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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 학위를 받고 이직 실패한 2022년을 마무리 하며

inhovation 2022. 12. 30. 22:42

2022.12.30.(금)

 

한 해를 돌아보면, 연초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이 있었기에 그 감회를 더욱 새롭게 느끼는 것 같다. 여러 해를 보내왔지만, 2022년은 나에게 더욱 특별한 한 해로 기억될 것 같다. 가장 크게는 박사학위를 받았기 때문이다. 석사 때는 이정도 감정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박사과정에 들인 시간도 그렇고, 그 과정 중에 고민하고 노력하고, 또 회사와 육아 같은 공부 아닌 것들을 또 해내야 했던 시간들이 모두 중첩되어 그런 것 아닐까 싶다. 그 중에서도 눈물이 쏟아졌던 순간이 있는데(진짜 찐 눈물, 집에서 울었음ㅋ), 바로 아래 사진이다.

 

폴 로저, 빈티지 샴페인, 영국의 총치였던 윈스턴 처칠이 사랑했던 샴페인

박사과정을 추천해 주신, 내가 존경하는 박사님께서 주신 샴페인과 진심이 담긴 메시지. 저녁 식사 자리에서 만났을 때는 샴페인만 주신 줄 알았는데, 집에 와서 꺼내보니 편지가 있어서 깜짝 놀랐고, 짧은 문구를 읽는데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아마도 논문 쓰느라 정신 없이 집중했던 시간들, 논문 디펜스를 마치고 나서도 신경 써서 진행 해야 했던 논문 작업 마무리와 인쇄, 그리고 기쁜 소식을 친한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들까지, 그러고 나서 부담 없이 만났던 그 저녁식사도 마치고 나서 집에 돌아오니, 진짜 뭔가 다 끝났다는 홀가분함도 더해져서 그렇게 눈물을 쏟은 것 아닐까.

 

이후, 졸업식을 하고 나서 완전한 '박사'로서의 타이틀이 한 개 더 생겼지만 전혀 변하지 않는 삶으로 인해 무기력감도 찾아왔다. 이것 역시 저녁식사 자리에서 다른 박사님한테 들었던 것인데, 개인적으로는 '대단한 일'을 해 낸 것은 맞지만, '대단하게 변하지 않는 주변 환경'으로 인해 극심한 우울감이 있다고 했다. 특히, 나는 일을 하고 있어서 그나마 나을 수 있는데 바로 Job market으로 이동하지 않은 박사님들 이 감정이 더 심하다고 했다. (대학 졸업 하고 취업준비생 된 것과 같은 상황) 나는 그나마 일을 하고 또 육아도 하고 이런 우울감까지 갈 시간도 없이 바쁘게 지내서 좀 나은 것일 수 있겠지만, 졸업 하면서 바로 이어졌던 "이직 실패"가 약간 심각한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최종면접까지 갔고, 그동안 나는 면접에서 떨어져 본 경험은 없어서 자신도 있었을 뿐 아니라 사실상 합격했다라고 김칫국을 엄청 들이마셨지만 최종면접에서 불합격 통보. 최종면접 때, 내가 생각했어도 좀 많이 망쳐서 약간 마지막에 자신감이 꺾이긴 했지만 그래도 불합격 통보를 받은 9월은 꽤 무기력하게 지냈다. 그리고 다시 도전한 곳에서는 서류 탈락. 회사에서 그 누구 하나 '박사님'이라고 불러주지 않고, '박사로서' 대우해주지 않는, 나의 전문성을 알아주기보다는 여전히 몰아치는 회사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들이, 그동안 잘 해오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더욱 버겁게 느껴졌다.

 

그리고 지금, 엊그제 최종면접을 보고 1월 초에는 날 것이라 기대하는 결과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진짜 가고 싶은 곳이기도 하지만 집과는 너무 멀기도 해서, 아내는 나의 도전을 말리진 않았지만 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기도 하다. 그리고 1월말-2월초 가족여행 일정도 있는데, 입사일 조정도 순조롭게 되어야 한다. 이제 사실상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모든 상황이 잘 해결되길 기도하는 것 뿐. 합격된다면 합격 이후의 과정을 위해, 불합격이라면 또 그 나름대로의 의미를 찾고 나의 마음도 잘 추스리고 잘 살아갈 수 있게끔. 그 어떤 결과라도 초연히 받아들이려고 계속 노력중이다. 지금 이 순간이 나의 삶의 전부도 아니고, 더욱 더 장기적인 관점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테니 일희일비 하지 말아야지.

 

그래도, 2022년, 1월부터 사진첩을 쭉 둘러보니 행복했던 순간들이 많았다. 거의 다 애들 사진 뿐이지만, 그래도 박사든 이직이든 회사 생활이든 할 수 있었던 것들이 아이들이고 아내였던 것 아닐까. 나의 삶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회사 생활, 박사 받은 것, 뭐 이런 것들이지만, 결국 이런 삶을 지탱해주고 견디며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은 가족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사 디펜스 끝내고 아내에게 명품 가방을 사준 것은 잘한 것 같다. (물론, 명품 하나로 남편의 역할을 다 했다는 것은 아니고, 그럴 수도 없겠지만...) 그리고 또 '나만' 아내에게 작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해 준 것도 잘 한 것 같다. (ㅋㅋㅋ...) 오늘도 작은 꽃 한 다발을 사 주었다. 아이들에게는, 나는 올 한해 어떤 아빠였을까. 내가 세온이, 하온이 아이였을 때 아버지는,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은 잘 놀아주셨던 것인데, 그리고 이 기억이 나에게 좋은 감정으로 남아 있는데, 우리 아이들도 올 한해 이런 감정들을 나중에 기억했으면 좋겠다. 박사 한다고 아무리 바빠도, 그래도 애들 자기 전까지는 열심히 놀아줬는데... 매주는 아니어도, 주말에는 여기저기 놀러 다니고 했는데... ... 자신감이 없는 이유는, 아무리 노력해도 아이들에게 내가 좋은 아빠일지 잘 모르겠는, 그런 생각 때문인 것 같다. 요즘 매일 밤 자기 전에 읽어주는 전래동화와 성경을 좋게 기억해줬으면 하는 작은 바램 뿐이다.

 

1월부터 12월까지. 하얀색 튤립은 새로운 시작을, 노란색 튤립은 희망을, 빨간색 튤립은 사랑을 뜻한다.2023년, 희망을 가지고 새롭게 시작하며 우리 가족을 더욱 더 사랑하고 싶다.

 

인생의 저 끝으로 시계를 급히 돌려 지금을 한번 돌아보면, 박사를 받은 기쁨도, 이직에 실패한 슬픔도,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중요한 것은, 매일 나의 삶에서 함께 하는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들과 어떤 하루를 만들어 나갔는지 아닐까. 2023년에도 우리 가족 모두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더할 나위 없겠다. 2022년도 그렇게 지내온 것에 무한히 감사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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