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13 미국 서부

<미국여행 3일차> 타호 호수(Lake Tahoe)

inhovation 2016. 9. 14. 00:00

2013년 1월 13일 일요일

 

 

  아직 미국에 온 것이 적응이 안되었는데 계속 밤을 설쳤다. 그러다 새벽에 깨서 씻고 준비를 하였다. 5시. 오늘은 '레이크 타호(Lake Tahoe)'에 가기로 해서 6시에 집을 나서기로 했기 때문이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새벽, 차를 타고 집을 나섰다. 아침으로는 PERRY'S에 가서 미국식으로 때웠다. 맥도날드 오전메뉴에 있는 해쉬브라운과 계란 후라이, 팬케익, 커피. 커피는 몇 모금 마시고 나면 계속 리필을 해 줘서 나중에는 No thank you라고 말 해서 멈췄다. 엊그제도 느꼈지만 일하는 사람들이 정말 다 열심히 일 하는 듯 보인다. 한국에도 열심히 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텐데 왜 이런 생각을 못했는지 모르겠다.

 

  아침을 먹고 나서는 내가 운전대를 잡았다. 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뚫려 있어서 운전하는데는 매우 편했다. 그리고 다른 차들도 운전 매너들이 대부분 좋아서 더 편했다. 미국에 있으면서 클락션 소리 한 번 들어보지 못했다. 그리고 차들도 다 양보하는 정신이라고 해야 하나, 이런 것들이 습관으로 배어있는 듯 했다. 운전을 하면서 펼쳐지는 풍경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바탕화면으로 해 놓을 법 한 언덕들도 보이고 그 위에 귀엽게 박혀있는 집들도 탄성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운전에 집중하느라, 또 빨리 지나가느라 자세히 못 본 것이 아쉬울 정도다. 한 시간 가까이 차를 운전하고 가니 산길로 접어들었다. 눈도 꽤 쌓여 있는데 제설이 기가막히게 잘 되어 있었다. 속도를 지키면서 산길을 올랐다. 귀가 멍멍해 질 정도로. 한참을 오르고 나서는 더 구불구불한 길이 나오고 내리막길이라서 운전을 교대했다. 레이크 타호로 가는 길은 정말 멀고 험하다. 산 정상 즈음에 가니 저 멀리 우리의 오늘 목적지, 레이크 타호가 보인다.

 


  산에 눈이 덮힌 풍경도 장관이었다. 산이 멋있다고 생각한 적은 대학생 때 지리산 종주 했을 때 정도가 제일 기억에 남는데, 그 때가 생각나기도 하면서 더 멋있는 것 같았다. 일단 규모 자체가 다르니까. 이런 모습들을 사진으로 다 담을 수 없는 것이 정말 아쉬울 정도다.

  중간에는 잠쉬 하라스호텔에서 쉬어갔다. 화장실도 다녀오고 카지노도 잠시 구경을 했다. 영화에서만 보던 그런 카지노였다. 내가 봤을 때는 이것도 꽤 큰 것 같은데 작은 규모란다. 정말 카지노는 얼마나 클지... 얼른 서둘러야 하니 다시 차에 올랐다. 날씨가 엄청 추웠다. 그래도 한국 만큼은 아니었는데, 속티, 남방, 긴 기모 티, 털 야상을 입었는데도 쌀쌀할 정도였다. 산 속에다가 눈도 와서 날이 추운가보다. 아니, 그것보다 겨울이니까 추운게 당연하겠지. 새크라멘토가 그렇게 춥지 않아서 겨울임을 잠시 잊고 있었나 보다. 동네는 레이크 타호 주변인데 아직 호수는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조금 가다 왼쪽으로 접어드니 호수를 끼고 갈 수 있게 되었다.

 

  와, 정말 컸다. 산 속에 호수가 있는 것인데 차로 한 바퀴 도는 데 두 시간은 걸린 것 같다. 규모가 어느 정도냐면 서울외곽순환도로 정도의 넓이를 계란형으로 살짝 좌우를 눌러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쉬울 것 같다. 호수를 돌 때는 정말 크다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구글 지도로 검색해서 우리나라랑 같은 축척으로 비교를 해 보니 정말 이 크기였다. 지금 쓰면서도 믿기지 않는다. 그런데 주변을 차로 두 시간이 걸렸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냥 믿을 수 밖에. 바다에서나 보이는 수평선이 호수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놀라웠다. 레이크 타호를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마음이 뻥 뚤리는 것 같았다.

 


  레이크 타호는 여름에 오는 것도 좋다고 한다. 배도 타서 호수 안에도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호수 가까이는 갈 수 없었는데 호수 주변 땅을 개인이 모두 사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사유지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돈을 지불해야 한다고. 돈 있는 사람이고 당연한 것일 수 있겠지만 호수를 가까이서 구경할 수 없다는 것 때문에 매우 아쉬웠다. 그래도 중간에 조금 넓은 주차장이 나와서 잠시 차를 세우고 5분 정도 사진 찍고 조금이라도 가까이 갈 수 있었다.

  차를 돌려 왔던 길로 돌아갈까 했는데 그냥 한 바퀴를 다 돌기로 했다. 반시계 방향으로 돌았는데 시계방향으로 도는 것이 길 건너편으로 보지 않고 바로 볼 수 있어서 좋을 것 같아. 우리는 길 건너로 보는 것에다가 차로 이동 중에 사진으로 찍을라 치면 반대편에서 차가 와서 가릴 때도 있었다. 레이크 타호를 빠져나오면서는 다시 산으로 올라갔는데 사이에 있는 에메랄드 만도 멋있었다. 사진은 방금 쓴 이유 때문에 잘 찍지 못했다. 이렇게 크고 멋진 호수를 차안에서만 멀리서 바라보아야 한다니, 정말 너무 아쉬웠다. 어쩔 수 없이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레이크 타호를 떠나 산을 넘었다. 다시 눈 덮힌 산을 넘는데 아까는 왜 못봤을까, 같은 길인데도 눈 쌓인 소나무들을 볼 수 있었다. 마치 오래 전에 교육방송에서 하는 밥 로스의 '그림을 그립시다'에서 밥 아저씨가 그리는 듯한 풍경이었다. 이동하는 모든 길도 눈을 즐겁게 해 주는 구경거리였다.

 

  레이크 타호에서는 호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콘도, 호텔 등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그래도 비교적 깔끔하게 정돈 되어 있었다. '비교적'이라는 것의 대상은 한국이다. 엄청난 관광지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관광지처럼 '관광지'느낌이 전혀 없었다. 사유지로 오히려 '돈 있는 개인들'이 호수를 둘러 싸고 있어서 잘 정돈하면서 꾸미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내 땅이니까 더 잘 꾸미고 관리해야 한다는는 책임감이 더 있기 때문은 아닐까.

 

 

  산을 넘어서는 다시 기나긴 운전이 시작되었다. 고속도로에서는 버스 한 대 볼 수 없었고 모두 승용차였다. 뭐, 어떻게든 버스로 갈 수는 있긴 하겠지. 그러나 차가 있는데 편하고 이런 곳까지 오기에는 버스가 너무 불편하니까 차 없이 미국 여행하는 것은 정말 힘들다고 하나보다. 그래도 시원한 고속도로와 일자로 쭉쭉 뻗은 시내도로, 한국처럼 번잡하지 않은 교통상황과 전체적인 운전 매너들이 좋아서 운전하는 것이 힘들지는 않았다.

 


  새크라멘토로 돌아오니 1시 20분. 새벽 6시에 떠났는데 7시간 20분이 걸린 것이다. 아침을 먹은 시간, 하라스호텔에 들린 시간, 레이크 타호에서 사진찍은 시간, 중간에 프리웨이를 빠져서 잠시 쉰 시간을 다 합친 한 시간 정도를 제외하면 6시간 30분은 차 안에 있었던 것이다. 미국여행의 규모는 이정도라는 것을 아주 깊이, 뼛속까지 깊게 새길 수 있는 하루였다.

 

  집에 가기 전에는 또 인앤아웃에 가서 햄버거를 먹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일반 치즈버거가 아닌 큰- 양상추로 빵을 대신한 치즈버거를 사주셨다. 맛있었다. 한국에서는 보지도 못했고 전혀 상상도 못했던 것인데. 느끼함도 덜하고 야채의 신선한 맛이 배 이상 느껴졌다. 햄버거의 본 고장 미국 답게 이런 메뉴가 있는 것인가. 인앤아웃이 만약 한국에 들어온다면 대박이 날 듯도 하다. 왜 안들어오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햄버거를 먹고는 한인마켓에 갔다. 한 곳은 큰 한인 마켓인데 한국제품이 많이 있긴 했지만 외국사람도 굉장히 많이 이용하는 곳이었고, 한 곳은 이전보다는 훨씬 작았지만 매우 몹시 더 한국 느낌이 나는, 그냥 한국에 작은 마트같은 한인 마트였다. 그리고 그냥 카운터도 한국분이 보고 쇼핑하는 사람도 한국사람이었다.

  미국에서 산다면야 잘 모르겠는데 나는 여행객 입장이라서, 그렇다고 또 모든 여행객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그냥 나는 좀 마음이 불편했다. 어떻게 들으면 정말 이상한 것 같다. 한국사람이 미국 여행 중에 한인마켓 가서 마음이 불편하다니. 첫 번째 가게에서는 잘 느끼지 못했는데 두 번째 가게에서는 확 느꼈다. 왠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한국이 부끄럽거나 그런거는 전혀 아닌데, 왠지 그냥 미국에 오면 미국 스타일로만 경험하고 싶고 그런 마음이 강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이건 나중에 샌프란시스코 가서도 느꼈다.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정말 많았는데 계속 좀 피했다.

 

  쓰고나니 정말 이상한 것 같기도 한데, 저런 마음이 든 것이 솔직한 생각이다. 왜인지는... 혼자 좀 더 고민해보아야겠다.

 

  김치랑 필요한 몇 가지들을 더 사서는 가게에 들렸다. 그리고 옆 가게들, 한인마켓과 같은 종류라는 필리핀마켓을 구경했다. 그냥 이런게 재미있었다. 별 것 아니지만 이국적인 것들을 구경하는 것.

 

  집에 와서는 앞으로의 스케줄을 계획했다. 그런데 오늘 레이크 타호 다녀온 것을 보니 차로 어딘가를 혼자 운전해서 다닌 다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닐 것 같았다. 그렇다고 비행기로 이동하기에는 비용이 너무 막대히 들어가고. 한국에서 많이 생각해 온 것들, 가고 싶은 곳들을 정리하는데 정말 막막했다. 물론 한국에서도 미국 여행을 하면서 이동에 있어서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차 운전이 가능할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큰 걱정은 안했는데 오늘 왕복 네 시간 운전을 해도 좀 막막한데 이렇게 하루종일 2-3일 운전해서 다른 도시로 간다는게 정말...

 

앞으로 한 달 넘게 남은 기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하면 어떡하나

 

  이런 걱정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며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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