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13 미국 서부

<미국여행 2일차> 새크라멘토 다운타운

inhovation 2016. 9. 13. 00:00

2013년 1월 12일 토요일

 

  긴 시간 비행기로 이동하고 피로도 덜 풀렸을텐데 아침 일찍부터 눈이 떠졌다. 오히려 긴장이 아직 안풀려서 그런가, 잠자리가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가. 일어나서 내려오니 신문이 있었다. 커피 한 잔 하라는 아저씨의 말에 커피 한 잔을 타고 신문을 보았다. 이런 여유로운 생활. 한국에서는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아침에 커피는 커녕 일어나서 씻고 밥은 먹으면 좋은 날, 안먹으면 그냥 보통 날, 신문을 집 앞에 떨어져 있는 것 들고 나와 지하철에서 옆 사람 눈치 보면서 반 접어 보는 생활이었는데, 모든 것을 놓고 미국에 오니 이런 여유도 부리는구나. 기분이 좋았다.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라스베가스 등등 갈 곳은 많이 생각해 놓았는데 현지 사정에 맞춰 보려고 일정은 구체적으로 짜 놓지 않은 상황이다. 그리고 미국 온 다음 날 부터 바로 여행을 하기도 힘들고. 그래서 오늘은 미국을 좀 연습해보기로 했다. 그동안 다른 나라 몇 군데 다녀보긴 했지만 어제 샌프란시스코에서 새크라멘토 오는 긴- 거리를 통해 느꼈듯이 미국은 뭔가 좀 많이 달랐다. 새크라멘토 다운타운까지는 아저씨가 태워다 주셨다. 옆집 아저씨의 조언에 따라 올드 새크라멘토 부터 들러 보기로.

 

 

  암트랙(미국 기차 회사) 새크라멘토 역 주차장에서 내렸다. 먼저 기차역에 들어가 보았다. 외부는 빨간 벽돌로 되어 있는데 그 크기가 작지는 않았다. 내부는 오래되어 보이는데다가 공사를 하고 있어서 더 그랬다. 기둥 하나 없는 홀이었고 비둘기가 공사를 하는 비계(scaffold) 위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멋진 벽화가 보였다. 연설을 하는 모습. 사람도 많이 없었고 크게 구경할 거리도 많이 않아서 밖으로 나왔다. 길거리를 걸으면서는 다른 나라에서도 처음에는 모두 그랬듯이 '모든 것이 신기했다.' 그냥 길거리에 있는 모든 것이 재미있게 보였다. 당연히 영어로만 써 있는 길거리의 표지판부터 신호등까지 이리저리 사진을 찍었다. 한국에서 길거리 표지판, 신호등 사진은 찍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올드 새크라멘토로 가는 길에 Macy's라는 백화점이 나왔다. 아직 좀 이른 시간인지 같이 있는 상가들이 문을 많이 열지 않았다. 조금 둘러보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서쪽으로 가니 멋진 조형물이 보였다. 사진을 찍고 가려는데 왼쪽에는 말을 탄 사람이 보였는데 경찰이었다. 말을 탄 경찰, 신기했다. 굴다리를 지나 올라가자 'OLD SACRAMENTO'라고 적힌 입구가 보였다. 여기가 올드 새크라멘토인가보다. 아까와는 다른 또 다른 이국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마치 200년은 앞으로 간 듯한 카우보이가 튀어나올 것 같은 느낌의 건물들이 줄지어져있었다. 아쉽게도 말이 매져 있어야 할 자리는 주차장이었고 차들이 가득 차 있었다. 중얼중얼 하면서 다니는 흑인들, 개성넘치게 생긴 사람들을 보면서 뭔가 좀 위축되기도 했다. 시비라도 걸어오면 어떡하나.

 


   대강 보니 서부개척 시대 이 지역에 가장 먼저 정착을 하고 모여 살았던 곳인 듯 했다. 사탕가게가 보여서 들어가도 되나 걱정을 가득 안고 들어갔는데 주인이 신경도 쓰지 않는다. 사진을 찍어도 되나 하면서 몰래 찍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좀 더 적극적으로 찍을 걸 매우 아쉽게 생각하고 있다. 사실 올드 새크라멘토에 들어와서 초반에는 사진을 많이 못찍었다. 앞에서 말한 것 처럼 좀 위축되 있어서라고 해야 할까?

  그러던 중에 발견한 방문자센터! 들어가니 간단한 전시도 되어 있었다. 자유롭게 사진을 찍으라고 안내판도 있었다. 마차도 있었고 항해할 때 쓰는 물건들도 유리상자 안에 담겨 있었다. 입구로 다시 돌아와서는 여러 팜플랫을 챙기면서 지도를 한 장 구했다. 이것도 공짜냐고 물어보면서... 지도를 얻고 지도를 열심히 보며 다녔다. 2층은 뭔지 모르겠는데 1층은 다 가게들이다. 식당, 기념품 가게 등등. 그냥 건물 구경하면서 기념품을 사면서 관광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조금 더 서쪽으로 가니 강이 나왔고 그 앞에는 기차역이 있었다. 이 기차역은 지금은 기차역 역할을 하지 않는다. 철길도 있고 기차도 몇 량 있었지만 모두 전시용이었다. 여기에서 북쪽에는 역사박물관과 철도박물관이 있는데 역사박물관은 입장료가 생각보다 비싸서 들어가지 않았고 철도박물관은 뒤에 가려져 있어서 나중에 알았다. 집에 와서.

  남쪽으로 기차길을 따라, 강둑을 따라 내려갔다가 또 올드 새크라멘토 건물들 사이사이를 헤집고 다녔다. 이 때 부터는 조금 적응이 되어서 기념품 가게도 하나 하나 들어가서 구경도 해 보고 간식도 사먹었다. 지나가다가 신기해서 보았는데 캬라멜 같은 것을 판 처럼 녹인 곳에 땅콩 등의 견과류가 뿌려져 있는 과자 같은 것. 달러로 표시된 가격은 환산이 잘 되는데 파운드로 표시되어 있는 가격은 kg으로 환산이 빨리 안되어서 가격비교에 애를 좀 썼다. 계속 보고 있노라니 사먹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져서 결국 가게로 들어와서 작은 봉지에 들은 것을 샀다. 견과류도 여러 종류가 있었는데 시식도 가능했다. 고민을 하니까 푹 푹 부러뜨려서 주었다. 사실 비싼게 더 맛있었는데 싼 것도 맛이 없지는 않아서 싼 거로 먹었다.

 

  올드새크라멘토를 나오면서 계속 이런 식으로 구경을 하다가 바로 밑에 있는 타워브릿지에 갔다. 별 볼품은 없다. 그래도 새크라멘토의 상징이라고 하니 사진 한 번 찍고 이동하였다. 점심을 먹을까 해서 Macy's로 갔는데 아까랑 다른 입구로 가서 백화점으로 바로 들어가졌다. 건물이 두 동이 있는데 한 쪽은 여성용, 모든 층이, 한 쪽은 또 모든 층이 남성용 코너만 있었다. 신기했다. 밥은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밖으로 나오게 되었는데 변변찮은 식당도 없었고 계속 그냥 상점을 구경하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 상점은 별거 없고 그냥 옷가게, 신발가게. 한국보다 많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꽤 쌌다. 아니, 많이 싼 것도 있었다.

 

 

  밖으로 나오니 건너편에 작은 도심 속 스케이트장이 보였고 그 앞에 전차가 보여서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그 때 한쪽에서 들려오는 굵고 낮은 목소리.

 

"Hey, brother."

 

좀 놀랬다. 담배를 피면서 영화에서나 볼 법한 차림의 흑인 한 명이 카메라로 자기 한 번 찍어 달라고 손짓을 한다. 오, 신기. 같이 찍고 싶은 마음이 뭔가 본능적으로 튀어 나와서 "With me?" 하면서 다가가니까 몹시 좋아한다. 손도 내밀었는데 마치 새끼손가락으로 약속을 하고 엄지손가락으로 도장을 찍는 듯한 자세가 되어버렸다. 찍고 나서 보여주니 흐뭇해한다. Thank you를 말하고 가는데 별 대꾸는 없다. 다른 사람들은 항상 Welcome이라고 얘기해 줬는데... 포스넘치는 흑형이다. 이 사진의 제목은 내가 특별히 붙여보았다.

 

흑형의 헤이 브라더

 


 

  또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겨 주청사로 향했다. 다리가 아파왔지만, 버스를 어떻게 타는지 아직 모르고 그래서 그냥 걸었다. 볼거리들을 모두 모아서 최단거리 코스를 짜면 걸어다닐 법도 하겠는데 자유롭게 다니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 그래도 재미있었다. 지나다니면서 보이는 흑인들은 왠지 좀 피하게되었다. 인종차별은 아니고 모든 흑인에게 그런 것도 아니다. 담배를 깊게 피면서 표정이나 포즈가 좀 달라 보이는 그런 사람들의 무리. 무서워서.

  주청사 앞으로 뻗어나온 길로 접어들어 주청사로 향했다. 멀리서도 잘 보였다. 그냥 별건 없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한 쪽만 봐서 그런 것 같다. 반대편은 공원도 있고 들어가볼 수 있기도 하고 주지사의 집도 있다고 하는데 오늘은 그러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어서... 여기 사람들은 3-4시면 퇴근을 해서 교통체증이 일찍 시작된다고 한다. 실제로 다운타운에 여러 가게들은 3시가 갓 넘었는데도 문을 닫은 식당들이 종종 보였다. 픽업 장소로 가면서 도서관도 지나면서 이것저것 그냥 신기한 볼거리가 많았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집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코스트코에서 기름을 넣었다. 한국에 코스트코는 한 번 아는 분 따라 가봤는데 그 때 주유소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기름값이 정말 싸다. 아침에 본 신문에서는 기름값이 1갤런에 3.75달러라고 나왔었는데 코스트코는 1갤런에 3.2달러 정도였다. 정말 코스트코는 모든 것이 싸구나. 기름을 넣고는 매장으로 들어왔다. 필요한 것들을 사면서 흩어졌는데 나는 '선풍기형 전기 히터'를 사야 했다. 아무리 찾아도 없길래 직원에게 가서 물어보았다. 전기 '히터' 어디 있냐고. 못알아 듣는다. 무엇이 문제일까. 어제 스타벅스처럼 몇 번을 물어보니 직원이 이제야 알아들으면서 '스타르벅스'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아~ 히러르!

 

  아... r 발음은 완저 굴려야겠구나. 영어에서 발음은 중요하지 않고 어떻게든 잘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발음도 중요하다고 느끼는 순간이었다. '스타르벅스'와 '히러르'

 

 

  집에 와서는 앞으로의 일정에 대한 계획을 대강 세워보고 하루를 마쳤다. 다운타운이 일찍 닫고 또 교통정체를 피해 집에 일찍 들어와서 저녁도 여유롭게 되었는데 뭔가 오늘 하루 종일 여유로운 생활을 한 것 같아서 좋았다. 한국에 없다는 것 만으로도, 그리고 바쁜 일 때문에 미국을 온 것이 아니라 그냥 놀러 미국에 온 것 만으로도 이렇게 여유를 가지면서 생활할 수 있다니, 그냥 기분이 좋아지면서 감사한 일인 것 같다. 여행을 하는 것 자체가 나에게 여유를 주면서 마음의 쉼을 주다니 신기하기도 하고. 아직 미국 여행할 날이 많이 남았지만 한국에서도 오늘 같은 여유를 잊지 않아야겠다. 물론 똑같은 삶의 패턴을 적용할 수는 없겠지. 그래도 지금 이 마음이 한국에 가서도 계속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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