 모르지만 남푸거리로 가 달라고 했다. 10분 정도 달려 조마베이`커리를 지나 우리를 내려줬다. 일단 주변에 보이는 게스트하우스부터 가격을 물어보는데 30달러란다. 헐, 말도 안 돼. 방도 보지 않고 나왔다. 주변을 더 둘러보며 골목을 들어가는데 뭔가 이 동네 익숙하다. 아내와 의아해 하며 거리를 좀 더 걸었는데 여긴, 우리가 지난 번에 비엔티엔에 왔을 때 지나갔던 골목이었다. 헐ㅋㅋㅋ 우리가 왔던 곳이 남푸거리였다니...
그래서 저번에 왔던 기억을 되살려 숙소가 많은 곳으로 갔다. 쭉 물어보며 적당한 가격의 숙소를 발견하고 방을 둘러본 후 다시 다른 숙소를 찾아봤다. 그러나 아까 그곳이 제일 괜찮아서 다시 찾아가니 아저씨가 반갑게 맞아준다. 다만 지금은 방이 없으니 체크아웃 시간이 지나고 청소한 후 방을 준다고 짐을 맡기란다. 이런 얘기를 하면서 테이블 위에 올려진 다른 사람의 아고다 영수증을 봤는데 우리보다 더 싼 가격이다. 헐. 그래서 생각에 없었던 가격흥정을 해서 조금 깎았다. 1박 2일 정도만 있을 우리에겐 매우 소중한 돈.
방이 생길 동안 돌아다닐까도 했는데 그간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해서 그냥 호텔 앞마당에 앉아서 쉬었다. 비행기에서 산 과자를 먹는데 구걸하는 어머니와 아이가 와서 아직 뜯지 않은 과자를 한 봉지 주었다. 1-2시간 정도 그냥 있었나, 청소를 다 했다는 아저씨의 말에 짐을 방으로 옮겼는데, 401호, 높아서 조금 그랬는데 제일 꼭대기층 발코니 바로 옆방이다. 우리 생각에 여기가 제일 좋은 방일 듯. 기분이 급 좋아졌다. 짐을 대충 풀고 둘 다 모두 깨끗이 씻었다. 그러고 나가려고 했으나... 몸이 나른해져서 둘 다 침대로... 티비를 좀 보다가 아내는 잠들었고 나는 그동안의 일정을 정리했다.
한참 후에 아내를 깨워 밖으로 나갔다. 비엔티엔에서 그래도 볼 만한 것이라 뽑히는 빠뚜사이에 가 볼 생각이었다. 빠뚜사이를 보면서 가고 있는데 옆에서 지나가던 사람이 갑자기 “언니!”하고 부르기에 쳐다보니 선글라스를 쓴 어떤 여자가 썬글라스를 벗더니 갑자기 아내에게 갔다. 알고 보니 나도 알고 아내랑 친한 동생이었다. 헐! 이곳에서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완전 신기했다. 지나가는 길에 아내를 보고 긴가민가했는데 나도 같이 있는 것을 보고 알게 됐다는 것이었다. 우리와 비슷한 기간으로 혼자 배낭여행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다가 외국 친구들을 사귀게 되어 비엔티엔에 오게 되었다고...
아내랑 계속 얘기를 하다가 길 한가운데서 이러기보다는 그냥 가면서 얘기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다시 길을 돌아갔다. 빠뚜사이에 가는 길이었지만, 보고 왔다고 하기에 우리가 돌아가기로 했다. 그냥 가면서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오늘 저녁엔 메콩강을 보면 되니까... 숙소로 데려다주면서(?) 한참을 얘기하고 헤어졌다. 정말 신기한 인연이다. 어떻게 여기서 이렇게 만나지...ㅎㅎㅎ
어느덧 해가 지고 있었고 우리는 해 지는 메콩강을 향해 갔다. 여기서도 많이 보이는 빨간 천막, 야시장이었다. 루앙프라방에 있는 것을 똑같이 판다는 비엔티엔 야시장이 여기에 있었구나. 그런데 구경을 해 보니 품목이 조금 달랐다. 확실히 도시라서 그런지 가방이나 옷 종류가 도시틱한 것들이 많이 보였고, 핸드폰이나 각종 부속 악세서리들 같은 것은 루앙프라방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들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메콩강변에서 에어로빅을 하는 아주머니들이었다. 대부분 아주머니였고 간혹 아저씨나 외국인도 보였다. 큰 음악을 틀어 놓고 거의 100명은 쉽게 넘을 것 같은 많은 인원이 구령에 맞춰서 운동을 하고 있었다. 아주 경쾌하게. 비엔티엔에 오게 되니 또 이런 구경을 하게 되다니,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야시장 끝까지 구경을 하고 돌아가는 길에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어묵튀김집에서 어묵을 한 사발 샀다. 큰 그릇으로 푸짐하게 받았는데도 4000원 정도였다. 어묵을 비롯한 새우, 두부 등등 그리고 야채에 매운 소스와 달콤한 소스까지 뿌려줬는데 진짜 맛있었다. 같이 산 무슨 면 같은 것도 맛있었다. 그리고 아내가 좋아하는 통오징어구이도 사먹었다. 여행을 오기 전에는 아내가 이렇게나 오징어를 좋아하는 줄 몰랐는데, 한국 가면 오징어요리를 많이 해줘야겠다.
숙소로 가는 길에는 바나나 초코 팬케이크를 사먹었다. 방콕에서도 볼 수 있었지만 사 먹진 않았었는데, 오랜만에 먹어서 그런지 맛있었다. 방비엥과는 조리법도 달랐는데, 여기는 반죽을 펴서 바나나 뿐 아니라 초코도 안에다 뿌린 다음에 접어서 구웠다. 이렇게 되니 완성품이 뭔가 더 깔끔해 보였다.
비엔티엔에 힘겹게 도착해서는 마음이 확 풀어지진 않았었는데, 뜻하지 않게 아는 동생도 만나고 메콩강에서 재미있는 구경을 하며 맛있는 것도 먹어서 기분이 괜찮아졌다. 이미 쓴 돈은 썼으니까 너무 아까워하지 말아야지. 이제부터 즐길 것들을 생각하면서 재미있게 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