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는 중간에 계약직으로 다닐 때가 있어서 중간에 잠깐 몇 개월씩 쉬기도 했었지만, 2012년 3월부터 했으니 지금까지 대략 만 7년은 넘었고, 햇수로는 만 8년 가까이 된다. 가정사(?)는 2014년 3월에 결혼하고, 2016년 11월에 첫째를 낳고, 2019년 9월 둘째를 낳았으니 애가 둘이요, ...
ㅋㅋㅋ 뭔가 가정사의 순간들이 다 블로그에 있네. 여튼, 지금 두 번째 회사에서도 올해 3월이면 만 5년이 되기도 하고, 작년에 좀 지치기도 했었다. 업무가 바뀌기도 했고, 재미는 있었지만 회사에서 '핫한 영역'의 최전방(?)에 내세워지다 보니 번아웃 된다는 느낌도 있었다. 그래서, '아, 내년이면 만 5년도 되고, 육아휴직하고 박사논문이나 써야겠다' 다짐했었다. 아내도 처음에는 반신반의 하면서 믿지 못했지만, 계속 말 하니까 반기는 눈치였고, 내가 육아휴직 하면 시간이 많으니 어떻게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 이런 얘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최초로 아빠가 육아휴직을 쓸 생각에 부풀어 있었던 것 같다. 10월 즈음인가, 2020년도 상반기 육아휴직 수요 조사에 실제 인사실로 제출까지 하고 안내문까지 받으니까 조금 실감이 나는 듯 했다.
그.런.데.
연말이 되고 다시금 확정 조사를 할 때, 나는 육아휴직을 1년 미룬다고(이번엔 취소한다고) 인사실로 얘기했다. 물론, 아내랑 다 합의는 했고... 조금 아쉽긴 했지만, 신중하게 내린 결론이었고, (육아휴직 수요조사는 좀 덜 신중한 것도 있었던 것 같기도...?ㅋ) 일단 1년만 더 일을 하기로 했다. (1년이 2년이 되고, 2년이 3년이 되고, ...하진 않겠지...?ㅠㅠ) 그럼, 왜! 나는 요즘 또 핫한, 아빠 육아휴직을 쓰지 못했나...
1. 경제적인 어려움
이게 막 궁핍하고 빈곤하고 그럴 수준은 아니었다. 진짜 아끼고 절약하면 어떻게든 살아나가긴 할 것 같은? 모아놓은 돈도 조금은 써야 할 것 같고. 그런데 대충 계산을 해 보면, 일단 아빠 육아휴직 첫 3달은 250만원에 지자체 보조금까지 320만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건 떼는 것도 없어서 온전히 in my pocket. 그리고 이후 9개월은 상한액 120만원 중에 75%니까 90만원, 그런데 세금같은거 떼면 대략...80만원이라 쳐 볼까... 결국 육아휴직하고 내가 받는돈을 연봉으로 치면 1,700만원이 안되는 금액이 된다. 이걸 다시 12개월로 나누면, 월 141만원 꼴. 일단 아내가 받는 육아휴직수당은 빼고 계산을 하면 우리집 총 수입이 월 140만원 정도로 확 줄어든다.
이제 매월 고정지출을 계산하면, 전세대출이자 40만원 정도, 또 다른 대출 이자 40만원 정도 아파트관리비 는 계절마다 다르지만 대략 15만원 정도, 자동차보험료 월 환산 4만원 정도, 핸드폰요금 둘이 합쳐 2만원 정도(알뜰폰)와 인터넷 2만원. 여기까지만 하면 103만원이다. ㅋㅋㅋ 그럼 우리 가족이 쓸 수 있는 돈이 월 40만원 아래로 쭉 떨어진다. 식비 하면 땡이다. ..ㅠㅠㅠ 물론, 둘째에 대한 양육수당이 월 20정도(2020년 8월까지) 나오니까 분유랑 기저귀값은 된다. 그리고 아내한테 나오는 둘째에 대한 육아휴직 수당도 나오니까 이것보단 조금은 여유(?)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그게 여유가 아니고 그냥 좀 숨막히는 삶에 아주 조금 숨 쉴 틈 정도가 주어지는 정도.
한번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2020년 최저생계비가 142만 5천원 이라고 한다. 내가 육아휴직을 했으면 받을 수당을 12개월로 나눈 것과 거의 같은 금액. ... 진짜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지만, 난 자신이 없었다. 뭐 하나 사는데도, 나든 아내든, 우리의 경제적 상황 때문에 서로 눈치보고, 가끔 사이가 안좋아지진 않을까, 그런 생각? 안좋은 상황이 예상됐다. 아내한테도 애들한테도 사 주고 싶은 것, 좀 더 편하게 하고 싶어서. (나도 좀 편하게 하고 그러고...ㅎ)
2. 일하는 재미
앞에서 잠깐 언급했던 것 처럼, 4년 동안 고정적인 일을 하다가, 5년째 되는 작년 초, 업무 포지션이 바꼈다. 하던 일이랑 관련은 있지만 완전히 새로운 일.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과 일하면서 성과도 많이 냈다. 그래서 재미도 있었다. 일 자체도 재미있었지만, 성과도 따라오니까 뭔가 중독되는? ...이래서 일 중독, 이런 말이 있는건가...? 여튼 그래서 재미뿐 아니라 욕심도 조금 났다. '아, 1-2년 이런 쪽으로 경력 더 쌓으면 좋을 것도 같은데...' 하는 생각. 아내도 몇 년만에 내가 이렇게 즐겁게 회사를 다니는 것을 보면서 좋아하기도 하고, 나도 뭔가 이런 상황을 떠나 육아휴직을 한다는게 아쉬운 것도 있었다. 물론, 육아휴직을 하면 또 다른 재미있는 일들이 있겠지만, 고민이 되기도 했었다. 같이 일하는 과장님들한테도 배울게 많이 있어서 (그동안 누구한테 일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는듯...) 이런 부분도 고민 포인트들이 되었다.
3. 회사에 대한 보답
...ㅋ 이건... 진짜 사람들이 봤을 때 바보같은 짓이라고 할 수도 있다. 무슨 회사에 보답을? 내가 없으면 누군가가 그 자리 채워서 일은 이어나갈 수 있을거고, 사실 나는 회사에서 하나의 부품 정도로 생각하면 마음 편할텐데? 그런데 작년에 팀 성과도 많이 났지만, 회사에서 상을 3개나 받았다. 사내 아이디어 발표에서 대상(1등) 2개(상/하반기), 연말에 최우수직원상. +유럽왕복항공권. ㅋㅋ... 이런일이 나한테 있을줄은 전혀 몰랐는데, 어찌하다보니 작년에 결과가 좋았다. 물론, 이런 상은 2019년에 대해 회사에서 평가한거고, 2020년에 내가 육아휴직을 못한다는 그런 조건은 전혀 없었는데, 뭔가 그래도 상 받고 바로 육아휴직 한다는게 먹튀는 아니지만 먹튀같은 그런 느낌이 지워지진 않았다. 좀 찝찝한? 그리고 앞에서 말한 것과 이어서, 일하는 재미도 있었고, 계속 하면 더 재미있을 것 같다는 그런 생각도 계속 들고. 다른 부서에서는 내년에 어떻게 나와 같이 일해서 성과 낼지 부서장 차원에서 컨택 들어오고 그런 상황. 나도 솔깃 하는 것들도 있기도 했고, 이런 상황들을 모두 '나 육아휴직 합니다. ㅂㅂ2' 하고 내치기 좀 힘들기도 했었다. 그래서, 어쩌면 회사에 대한 보답이라기보단, 회사사람들에 대한 보답과 함께 일하고 싶은 그런 생각으로 정리했다. 작년에 내가 사내동아리를 만들어서 100명 가까운 사람들과 몇 개월동안 재미있게 한 것들도 또 하고 싶기도 했었고.
육아휴직을 미루게 된 게 아쉽기도 하지만, 이렇게 또 2020년은 일을 하게 되니 뭔가 깔끔하게 정리된 것 같아 편한 마음도 있다.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예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겠지만, 대신 돈 벌어오는 것 만큼 가족과 좀 더 풍요롭게 누리면서 살 수는 있겠지. 박사논문은, 올해는 시동만 걸고 내년 2021년에 열심히 써 봐야지. 회사일도 재미있는 만큼 열심히 해서 올해는 또 다른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해야지.
정리하고 나니, 글의 양으로 봐서, 1경제 > 3보답 > 2재미 순인데, 재미가 꼴등인거로 봐서, 별로 재미 없는데, 재밌게 생각하려고 어떻게든 정리한건가...?ㅋㅋ... 아니, 근데 일을 자세히 안써서 그렇지, 새로 하는 회사 일 재미있는 것 맞다. 순위를 다시 매기자면, 경제적 이유와 일의 재미가 비등비등하고, 회사에 대한 보답이 그냥 마지막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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