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야기/독후감 III

운명(fortuna)과 역량(virtu), 고전 '군주론'이 나에게 말해준 것

inhovation 2016. 3. 3. 15:50

No. 134

군주론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강정인, 김경희 옮김

까치 펴냄


  얼마 전, 한 교수님께서 나에게 책 많이 읽느냐고 물어보셨다. 나름대로 책을 많이 읽는 편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어떤 책을 말씀하시는지 몰라선 나느 되물었다. 그 때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인문학 서적, 고전을 많이 있느냐고 다시 물어보셨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하니 교수님께서 "젊은 그대, '고전의 바다'에 몸을 던져라!" 라고 쓰인 A4용지 몇 장을 복사해 주셨고, 여기 있는 책들은 꼭 읽어보라고 하셨다. 서울대 각 전공분야를 대표하는 교수들이 선정한 고전이라고 한다. 책들은 모두 다 들어는 봤지만 보지는 않았던 책들이었다. 심지어는 이름이 멋져 사 놓았지만 여태 읽지도 않은 책도 있었다. 제자를 신경써 주시는 마음에 감사하기도 했지만 이유를 불문하고 다 읽으라 하시니 마음에 부담도 되었다. 그래도 나의 독서에 또 하나의 변혁적인 기회가 될 것 같아서 읽기로 마음을 먹고 첫 번째 책을 골랐다. 바로 '군주론'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이미 많은 번역서가 있다. 다른 번역서는 읽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그래도 강정인 교수가 번역한 '이 군주론'이 제일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3번에 걸쳐서 개정되어 역자의 정성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도서관에서 2판을 빌렸었는데 인터넷에 검색을 하던 중 3판이 나왔다는 말에 바로 3판을 구입하여 읽었다. 2판 역자 후기에서 역자는 '아직도 번역에 부족함을 인정하고 이탈리아에 능통하며 정치학을 전공한 사람을 만나서 다시 손보고 싶다'는 말을 남겼는데, 바로 3판이 역자의 소원을 이룬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번역본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을 만큼 문장이 잘 다듬어져 있었고, 또 문장의 세부적인 저자의 의도나 뜻 같은 것은 각주로 달아놓아 세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또한 3판에서만 추가된 이탈리아의 역사 또한 군주론을 읽기 전에 역사적인 배경을 알게 해 주어 이해를 돕는다. 책 뒤에 100쪽에 달하는 부연설명(인명사전이나 단어 의미 등) 역시 본문의 내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런 것들로 인해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군주론을 잘 이해하며 읽을 수 있었다.(두 번 읽으니 확실히 첫 번째 읽었을 때보나 이해도가 훨 나았다)

 

  솔직히, 아직 잘은 모르겠다. 이 시대에 고전이 주는 유익이라든지 인문학을 꼭 읽어야 하는 이유 같은 것에 대해서 내가 뭐라고 주장할 만큼의 생각은 많이 없다. 내가 군주론을 읽는다 하며 인문학 고전을 읽어나갈 것이라 하니 누군가는 '그런 책들 꼭 읽어야 하나?'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군주론'은 내가 인문학 고전에 정식으로(?) 입문한 첫 번째 책이라 할 수 있고, 이 책을 통해서 새롭게 알게된 것들이나 생각할 거리를 많이 얻게 되어서 뿌듯하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인문학이 주는 즐거움을 조금 맛보았다고 표현해도 될까? 

 

  우선, 군주론의 내용은 마키아벨리가 메지치에게 바치는 글이다. 이는 책의 가장 첫 부분인 헌정사 나와있다. 많은 사람들은 군주의 총애를 받으려고 군주가 가장 기뻐할 만한 말, 무기, 금박의 천, 보석, 장신구 등을 선물로 하지만 본인은 그동안 깨달은 소중한 지식을 책으로 만들어 바친다고. 사실 이 부분부터 좀 멋지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이 그동안 연구하고 배운 소중한 지식들을 책으로 만들어 선물을 한다.

 

  어쨌건, 군주론의 26개의 장에서는 역대 황제를 비롯한 소위 군주라 할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해 분석도 하며 군주로서의 자질과 성품등에 대해 세세히 밝히고 있다. 수 많은 부분에서 밑줄도 치고 머릿속으로 생각도 하고 마음에도 넣었지만, 이 글에서는 '운명과 역량'에 대해서만 논하며 정리해 보려고 한다.

  마키아벨리는 사람의 삶에서 운명(fortuna)과 역량(virtu)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책의 곳곳을 통해 밝히고 있다. 물론, 두 용어 모두 문맥에 따라서 다르게 사용되었지만, 이러한 것을 떠나 일반적인 뜻에서의 운명과 역량에 대해 살펴보려고 한다. 자세한 뜻은 앞에서 말한 책 뒷부분을 보면 된다.^^;

 

  인생을 살면서는 수 많은 기회가 다가오는, 즉 운명의 순간들이 다가온다. 그 기회를 잡을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수도 있는데, 이러한 것에 따라 우리의 인생은 조금씩 움직이며 앞으로 나아가기도, 그렇지 못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회를 잡는 것은 개인의 역량에 따라 좌지우지되기도 한다. 아무리 좋은 기회가 찾아와도 능력, 즉 역량이 없다면 그 기회는 가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라면, 그들의 위대한 정신력(virtu dello animo)은 탕진되어버렸을 것이고, 그들에게 역량이 없었더라면, 그러한 기회는 무산되어버렸을 것입니다. (제6장 자신의 무력과 역량에 의해서 얻게 된 신생 군주국, 역량의 사례들 중) 

  최근에 하게 된 경험을 통해서 그런지 나는 이런 말에 더 공감할 수 있었다. 좋은 기회가 찾아왔었지만 나의 능력이 부족하여 얻지 못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실력을 쌓자고 그렇게 다짐했는데, 이러한 경험의 조각들이 군주론을 읽으면서 조금씩 정리되었고 다시 한 번 마음을 잡을 수 있었다.

  책을 통해 알게 된 이 두 가지 요소, 간헐적으로, 또는 자주 찾아올 수 있는 운명과 개인의 능력, 역량이 우리의 삶에 있어 중요하다면 우리는 이 두 요소를 어떻게 받아들이며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 보았다.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지만 나는 개인이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인 역량을 갈고 닦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운명의 여신이 나에게 손을 내미는 것은 언제 일어날지 모르고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모르기 때문에 이를 대비하여 항상 역량을 키워놓아야 하는 것 아닐까. (마치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그날이 도적같이 온다'는 성경의 말씀이 문득 생각난다)

  이러한 역량의 강화는 '제14장 군주는 군무에 관해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에서도 언급하고 있다.

 

군주는 전쟁, 전술 및 훈련을 제외하고는

그밖의 다른 어떤 일이든 목표로 삼거나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되며,

또 몰두해서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기예야말로 통치하는 자에게 적합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

만약 군주가 군무보다 안락한 삶에 더 몰두하면

권력을 잃으리라는 것은 명백합니다.

군주가 권력을 잃게 되는 주된 이유는 군무를 게을리 한 탓이며,

권력을 얻게 되는 이유는 군무에 능통한 덕분입니다.

  군주의 무술 연습과 더불어 뒤에서 마키아벨리는 지식의 습득또한 매우 중요하게 언급하고 있다. 위인들의 삶을 읽고 배우며 그들의 장점을 찾아내어 모방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서 나는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을 깊이 생각해 보았다. 일도 하고 있으면서 대학원 공부도 하고 있는 지금 이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이미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포괄적으로 말하면 '역량을 키우는 삶'이다. 대학원 공부도 어떻게든 하다보면 수료도 하고 적당한 논문도 써서 졸업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지금 일도 하고 있으니 회사 생활에서 밑보이지 않고 적당히 잘 하면 어떻게든 살아가며 굶어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군주가 군무를 게을리 하는 태도와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군주도 군주가 되기 위해서는 군무도 게을리 하지 않고 지식도 연마하며 노력했을 것이다. 그러나 군주가 되어 권력을 얻은 순간에는 안주하게 되며 군무에 게을리 한 것이 아닐까. 그러다 운명의 여신이 '나쁜 손'을 내밀러 군주의 자리에서 밀려나와 몰락하게 되었을 것이다.

 

  (항상 책을 읽으면 공부를 열심히 하자는 쪽으로 귀결되는 것 같은 느낌이, 아니 그런 것 같은데) 정말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 지난 번 수업 시간에 교수님께서는 '공부할 시간이 없으면 잠을 줄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자극이 많이 되었다. 물론 건강을 위해 어느 정도의 수면시간은 보장되어야 하겠지만 아직까지도 잠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관후한 내 모습을 보면서 반성도 하게 되었다. 물론 의미없이 흘려보내는 짜투리 시간도 잘 관리하기도 해야겠지만.

 

  운명과 역량, 기회와 능력. 내가 스스로 노력하며 조절할 수 있는 나의 역량에 힘을 쏟으며 하루 하루를 보내야겠다. 이러는 삶 가운데 나에게 운명의 여신이 '착한 손'을 언젠가는 내밀지 않을까?


2012년 5월 11일 @inho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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