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13 미국 서부

<미국여행 27일차> LA - 게티박물관, UCLA, 더 그로브

inhovation 2016. 10. 8. 00:00

2013년 2월 6일 수요일

 

  미국여행 27일차이자 LA여행 2일차. 오늘은 게티박물관과 UCLA를 간다. 숙소 위치를 잘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버스정류장이 바로 앞에 있고 지하철역이 걸어서 5분 거리에 있었지만 버스정류장은 바로 이용을 하지 못했다. 매일 데이패스를 끊어서 다녔는데 데이패스를 충전하기 위해서는 항상 지하철역까지 걸어가야 했었던 것. 그래도 엄청 나쁜 편은 아니니... 전철역까지 걸어가는 길도 재미는 있었다. 더럽긴 했지만. 맥시칸 동네 길거리인데 쓰레기가 이건 정말 장난이 아니다. 비둘기들도 장난이 아니다. 어제 저녁에 걸어올 때는 어두워서 못 본 것인지 모르겠는데, 날이 밝고 나서 숙소에서 전철역까지 걸어오는데 길거리가 쓰레기로 가득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이정도는 없었는데... 자꾸 샌프란시스코랑 비교가 된다. 엄청 기대하고 온 LA인데 LA에 정이 안 붙는다.


  어찌 됐건 전철역에서 충전을 하고 나왔다. 게티박물관까지 가려면 버스를 타고 가야한다. 핸드폰 인터넷이 되면 편하긴 하겠지만 그래도 어제 저녁에 숙소에서 노트북으로 알아놓고 저장해 놓은 정보를 열어가면서 버스를 찾았다. 구글에 검색하면 대중교통 노선과 시간이 쭉 뜨는데 매우 편하다. 다행히 버스정류장으로 가는데 버스가 딱 와 있어서 뛰어가서 탔다. 탭카드를 찍으려고 하는데 버스 기사가 뭐라고 말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했는데 뛰면 다친다고 농담을 한 것이었다. 이곳 사람들은 농담을 정말 좋아한다.

  버스를 타고 윌셔대로를 계속 따라갔다. 한인타운이 몰려있는 윌셔대로, 서울과 다른 느낌이 별로 들지 않는다. 여행에서는 이런 것이 오히려 나에게는 재미를 반감시키는데. 작년에 중국 다롄에 갔을 때도 그랬다. 중국이 발전했다고 했지만 우리나라에서 보던 느낌하고 별반 차이가 없어서 많이 실망을 했던 기억이 난다. 여튼, 한참을 가다가 중간에 내렸다. UCLA 입구에서. 화장실을 가고 싶었다. 물론, 화장실을 가려고 내린 것은 아니다. 정류장이 되었기 때문에 내린 것이고 화장실은 버스 타기 전부터 가고 싶었다. 그런데 여긴 전철역에 화장실이 없다. ... 버스를 내려 바로 앞에 있는 큰 빌딩 2층으로 올라갔다. 반가운 화장실 표시를 따라 들어갔는데 문이 잠겼다. 이런.

  코너를 돌아 일단 버스를 갈아타는 쪽으로 갔다. 반가운 스타벅스. 샌프란시스코에서도 애용했었던 스타벅스 화장실. 일단 들어가서 여자친구는 주문을 하는 척 하고 나는 화장실을 갔는데 번호키로 되 있었고 잠겨있었다. 이런. 전에 받아 놓은 쿠폰으로 1달러도 안되는 가격에 아메리카노 한 개를 주문하고 화장실을 번호를 알려달라고 하니까 뭐라고 해서 일단 오케이라고 하고 물러났다.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다는 말은 아니었고 번호를 알려준 것도 아니었지만 뭔가 기다리라는 말 같아서. 조금 기다리고 아메리카노를 받기 전에 화장실에서 다른 남자가 나왔다. 아, 다른 사람이 있었다는 말이었구나. 잽싸게 들어가서 문제를 해결하고 나왔다. 세상이 평화롭고 아름다워보였다. 가벼운 마음으로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우유도 리필해 마셨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갑자기 '해우소(解憂所)'가 생각났다. 절에서 화장실을 가리켜 일컫는 말. '근심을 해결하는 곳'이란 뜻으로 알고 있는데 정말 그랬다. 버스를 타고 오면서, 스타벅스에 들어가기 전에도 모든 것이 문제처럼 보이고 근심걱정이 가득했는데 '큰 근심'을 해결하고 나니 이렇게 기분이 다르고 세상이 다르게 보일수가. 이런 면에서는 불교의 이런 것들이 멋져보이고 마음에 든다.

 

  버스를 기다리면서는 소방차가 출동하는 것도 보았다. 미국에서 꽤 자주 보는 것 중에 하나가 911 출동. 존경할만한 것은 911이 출동할 때는 모든 차가 움직이지 않고 길을 터준다는 것. 한국에서는 정말 보기 힘든 광경인데. (한국에 와서 지금 글을 쓰는 시점에서) 어제도 은행을 다녀오는데 소방차가 출동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교차로 하나를 통과하는데 그렇게 오래 걸릴 수가 없었다. 보면서 '미국에서는 안저랬는데'하는 생각이 났다. 급한 911이 가고 나서 저 멀리 우리의 버스가 오는 것을 보았다. 게티박물관으로 가는 버스는 UCLA를 빙 돌아서 조금 더 북쪽으로 올라간다. 거의 다 온 것 같아서 버스를 내리려고 했는데 뒤에 있는 중국계 아저씨로 보이는 사람이 게티박물관에 가냐고, 다음 정거장에서 내리라고 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트램을 타라고. 친절했다. 미국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종종 이렇게 친절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한국에서는 만날 기회가 없었던 것이겠지? 여행객에게 이렇게 친절하다니.

  친절한 아저씨 덕분에 버스를 내렸다. 우리 말고 다른 노 부부도 게티박물관에 가는 길이었다. 이미 박물관 아래쪽 주차장에는 스쿨버스들이 많이 있었고 유치원생, 초등학생들이 가득했다. 게티박물관은 주차료 이외에 모든 것은 무료. 부자가 된 게티가 박물관을 만들고 이렇게 운영을 하는 것이라고. 지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트램 정류장에 가니 '오늘의 안내' 같은 종이를 나눠주었다. 여러가지 테마가 있고 시간별로 투어 안내가 있었지만 우리는 그냥 셀프투어를 하기로. 지난번에 철도박물관에서 느꼈던 느낌을 다시 느끼고 싶지 않아서...

  산 위로 트램을 타고 올라가면서는 언덕 위의 큰 집들, 시원하게 뻗은 고속도를 볼 수 있었다. 얼마나 부자였길래 산 위에 박물관을 짓는 것도 모자라서 트램까지 만들어 놓았을까. 트램을 내리니 순백색의 하얀 게티박물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에 뭐가 있을지도 잘 모르고 그냥 와 본 것인데 밖에서 이곳을 구경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멋이 있었다.

 

  이곳 저곳에서 간단히 사진을 찍고 안으로 들어갔다. 입장료가 없으니 별다른 티켓도 없었고 안내부스에서 박물관 지도만 가져왔다. 이곳에서도 플래시는 안되고 사진촬영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동서남북으로 나뉘어져서 2, 3층에 많은 것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별관처럼 다른 곳에서도 전시가 되고 있었는데 다는 못보고 동서남북 2, 3층만 비교적 꼼꼼히 보았다. 3층부터 갔는데 미국에서 우리가 흥미를 갖게 된 미술전시회를 하고 있었다. 와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이곳저곳 둘러봤다. 그래도 성경을 좀 안다고 성화가 눈에 많이 들어왔다. 한국에 가면 꼭 미술 공부를 해 보리라 다짐을 하면서 구경했다. 이전에는 왜 이런 즐거움을 몰랐는지.

  안에는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시끌벅적하게 구경을 하는 모습을 보았다. 몇몇은 그림을 유심히 관찰하였지만 대부분은 가운데 있는 소파에서 장난을 치거나 돌아다니기만 했다. 나는 어렸을 적에 후자였던 것 같다. 그림을 보다가 어떤 방은 직접 그림을 그려볼 수 있는 곳도 있었는데 참여하지는 않았다. 일단 시간이 촉박했고 아이들이 너무 많아서 우리가 끼기 좀 미안한 그런 마음? 한국에서도 이런 시스템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미술관을 안가봐서, 미국 아이들은 뭔가 이런 교육도 어렸을 적 부터 받는다는 것이 한국과는 다른 것 같다. 견학을 오는 것도, 미술관 안에 이런 교육 시스템이 있다는 것다. 사실 다시 기억을 더듬어보면 어렸을 적에 학교에서 미술관을 단체로 간 적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방학 숙제정도로나 있었지.

 

  3층에는 대부분 그림, 2층에는 도자기나 카펫, 가구 같은 것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어떤 그림은 자외선 촬영과 X선 촬영 한 것도 있었는데 원래 그림에서 어떻게 수정이 되었는지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해 놓은 것 같았다. 그림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이런 기기도 사용한다는 것을 처음 알아서 무척 신기했다. 미술관에서는 항상 그랬듯이 예정보다 오랜 시간을 구경하고 밖으로 나왔다. 정원도 가고 싶고 다른 곳도 더 구경하고 싶었지만 무작정 그럴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동관, 서관 등을 이동하면서 중간에 테라스에 나와서 보는 모습도 시원하고 멋있었지만 박물관 안에 있는 정원을 구경하는 모습도 멋이 있었다. 미로처럼 되어 있는 꽃길, 물론 겨울이라 꽃이 있지는 않았다. 저 멀리 잔디밭에서 뒹구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같이 동심으로 돌아가 뒹굴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박물관 안에서 그림을 유심히 관찰하는 아이의 모습도 귀엽고 대견해보이고 했지만, 역시 아이들은 잔디밭에서 뒹구는 모습이 더 어울린다.

 


  그냥 갈까 하다가 우리도 그래도 잔디밭에 한 번 앉아나 보자는 마음으로 잔디밭으로 갔다. 여자친구는 가운데 들어가서 앉아서 찍고 나는 대자로 누워서 찍고. 따뜻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잔디밭에 누워 있으니 잠이라도 한숨 푹 자고 싶은 기분이다. 그래도 저 위에서 고등학생들이 구경하고 지나가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쳐다봐서 사진만 찍고 일어났다. 뭔가 이런 잔디밭에서도 자유롭게 있는 것 같아서 좋았다. 한국 같았으면 경비아저씨가 내쫓았을 것 같은데...

 

  기념품샵에 들려서는 엽서를 두 장 샀다. 제일 감동을 받은 그림 중에 예수님에게 잡혀온 마리아의 그림과 회개하는 마리아 그림. 같은 화가는 아니지만 두 그림 모두에서 큰 감동을 받았다. 한 그림은 예수님에게 잡혀와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마리아와 주변의 바리새인들과 그런 사람들이 있었고 예수님이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를 쓰는 그림이었다. 사람들은 이것을 쳐다보고 있는 것인데. 다른 그림은 마리아 혼자 있는 그림인데 예수님과 헤어지고 나서 하늘을 보고 기도(회개)를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 그림은 가만히 보고 있으면 나도 숙연해 지면서 '회개란 이런 모습으로 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나게 한다.

 


  박물관을 나와 트램을 타고 내려가서 버스정류장에 가서 한 시간 정도 버스를 기다린 것 같다. 건너편은 몇 대가 지나갔는데 이쪽으로는 오지도 않는다. 기다리는 동안 등 뒤에 고속도로 아저씨가 볼펜이 있냐면서 던져줄 수 있냐고 했다. 대신 못받는다고. 비싼 볼펜을 던져줄 뻔 했는데 여자친구가 싼 볼펜으로 바꿔줘서 싼 볼펜을 무사히 던져줬다. 고속도로 안으로 떨어진 것 같은데 아저씨는 공사장을 건너가서 잘 잡은 것 같다. 이런 에피소드가 있었는데도 버스는 정말 엄청 오지 않았다.

  드디어 버스가 오고 UCLA로 출발. 대학교로 들어가는 입구가 많아서 어디서 내려야 할지 고민이 되었지만 동쪽 문으로 들어가서 가운데를 구경하고 정문(남쪽)으로 나오기로 했다. 입구에 있는 주차안내부스에서 지도를 받아 나오고 갈 곳들을 정했다. 스탠포드보다 좋았던 것은 지도가 색깔이 있었다는 것. 가볼만한 곳으로 표시된 곳을 갔는데 첫 장소부터 공사중. 멋있는 분수 같은 싱크 홀(물이 빠지는 곳?)이었는데 공사중이었다. 여기 말고도 곳곳이 공사중. 왜이러지. LA 안에 있는 대학이라 LA스럽나? 다음 장소로 이동.

  그래도 몇 몇 멋있는 건물들은 있었다. 그래도 스탠포드에서 느꼈던 감동보단 덜했다. 잔디밭에 들어가 사진도 찍고 하다가 도서관에 한 번 들어가 보기로 했다. 다행히 들어가는데 학생증 검사는 하지 않았다. 스탠포드에서는 들어가보지도 못했는데. 메인 도서관은 아닌 것 같았지만 1층부터 서고들이 있었다. 2, 3, 4층 계속 서고가 있는 듯 했다. 1층 저편으로는 카페도 있었고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는 곳도 있었는데, 이곳이 진짜 좋았다. 소파들이 있고 카페에 칸막이 처럼 구분이 되어 있어서 팀플 같은 것을 하기에 딱이었다. 방으로 된 팀플룸도 있었는데 이곳은 벽면이 다 화이트보드였다. '나도 이런 곳에서 공부하면 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입학이나 할 수 있을까?

  도서관을 나와 조금 멋져보이는 건물에서 사진을 찍었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잔디밭으로 된 언덕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보는 풍경도 멋있었다. 스탠포드에서 보았던 대학의 자유로움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잔디밭에 앉아있는 대학생. 미국 대학교 하면 이 모습이 먼저 생각날 것 같다. 왠만큼 본 것 같았다. 구석구석 보지는 못했지만, 역시 넓어서. 그래도 스탠포드 만큼 넓지는 않았고. 그런데 뭔가 상징적인 것이라든지 하는 건물이나 장소가 없어서 흥미가 크게 생기지는 않았다. 엄청 기대를 하고 온 UCLA 였는데... 그냥 기념품점으로 향했다. 기념품샵은 스탠포드보다는 작았지만 그래도 꽤 넓었다. 역시 옷을 파는 곳이 절반 정도. 이곳에서도 UCLA 필통은 없었다. 한참을 구경하다가 아디다스 츄리닝 바지가 저렴해서 살까 했는데 UCLA라고 크게 적혀져 있는 것이 그냥 좀 너무 튀는 것 같아서 사지는 않았다. 결국 이곳에서도 작은 볼펜 한 자루만 구입. LA 기념 머그컵을 3. 몇 달러에 팔았는데 왠지 다운타운에 있는 월그린, 아직 보지는 못했지만, 이곳에서도 팔 것 같아서 사지는 않았다.

 


 

  UCLA를 정문으로 나와서는 버스도 있었는데 운행을 안하는 것 같아서 다시 아까 갈아탔던 곳으로 걸어갔다. 셔틀버스를 타려고 했는데 우리가 가려는 곳으로 가지 않는다고 했다. 지칠대로 지쳤지만 그래도 걸어서... 힘겹게 버스 타는 곳으로 가서 급행버스를 타서 앉았다. 숙소로 가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고 특별히 어디를 들리기에는 조금 애매했지만 우리는 애매함을 택하기로 하고 중간에 내렸다. 쇼핑몰이 몰려 있다는 더 그로브 몰로 향했다. 사실 이곳도 많은 정보는 없었고 블로그에서 좀 봐서 구글 맵에 별표 해 놓은 것 밖에는 없었다.

  버스를 내려서 다른 버스로 갈아타서 조금 올라가서 내리니 파머스 마켓이라는 곳이 보이고 식당들이 즐비했다. 마치 동대문에 광장시장 같은 풍경이었다. 배도 고파오고 한 바퀴 둘러본 후에 무엇을 먹을까 고민을 하다가 밥이 먹고싶다는 여자친구의 의견에 따라 비빔밥을 한 개 시켜 먹었다.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에도 나왔던 집이라는 신문기사 스크랩도 되어 있었다. 한국사람이 할 줄 알았는데 주인은 안보이고 알바생만 있는 것 같았다. 가격은 이곳도 저렴하지는 않았다. 고기나 계란을 추가하면 추가금을 내야 해서 야채로만 비빔밥을 시켰다. 그래도 맛있었고 푸짐하긴 했다. 미국에서 그나마 괜찮은 것이 푸짐하다는 것. 우리나라 사람 기준으로 음식 양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미국 사람 기준이라서 그런 것 같다. 둘이 비빔밥을 비벼먹고 옆에 있는 더 그로브로 향했다.

  별다른 것은 없고 이런저런 가게들이 몰려있는 길거리다. 대부분 옷가게, 가방가게. 돈이 많으면 행복한 곳, 돈이 없으면 부러움만 커져가는 곳. 이것저것 구경을 많이 했지만 역시 사는 것은 없었다. 미국은 폴로 옷이 그렇게 싸다고 하던데 폴로 매장은 볼 수 없었고, 다른 매장에서 파는 옷이나 가방 같은 것들도 '와 싸다, 사야겠다' 하는 것들은 없었다. 돈을 막 쓰지 않으려는 것도 있었지만 그렇게 저렴하지 않아서 구매욕구가 땡기지 않는 것이 돈을 쓰지 않는 더 큰 이유였다.

 

 

  날이 어두워지고 이제 슬슬 숙소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았다. 버스를 타는 길 중간에 있는 큰 마트에 한 번 들러보기로 했다. 간식거리라도 살 것이 있나 해서. 그러다가 과일코너에서 발견한 아보카도. 아침에 서브웨이 직원이 '아보카도를 넣어줄까요?'라고 해서 맛있냐고 하니 맛있다고 해서 넣어달라고 했는데 추가요금을 받은 그 아보카도. 샌드위치 먹을 때 별 맛이 없이 맛있었던 것을 보니 아보카도가 맛있었던 것은 같은데 무슨 맛인지 몰라 궁금했는데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어떤 아보카도가 맛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몇개 집었다가 그냥 내려놨다. 이따가 한인마켓을 가려고 하는데 거기서 그냥 한꺼번에 사려고. 여기서는 그냥 이곳저곳 구경. 마켓구경은 한달이 다 되도록 우리에게 재미있는 관광코스다.

 

  버스를 타고 윌셔대로를 가로질러 올림픽대로에서 내렸다. 한인마켓을 가기 위해서. 버몬트 길에 있는 '한남체인'이라는 곳인데 아저씨 말로는 이곳이 크고 좋다고 하셨다. 간단히 데워 먹을 수 있는 삼분요리와 햇반을 사고 아까 못 산 아보카도, 스프레이트를 샀다. 아보카도는 보라색과 초록색이 있었는데 초록색이 신선해 보여서 초록색으로 두 개 샀다. 아까 그곳보다 저렴해서. 이곳에서 놀란 것은 뚜레쥬르가 있었다는 것. 그것도 한국인 학생처럼 보이는 알바생이 똑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영락없는 한국이다. 버스를 기다리는데 여기서도 버스가 오질 않는다. 숙소까지는 15분 거리. 그냥 걸어가기로 했다. 한인타운 구경도 할 겸.

 

  친숙한 한국말 간판들이 보이면서 한인타운을 구경하는데, 이곳은 시간이 멈춰버린 곳 같았다. 하긴, 이민 올 때의 한국에서의 모습으로 이곳에서 가게를 열고 정착을 했을 것이란 생각을 해 보면 그럴만도 하다. '센터'가 아닌 '쎈타' 같은, 옛날식 영어 표기들로 되어 있는 간판들과 옛날식 스타일, 시골 읍내와 같은 모습들 부터 90년대식 간판들, 확실히 2000년대는 아닌 듯한 모습들이 어우러져 있었고 이곳이 LA 한인타운이란 이름으로 모여 있었다. 지구 반대편에서 보는 한국의 모습이 반갑기도 했지만 뭔가 좀 생소한 느낌으로도 다가왔다. 지구 반대편으로 건너와서 한국식으로 사는 사람들의 모습은 어떨지 궁금하기도 했고, 한국식으로 살것이면 무엇 때문에 이곳까지 왔나 하는 생각도 들고.

  간판 중에 재미있었던 것은 맥도날드 간판이었다. 도로 옆에 크게 세워진 간판이었는데, 누가 번역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노력한 흔적은 보였지만 웃음을 자아내는 멘트였다. 빅맥 광고 밑에 써 있는 바로 이 말.

 

대박 식사, 대박 가격

 

Good meal, Good price를 번역한 듯 싶은데 '대박'이라니. 이제 한국에서는 한물 간 유행어. 그리고 식사 앞에 대박이 붙으니 뭔가 어색하기도 하다. 차라리 '대박 맛있고, 대박 저렴함' 정도가 더 낫지 않나 싶다. 이렇게 한인타운을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숙소. 들어와서 한국의 3분맛으로 두 번째 늦은 저녁을 하고 잠이 들었다. 내일은 헐리우드와 천문대를 가려고 했으나 천문대로 가는 셔틀이 주말만 운행을 한단다. 나 혼자였으면 산을 올랐겠지만 역시 여자친구가 있으니 이렇게 고생을 시킬 수는 없고... 일단 헐리우드를 오전에 가서 시간을 보내면서 더 생각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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