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13 미국 서부

<미국여행 5일차> 레드 호크 카지노(Red Hawk Casino)

inhovation 2016. 9. 16. 00:00

2013년 1월 15일 화요일

 

  어제 잠도 많이 자고 저녁에 커피도 진하게 마시고 자서 그런지 새벽에 화장실도 다녀오고 3시부터 눈만 감았지 머릿속은 온갖 상상을 하며 잠을 못잤다. 5시 정도에는 일어나서 책을 읽다가 어제와 같은 시간에 산책을 갔다. 오늘은 다리를 건너지 않고 그냥 큰 공원만 몇 바퀴 돌기로 했다. 날이 그래도 쌀쌀 했는데 반팔에 반바지 입고 운동을 하는 여자도 있었다. 노래를 들으면서. 이런 사람들하고는 '굿모닝'을 하지 못했다. 어떤 할아버지는 우리랑 반대로 돌아서 3-4번 마주쳤는데 두 번째 볼 때는 고개만 끄덕였고 그 다음에는 살짝 웃기만 했다. 한 시간 정도 상쾌하게 아침 운동을 하고 나서는 집에서 맛있는 아침을 먹었다. 정말 좋다. 이런 생활. 한국에서도 계속 유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은 Ben 아저씨가 점심을 사준다고 해서 별다른 스케줄을 잡지 않았다. 아직 미국 생활에 적응중이기도 했고. 가게도 쉬는 날이라서 다 같이 오전에는 여유가 있었다. Ben 아저씨는 필리핀 사람인데 70이 넘었다고 한다. 배는 많이 나오고 조금 절뚝거리긴 해도 특별히 건강이 나쁜 것 같진 않았다. Ben 아저씨네 집으로 가는데도 시간이 꽤 걸렸다. 20분 정도? 차 없이는 정말 돌아다니지 못할 것 같은 미국이다. Ben 아저씨가 점심을 사준다는 곳은 30-40분 정도 떨어졌나? 레드 호크라는 카지노 안에 있는 뷔페였다. 한국에서는 그냥 요즘 패밀리 레스토랑이라고 부르는 곳. 가는 길도 오래 걸렸는데 더 시골길로 접어들었는지 농장들과 소, 말을 키우는 평지가 펼쳐졌다. 소가 정말 많았지만 풀밭이 워낙 넓어서 소가 조금 있는 것 처럼 보일 정도였다. 한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풀밭에 까만 소가 점점이 박혀있는데 백마리는 거뜬히 넘을 것 같았다. 레이크 타호 가는 길에서 왼쪽으로 빠지니 카지노가 나왔다. 레드 호크.

 


  먼저 카지노 구경을 한 시간 정도 했다. 여기는 엊그제 레이크 타호를 가다가 잠시 들렸던 하라스호텔보다 훨씬 규모가 큰 곳이었다. 영화 속에서 보던 큰 카지노다. 온갖 슬롯머신들이 즐비해있고 블랙잭 같은 카드게임을 하는 테이블이 줄지어 있었다. 음료수는 무료라서 음료수를 계속 리필해서 마셨다. 나랑 여자친구는 정말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구경을 했다. 어떤 블로그를 읽었는데 카지노에서는 고객의 개인 프라이버시 때문에 사진을 못찍는다는 말을 들어서 대놓고 전체적인 사진을 찍지 못했다. 그래도 천대는 넘을 것 같은 슬롯머신과 그 소리들은 아직도 생생하다.

  고객은 99%가 노인들이었다. 거동이 불편해서 휠체어를 타오 온 사람들도 있었다. 젊었을 때 돈을 바짝 벌고 이제 이렇게 노후를 즐기나보다. 미국 사람들은 카지노가 우리나라에서처럼 '도박'이라는 개념보다 '놀이'라는 개념이 강해서 자산을 탕진할 정도로 하는 사람은 적다고 한다. 내가 100달러만 하기로 했으면 그 날은 100달러를 잃으면 손 털고 일어나고, 다음 날 또 100달러를 하고 하는 식이라고 한다. 정말 하나의 문화라고 할 수 있겠다. 슬롯머신 앞에서 어떤 한 백발이 노인이 게임을 하는 것을 지켜봤는데 딸 때도 있고 잃을 때도 있었지만 결국 넣은 돈을 모두 잃었다. 그러니까 미련 없이, 한 치의 아쉬움도 남기지 않은 채 깨끗하게 일어나는 것을 보고 신기했다. 게임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 방법도 모르고 해서 그 자리에 가 버튼들을 구경도 했는데 한 게임을 할 수 없을 만큼의 잔돈을 남겨두고 가버렸다. 어떤 버튼을 나오니까 8센트를 바꿀 수 있는 바우처가 나왔다.

 

'아, 돈을 넣고 하다가 게임을 끝내고 싶으면 이 바우처를 뽑아서 돈으로 바꾸는구나.'

 

  바우처가 나와서 신기하기도 했는데 8센트를 그냥 가져간거라서 우리를 노려보는 수 백대의 CCTV에 잡힌 것은 아닐까 걱정도 했는데 이렇게 그냥 가고 남은 잔돈은 가져도 큰 무리는 없다는 말에 안심이 조금 되었다.

 

 

  점심을 먹으로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굉장히 고급스러워 보이는 뷔페 가격이 한국 돈으로 10,000원이 조금 넘는다. 주말에는 비싸지긴 했다. 평일 점심이라 싼 것이다. 주말에는 아무래도 카지노에 사람들이 많이 몰리니까 비싼가보다. 나라마다 음식 코너들이 있었는데 특별히 맛있었던 것은 샐러드. 이건 다른 고기 종류 음식에서 크게 끌리는 것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나? 새로웠던 것은 오믈렛을 바로 만들어주는 코너가 있다는 것. 물론 빕스 같은 곳도 스파게티를 바로 만들어 주긴 하지만 여긴 오믈렛이라는 것. 재료를 직접 말하면서 주문하면 계란으로 오믈렛을 만들어 주었다. 작은 프라이팬으로 가득 만들어서 반을 접어 주는데 이거 하나 먹으면 다른 음식은 먹지도 못할 만큼의 양 이었다. 주방장이 중국사람이었는지 우리한테 중국인이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하면서 중국인이라고 물어보니까 맞단다. 그래서 내가 알고 있는 중국어를 또 몇 마디 날려주었다. 주방장이 무지하게 좋아한다. 조금 기다려서 오믈렛을 받고 나서도 한 마디 해 주니까 아까보다 더 좋아한다. 작년에 중국 갔을 때 조선족 가이드가 버스 내릴 때 마다 이렇게 기사 아저씨한테 말해주라고 해서 배운 것이다.

 

신 콜라

(수고하셨습니다)

  

  밥을 다 먹고 나서는 같은 층에 있는 카지노에서 우리도 게임을 했다. 돈은 주셔서 부담은 조금 없었지만 잃을 때 마다 살이 깎여나가고 피가 쏟아져나가는 것 같은 아쉬움은 내 돈을 내고 하는 사람과는 다르지 않았다. 계속 잃어가다가 한 순간에 갑자기 대박이 터졌다. 그림을 선을 따라 맞추는 것인데 원리나 이런건 모르고 버튼만 누르다 보니 갑자기 펭귄들이 날아다니고 춤을추고 소리를 지르면서 난리다. 그러면서 credit이 계속 올라가는데...

 

100 달러! 

  

 

    인생 역전까지는 아니지만 일일 역전이라는 것은 이런 것이라는 것을 느꼈다. 100달러 되자마자 일단 바우처로 뽑아놓고 다른 돈으로 다른 기계에서 게임을 계속했다. 일단 본전 넘는 돈은 챙겨 둔 것이니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그러나, 이것 역시 편안하진 않다. 돈을 잃을 때마다 마음이 초조해지며 사람이 변해가기 시작하는데, 그렇다고 너무 많이 이상하게 변한 것은 아니고, 도박으로 인생이 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추가로 배팅한 돈은 모두 잃고 결국 본전. 카지노를 나올 때는 그만 하자, 집에 가자는 마음으로 나왔는데 아직까지도 아쉬움가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보니 일절 손을 대면 안되겠다. 내 돈으로 한 것도 아닌 게임이었는데...

 

 

  카지노는 정말 게임으로만 즐겨야지 적은 돈으로 일확천금을 노릴 생각을 하면 안될 것 같다. 물론 이런 것에 대해 사람마다 의견은 다 다를 수 있지만 내 생각이 이렇다는 것이다. 돈을 따는 것은 좋은데 그 정도가 너무 크면 안될 것 같은 생각이다. 우리도 딴 100달러는 점심을 사준 Ben 아저씨에게 주었다. 그리고 벤 아저씨는 우리가 돈을 딴 기계에서 이 돈을 다 잃으신 듯. 그릇에 물이 조금씩 채워지면 그릇은 물이 점점 차게 된다. 그러나 그릇에 너무 많은 물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오면 그릇은 흔들리고 엎어질 수 밖에 없듯이 일확천금에 대한 꿈을 갖고 있는 우리들의 인생이 이 그릇과 같지 않을까?

  카지노를 구경하며 어마어마한 상금이 걸려있는 기계를 지나면서 "만약 내가 이 기계에 당첨이 된다면 어떻게 할까?"하고 얘기를 나누었다. 집 사고, 차 사고, ... 그리고 나서는 남은 돈으로 즐기는 생각? 상상만이었는데도 지금의 내 인생은 모두다 사라져버렸다. 대학원을 계속 다닐 필요도, 직장을 구하려고 노력할 필요도, 지금처럼 블로그 쓰면서 소소한 재미를 느낄 필요도 사라져 버릴 것이다. 그리고 나서 나의 인생은? 나는 그냥 왠지 엄청나게 행복할 것 같지 않다.

  어쩌면 나이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다. 파란만장한 인생을 경험한 노인들은 다시 마지막 남은 인생의 여정을 조금 더 많은 돈으로 풍요롭게 보내는 것이 나을 수도 있겠지만, 아직 인생에서 해보지 못한 경험이 많은 나는 꼭 일확천금을 노려서 지금의 이 삶을 탈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아니, 이건 나이에도 상관이 없이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생각일 수도 있는 것이고.

 

  '라스베가스에 가서 카지노 10달러만 해보기'가 To do list에 있었는데 했다는 것으로 체크하고 지웠다. 오늘 이 정도로만 해도 라스베가스 카지노 경험을 했다고 해도 충분할 것 같다. 장소만 다르지 느낀 점은 정말 많았으니까. 어쩌면 그 때 떨어져 있어서 우리끼리 있으면 브레이크 걸어줄 사람이 없었을 수도...

 

 

  집에 오는 길은 새벽에 일어나서 그런지 계속 잤다. 잠시 한국 마트에 들렸다가 집에 와서 또 바로 자고. 저녁을 먹고는 앞으로의 여행 계획을 좀 세우고. 미국의 여행 방법에 대해서 많이 몰랐던 것, 여행경비도 좀 부족한 것, 이 둘이 서로 얽히고 설켜서 To do list를 보면서 한숨을 짓게 된다. 해 보고 싶었던 것들을 포기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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