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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정신에 쓰는 "아무튼, 술" 독후감

inhovation 2025. 3. 25. 17:00

No. 199

아무튼, 술

김혼비 지음

아무튼 시리즈

 

회사 옆팀 선생님이 추천해 주어 읽었다. 나에게는 두 번째 김혼비 작가의 책이다. 작가는 서두에 '솔직하게 술에 대한 전문적인 내용은 담기 힘들어 본인의 이야기를 써 본다'고 하였다. 그러나 술과 관련된 작가의 경험 자체만으로도 나에게는 진짜 전문적인 것 처럼 다가왔다. 특히 주사와 관련된 부분은 (내가 다른 사람의 경험을 많이 들어본 적도 없지만) 이렇게 책에 써도 전문 술꾼으로서 인정 받을 정도의 내용이라 지하철에서 읽는데 혼자 웃음을 참아가며 킥킥댔다.

 

내가 술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 책을 읽은 이유는, 첫째, 김혼비 작가의 책이 재미있었기 때문에, 둘째, 술 자체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사실 책을 추천 받을 때만 해도 이 책이 어떤 내용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이전에 읽은 김혼비 작가의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를 재밌게 읽었는데, 이 책을 추천해 주신 분이 "김혼비 작가의 다른 책도 재밌어요~" 라는 말 한마디에 바로 주문 한 것이다. 이 책을 읽은 세 번째 이유는 추천인에 대한 신뢰이다.

 

나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 대학 시절 술을 멀리하긴 했지만, 지금은 완전 금주파는 아니다. 대학교때는 술 마신 적이 몇 번 없고, 대학원 다닐 때는 좀 풀어져서 많이(?) 마시긴 했는데, 그렇다고 엄청난 애주가는 아니었다. 지금은 진짜 가아끔, 저녁 먹을 때나 넷플릭스 볼 때, 아내랑 맥주 한 캔을 나눠 마시거나, 연말 모임 할 때 와인 1-2잔 마시는 정도이다. 1년에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다. 전화영어를 하면서 이런 주제에 대해서 말하니, 나 같은 사람들을 영어로 Social Drinker라고 한단다.

 

"아무튼, 술"의 주요 내용은 아주아주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작가의 술 관련 에피소드이다. 진짜 술술 읽힌다. 정말 재미로 보는 책을 추천한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그리고 독후감으로는 몇 안되는 나의 술 관련 에피소드도 정리해 보려 한다.

출처: 인터넷 교보문고

 

1.

나의 첫 술은 수능을 본 직후 고3 때였나, 갓 20살이 됐을 때였나, 여튼 이 때 즈음이다. 결혼 한 사촌 형이 집 근처 패밀리 레스토랑 (Sea Top, 유진참치, 당시 유명했음)에 데려가서 저녁을 사주며 와인도 함께 마시라고 시켜줬다. 괜찮다면서. 얼마나 마신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엄청나게 마신 것도 아닌 것으로 기억한다), 사촌 형 말로는 어질어질해 하고 생애 첫 알코올에 정신을 못차렸다고 한다. 이대로 집에 보내긴 좀 그래서 형네 집으로 데려가서 잠깐 누워서 눈을 좀 붙이고 집에 간 기억이 난다.


2.

20대 때,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서 부평에 있는 술집에 갔다. 술을 뭐, 잘 마시는 사람이 아니었으니 주량도 몰랐는데, 이 날은 왜 그랬나, 소주를 한 병 정도 마신 것 같다. 그리고 계단을 내려오다가... 그 전에도 즐겨 마신 적도 없지만, 이 때부터 내가 소주를 상당히 싫어한다. 맛도 없고.

 

3.

인도네시아로 교생 실습 갔을 때, 나이가 좀 있으신 대 선배님 (학교 선생님)이 간단하게 맥주 한잔 하자고 하셨다. 일과를 마치고, 학교 후배랑 같이 편의점 앞에서 병맥주를 마셨다. 나는 아무것도 몰라서, 그 후배가 도수가 높지 않은, 적당히 향이 있어서 편하게 마실 수 있는 것으로 골라줬다. 그런데, 한 병을 다 마시기도 전에, 순간 저혈압 같은 느낌이 오면서, 눈 앞이 하얘지고, 잠깐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 다들 놀라서 모임이 빠르게 정리되고(...) 후배가 나를 부축 해 주면서 숙소로 돌아왔다. 이런 증상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4.

대학 졸업을 앞두고 한창 불안하던 시절, 데이트를 하고 집으로 혼자 걸어가는 2-30분정도는 편의점에서 병맥주를 마시며 집으로 걸어갔다. 그냥 뭔가 불안감을 잊고 허전함을 달래고 싶은 그런 마음...? 취할 때까지 마신 적은 없고, 그냥 걸어가는 길에 딱 한 병 정도. 만약, '술이 사람을 달래준다'고 한다면, 술의 마신 양과 기분(달래지는 마음?)이 Linear하게 비례관계에 있어야 하지만, 항상 그렇지 못했다. 음... 그런데 어쩌면, 이건 Linear 한 게 아니라, Exponential 한 것은 아닐까 싶다. 아니면, Threshold를 넘어야 하거나?

 

5.

석사 공부를 하며 대학원 다닐 때, 수업 끝나고 교수님과 다 같이, 또는 학우들과 함께 맥주를 한 두 잔 씩 하는 시간이 좋았다. 이땐 술 보다 학구적인 토론을 하는 모임 자체가 좋았다. 대학교 때 처럼 술을 강요하거나 눈치주는 문화도 아니고 다 큰 성인들이 모여 학문의 지평을 넓히는 자리였다.

 

6.

가-끔, 학문을 너무 넓히며 2-3차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자연스레 고소득자이신 선생님들께서 부담없이(?) 내셨는데, 양주도 이 때 처음 먹어봤다. 얼마나 마신지 모르겠지만, 집에 가는 길에 구로를 출발한 동인천행 급행열차(10 분 동안 무정차)에서 갑자기 인도네시아에서 느꼈던 증상이 찾아오며 엄청 눕고 싶었다. 어질어질하고 답답한 느낌을 참기 어려웠다. 구로역 이후 첫 번째 정차역인 역곡역까지 겨우 참고, 문이 열린 쪽을 향해 몸을 옮겼다. 금방 내리지 않을 줄 알고 안쪽에 있어서 비틀거리며 플랫폼으로 겨우 나왔다. 그런데 내리면서 여러 사람들이 "아우 이사람 왜이래" 하는 소리를 들었지만,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었다. 벤치에 앉아 조금 쉬고 겨우 집에 갔다. 이 때 이후로는 밖에서 술을 너무 많이 마시는 것에 대한 경계와 약간의 공포가 생겼다. 양주를 마신 속은 다음날까지도 식도가 어디에 있는지 느껴질 만큼 화 했다.

 

7.

혼자 베트남 하노이 배낭여행을 간 적이 있다. 이 때, 하이네켄을 처음 마셔봤는데 안주로 함께 먹은 과일(석가, Sugar Apple, 베트남어로 Na)은 진짜, 그 뭔과 완벽한 분위기와 맛의 조화를, 진짜 잊지 못한다. 그 이후로도 지금까지 하이네켄 초록색 캔만 보면 이 때가 생각 난다. 그런데, 그 때의 그 맛과 분위기는 재연하지 못했다.

 

8.

여행지에서 또 느꼈던 최고의 맛과 분위기는 라오스 루앙프라방에서다. 나무 숙소에서 아내랑 둘이 있으면서 마셨던 Beer Lao. 무계획의 여행 중에서도 그냥 쉬는 숙소에서 시간이었는데, 나무로 만들어진 2층 집에서의 운치, 창문 밖에 새장에서 나는 새소리, 그 여유, 그 기분, 잊지 못한다.

 

9.

신혼 때, 아내가 친구들하고 만나고 돌아오더니, 꿀 섞은 막걸리를 먹었는데 맛있었다 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집에서 둘이 만들어 마신 적이 있다. 처음이자 마지막인것 같다.

 

10.

코로나 시절, 잠시 와인에 빠져 본 적이 있다. 와인 어플도 설치하고 맛도 기록하며 와인도 사다 마시긴 했지만, 혼자 와인 한 병을 다 마실 순 없어서 포기했다. 지금은 그냥, 와인은 연말에 스파클링이나 적당히 달달한 거 마시면서 모임 자체를 즐기는 곁들이는 정도가 나에게는 제일 나은 것 같다.

와우ㅋㅋㅋ 쓰다보니 술 쪼렙(?)인 내가 술 관련 에피소드를 10개나 쓰게 될 줄이야. 그런데, 술 쪼렙인 만큼, 에피소드 자체도 재미가 없는 듯 하나. "아무튼, 술"을 읽어보면, 이것보다 훨씬 더 길고, 작가만의 경험과 생각 그리고 필력이 더해져 진짜 술술 읽힌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공감하며 읽을 것 같고, 그렇디 않은 사람들은 입담 좋은 지인이 술먹고 있었던 일을 재미있게 들려준다는 느낌을 받을 것 같다. 난 후자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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