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13 미국 서부

<미국여행 24일차> 새크라멘토 - 철도박물관

inhovation 2016. 10. 5. 00:00

2013년 2월 3일 일요일

 

  오늘의 스케줄은 오전에 일하다가 오후에는 철도박물관(Railroad Museum)에 가는 것이다. 예-전에 크로커 박물관 갔을 때 같이 산 콤보티켓을 이제서야 쓰는 것이다. 마지막날. 미국와서 헷갈렸던 것이 년/월/일 표기 방법이었다. 우리나라는 년/월/일 순서로 쓰는데 미국에서는 어디서는 일/월/년, 어디서는 월/일/년 이렇게 쓰는 것 같아서 콤보티켓에 적혀있는 날짜도 헷갈렸었다. 결국 홈페이지를 가 보고 February라고 써 있는 것을 보고 확실히 알았다. 결국 02/03/13은 2월 3일까지라는 것.

  오늘은 또 요 며칠간 사람들이 지겹도록 찾았던 NFL 결승전, 슈퍼볼을 하는 날이다. 한 나라의 운동경기 한 종목의 결승전이라고 하지만 규모로만 보면 거의 월드컵 결승전 수준이다. 새크라멘토는 팀이 없는 것인지 샌프란시스코 팬이 대부분이다. 마트에 소문(?)이 돌길, 오늘은 슈퍼볼 경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 집에서 티비를 볼 것이라고, 그래서 장사가 잘 안될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도 오전에 상황 봐서 바쁘지 않을 때, 슈퍼볼 경기가 시작할 때 즘에 철도박물관에 다녀오기로 했다.

 

  가게를 열고 파리만 계속 날렸다. 종종 오는 사람들은 빨간 옷을 입고 49ers 옷을 찾는 사람들 뿐. 손님이 거의 없었다. 점심을 먹고 철도박물관에 가려는데 때마침 벤 아저씨가 놀러왔다. 우리에게 처음으로 카지노를 맛보게 해 준 벤 아저씨. 지난 번에 같이 만나서 놀았는데 사진 한 장 못찍고 헤어져서 섭섭했는데 아주 잘 됐다. 샌프란시스코 놀러다닐 때도 왔었다는데 보지도 못하고. 우리는 같이 사진 찍을 수 있어서 기뻤고, 가게 주인님은 우리가 없을 때 가게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생겨서 기뻐했다. 언제 가냐고 물어보니까 3시 30분. 우리가 돌아올 때 쯤이다. 아주 딱딱 잘 맞는다. 벤 아저씨랑은 간단히 이야기좀 나누고 같이 사진을 찍고 헤어졌다. 우리는 차를 타고 출발.

 

  새크라멘토 다운타운으로 올라가는데 내려오는 차들이 정말 많다. 다들 집에 가려는 차들인 듯. 다 집에 가서 슈퍼볼 보려고... 길도 안막히고 다운타운에 금방 도착했다. 제일 싼 주차장을 어제 알아놔서 그곳에 주차를 했다. 공교롭게도 철도박물관 바로 옆 주차장. 차에서 내리고 박물관까지 들어갔는데 아무래도 백팩을 차에 놓고 내린 것이 걸린다. 미국에 와서 신기했던 것 중 하나가 선팅되있는 차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것. 말로는 선팅 해 놓으면 사람들이 안에 뭐가 들었나 하고 유리를 깨보고 훔쳐가서 그런다는데, 차 유리가 어색하리만큼 맑고 투명하다.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다 선팅되어 있는데. 백팩이 보이면 혹시 가져갈까봐, 그리고 깊숙한 곳에 비상금도 잔뜩 숨겨놨는데 잃어버리면 안되니까 다시 차로 가서 가방을 매고 나왔다.

 

   박물관에 들어가서 콤보티켓을 보여주고 입장을 했다. 안내하는 아저씨가 1시 30분부터 무료투어가 있으니 참가하라고 했다. 시계를 보니 29분. 얼른 가서 사람이 모여있는 곳에 가서 5분 정도 서 있다가 대열을 이탈했다. 철도박물관의 역사와 유래 등등에 대해서 계속 설명하는 것 같은데 뭔 말인지 제대로 알지를 못하니 재미가 하나도 없었다. 내가 아는 것은 많이 없지만, 서부개척 시대와 관련된, 이 정도의 철도박물관이라는 것 밖에는 없다. 사실, 온 동기도 이런 역사적인 것을 공부하거나 하려는 것이 아니라, 1. 콤보티켓을 사용하기 위해서, 2. 재미있으니까, 이 두개가 거의 전부였다. 우리는 전시되어 있는 기차들 옆에서 사진을 찍고 구경을 하는 것이 훨씬 더 재미있었다. 리얼하게 전시되어 있는 기차들과 밖에서 봤을 때는 그리 크지 않았는데 의외로 꽤 넓은 박물관의 규모에 감탄을 하면서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기차들도 상당히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돌아다니다가 직원에게 물어보니 당시에 실제로 운영했던 기차들을 가져다 전시해 놓은 것이라고 했다. 어쩐지, 리얼해도 너무 리얼했다.

 

   볼거리는 정말 많았다. 객차 안에 들어가 보는 것도 가능했지만 제일 재미있었던 것은 증기기관차 운전실에 들어가서 설명을 듣는 것이었다. 6-7살 즈음? 수원 옆에 부곡인가에 철도박물관을 어머니따라 다녀온 이후로 한 때 기관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 20년이 지나서 다시 이런 곳에 들어와 보다니. 기분이 매우 들떴다. 이런 기분에 기름을 붓는 것 같은 것이 있었으니 직접 자리에 앉아서 이것저것 만져볼 수 있다는 것! 기차만 움직이지 않았지 내가 마치 기관사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여기서는 영어 설명을 조금 알아 들었는데 내가 앉은 자리가 물을 담당하는 사람(fireman) 자리이고 매우 바쁜 사람(very very busy)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길래 내가 한 마디 해 줬다.

I'm not busy.

미국 와서 하게 된 농담이다. 이곳 사람들은 농담을 정말 잘 하는 것 같다.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말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자 사람들이 하하하 웃는다. 그런데 다른 남자가 또 한 마디 한다.

Because, you are fired.

오, 이건 정말 말장난이다. fireman 자리에 앉은 내가 바쁘지 않다고 하자 그 이유가 fire(해고) 되었기 때문이라니. 왠지 내가 영어로 농담을 주고받았다는 사실에 뭔가 뿌듯해진다. 가이드해주는 직원은 기관실을 나가는 나에게 새로운 직업을 알아보라는 충고까지 잊지 않는다. 정말 재미있다.

 

  여러가지 객차를 돌아다니면서 구경할 수 있었는데 정말 다양한 객차가 전시되어 있었다. 과일을 운송하는 냉동객차는 당시 얼음을 가득 채운 칸에서 바람을 불어 찬 기운을 유지하는 것 같았다. 편지를 배송하는 객차도 볼 수 있었는데 기차를 통한 편지 배송의 역사부터 친절히 설명되어 있었다. 원래 시작은 영국이라고 본 것 같다. 깨알같이 잘 꾸며놓았다고 느끼는 것이, 아까 기관실 설명하는 직원도 그랬는데 실제로 당시 직원들이 입었던 작업복을 다 입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이들도 지긋한 할아버지들이어서 정말 100년전 기차 안으로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침실칸이 있는 객차는 정말로 기차가 약간씩 흔들리면서 소리도 나서 진짜 움직이는 것 같았다. 안에는 역시 직원 할아버지가 계셔서 또 농담으로 "Where are we going?" 이라고 물어보면서 웃었지만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듣지 못했다. 남들은 듣기부터 트인다는데 나는 말하기부터 트인 것인가? 의자가 어떻게 침대가 되는지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는데 신기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침대칸. 하긴, 미국은 땅이 넓으니까 이런 것들이 필수겠지. 이외에도 레스토랑 칸도 있었고 옆에는 주방의 모습을 마네킹으로 전시도 해 놓았다. 하도 리얼하게 많이 해 놓아서 주방에 있는 요리사들도 실제 사람인줄 착각도 했었다.

 

   2층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모형기차가 많이 전시되어 있었고 놀 수 있는 공간도 많이 있었다. 반 2층이라서 1층에서 보았던 기차를 위에서 내려다 볼 수 있는 재미도 느낄 수 있었다. 가장 하고 싶었지만 꼬마애들이 둘러싸고 있어서 못한 것이 있는데 바로 실제로 움직이는 장난감 기차를 조종하는 것이다. 버튼을 누르면 움직이고, 멈추면 다시 눌러 움직이게 하는 것인데... 애들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제일 활발한 애가 거의 좌우를 왔다 갔다, 유리창 앞에서 기차를 보고 소리를 지르며 장악하고 있어서 내가 끼어들 틈은 없었다. 자리를 잠시 비운 사이에 내가 버튼을 누를라 치면 달려와서 버튼을 마구 눌러댔다. 어떻게 하는 것이냐고 물어보자 줄줄줄줄 뭐라고 먆이 말하는데 거의 못알아 들었다. red button, green button 정도...? 꼬마애 말도 못알아 듣다니. 듣기 공부 열심히 해야겠다.

 

  오래 볼 것 없을 것 같다는 예상을 깨고 은근히 오랜 시간을 보냈다. 나오는 길에는 옛날 기차 내부에 있었던 물품들을 전시해 놓는 곳도 있어서 흥미롭게 보면서 지나왔다. 면도하는 곳도 있어서 신기했다. 땅 덩어리가 크니까 기차에 있는 것도 정말 스케일이 다르구나. 내려와서는 항상 그렇듯이 기념품샵을 구경하고 밖으로 나왔다. 살 것은 별로 없었다. 미국여행에서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올드새크라멘토, 이렇게 생각하기 갑자기 기분이 묘해졌다. 새크라멘토에 처음 와서 어리벙벙하게 구경했던 곳이 바로 이곳, 올드새크라멘토인데. 나의 첫 미국 여행지. 첫 날 올드새크라멘토에 와서 '사진을 찍어도 되나, 찍으면 달려와서 팁을 달라고 하지는 않을까' 하며 걱정했던 마차 관광객이 우리 앞을 지나간다. 이제는 여유롭게 카메라를 꺼내 들어 셔터를 누른다. 한 달 정도 보내니 이제 어느 정도 미국 여행에 적응 했나 보다.

 

  주차가 아주 약간 초과되었지만 에누리 없이 다 받는다. 사람들이 다 집에 있어서 길거리가 한산한가보다. 하긴, 박물관에서도 직원이 왜 슈퍼볼 안보고 여기 왔냐고 물어볼 정도였는데. 가게에 가니 벤 아저씨는 이미 갔고 손님은 거의 없었다고 하셨다. 문 닫을 때까지 손님이 없었다. 경기 결과는 샌프란시스코의 패. 20점인가 넘는 점수차로 지고 있다가 마지막에 거의 다 따라잡았는데 졌다고 한다. 엊그제부터 49ers 티를 입고 오는 손님들에게 "May your team win" 이라면서 인사해줬는데. 어떻게 미국에 있는 동안 슈퍼볼의 인기도 간접체험해 보고 좋네. 사실 미국 오기 전에 NBA 경기 한 번 보고 싶었는데, 새크라멘토 Kings의 경기가 원정이 많았고, 홈에서 할 때는 우리랑 시간이 안맞거나 너무 늦은 시간에 경기를 해서 못 본 것이 조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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