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20 리스본,포르투

2주간 쉬고(여행을 하고) 느낀 점 3가지

inhovation 2020. 2. 17. 04:43

진짜, 내 인생에 이런 시간이 올까 했던 순간/기간들이 몇 년 주기를 주고 종종 찾아오는게 신기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감사하기도 하고 그런다. 물론 나와 아내의 선택에 따른 결과들이긴 하지만 말이다.

 

2013년 1-2월, 인턴 끝나고 일을 안하는 대신 아내랑 미국 여행

2015년 1-2월, 계약 만료하고 일을 또 안하는 대신 아내랑 동남아 여행

...

그리고 이번에, 좀 짧긴 해도 2020년 2월 1-2주(이번은 많이 짧구나...) 아내랑 세온이랑 포르투갈 여행!

하온이를 놓고가는 선택을 하기까지 좀 고민을 하긴 했지만, 놓고 간 걸 잘 한것 같다. 아마 데리고 갔으면 여행이 아니라 고행이었을 것 같다. 그리고 지금, 2주간의 여행을 마치고 출근 직전, 새벽에 잠이 오지 않아 짧게 글을 남긴다. 2주간 쉬면서(여행하면서) 느낀 점 3가지가 생각이 나서...ㅎ

 

1.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중요하다.

막내 하온이를 놓고가긴 했지만, 아내와 나의 기대로는 세온이만 데려가서 다시 사랑을 독차지 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이 되지 않을까, 그래서 세온이한테도 더 좋은 시간들이 되지 않을까 했었다. 물론 기대한 것과 같이 세온이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고 세온이도 더 행복해하는 것 같았다. 물론 가끔 알 수 없는 이유로 하온이가 보고싶다고 울기도 했지만(마지막 날 저녁엔 펑펑ㅋ) 새로운 경험에 더 말도 많아지고 그동안 볼 수 없었던 행동들도 보게되면서 즐거운 시간이었다. 여행을 책임지는 아빠를 대신해서 우버도 잡아주(는 척 하)고, 지도도 보면서 길을 알려주(는 척 하)기도 하면서 대견한 모습도 보였다. 동시에 급격한 체력 저하에 안아달라는 말이 부쩍 늘어나고 애교+애기흉내도 많이 내기도 했다.

아내와는, 시차적응에다가 여행 중에 신경쓸 게 많아서(여행+아기) 투닥투닥 하긴 했어도 평소보다 많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이었고, 오랜만에 이렇게 함께 하는 것이 마냥 좋기만 했다. 여행을 하다가는 언젠가 아내가 길을 걸으면서 팔짱을 꼈는데, 이게 엄청 익숙하면서도 너무 오랜만인 것 같아서 말을 하니까 이걸 또 말한다고...ㅋ 또 언젠가는 손을 잡았는데, 이게 또 엄청 익숙하면서 너무 오랜만이라서 감정이 오묘했다. 둘만 있었을 때는 손 잡고 팔짱 끼는 것이 아주 자연스런 일상이었는데, 애들이 생기면서는 부부 사이가 그런 것들을 어색해 할 만큼 변화가 찾아왔던 것이었다.

세온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제약도 엄청났던 것 만큼, 여행 중에 포기해야 하는 일정들이 많았는데 결국 정리한 것은 이제 나에게 여행은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더 중요한 것'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혼자 배낭여행 하면서, 또 아내랑 둘이 다니면서 여기저기 계속 돌아다니면서 '여행지'를 중심에 두는 것이 아니라, 여행지에서 '가족'과 함께 보고 즐기는, 그런 이야기 하는 시간이 더 행복하다는 것을 알게 된 시간이었다.

 

2. 일상으로 복귀하는 것에 대한 불안을 느끼다.

'불안'까지 표현할 정도일지 모르겠지만, 여행 후반부에는 좀 더 심해지긴 했다. 오늘, 출근 직전 지금이 최고치인 것 같고... 모처럼 회사 일에 열정을 느끼면서 꽤 잘 나갔다(...ㅋ). 여행 직전까지도 진짜 엄청 바쁘고 할 일이 많았다. 그러나 포상휴가로 받은 비행기표, 결제 해 놓고 안 갈 수는 없으니, 그리고 회사에 다 양해도 구해 놓은 것이라 부담없이 떠나긴 했다. 유럽을 가는 것이라 초반에는 시차적응의 문제였을 것 같다. 그런데, 한국에서도 불규칙한 생활습관 덕분에(?), 사실 나는 시차적응으로 인해 엄청 힘들고 그러진 않았다. 아내는 꽤 힘들었고, 세온이는 코피까지 났으니...

그런데 여행 중반을 넘어서서, 첫 주 리스본에서 지내고, 둘째 주 포르투로 가서는 새벽에 너무 계속 자주 깼다. 그리고 회사 생각에다가 박사논문 진행을 1월 한 달 동안 전혀 진전시키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불안한 마음이 계속 들었다. 리스본에서 확인한 해외저널에 투고 논문 리젝 메일도 한 몫 했을 것이다. 게다가 귀국 비행기를 타기 전날에는, 회사 단톡방도 열려서 다음 2주의 '주간업무'를 보고해달라는 것까지. 이때부터는 내가 살았던 일상이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를 쭉- 잡아 끌어당기는 느낌이었다.

왜 그렇게 불안해 했을까. 일상에서 내가 했던 일들이 전혀 중요하지 않고 포기할 수 있었던 것들이라면 아무 걱정이 없었을 것도 같은데, 책임을 지고 해야만 하는 일들이라서 그랬을까. 이유는 잘 모르겠다. 이번 여행이 지난 두 번의 장기간 여행과 다른 점이 있다면, 미국과 동남아는 모두 '일을 끝내고=돌아올 직장이 정해지지 않은 채로' 갔던 여행이었다. 그때에도 일상으로 돌아와서 '이제 뭐하지' 하는 생각은 있었던 것 같은데, 이렇게까지 막 불안하고 그러진 않았던 것 같다. 일상으로 빠른 복귀를 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었을까, 귀국행 밤비행기에서 영화 3편 덕에 밤을 새서 나는 시차적응이 바로 됐다. 물론, 지금은 초조한 마음 때문에 새벽에 깨긴 했지만.

 

3. 일, 공부, 그런 것 무엇. 노는 것이 최고다.

출국 직전까지 야근하고 회사 일 진짜 바빴다. 재미진 일도 많아서 일을 끊기도 뭔가 아쉬운 마음까지 있었다. 2월부터 새로 시작하는 일을 2주나 미룬다는 것도 좀 찝찝하기도 했고. (얼른 하고 싶었는데...). 박사과정은 지난 2년 간 핵빡세게 수업 다 듣고 수료해서 보상심리 때문인지 1월 한 달은 공부를 1도 안했다. 그래도 포기한 것은 아니고, 열심히 공부하려는 마음을 재충전 했다고 변명하면 적당 할까?ㅋㅋㅋ

그런데, 2주 간 쉬면서 여행해 보니까, 일 공부 그런거 다 필요 없다. 노는 게 최고 같다. ㅎㅎㅎ 물론, 그동안 열심히 일 해서 회사에서 유럽도 보내주고, 공부도 열심히 해서 매듭 하나 지어놔서 조금 편하게(수강신청 이런 걱정 1도 없이) 다녀올 수 있었지만, 그래도 가족과 함께 여행하는 시간이 그냥 최고다. 돈 많아서 걱정 없이 놀고 먹는게 최고인 듯. 물론, 이럴 수 없으니까 진짜 악착같이 일하고 공부해서 시간 대비 보수 많이 받게 연봉 올리고 금쪽같은 시간 내서 여행하고 하는거지... 아내가 어제 밤엔, 한달 살기 이런거 하면 좋겠다고 했는데 박사논문 끝내고 가자고 했다. 현실로 돌아와서 다시 생각해 보면, 노는 것이 최고라고 해도, 일 공부 열심히 해야지...ㅠㅠㅠ 어쩔 수 없는 운명이다.

하루종일 안고 다니면 힘들긴 하다.
지도도 옆으로 놓고 오늘의 일정을 설명하는 세온이
엄마랑 달리기 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신난다.
"비둘기, 공격~!"
아빠가 안고 다니면 안 힘드니까 웃음이 나오겠지.ㅋ
길거리에 잠시 앉아 쉬면서 한 컷.
엄마 품에 안겨 있어도 기분 좋은 세온이
혼자 운전하는 척 하면서 걸어다니는 것도 너무 재미있다.
비행기 몇 번 타봤다고 안전벨드도 혼자 하고 익숙해진 세온이.


지금 4:30분. 월요일은 길 막혀서 일찍 출근하려고 4:50분에 알람 해 놨는데, 또 그리고 내일부터는 모든 요일 7-4 근무 하려고 매일 4:50에 일어나야 하는데. 한달 살기 할 때까지 다시 열심히 살아보자! 아프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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