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야기/독후감 III

혹독한 성공의 대가(代價), 그리고 이 가운데서 찾은 명언들

inhovation 2016. 3. 3. 21:35

No. 150

로마인 이야기 3, 승자의 혼미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3권에서는 포에니전쟁을 끝내고 강성대국이 된 로마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부제 '승자의 혼미'처럼 로마 내에 산재해 있는 문제들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권력의 집중과 사회불안, 독재자와 공화정 체제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 것, 전쟁 후 달라지는 병사와 계급문제 등 다양한 문제들이 수면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런 기원전 133년 ~ 기원전 63년, 약 70년 동안 그라쿠스 형제, 마리우스와 술라, 폼페이우스가 로마를 집권하며 문제과 싸우게 된다. 승리 후의 평화는 누릴 수 없었다.

  사실 이 기간동안 일어난 일들이 다양하고 문제들이 터지고 해결하는 수 많은 과정들이 있어서 일일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냥 앞에서 언급했듯이 전체적으로 내부가 혼란한 시기에 있었다는 것, 그리고 이런 와중에도 강력한 군대를 바탕으로 내부의 반란한 동맹국을 제압하고 외부로의 영토도 더욱 확장했다는 거시적인 것만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또 짧막하게 나오는 '명언' 비스무레한 글귀들. 

 

"경제적으로도 좋은 것이 사회적으로도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말할 수는 없다." (p. 34)

"많은 보통 사람은 일을 함으로써 자신의 존엄성을 유지해간다. 따라서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자존심은 복지로는 절대로 회복할 수 없다. 그것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은 일자리를 되찾아주는 것 뿐이다." (p. 35)

 

  전쟁이 거듭되면서 로마 시민으로서 병역의 의무를 지는 농민들이 오랜 시간 전쟁터에 나가있다가 귀향해 보니 값싼 노예를 이용한 대규모 농장의 수확물에 밀려 농민의 농작물이 팔리지 않거나 가격이 폭락하여 곤경에 처해 있었다. 그래서 농민들은 곤경을 타개하려고 빚을 지게 되고 결국 부채 때문에 땅을 빼앗기거나 헐값에 내놓은 결과 대규모의 실업자가 출현하게 되었다. 대규모 농장으로 인해 전체 농업 생산량은 증가했을지 몰라도 당시 로마 인구의 7%가 실업자가 되어버린 엄청난 결과가 발생하게 되었다.

 

"절망에 사로잡힌 사람은 쉽게 과격해진다. 그리고 중심에 있는 인물보다는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자들이 더욱 격렬히 대응하게 되는 법이다." (p. 71)

 

  가이우스 그라쿠스의 집정관 3선 연임의 실패 후의 상황을 설명한 말이다.

 

"나를 지켜줄 것은 나 자신의 능력과 성실함뿐입니다. 사람이 일을 하는 데에는 이 두 가지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p. 97)

 

  마리우스는 50세에 집정관으로 선임되었다. 그리고 시민들 앞에서 연설한 내용 중 일부분이다. 마리우스는 평생을 군단에서 보낸 군 출신이다. 원로원 최고의 권위와 영향력을 가진 가문 출신인 기원전 109년의 집정관 메텔루스의 부장으로 선임된 사람이 바로 마리우스이다. 그는 밑바닥부터 온갖 고초를 겪으며 올라온 사람이었고 뛰어난 능력은 인정받았기에 부장으로 임명된 것이다. 그러나 전략전술에 있어서 메텔루스의 방법이 마음에 들지 않아 집정관에 출마하기로 결심하였다. 외부 세력으로부터의 위협을 받은 로마는 기원전 107년 마리우스를 집정관으로 선출하여 아프리카 전선을 담당할 수 있게 하였다. 빽도 없이 최고의 자리에까지 올라온 마리우스에게는 위에서 한 말 처럼 자신의 능력과 성실함을 믿으며 열심히 살았던 것이 분명할 것이다.

 

"동지에게는 술라보다 더 좋은 일을 한 사람이 없고, 적에게는 술라보다 더 나쁜 일을 한 사람도 없다." (p. 192)

 

  술라의 묘비 비문이다. 이는 술라가 생전에 생각해 둔 말이라고 한다. 술라는 무기한 독재관으로 로마의 수 많은 정책을 수립하고 개혁하였다. 시민권 및 선거제도 관계, 복지 문제, 실업자 대책, 원로원 개혁, 사법 개혁, 행정 개혁, 군사 개혁, 지방 개혁, 호민관 제도 문제 등 수 많은 영역에서의 개혁을 이뤄냈다. 그리고 나서 술라는 독재관에서 사임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가 지나갈 때 술라의 행운을 조금이라도 얻기 위해 토가에서 실밥을 뽑은 여인이 있기도 하고, 그가 죽고 나서는 황금으로 입힌 침대에 안치되며, 여덟 마리의 소가 이 침대를 올려놓은 수레를 끌고 가는 장례식이 치뤄진 것 같다. 반면에 임기 동안 반대파를 숙청하기 위해 삼니욱족 병사 4천 명을 경기장에서 집단 살해 하였고, 살생부에는 80명의 가까운 원로원 의원, 1천 600명의 기사를 포함 총 4천 700명의 이름이 있었다고 한다.

 

"이치만 따져서 밀어붙이면 공동체는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는다." (p. 245)

 

   로마군과 아르메니아군의 싸움에서 로마군은 10배가 넘는 병력차이에도 불구하고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지휘관 루쿨루스는 병사들에게 전리품 분배에 있어서 차등을 두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 있지만 병사들은 불만이 생기고 있었다. 은화는 병사들에게 충분히 나누어 주었지만 공예품은 자신이 가졌다. 또한 국고에 납입하는 전리품 이외에는 자신이 가져버렸다. 10분의 1밖에 안되는 병력으로 적을 수차례 이긴 총사령관에게는 당연한 보수라는 이유에서였다. 이런 군단의 규칙에 따라 전리품을 분배하는 고지식한 방법만을 쓰고, 큰 잔치나 진수성찬을 베풀지 않는 원칙으로 인해 결국 병사들은 종군을 거부했고 루쿨루스는 미트라다테스의 숨통을 끊을 수 없었다. 이는 병사들이 소외감을 느끼게 하고 자신은 자신감이 너무 강해서, 병사들을 적극적인 참여자로 바꾸는 데 필요한 마음의 교류가 없었던 당연한 결과였다.

 

  이 외에도 몇 가지 짧은 좋은 말들도 있었다. 

 

"매사는 좋은 면과 나쁜 면을 갖게 마련이다. 좋은 면밖에 없는 제도는 신의 솜씨로도 만들어 낼 수 없다. 따라서 개혁이란, 원래부터 나빴기 때문에 고치는 것이 아니라, 처음에는 좋았지만 세월이 흐름에 따라 나빠진 면을 고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p. 113)

"사람은 필요에 쫒기지 않으면 본질적인 문제도 잊어버리기 쉽다. 로마에 평화가 돌아온 덕분에 로마가 안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의 해결은 뒤로 미루어지게 되었다." (p. 52)

  

  그리고, 81쪽에는 로마인 이야기 표지에 쓰인 청동상에 대한 설명도 있다. 1권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공화정 로마의 창시자 유니우스 브루투스의 초상이라고 한다. 강인한 의지력을 보여주는 얼굴이기 때문이란다. 2권 '한니발 전쟁'의 표지에는 젊은 시절의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옆모습이라고 한다. 그리고 3권 '승자의 혼미'는 마리우스나 술라나 폼페이우스의 초상이라고 한다. 의지는 강해보여도 좋은 교육을 받고 자라난 품성이 이를 뒷받침하고, 입가에 떠도는 관능적인 느낌이 냉혈한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고, 그리고 우수가 감돈다고 한다. 그런데... 난 잘 모르겠다..^^;; 

 

  한니발 전쟁에 비해 조금은 지루하게도 느꼈졌지만 그래도 앞에서 소개한 말들을 다시 보니 머릿속에 남는 것이 많다. 이 글에 적지는 않았지만 저런 말들을 통해서 개인적인 삶의 영역에서, 북한 공부를 하는 영역에서, 내가 몸담고 있는 공동체에 대해서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었고 어느 정도의 답도 찾을 수 있었다.

  다음은 로마의 가장 유명한 사람,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이야기이다. 놀라운 것은 한 사람의 이야기가 상, 하로 쓰여있다는 것. 기대된다...^^ㅋ


2012년 10월 12일 @inho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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