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13 미국 서부

<미국여행 28일차> LA - 헐리우드, 산타모니카

inhovation 2016. 10. 9. 00:00

2013년 2월 7일 목요일

 

  LA 3일차. 오늘의 계획은 헐리우드에 가서 오전을 일단 보내는 것이다. 천문대는 갈지말지 정말 고민을 하면서 나갔다. 걸어서 올라가야 할지, 포기할지. 포기한다면 무엇을 할 지는 정하지 못했다. 정하려고 해 보았지만 답이 잘 안나와서 일단 나왔다. 오늘도 똑같이 더러운 거리를 걸어나가 탭카드 데이패스를 끊었다.

 

  헐리우드는 지하철로 쉽게 갈 수 있어 금방 도착했다. 아직 조금 이른 시간인지 가게들도 다 열지는 않은 것 같았지만 사람은 많이 있었다. 영화에 나오는 배우들의 복장,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배트맨 등의 복장을 한 사람들이 다가오면서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한다. 그러나 난 안다. 팁을 줘야 한다는 것을. "Where are you from?" 이라는 말에 한국이라고 하니 강남스타일을 말하면서 말춤을 같이 추자고 한다. 조금 대응은 해 줬지만 정말 귀찮았다. 팁을 주면서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기에.

  안성기랑 이병헌이 손바닥 프린팅을 했다고 했는데 어디에 있는지는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중국 극장(?) 앞에 손바닥 프린팅이 많이 되어 있었지만 이곳에 한국 배우의 것이 있냐고 물어보니 없단다.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지... 헐리우드 보도블럭은 모두에게 잘 알려져 있다시피 별 모양으로 되어 있어서 영화배우, 가수 등등의 헐리우드 스타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의 이름들이 적혀서 붙어있다.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리키 마틴과 스티븐 스필버그 등의 익숙한 이름도 볼 수 있었다.

  좌우로는 호텔과 쇼핑몰이 펼쳐져 있었다. 들어가보면 별건 없다. 그냥 쇼핑몰 정도. 조금 돌아다니니 거의 다 본 것 같아서, 아니 특별히 볼 것이 없어서 헐리우드 사인을 찾기 시작했다. 그래도 헐리우드 하면 저 산 위에 헐 리 우 드 라고 적힌 간판이 상징 아닌가. 여기서 폴라로이드 사진도 찍으려고 챙겨왔는데 어떻게 생겼나 한 번 직접 보고 싶었다. 안내센터에 가서 물어보니 쇼핑몰 4층에 올라가면 볼 수 있다고 해서 열심히 올라갔다. 구름다리 사이에 사람들이 몰려있는데 저곳에서 볼 수 있나보다. 기대를 가지고 갔는데... 산산조각 기대가 무너져버렸다. 보이긴 보이는데 정말 조그맣게 보인다. 줌을 안하고 사진을 찍으면 뒤에 글씨를 아주 눈여겨 보아야 할 정도의 크기. 폴라로이드는 포기. 헐리우드는 이렇게 우리를 또 실망시켰다.

  헐리우드. 그래도 사람들이 많이 가고 LA 하면 꼭 가는 곳이기에 엄청난 기대를 했다. 재미있는 무엇인가는 있겠지. 근데, 이건 그냥 명동보다도 못한 것 같다. 볼거리라곤 바닥에 별로 되어 있는 보도블럭 정도? 실망감을 가지며 반대쪽으로 걸어가보기로 했다. 그래도 뭔가 재미있는 것이 있지는 않을지. 가는 길에 흑인들이 자꾸 "It's FREE"라고 외치며 CD 복사한 것들을 나누어 준다. 음반인 것 같은데 계속 공짜라고 하면서 들러붙는다. 귀찮아서 처음에는 상대오 안했는데 너무 귀찮아서 "Is if free?"라고 다시 물어보니 공짜라고 한다. 그러더니 이름을 물어봐서 알려주니 이름 앞에 KING 도 붙여서 킹 리(KING LEE)라며 CD를 줬다. 그래서 받았는데 받자마자 쎄쎄 라고 말하면서 팁을 달라고 요구한다. 공짜 아니냐고 다시 물어보니 약간의 팁을 달라고 들러 붙어서 1달러를 꺼내서 주려고 했는데 최소 5달러는 달라고 한다. 참나. 어이가 없어서. 안받는다고 하자 싸인까지 했으니까 받고 달라고 한다. 너무 귀찮고 짜증나서 안받는다고 하면서 돌려주며 발걸음을 옮기자 그제서야 떨어져 나갔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은 정말 이것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공짜라고 말해 놓고서도 공짜가 아니니...

 

  헐리우드 거리의 반대편까지 걸어가도 정말 별거 없었다. 기념품 가게에서 파는 것들은 모두 비쌌다. 아까 중심가에서 어제 UCLA에서 본 이쁜 컵이 2개에 12달러였다. 이런. UCLA가 정말 싼 것이었는데... 다른 기념품 가게에 들어가봐도 UCLA 만큼 싸게 파는 곳이 없었다. 그래도 마지막 날까지 여기저기 돌아다녀 보기로 했다. 헐리우드에서 생각보다 시간을 오래 보내지 못하게 되어, 아니 보내고 싶지 않게 되어서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다가 갑자기 유니버셜을 한 번 더 가고 싶은 마음이 통했다. 엊그제 표도 남아있겠다, 전철도 오늘 하루 무제한이겠다, 지하철로 한 정거장만 가면 되겠다, 좋은 조건들만 많이 있었다. 폴라로이드 사진을 헐리우드에서 못찍었는데 유니버셜 입구에서라도 찍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다시 유니버셜 스튜디오로 향했다.

 

  전철을 타고 내려 바로 셔틀버스를 타니 10분 정도밖에 안걸려 유니버셜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을 경험한 유니버셜 스튜디오였지만 이렇게 또 오게되니 신이났다. 입구에서 사람이 안 지나갈 때를 노려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고 다른 사람들 사진도 찍어주고, 우리 사진도 찍어달라고 부탁을 하며 시간을 조금 보내다가 다시 입구로 가서 표를 보여주고 들어갔다. 지문은 찍었다. 중고표로 팔아볼까 했던 나의 생각이 모두 날아가버리는 순간.

  상영표를 보니 바로 워터월드 쇼가 시작하는 시간이었다. 헐레벌떡 뛰어갔는데 이제 막 입구를 닫으려 하고 있었다. 엊그제와는 다른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조금 뒤쪽으로. 사람이 많아서 선택권이 별로 없었지만 물을 맞고 싶지 않았기에 뒤로 갔다. 아침에 사온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쇼를 관람했다. 배우 캐스팅이 조금 달랐는데 오늘은 기계적 결함도 없었고 뒤쪽에서 무대 전체를 바라보면서 보게 되니 새로운 맛이 있었다. 스토리를 모두 다 알고 있었지만 화려한 액션, 특히 내가 제일 멋있게 보았던 제트스키 장면은 다시 한 번 더 탄성을 절로 자아내게 했다.

  쇼를 보고 나와서는 아래층으로 가서 미라를 한 번 더 탔다. 그리고 분장을 한 사람들과 사진도 찍고. 두 번째 방문은 이정도만 즐겨도 충분했다. 첫 날 다 보고 두번째로도 와서 만족할만 하니 이제 유니버셜 스튜디오에는 아쉬움이 전혀 없었다. 밖으로 나가려고 하니 정말 나가려고 하냐고, 손목에 도장을 찍어줄까 하는 직원의 말에 아예 간다고 하고 나왔다. 다시 이제 셔틀을 타고 지하철을 타고 헐리우드로. 일단 헐리우드로...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다가 천문대는 과감하게 포기하기로 했다. 그 대신 산타모니카 해변을 가기로 했다. 조금 멀리 떨어져 있어서 계획을 짤 때 검색만 해 보았지 가려는 구체적인 계획은 전혀 없었다. 그래서 버스 노선도 몰랐다. 그래도 길을 따라 가는 급행버스를 타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일단 헐리우드에서 남쪽으로 내려가 산타모니카대로로 갔다. 이 길을 따라 쭉 가면 산타모니카 중심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버스 안에서는 술에 취해 맨 뒤에 앉아 토를 하는 여자와 양 옆에 술에 같이 취한 두 남자가 엄청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짜증이 솓구치 정도인데 뭐라고 나무라는 사람 하나 없다. 기사도 아무 말도 안하고 승객들도 모두 다 자기 할 일들을 한다.

  산타모니카 대로에서 그 사람들과 같이 내려 우리는 거리를 두기로 했다. 조금 전에 토한 여자는 같이 있던 남자 중 한 남자와 길거리에서 정렬적인 키스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비틀비틀 앞으로. 술에 꼴아 민폐중의 민폐를 끼치고 있었다. 신호등을 먼저 건너 보내고 하는데 건너편에 급행버스가 와 있었다. 뛰어가서 타고 싶었지만 술에 취한 세 젊은이가 무단횡단을 하면서 그 차를 타길래 우리는 그냥 건너지 않았다. 같은 버스를 타고 긴 거리를 절대 가고 싶지 않아서... 그래서 다음 버스를 매우 오래 기다려야했다.

 

  한참을 기다려 버스를 타고 졸다 보니 산타모니카에 거의 다 와 있었다. 여자친구가 먼저 잤는데 나도 어느샌가 잠이 든 것이다. 한 시간 정도의 시내버스가 지루하긴 지루했나보다. 우리나라처럼 과속도 좀 하면 금방 갈 수 있을텐데, 버스가 속도를 높일 생각이 없이 정규속도 이하로만 가는 것 같다. 종점에서 내리니 서쪽으로 태평양이 보이고 그 앞에 해변이 보였다. 오랜만에 보는 태평양. 별볼일 없어서 짜증이 났던 헐리우드보다 태평양과 해변이 있는 산타모니카가 훨신 더 좋았다. 해변쪽으로 가려고 길을 건너는데 아까 보았던 진상녀와 남자가 또 껴안고 다닌다. 우리랑 같은 방향으로 가는 것 같아서 우리가 먼저 얼른 가버렸다.

  산타모니카 해변으로 들어가는 길이 인상깊었는데 고속도로, 아마 해변을 따라 이어진 1번 국도를 넘는 육교를 지나면 해변으로 가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았는데 정문이 따로 있긴 하다. 좁은 육교를 건너면 드넓은 해변과 끝도 없는 바다가 펼쳐진 세상으로 간다는 것이 재미있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일부러 이렇게 만들어 놓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이런 느낌을 받는다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지.

 

  모래사장을 걸으니 지난 번에 샌프란시스코에서 걷는 해변의 느낌과 비슷하면서도 왠지 뭔가 다른 듯한 느낌이 들었다. 모래가 고운건 마찬가지였다. 신발을 벗지 말까 하다가 그냥 벗었다. 안 벗으면 후회할 것 같아서. 여자친구는 안벗었는데 나중에 해변을 나오니 자기도 벗을껄 하는 약간의 후회를 했다. 신발을 벗으니 다시 자유의 몸으로. 작은 행동이지만 해변에서 신발을 벗는다는 것은 바다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게 하는 것 같다. 발이 좀 더러워지는 것이 싫어 신발을 벗지 않으면 바다를 보고 있고 바다바람을 맞고는 있지만 발로 전해오는 모래의 부드러운 감촉이나 차디찬 바다물도 느낄 수 없으니 말이다. 발은 씻어버리면 그만인데 왜 이런 것에서 자꾸 주저하게 될까. 그런 의미에서 외국 사람들은 이런 것에 있어서 좀 더 자유로운 것 같다. 내가 신발을 벗기로 한 것도 이미 해변에서 뛰어 놀고 있는 많은 젊은 외국인들을 보고 부러웠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난 신발을 벗고 화보사진놀이를 좀 했다.


  어느샌가 해가 저 바다 너머로 넘어가고 있었다. 해 넘어가는 것은 그래도 왼쪽에 있는 부두 위에서 보기 위해서 해변에서 나왔다. 계단으로 올라가기 전에는 친절하게도 수돗가가 있어서 발을 깨끗하게 씻을 수 있었다. 발을 씻는 내 옆에서는 갈매기들이 물을 마시면서 싸움을 하고 있었고.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작은 놀이동산은 문을 닫았다. 회전목마들은 철수해서 어디론가 실려가고 있었다. 이곳에도 거리의 음악가와 간단한 음식을 파는 노점들이 모여있었다. 바다 위로 쭉 뻗은 곳을 따라 걸어가니 끝이 나왔다. 해변에서 꽤 떨어진 곳에 있어서 바다 한 가운데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해 지는 모습은 작년에 인천 아라뱃길 끝에 정서진에서도 본 적이 있는데, 그 때는 구름이 많아서 해가 바다 너머로 떨어지는 것은 보지 못하였다. 그런데 지금 산타모니카에서는 해가 바다물에 서서히 잘려나가고 있는 모습이 선명히 보였다. 동그란 해가 점점 바다 너머로 넘어가더니 순식간에 바다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해를 삼켜버렸다. 아직 날은 밝았지만 서서히 어둠이 동쪽부터 몰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밖으로 나오면서는 기념품샵에 들려서 엽서를 몇 장 샀다. 들어오면서 본 곳은 비쌌는데 이곳은 더 쌌다. 다른 사고 싶은 것도 많이 있었지만 꾹 참았다. 66번 도로 기념품을 많이 팔았는데 아마 66번도로가 동부에서 쭉 이어져 산타모니카까지 이어지는 도로였지만 지금은 없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할아버지들이 66번 도로에 대한 설명들을 읽으면서 기념품들을 많이 사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옛날 생각을 하는 것인가...?

 

  길을 따라 나오자 정문이 보였다. 우리는 아까 해변으로 바로 들어갔는데 이곳이 산타모니카 유원지(?)로 들어가는 정문이었다. 작지만 아기자기하고 이쁜 느낌이었다. 어둠이 깔렸지만 늦은 시간은 아니었기에 조금 돌아다니기로 했다. 산타모니카 해변에서 옷을 싸게 판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과연 어디인가. 쇼핑몰을 버스타고 오면서 살짝 보긴 했는데 그곳일까. 발걸음을 옮겼다. NORDSTROM이란 백화점을 봐서 들어가봤는데 가격들이 싼 것은 아니었다. 여자친구도 사고 싶은 가방을 만지작 만지작만 하고 결국 사진 않았다. 이곳저곳 둘러보다가 옆 건물로 올라갔다. 배도 고파오고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푸드코트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일식, 중식, 서양식 등등 많이 있었지만 우리는 피자 한 조각과 중국 식당에서 닭고기를 사먹었다. 피자는 완전 큰 한조각이었는데 빵이 위, 아래로 있고 가운데에 야채가 많이 들어간 매우 두툼한 피자였다. 신기하기도 했고 맛도 있었고 배도 불렀다. 중식은 사실 별로 사먹고 싶은 마음이 없었는데 이것저것 구경하다가 아줌마가 한 입씩 먹어보라고 했는데 너무 맛있어서 사먹게 되었다. 이곳에서는 시식을 sample이라고 부른다.

  밥을 먹고 나서 백화점 밖으로 나왔는데 버스타러 가는 길에 길거리 쇼핑몰을 발견하였다. 마치 명동거리 같은 모습이었는데 갖가지 브랜드가 다 모여있었다. 내가 찾는 폴로는 없었지만. 그래도 한 번 둘러보면서 아이쇼핑을 계속했다.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곳은 애플 매장이었는데 매우 컸다. 들어가서 맥북부터 아이폰까지 모두 만져보고 컴퓨터도 하면서 놀았다. 50만원짜리 이어폰으로 음악도 듣다가. 사고싶은 마음이 많았지만 애플 제품 사용법도 모르고 한국에 가져가봤자 윈도우 안깔면 사용하기 힘들단 얘기도 들어서 사지는 않았다. 사실 돈도 없었고.

 

  쇼핑 거리를 다 구경하고 나서는 버스를 탔다. 숙소까지 오는데는 1시간 정도 꼬박 달린 것 같다. 길이 막히지는 않아서 금방 간 것 같은데 시내버스로 1시간. 그래도 대중교통이라도 편한편이라서 다행이지 LA는 대중교통도 불편했으면 정말 재미없는 도시로 남았을 듯. 내일은 이제 이곳을 떠나는 날인데... LA는 샌프란시스코처럼 여유있는 여행이 아니어서 내가 잘 못봐서 그런건지 몰라도 도시 자체로는 매력이 없는 것 같다. 누누히 썼지만. 유니버셜, 산타모니카, 가보진 못했지만 디즈니랜드를 빼고서는 별거 없는듯. 헐리우드도 별로였고. 그런데 비해 샌프란시스코는... 볼수록 매력.

 

  여튼, 산타모니카에서 해지는 것도 보고. 기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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