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13 미국 서부

<미국여행 7일차> 새크라멘토 - 크로커 미술관

inhovation 2016. 9. 18. 00:00

2013년 1월 17일 목요일

 

  오늘도 아침에 같은 시간에 산책. 오늘도 다른 코스로 돌았다. 조금 더 멀리 해서. 가까운 곳에 있는 고등학교를 끼고 돌았는데 이건 누가 '여기가 고등학교야.'라고 말해주거나 고등학교 간판을 보기 전까지는 전혀 고등학교같지 않다. 역시 고등학교도 모두 1층 건물이고 주차장이 완전 넓고 운동장도 정말 완전 넓다는 것이 특징이라고 해야 할까?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학교에 가는 학생이 많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학교로 들어가는 미국의 고등학생들을 볼 수 있었다. 당연히 모두 사복. 아침부터 약을 했는지 이상하게 돌아다니는 키 큰 흑인도 있었다. 무서워서 얼른 피했다. 눈도 안마주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밥을 먹고 나갈 준비를 했다. 오늘의 일정은 올드 새크라멘토로 가서 크로커박물관을 갔다가 철도박물관을 들려서 집으로 오는 것. 항상 3-4시면 집으로 돌아와야 하는 일정 때문에, 호텔에 있지 않아서, 하루가 짧았다. 그래서 많은 계획을 세우지 못한다.

 

 

  집에 와서는 어제부터 그렸던 그림을 완성했다. 미국에 와서 하고 싶은 것 중에 하나가 그림 그리기였다. 초등학생 시절 그림 그리기는 좋아했던 것 같다. 그런데 싫어졌을 때를 생각해보니 중학교 시절이었던 것 같고 정말 싫었던 때는 고등학교 이후부터 계속인 듯 하다. 중학교 때 부터는 뭔가 잘 그리는 사람이 높은 성적, 못 그리는 사람이 낮은 성적을 받아서 싫어졌고, 물론 나는 낮은 성적, 고등학교 때는 이런 것 때문에 1학년 때는 어쩔 수 없이 그리고 2학년 때 부터는 선택과목으로 음악을 선택해서 아예 미술과는 멀어졌다.

  그런데 몇 달 전에 '세바시'를 보는데 어떤 사람이 자기도 그림 못그리는데 여행가서 그림을 그려보니까 짧은 시간 사진 찍는 것 보다 긴 시간 동안 한 곳에서 그림을 그리니까 안 보이던 곳도 보게 된다고 하면서, 자기는 이런 것으로 클라우드 펀딩을 받아 여행을 하고 그림책도 냈다고 한 강연을 들었다. 그러면서 사람마다 글씨체가 있듯이 그림도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는 것이라고, 그려보라고 뭐 이런 얘기를 하면서 자기 그림을 보여줬는데, 이건 뭐.... 내 생각엔 완전 수준급이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그림을 잘 그리고 못 그리고가 아니라 그림을 그린다면 못 보던 것도 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이기 때문에 한국에 있을 때 부터 나는 그림 그려 올 것이라고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녔었다.

 

사진은 3초만 볼 수 있지만 그림은 30분, 아니 3시간 동안 한 곳을 바라볼 수 있다

 

  첫 작품은 내 방 안에서 창문을 통해 본 이웃집들의 모습이었다. 모든 것이 처음이 어렵다고, 어제 처음 그림을 그리려고 마음먹고 챙겨온 색연필하고 종이를 꺼냈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그려야할지 완전 막막했다. 그런데 '첫 한 선'이 그어지자 그 다음부터는 쭉쭉 그릴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완성을 한 것이다. 그리면서는 '정말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 '조금 재미있네?'하는 생각도 했다. 창문으로 매일 아침 보는 이웃집이었지만 그림으로 표현해야 하니까 구석구석을 보게 되었는데 정말 못 보던 것들이 보이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아, 저 집에는 굴뚝이 있었구나.'

'아, 저 집은 하얀 담장이 있었구나.'

 

 

  그림을 다 그리고 나서는 가방을 싸서 집을 나섰다. 두 번째로 가는 올드새크라멘토는 익숙했다. 처음 갔을 때는 적응하느라 그 날의 일정이 끝날 때 쯤이 되어서야 '아, 이런 곳이구나.'하는 것을 알았는데 이제는 척척척이다. 길 체계도 숙지했고 지리도 다 외었고. 암트랙 기차역까지 태워다 주셔서 크로커박물관까지 걸어서 내려갔다. 내려가면서 다시 보이는 올드 새크라멘토를 상징(?)하는 조형물 사진도 다시 또 찍고 Macy's 백화점에서도 사진을 찍었다. 첫 날은 이런 백화점이 다 있나 마시스? 매시스? 어떻게 읽어야 할 줄도 몰랐는데 찾아보니 미국에서 엄청 유명한 백화점이라고, 메이시스 백화점. 미리 알았으면 보자마자 '아!' 했을 텐데 검색해 보고 '아!' 했다. 그래도, 알았으니까 뭐.

 


  백화점을 지나 더 내려오니까 크로커 미술관이 표지판이 보였고 잔디밭 너머로 미술관이 보였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정말 미술에 취미나 관심이 없다. 그런데 여기서는 '무엇인가를 해야 하니까' 미술관이 있다는 것도 찾아서 알게 되고 가본 것이지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입구부터 줄을 서 있었다. 사람은 많은 편. 표를 사려고 기다리다 보니 우리가 가려는 철도 박물관하고 콤보 티켓으로, 원래는 각각 10 달러인데 15 달러에 판다는 안내판이 보여서 콤보 티켓으로 샀다. 표를 받으면서 설명해 주는데 미술관 티켓은 함께 있는 스티커를 떼어서 옷에 붙이고 다니라고 했다. 이건 뭐 설명 안해줘도 표 받은 사람들이 다 스티커를 옷에 붙이는데 눈치로도 알 수 있지. 철도 박물관은 꼭 오늘 가지 않아도 되었다. 일정 기간 동안 행사를 이렇게 묶어서 파는 것 같았다.


  표를 붙이고 들어가긴 했는데 넓은 로비에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카지노랑 같은 풍경, 모두 노인이었다. 정말 모두 노인. 여기 있는 사람은 다 식탁에 앉아서 뭘 먹으면서 얘기하는 사람들이고 미술관은 어디로 가야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주변을 살펴보니 미술관 지도랑 설명이 나와있는 팜플렛을 뽑아서 벤치에 앉았다. 둘이서 함께 사전을 찾아가며 영어를 해석했다. 어디서 사진을 찍으면 안되고 하는 등의 주의사항을 읽고 지도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발걸음을 옮겼다. 바로 가까운 곳에 들어가보니 기념품샵. 마지막 코스를 가장 먼저 구경하는 역주행을 하고 3층으로 갔다. 3층에 유명한 사람 코너가 있었는데 뭔가 좀 취향에 안맞아서 앉아서 사진만 찍을 수 있는 곳에서 사진을 찍고 지나갔다. 그림에 취미가 없어도 그냥 취향은 좀 있다. 나도 뭔지 모르는 취향.


  구역이 여러개 있는데 캘리포니아&아메리카, 유럽, 동양 그리고 아래층에는 인도 등 종류별로 구역을 나누어서 전시를 해 놓았다. 항상 이런데 가면 쓰-윽 지나가기 일수였는데 시간도 많고 내 돈내고 이왕 왔으니 꼼꼼히 한 번 보기로 했다. 처음 보는 그림들은 쉬워보이는 그림도 많이 있었다. 그러나 내가 따라 그리면 이런 그림은 나오지 않겠지. 노란 두루말이 휴지같은 것을 그려놓은 그림부터 untitled인 그림, 물감으로 그냥 쓱쓱 칠해 놓은 그림 등 여러 개가 있었다. 하나하나 보면서 지나가는데 점점 그림이 나를 잡아 끄는 것 같았다. 큰 그림이지만 가까이서 보니 세세하게 작가가 표현해 놓은 모습들도 보이고 점점 흥미가 샘솟았다. 아침에 내가 그림을 그리고 나와서 그런가 작가의 고충이 무엇이었을지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제일 흥미롭게, 오랜시간 보냈던 곳은 유럽 구역인데 성화부터 시작해서 근현대(?)의 유럽의 모습들을 그린 그림이었는데, 정말 이 그림들을 보고 있는 기분은 글로 절대 표현할 수가 없다. 그림이 그냥 내 가슴 속으로 들어와서 단지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 큰 감동을 받는 가슴벅찬 그런 기분이랄까

 

아직도 이 때를 생각하면 심장이 뛰고 가슴이 벅차오르는 기분이다.

 

아쉬운 것은 나나 여자친구나 그림을 좀 알고 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모르는 두 사람이 보기에도 가슴뛰는 곳이기에는 충분했다. 특히 제일 기억에 남는 그림은 성경에 있는 이야기를 그린 그림인데 보디발의 아내에게 유혹을 받는 요셉의 내용이었다. 뭐 그림이 100% 맞는 상황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냥 나의 상상으로는 '단순히' 보디발의 아내에게 유혹받는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그림에서는 보디발의 아내가 침대에 옷을 다 벗고 앉아서 요셉의 옷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그리고 요셉은 놀라서 황급히 도망가는 상황을 실감나게 묘사했는데 그림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이런 것들이 정말 그 상황을 너무나도 잘 묘사한 것 같았다. 그리고 작가의 상상력으로 표현한 그림의 내용까지도. ... 거기서 본 그림에 대해 이야기 하려면 끝도 없을 것 같고, 지금 얘기로는 나중에 시간 남으면 가까우니까 한 번 더 갈까도 생각하고 있다.

  그림을 더 보고 싶었지만 3시에는 내일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버스정류장의 위치를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정말정말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2시 45분에 미술관을 나왔다. 올드 새크라멘토 안에서 출발한다고 했는데 내일 장소를 정확히 몰라서 못타면 안되니까 안심하기 위해서 지도를 보고 정류장으로 출발했다. 지도에 표시된 곳으로 가니 파란색 메가버스(Mega Bus)가 서 있었다. 이 장소에서 내일 아침 8시면 샌프란시스코로 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 신났다. 버스를 조금 구경하고 상점들을 몇 군데 더 돌아보았다. 사고 싶은 것은 너무 많은데 돈은 한정되어 있었기에 너무 괴로웠다. 불필요한 물건을 사지 않는 것이 합리적인 소비인데 여행을 와서까지 이런 합리적인 소비를 한다는 것은 비합리적인 소비인 것 같은데 그 한도는 과연 어디까지인가.

  시간이 늦어 철도박물관 표는 있지만 나중에 가기로 하고 다른 곳에 가 보았다. 올드 새크라멘토 주변에는 앞에서 말한 크로커 미술관까지 총 4개의 큰 박물관이 있다. 크로커미술관, 역사박물관, 철도박물관, 군사박물관. 그리고 다른 작은 박물관도 있는데 이 네 군데는 입장료가 있는 큰 박물관 축에 든다고 할 수 있다. 군사박물관에 한 번 들려보았는데 4시에 문을 닫는다고해서 기념품만 조금 구경했다. 지하에 총, 뭐, 뭐 이런 것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고 했는데 큰 감동이 없어서 안가기로 했다. 박물관 직원한테는 내일 온다고 말하고.

 

  픽업을 해달라고 전화하고 다시 암트랙 정류장으로 돌아왔다. 집에가서는 반찬을 하고 저녁 먹고 잠시 윈코, 가장 가까운 마트에 가서 빵이랑 과일이랑 등등을 샀다. 그동안 먹고 싶었는데 말을 못했던 베이글에 발라먹는 크림치즈도 샀다. 한국에서도 한 번도 안 사 먹었던 것인데. 한국에서는 얼마인지 모르겠지만 싼 것 같기도 하고 크기도 큰 것도 많다. 한국도 그런가? 집에 다시 와서는 내일 샌프란시스코 갈 계획을 세웠다. 처음으로 장거리라고 할 수 있는 여행을 가는 것인데 어디어디를 갈 것인지 블로그랑 구글지도, 가게에 옆집 아저씨가 빌려준 책자를 보면서 계획을 세워보았다. 아무리 자세히 설명된 것들을 봐도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르니 답답한 마음이 한 켠에 들기도 했다. 가봐야 알 것 같았다. 그리고 라스베가스 호텔도 예약을 해버렸다. 계획만 세우다가는 정말 멋진 계획들만 남을 것 같아서 계획으로 있었던 날짜들로 해서 그냥 예약했다. 이제 계획에 일정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일정에 맞춰 계획을 세워야 한다. 샌프란시스코! 일주일 내내 계획만 세웠는데 내일은 드디어 계획이 처음으로 실현되는 날이 될 것인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하니까 일찍 자려고 누웠지만 12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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