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13 미국 서부

<미국여행 6일차> 공원에서의 여유

inhovation 2016. 9. 17. 00:00

2013년 1월 16일 수요일

 

  오늘도 일어나서 아침 산책을 했다. 동네 지리도 익힐 겸 다른 코스로 해서 집 주변 길을 걸었다. 미국에는 한국에 없는 교통표지판이 있다. STOP사인. 처음에는 불안하고 적응이 잘 안되었다. 교통법규를 어겼을 때 벌금이 기본 300, 400달러를 넘어가니 내가 운전을 하다가 STOP을 못보고 지나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때문에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항상 주위를 살피게 된다. 이 STOP사인에서는 일단 멈춤이다. 아, 한국에서도 비슷한 것이 있지. 빨간불 점멸 신호등. 그런데 자주 없으니까... 미국에는 엄청 자주 있다. 물론 주 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산책을 하면서 미국의 아침 풍경을 이리저리 살피면서 걸었다. 7시 30분이 넘은 시간인데 이미 다 출근을 한 것인지 아니면 늦게 한 것인지 동네가 북적북적 하지는 않았다. 이제 막 나가는 사람들은 일찍 나가는 사람인지 늦게 나가는 사람인지는 모르겠다. 우리나라처럼 높은 아파트가 여기에는 없어서 인구밀도가 낮아 작은 장소에서 많은 사람을 볼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산책을 하면서 아파트단지도 보았는데 아파트가 2층이다. 귀여웠다. 한국에는 2층짜리 아파트는 없는데. 새크라멘토 시골 땅에 높게 지을 이유가 없으니까 그냥 낮게낮게 지었나보다. 하긴 모든 상가 건물도 1층에다 주차장은 완전 넓었으니까. 주차하는데도 자리가 없어서 돌았던 적은 한 번도 없다는 것은 차도 많지만 주차장도 정말 넓다는 것.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한 시간 동안 산책을 하고 집에 들어왔다. 밥을 먹고 나갈 준비를 했다. 오늘은 새크라멘토 동물원에 가 볼 생각이다. 어제 고민하다가 내린 결론이 일단 가까운 곳을 또 가자는 것이었기 때문에. 주차 무료에 입장료 10달러 정도면 싼 편이라고 생각하고 내린 결정이다. 차를 받고 나서는 세차장과 주유소에 들렸다. 세차장은 우리나라랑 똑같은 자동 기계 세차장에 갔는데 일반모드가 7달러. 우리나라는 기름 넣으면 공짜로 해 주거나 7천원까지는 안하는데, 좀 비쌌다. 기계를 통과하고 나니 두 사람이 차에 남은 물기를 닦아주면서 유리창 건너편에서 소리친다.

 

"You have a new car!"


세차를 하고 나서는 진공청소기로 차 구석구석을 닦았다. 무제한 무료. 아, 이러면 세차비 7달러가 조금 이해가 되었다. 우리나라는 몇 분에 500원을 넣어야 하는데. 차를 다 닦고 나서는 코스트코에 갔다. 코스트코 주유소. 1갤런에 3.20달러 정도 하니 리터당 천원이 조금 안하는 셈이다. 우리나라의 절반. 다른 주유소들은 3.70달러 정도 하는데 코스트코는 기름값이 싸서 주유구가 8개 정도 있는데 항상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기름을 가득 넣고 나서는 출발!

 

  옆에서 구글 지도를 보며 잘 가고 있는지 확인을 해 주었다. 운전을 하면서 핸드폰을 통화하지 않고 들고만 있어도 벌금을 물린다고 하니 여기서는 모든게 조심스럽다. 15분 정도 차를 타고 가니 동물원 근처에 도착했다. 그런데 좌회전 신호를 못타고 직진을 한 것. 어쩔 수 없이 다음 신호에서 좌회전으로 들어갔다. 공원 사이로 도로가 구불구불 나 있었고 이 길을 지나 동물원 쪽으로 향했다. 동물원을 가는 길에 공원이 너무 크고 넓어서 사진을 마구 찍었다. 여기도 한 번 오자는 말과 함께. 차를 몰고 조금 가니 오른쪽에 동물원이 보였지만 주차장을 찾지 못해 다시 큰 길로 나가서 좌회전을 하고 유턴을 하고 우회전을 하고 좌회전을 해서 결국 동물원 앞에 다시 도착했다. 특별한 주차장은 못찾고 공원에 주차되있는 많은 차들 사이에 우리도 주차를 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동물원 건너편에 주차장이 따로 있었는데 이 때는 보지 못했다.

  동물원을 가려고 했는데 정작 다시 생각해보니 길이 막히고 번잡해 지니 3-4시까지는 들어오라고 하셨는데 동물원 구경을 할 시간이 넉넉치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공원을 구경하기로 했다. 이 넓은 공원을 거니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그래도 동물원 앞이랑 앞에 작은 어린이공원에서 인증샷은 찍고 바로 옆 공원으로 갔다. 양재 시민의 숲 같은 느낌이었다. 회사 다닐 때도 점심시간에 잠시 양재 시민의 숲 바로 옆에 공원 그리고 양재천을 갈 때면 기분이 좋아지고 맑아지는 느낌이었는데 꼭 그런 느낌이다. 초록속에 있을 때 사람의 기분은 좋아지나보다. 회사 다닐 때도 답답한 사무실을 떠나 매일 점심마다 산책도 하고 싶었는데 항상 산책하는 분위기는 아니어서 나 혼자 그럴 수 없었던 것이 아쉬웠는데...

 

  산책을 하면서는 공원 이모저모를 살펴보면서 걸었다. 큰 나무들, 넓은 잔디밭, 연못, 나무를 오르내리는 청설모와 물가에 모여있는 오리. 모든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사람들의 모습도 구경했다. 네 바퀴가 달린 차에 아이를 태우고 끌고다니는 사람, 아이들과 함께 오리 밥을 주면서 노는 사람. 차에서 내려 아들과 산책하는 엄마 등등 모두 여유로운 한낮을 보내고 있었다. 한참을 거닐며 잔디밭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갑자기 멀리서 어떤 남자가 소리를 질렀다.

 

"WATCH OUT!"

 

고개를 돌려보니 골프장 한가운데 있는 우리들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남자가 서 있는 쪽을 보니 골프장에서 돌아다니는 작은 차 두대와 캐디들, 골프를 치는 사람 몇 명이 서 있고 한 사람은 막 골프채를 휘두르려던 참이었다. 황급히 밖으로 뛰어 나가면서 나무 밑에 몸을 가렸다. 아, 넓은 잔디밭이 골프장이었구나. 연못은 그럼 벙커인가? 여튼 자리를 피해 다른 쪽으로 갔다. 골프장이 아니어도 골프장 처럼 생기지 않은 잔디밭은 많이 있었기에.

 


   공원 벤치 바로 아래에는 작은 동판들이 새겨져 있었는데 자세히 읽어보니 묘비석 같은 것이었다. 그럼 이 아래는 무덤인가? ㅇㅇ를 기념하며. 뮤지션, 사랑하는 아빠, 엄마 그리고 동생. 뭐 이런 글들이 적혀있었다. 거의 모든 벤치에. 이 사람이 죽을 때 가족들이 벤치를 기증하며 새긴 것인가? 이건 잘 모르겠지만 신기했다. 죽은 사람의 가족이나 친구들은 이 공원 이 벤치에 와서 그 사람을 추억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좋을 것 같다. 꼭 공동묘지, 납골당, 무덤가에만 가는 것이 아니라 이런 곳에 와서 함께했던 기억들을 나누면서 즐길 수 있다는 것. 괜찮다.

 

 

  공원을 살짝 빠져 나와서는 반대편 길로 가서 집 구경을 했다. 집 구경할 생각은 없었는데 반대편에 있는 집이 너무 멋있어서 그쪽으로 이끌려갔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건너가서 집을 구경하고 고개를 돌려보니 길이 나 있는 쪽 좌우로 멋진 집들이 줄지어있었다. 마치 '쁘티프랑스'에 있는 집들을 여기 옮겨놓은 듯한 풍경이었다. 머무르고 있는 집은 그냥 주거지역이고 있는 집들이 다 비슷비슷하게 생겼는데, 물론 우리는 이런 것도 신기했지만, 여기는 '격'이 달랐다. 각각의 집들이 다 개성있게 생겼다. 하얀벽돌, 빨간벽돌, 까만벽돌, 나무집, 화강암 등등 정말 모든 집이 다 다르게 생겼다. 앞마당과 집으로 들어가는 길도 모두 달랐고 나무들도 다 개성있게 꾸며놨는데 정말 이뻤다.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같이 솟아 올랐고 카메라 셔터는 연신 집들을 향해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했다.

 


 

  길지 않은 길이었는데 한 시간 정도 집 구경을 다 마치고 나서는 다시 차를 세워놓은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옆길에도 이쁜 집들이 많이 있었지만 시간의 제약이 있기 때문에 아쉬워도 어쩔 수 없었다. 잔디밭 공원을 가로질러 갔는데 야구장도 보였고 그 옆에서 손자와 공을 주고받는 할아버지도 있었다. 참 행복해 보였다. 이런 풍경을 보면서 나도 취미로 운동 한개는 갖는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악기는 그래도 기타코드 잡을 줄 알고 노래 좀 부를 줄 아는데 운동은 잘 할 줄 아는 것이 없다. '구'가 들어가는 운동, 축구, 야구, 농구, 배구, 탁구 등등 공으로 하는 운동을 다 싫어해서 주변 사람들과 운동 좀 할 기회가 있으면 항상 나는 빠졌는데 지금은 그래도 운동을 취미로 한 개 갖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뭐 꼭 공으로 할 필요는 없겠지.

  우리나라 말고 다른 나라, 프랑스 이런 곳 같았는데, 이런 곳에서는 중산층의 기준을 물질적인 것으로 삼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몇 평 이상의 아파트 소유, 몇 cc 이상의 자가용 소유, 연봉 얼마 이상과 같은 기준이 중산층을 나타낸다고 생각하지만 외국에서는 1-2개의 운동을 취미로 갖고 있고 1-2개의 악기를 다룰 줄 아는 것, 1-2개의 외국어를 할 줄 아는 것 등등이 중산층의 기준이라고 한다. 사람들의 삶의 목적과 목표가 다른 것일까?

 

행복의 기준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한국에서 자라고 한국에서만 보고들었으니까 직장 좋은 곳 취직해서 결혼 잘 하고 집과 차를 소유하고 사는 삶이 '좋은'삶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외국에서는 꼭 그렇지 않으니말이다. 미국의 경우 차가 이동수단일 수 밖에 없으니 차가 아무리 망가지고 부셔져도 큰 고장이 아니면 그냥 다니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그리고 아무리 오래된 차라도 고장나지 않으면 계속 타는 것 같았다. 실제로 1960년대에나 나왔을 법한 작은 그 차, 이름은 뭔지 모르겠고, 뭐 그런 차들도 있었고 완전 구형 벤츠, 유리창이 깨져서 박스로 붙이고 다니는 BMW도 보았다.

  그동안의 나의 삶에 대해서도 많이 다시 생각해 보았는데 아르바이트 하면서 돈을 많이 모았던 것을 참 쓸줄도 모르고 즐길줄도 몰랐던 것 같다. 제작년 부터야 여행을 다니면서 조금 여유를 찾기 위해 돈을 쓰기도 했는데 이전에는 옷도 잘 안 사입고 맛잇는 것도 잘 먹지 않고 항상 아끼고 저렴한 것이 좋은 것이고 합리적인 삶이라고만 생각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버는 족족 다 써버리자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 편향되어 있지는 않았나 싶다. 내가 만들어 놓은, 어쩌면 남들에 의해서 만들어져버린 기준들과 울타리 안에서만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던 것은 아닌지. 그리고 그 안에서 세워 놓았던 행복의 기준, 남들과 다 같은 기준을 위해서만 살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공원에서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을 보면서 생각을 넓게 터 넣고 바라보니 앞으로의 내 인생에 있어서도 이런 여유를 즐길줄 알며 행복의 기준을 다시 깊이 고민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것들이 앞으로 남은 미국에서의 일정 가운데 많이 정리되면 좋겠지. 일단, 아침마다 운동하는 습관은 한국에 가서도 어떻게든 만들어보아야겠다. 그리고 다른 운동에도 취미를 붙이는 것도. 벌써부터 할 것들이 많이 있네.

  많은 생각들을 하고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고서 공원을 나왔다. 물론 나중에 갈 것이지만 그랜드캐년 같이 멋진 곳에서 보고 느낀 것은 아니지만 동네에 있는 넓은 공원에서 깊이 생각하고 많은 것을 느끼고 돌아오는 시간이었다.

 

 

  점심은 공원에서 걸어다니면서 집에서 싸온 샌드위치와 바나나를 먹어서 간단히 해결이 되었고 차를 타고 돌아갔다. 오는 길에 여러 마트들을 지나왔는데 한 번 구경해 보기로해서 중간에 마트에 차를 세웠다. 한국으로 따지면 홈플러스 구경, 이마트 구경인데... 참... 하긴 뭐 한국에서도 갈 곳 없으면 홈플러스 가서 그냥 걸어다니면서 데이트 했으니까...

  마트에서는 한국이랑 같은 품목이면 가격을 보면서 신기해했고 한국에 없는 품목이면 그냥 신기해했다. 구석구석 '갈 지'자로 마트를 누비고 나서는 옆에 있는 다른 마트로 향했다. 'doller tree'라는 곳이었는데 한국으로 따지면 '천원 샵' 같은 곳이었다. 여기도 구석구석 구경. 화장실도 잠시 들리고. 화장실이 조금 특이했는데 문을 열자 그냥 넓은 장애인 화장실 한 칸이 나왔다. 뭐 특이하다기보다 일반 화장실인줄 알고 열었는데 장애인 화장실 같은 넓은 한 칸이 나와서 놀랐다고 하는게 맞으려나. 달러 트리에서는 조금 배고파서 달러 트리에서 길쭉한 치즈 한 개를 1달러 주고 사먹으면서 가게로 돌아왔다. 인사 드리고 다시 집으로. 집에 가서는 다시 여행 계획.

 

 

  자꾸 질질 끄는 것 같아서 질러버렸다. 라스베가스 호텔 예약. 뭔가 확정된 것이 없으니까 자꾸 일정 전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고 얘기만 많이 하게 되어서 결정해 버린 것이다. 이렇게 뭔가 한개가 확실히 결정되니 이제 여기에 맞춰서 세세한 계획을 세워나갔다. 어떤 일이 안풀릴 때는 앞뒤를 바꿔서 생각하는 것도 괜찮을 듯. 계속 하고싶은 것들을 생각하면서 일정을 맞추려고 하다 보니까 돈도 없어, 시간도 이상해 이러기만 했는데 그냥 호텔 예약을 먼저 해 버리니까 여기서 할 것들을 생각하면서 할 일들을 채워나갔다.

  그리고 내일 모레에는 샌프란시스코에 가기로 했다. 내일은 올드 새크라멘토에 박물관에 가기로 하고. 샌프란시스코 가는 버스 예약도 해버렸다. 이제서야 조금 우리가 계획한 여행 일정이 시작되는 것인가. 그동안 계속 고민했던 문제들이 뭔가 해결된 것 같아서 마음이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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