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이야기/세온하온

아빠 육아휴직을 결심한 3가지 이유

inhovation 2021. 1. 7. 23:54

육아휴직 신청서를 냈다. 작년에는 육아휴직 수요조사만 냈다가, 실제 확정 이전에 철회를 했었다.

 

아빠 육아휴직을 잠시 미룬 3가지 이유

회사는 중간에 계약직으로 다닐 때가 있어서 중간에 잠깐 몇 개월씩 쉬기도 했었지만, 2012년 3월부터 했으니 지금까지 대략 만 7년은 넘었고, 햇수로는 만 8년 가까이 된다. 가정사(?)는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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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은 부푼 맘으로 1년 업무를 준비했고, 2월 1-2주는 포르투갈 여행, 그리고 나서 갑자기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재택근무가 시작되더니 정신없이 한 해를 보냈다. 덕분에(?) 계획한 업무는 하나도 못하고 계속 스팟성으로 떨어지는 업무만 하다보니 너무 지쳤다. 일이 어렵다기보단 내가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면서. 이건 다른 사람들도 같은 생각을 했다. 네가, 너네 팀이 왜 그 일을 하냐고 모두가 되물었다. 뭐, 여튼, 그러면서 봄에, 육아휴직을 철회한 게 1차적으로 후회됐다. 아, 이때쯤 육아휴직 시작 했을텐데... 그리고 위기(?)가 지나고, 여름에 또 이상한 일에 끌려다니면서 지난 번 힘들었을 때 육아휴직을 신청하지 않은 게 후회됐다. 이땐 아내도 너무 집에서 애들 둘 보기 힘들어 하던 때라서 온가족이 힘들었다. 아마 둘째가 더 활발하게 활동을 시작하게 되면서 컨트롤 해야 하는 애가 둘이 되고, 또 형이랑 영역다툼(?)도 생기면서, 뭐 이래저래... 팀장님한테도 농담반 진담반 육아휴직 이야길 던졌지만, 그래도 버텼다. 이렇게 두 번째 위기가 지나가고 괜찮아지는 듯 싶었는데, 가을이 되고 다시 일이 너무 힘들어졌다. 때마침 2021년도 육아휴직자 수요조사를 했다. 이때다 싶었다. 팀장님께 일언반구도 없이 육아휴직 돌직구를 날렸고, 팀장님은 너무 놀라서 그 날 2-3시간 정도 급 면담을 했다. ... 직원의 육아휴직을 막을 수는 없는 일이지만, 내 이야기를 좀 듣고 싶다고... 사실, 팀장님 새로 바뀌고, 2021년까지만 열심히 일하고 육아휴직 가겠다고 했던 게 몇달 전이라서, 팀장님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뭐, 그런데 상황이 너무 그랬다. 팀장님껜 아내가 다시 일 한다고 하긴 했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1. 애들에게 소홀해졌다.

일단 너무 핫한 부서라서 일도 많고, 당연히 야근도 너무 많아졌다. 새벽에 나와서 7시부터 근무를 하지만 정시인 4시에 퇴근한 적이 거의 없었다. 6시라도 넘기게 되면 교통체증을 피해 일을 더 하고(실제 일도 많고) 8시가 넘어서 출발한 적도 많았다. 그러면 집에는 9시 넘어서 온다. 이러다보니 집에서 애들과 보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적어졌다. 9시-10시 정도면 재우는 시간이라, 아내는 내가 와도 들어오지 말라고 했다. 애들 깨니까. 그럼 차에서 한 10시, 뭐 이렇게 있다가 들어온 적도 간혹 있었다.

운 좋게 일찍 들어오는 날이면 6시 즈음 집에 도착 하는데, 저녁먹고 뭐 하고 하면 너무 피곤하지만 애들과 놀아줘야 했다. 육아휴직을 신청하기 며칠 전, 스스로도 깜짝 놀란 일이 있었는데, 내가 첫째 책을 읽어주도 졸았다. ...ㅋ 진짜 졸려서 헛소리도 했다. 이상하게 책을 읽어주니까, 사실상 글자만 못 읽지, 내용을 다 아는 첫째가 나한테 이상한 말을 한다고 되물었다. ...정신이 번쩍 들지도 않고 그냥 졸음이 몰려와서 어떻게 할줄을 몰랐다. ... 이런 비슷한 시간들이 반복되면서 일만 하고 집에서는 애들과 잘 놀아주지도 못하는 아빠, 집안일은 아내한테 다 맡기는 남편이 되는게 과연 좋은건지 생각하게 되었다. 뭐, 당연히 이러면 안되는줄 알면서도 어떻게 해야하나, 그러다가 다시 꺼낸 카드가 아빠 육아휴직이었다.

이 때는 졸지 않았다.

2. 일에 너무 지쳤다.

앞서 썼듯이, 2020년은 내가 진짜 열심히, 재밌게 일 하고 싶어서 육아휴직도 미뤘는데 너무 힘들었다. 기대가 커서 그런게 아니라, 진짜 너무 힘들게 돌아갔다. 번아웃이라고 하지, 이런걸. 봄에 위기, 여름에 위기, 그리고 가을에 위기. 세 번째 위기에서는 내가 지금 잠깐 또 버티면 다음 위기가 금방 올텐데, 육아휴직을 신청하고 실제 휴직을 시작하기까지 시간이 있으니 미리 신청해 놓을 필요가 있었다. 아니나다를까, 육아휴직을 신청하고 시간이 좀 지나니까 힘든 일은 얼추 마무리가 되었다. 그래서 약간, 아, 좀 버틸걸 그랬나, 생각이 들었는데 연말연초 또 너무 바쁘고 힘들어서 미리 육아휴직을 신청한게 너무 뿌듯(?)했다. 오히려 너무 일찍 신청 하지 않은게 후회될 정도. ㅋㅋㅋ

여튼, 이렇게 너무 힘든 일을 계속하다간 건강 다 상한다. 일도 중요하고, 회사에서 나를 중요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어쩔 수 없다. 그냥 나는 500명 중 한 사람이고, 부품 중 하나일 뿐이다. 너무 혹사시키면서까지 일 할 필요는 없다. 내가 없으면 누군가가 그 일을 대신 할거고, 또 어떻게든 돌아갈거다. 그러니까 회사지. 이렇게 지쳐가면서까지 일하기엔 더이상 버틸 체력도 정신력도 바닥난 것 같았고, 어떻게든 쉼이 필요했다. 육아휴직이든 뭐든.

 

작년 여름, 우리 식구 가족사진 :D

3. 삶의 방향 정리가 필요하다.

힘든 일도 좀 쉬면서, 육아휴직을 하며 가족과 좀 더 시간을 보내며 재충전도 하고 나의 삶의 방향 정리도 좀 필요해 보였다. 정신없이 일만 하니까 돈만 벌지(그렇다고 또 막 보너스를 엄청 주는 그런 것도 아니다...ㅋ), 그냥 막 끌려가는 느낌이었다. 또, 최근엔 재택근무를 많이 하니까 일과 삶의 구분이 너무 없어져서 이것도 좋지 않았다. 출퇴근 시간 없고, 편하게(?) 일 할 수 있어서 좋긴 한데, 언제든지 일 할 수 있으니까, 아침 일찍부터, 또 언제는 밤 늦게나 새벽에도 일하기도 했다.

그리고 박사논문도 써야 하는데, 그럴 수 있는 시간도 없었다. 육아휴직을 하고 박사논문에 집중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ㅋ),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어떻게든 끝내야 하는 인생 과업 중 하나이다. 또, 회사생활 거의 10년을 하다보니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하나(회사를 다녀야 하나) 하는 고민들도 깊어졌다. 박사 받고 나서는 뭐 하지, 하는 그런 생각들. ... 이모저모 잠시 재충전을 하며 방향을 다시 생각할 시기인 것 같다. 만 34세, 한국나이 36살, 딱 30대 중반 아빠의 삶. ...ㅋ


일단, 지금 육아휴직을 철회는 할 수는 있지만 그럴 생각은 없고, 1년+a(?)를 잘 지낼 생각이다. 돈 걱정 너무 하니까, 아내가, 자기 일 할거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ㅋㅋㅋ 그런데, 진짜 뭔가 지금 이 타이밍에 브레이크를 잡는게 괜찮은건지 하는 생각은 계속 든다. 브레이크가될지 엑셀이 될지는 나중 가봐야 알겠지만, 30대 중반, 한창 열심히 일 할 나이라고 하는데, 쭉쭉 뻗어나가야 하는 시기 같은데, 육아휴직이라니...ㅋㅋ 뭐, 그런데, 좀 덜 뻗어나가면 어떠나. 적당히 하면서 행복하게 지내면 되는거지.

 

육아휴직을 앞에 두고 끄적끄적 생각을 정리 해 봤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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