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13 미국 서부

<미국여행 21일차> 스탠포드대학교(Stanford University)

inhovation 2016. 10. 2. 00:00

2013년 1월 31일 목요일

 

  이제는 익숙해져버린 메가버스. 엊그제부터는 메가버스 아저씨...라기보단 할아버지랑 친해져서 얘기도 나누고 했다. 대부분 일본사람으로 알아봐서 항상 "We are Korean."이라고 말하면서 '곤니치와'가 아닌 '안녕하세요'를 알려주고 있다. 어제도 까먹어서 다시 알려드렸는데 오늘 아침에도 또 까먹으셨는지 고뇌에 가득 찬 표정을 짓는다. '안녕하세요'를 알려주니 할아버지는 '앙녕하세요'라고 말하면서 노트에 적어달라면서 펜과 종이를 꺼냈다. 'an nyung ha se yo'라고 적어주자 할아버지는 몇 번을 연습하더니 고맙다고 했다. 버스가 와서 잠시 기다리는 시간에 같이 사진을 찍었다. 버스기사도, 줄을 세우시는 직원도 모두 할아버지다. 푸근한 인상의 백인 할아버지.

 

  칼트레인 역에 내려서 오늘은 다운타운으로 더 안들어가도 된다. 스탠포드대학교는 칼트레인 기차역에서 바로 갈 수 있기 때문에. 기차표를 사는 방법하고 노선 같은 것들을 계속 왔다갔다 하면서 익혀놨기 때문에 그리 어렵지 않게 표를 구입할 수 있었다. one way가 7달러인데 one day가 14달러. 당연히 14달러짜리 티켓으로 구입하고 10시 조금 다음 시간에 있는 기차를 탔다. 기차는 4종류 정도 있는 것 같았는데 수도권 급행열차처럼 중간에 많은 정거장을 안 거치고 가는 것들도 있었지만 우리는 모든 역에 정차하는 기차를 탔다. 기차는 2층 기차로 우리나라에서도 춘천가는 기차에는 있다는 그 기차였다. 1층이 있고 중간층이 있고 2층이 있었다. 우리는 당연히 2층으로 갔다. 마주보는 좌석으로 되어 있는 기차는 테이블이 있는 곳도, 아닌 곳도 있었다. 대부분 노트북을 펴고 뭔가를 했지만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창밖을 구경했다.

 

  한 시간 정도 가서 팔로알토 역에 내렸다. 여기서 스탠포드는 걸어갈 만큼 가깝다고 생각했지만 정문까지는 그래도 꽤 걸렸다. 지도만 봤을 때는 가까웠는데 아니었다. 스탠포드대학교 부지랑은 가깝지만 정작 학교 건물들과는 15분-20분 정도 걸어야 한다. 뒤에도 다른 한국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들은 조금 어리버리하게 다른 사람한테 물어보고 이래서 나는 '가는 법을 난 이미 알고있지롱'하는 마음으로 걸어갔지만 아마 이 사람들이 뒤따라 걸어오지 않았던 것을 보니 셔틀버스를 타고 한 번에 편하게 갔나보다. ... 그래도 걸어가는 길도 재미 있었다. 가로수길과 잔디밭 사이로 걷는 기분은 항상 즐겁다. 사진도 찍고 부지런이 오다 보니 'visitor center' 표지판이 있어서 오른쪽으로 틀었다. 학교 지도를 하나 가지고 나와 어디를 갈지 정하려고 했는데 막상 어디를 봐야할지 모르겠다. 무슨 홀(hall), 무슨 홀, 이렇게 다 적혀 있는데 뭐가 뭔지 알아야 보든 말든 하지... 일단 둥글게 돌면서 큰 글씨로 써진 건물들을 가보기로 했다. 사실 스탠포드 구경이 건물 구경 말고 뭐가 더 있겠는가.


  학교 부지는 상상 이상으로 컸다. 우리나라 대학교처럼 건물이 따닥따닥 붙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그런지 학생들 대부분이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마치 뉴스에서 중국 천안문 앞을 보여줄 때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은 광경과 흡사했다. 자전거 주차장도 완전 넓었다. 스탠포드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인가보다. 건물들은 전부 붉은 색 지붕을 하고 있었다. 나중에 들었는데 유럽풍의 건물으로 지은 것이라나. 내가 알고 있던 '대학교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몇 개의 건물로는 직접 들어가 보기도 했는데 내부는 또 상상 이상이었다. 깔끔한 카페도 있었고 중정원이 있어서 분수도 나오고 테라스도 있고 했다. 그냥 이곳에서 공부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의하고 있는 곳도 지나가보았는데 일반 강의실이나 교실처럼 되어있지는 않았고 원형으로 앉아서 토론을 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로비에 있는 테이블에는 피자와 음료수가 쭉- 놓여져 있어서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자유롭게 나와서 집어들고 다시 강의실로 들어갔다. 나도 몰래 먹고 싶었지만, 배가 너무고파서, 참았다.

  계속 걷다가 학생들이 굉장히 많이 왔다갔다 하는 곳이 있어서 '저곳은 무엇을 하는 곳일까'하고 가 보니 학생식당이었다. 밥을 사 먹고도 싶었지만 시스템이 이해가 잘 안됐다. 계산을 먼저 하는 것이 아니라 부페식 샐러드바가 있고 줄을 서서 알아서 접시에 담고 계산을 하는 방식이었는데 '멋모르고 펐다가 엄청 비싸게 나오면 어떡하나'하는 걱정에 주린배를 움켜잡고 식당 구경만 하고 나갔다. 대신 점심으로 가져온 베이글을 먹기로 하고...


  후버 타워라는 곳으로 가니 그리 높지 않아 보이는 탑이 있었다. 꼭대기에 올라가는데는 2달러가 든다고 해서 두 명 표를 끊고 엘리베이터에탔다. 백팩은 왠지 모르지만 못가지고 간다고 해서 데스크 앞에 벗어놓고 갔다. 올라가는 동안 이것저것 설명을 해 주는데 알아들은 바로는 '신입생들이 오면 이곳에 데려온다. 93m(?)인가 된다.' 정도였다. 엘리베이터를 내리니 철창으로 빙 둘러져있고 그 사이로 스탠포드 전경을 볼 수 있었는데, 안 올라오면 정말 후회할 뻔 했다. 생각보다 꽤 높았고 한 눈에도 다 들어오지 않는 스탠포드를 보는데 기분이 정말 좋았다. 높은 곳에 올라오면 기분이 항상 좋다. 빙 둘러가며 수 십분 동안 구경을 했다. 날이 좀 추운 것 빼면 다 좋았다. 그것보다 야상을 벗어서 백팩에 넣어놓았는데 당장 입지 못한다는 것이 참 어찌할 수 없었다. 그래도 추위 속에 스탠포드를 구경하고 갈 곳을 정했다. 지도를 봤을 때는 어디를 갈 지 정하지 못했지만 위에 올라와 보니 멋진 것물들과 장소가 한 눈에 보여서 어디를 갈 지 정할 수 있었다.


  후버 타워를 내려와서는 양 옆에 있는 방을 구경했다. 초대 총장(설립자?) 후버와 그 부인에 대한 설명들이 있는 방이었던 것 같다. 밖으로 나와 우리가 찍어놓은 곳으로 갔다. 우선 바로 옆에 있는 큰 광장과 그 앞에 있는 교회. 둥그런 아치를 받치고 있는 기둥 사이로 지나가는데 정말 멋졌다. 이곳을 지나가는 스탠포드 학생들도 정말 멋져 보였다. 아, 미국의 대학이란 이런 것이구나. 정말 한국의 대학교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일단 부지 자체도 이렇게 넓지 않을 뿐더러 풍기는 기운 자체가 다르다고 해야 할까? 교회 앞 중정원에 앉아서 밥(베이글)을 먹었다. 그러면서 학생들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누워서 자는 학생, 바닥에 앉아 얘기하는 학생, 혼자 노트북을 하는 학생 등등 정말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빵을 먹고 나서는 교회로 들어갔다. 다행히 문이 열려서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는데 교회를 가득 메우는 오르간 소리가 정말 웅장했다. 기도를 하고 있는 몇몇 분도 있었지만 우리는 조용히 이곳저곳 둘러보다가 자리에 앉아 오르간 소리를 감상했다. 엄청나게 크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작지도 않은 교회는 화려한 스테인드 글라스를 가지고 있었고 그 사이로 들어오는 빛을 감상하는데 마음이 평온해 지는 것 같았다. 몇 분을 쉬다가 뒤를 돌아 3-4층 정도 되 보이는 높이에서 오르간을 연주하는 할아버지를 볼 수 있었다. 아, 저곳에서 직접 연주를 하고 있었구나. 교회를 가득 메우는 오르간 소리과 아름다운 빛이 공존하는 스탠포드 교회, 정말 멋졌다.

 

  교회를 나와서는 정문 잔디밭 쪽으로 갔다. 이곳에 투어 형식으로 온 사람들도 많고 관광객도 굉장히 많은 것을 보니 스탠포드의 상징과도 같은 곳인가보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 많이 있어서 나도 사진을 일단 한 번 찍었다. 앞에는 조각상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어제 드영인가 레지온인가에서 본 작품이 크게 되어 있는 것이었다. 아, 뭔지는 자세히 몰라도 정말 신기했다. 로뎅의 조각인가(?) 그랬던 것 같은데... 넓은 잔디밭과 그 앞으로 쭉 뻗은 가로수길은 끝도 보이지 않았다. 고려대 정문하고 비슷한 느낌인데 잔디밭이 일단 더 넓고 고려대 정문 앞으로 길이 쭉- 뻗어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왠만큼 구경했다고 생각하고 이제 스탠포드대학교의 기념품을 사기 위해 표지판에서 계속 보았던 스탠포드 쇼핑센터로 향했다. 그런데 걸어도 걸어도 보이지를 않는다. 공사장 같은 곳을 지나 물어물어 한참을 걸어가니 스탠포드 쇼핑센터라고 알려준 곳이 정말 '쇼핑센터' 일단 메이시스 백화점 두 동이 있었고 그 만한 건물이 총 9개 정도 있었는데 이곳이 바로 정말 '스탠포드 쇼핑센터'였다. 말이 안나왔다. 우리나라 어떤 대학교에서는 홈플러스가 입점한다고 대학의 상아탑이 어쩌구 하면서 찬반 논란도 많고 상업화, 기업화 어쩌구 저쩌구 하는데, 이곳 스탠포드는 백화점을 끼고 있으면서도 마이클 코어스, 키엘, 버버리 등등의 상점을 가지고 있어도 되는 것인가. 뭐, 이것에 대해서 반대하거나 찬성하는 그런 것은 전혀 아닌데 너무 신기했다. 스탠포드는 대학교라기보다 그냥 하나의 작은 '도시' 같은 느낌이었다. 이제 문제는 이곳에서 어떻게 스탠포드 기념품을 살 것인지였다. 지나가는 대학생에게 물어보니 복잡한 안내판에 있는 지도를 가리키며 저곳으로 가라고 했다. 가보니 작은 한칸짜리 옷집이었는데 스탠포드 옷밖에 팔지 않았다. 나는 필통이 사고 싶은데...

   쇼핑센터를 한참 헤멨다. 이곳에는 학생들보다 쇼핑을 하러 온 주민들이 더 많았다. 참 신기한 곳이다. 목이 말라 스타벅스에 갔다. 신기하게도 주문을 하니 이름을 물어봐서 알려주니 음료를 찾을 때 이름을 보고 찾으라는 것이었다. 사람이 많으니까 이렇게 하나보다. 아메리카노를 시켜서 반 정도 들이키고 우유를 계속 부어서 리필해 마셨다. 이곳 사람들은 이렇게 스스로 제조해 먹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한 번 따라 해 본 것이다. 물론, 우유를 4번 리필해 먹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대부분 우유를 더 넣거나 여러가지 가루와 시럽을 자기 기호에 맞게 넣어서 만들어 먹는다. 우유를 리필해 마시면서 와이파이로 인터넷을 했다. 스타벅스에 들어온 또 다른 목적 중에 하나이기 때문에. 검색을 해 보니 서점에 기념품 샵이 있었다. 아... 서점... 가려다 말았는데... 서점을 가려면 다시 탑을 지나 더 들어가야 한다. 아...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서점으로 향했다. 지름길로 가려고 나무들과 잔디밭 사이를 가로질렀다. 숲(?) 속에서 조깅하는 사람도 보면서 그래도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정문 앞 잔디밭을 지나면서는 잔디밭 가운데서 노는 가족들과 껴안고 키스하는 학생들, 잠자는 학생들 등등 많은 광경을 보았다. 20-30명 정도가 빙 둘러 앉아 이야기를 하는 것도 보았는데 뭔가 '대학교스러운' 모습이었다. 뭘 하는 것인지는 궁금했다. 내 생각에는 기독교 동아리이고 서로 기도제목을 나누는 시간인 것 같았다.

  서점에 도착해서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까 쇼핑센터에서 보았던 옷집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넓은 공간에서 옷과 기념품들을 많이 팔고 있었다. 아니, 기념품샵이 이렇게 넓어도 되는 것인가. 게다가 지상으로는 2층, 지하로도 2층, 총 4개의 층으로 되어 있는데... 스탠포드는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에게 어마어마한 규모를 알려주는구나. 기차 시간을 보면서 돌아다닌 것인데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쇼핑은 포기하기로 하고 기념품 샵 구경을 하기로 했다. 뭐, 이미 스탠포드 쇼핑센터에서 기념품샵으로 발걸음을 돌린 것 자체가 예상했던 스케줄을 깨는 것이었으니 마음이 덜 불편했다. 기념품샵 안에는 대부분 옷이었고 스탠포드라고 적힌 학용품이 많이 있었다. 지하로는 일반 학용품과 교과서, 2층에는 전자기기 파는 곳과 카페가 있었다. 내가 원하는 스탠포드 필통은 찾을 수 없어서 그냥 볼펜만 한 자루 샀다. 스탠포드 볼펜이 뭐라고 내가 이거 하나 사려고 이렇게 돌아다닌 것인지, 참...

 

  그래도 작은 목적을 이루었으니 얼른 기차역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도 여러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나무와 나무 사이에 줄을 매달아서 외줄타기 연습을 하는 학생도 있었다. 한국에서는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 자전거 타는 학생들 외에 퀵보드와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학생들도 꽤 있었다. 스케이트보드 타는 사람들은 미국 와서 많이 보았는데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한국에서는 동호회 정도 밖에 없겠지... 기둥에는 여러가지 전단지가 많이 붙어져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었는데 이건 한국이나 미국이나 똑같았다. 다만 미국에는 대자보나 현수막은 없었다.

 

  무사히 셔틀버스를 타고 칼트레인 팔로알토 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미국 와서도 몇 번 느낀 것이지만 스탠포드를 하루동안 구경하면서 '자유'에 대해서 많이 본 것 같다. 대학생의 자유라고 하면 나는 그동안 내 맘대로 시간을 쓸 수 있고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그런 '일탈' 비슷한 자유를 생각했는데 여기서는 그냥 '자유'가 '자유'같다는 생각을 했다. 학생들의 모습이 그냥 너무 '자유로워' 보였다. 뭔가 글로는 설명이 잘 안된다. 내가 받은 느낌을 말이나 글로 설명하는 것이 이렇게 어렵다니...

  미국과 한국의 정서나 문화, 풍습 등등이 다른 것이겠지? 이곳에서는 퀵보드를 탄다고 해서 그 누구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자유롭게 탈 수 있는 것이지만 한국에서, 대학교에서 퀵보드 타고 다니면... 아마 학교 신문에서 취재하러 찾아올 것 같다. '퀵보드를 타는 남자, 그는 누구인가?' 스탠포드가 명문 사학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조사기관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본 것으로는 세계 대학 순위 2위가 스탠포드라는 것을 나중에 알고 났을 때는 기분이 묘했다. 내가 이렇게 대단한 곳을 다녀왔다니. 내가 스탠포드 학생이 된다면을 상상하고 싶었지만 입학하는 것 자체부터 막막할 것 같다. 작년에 영어 면접 때 한 마디도 못하고 완전 초멘붕을 경험했는데, 이곳을 입학하려면 이것보다 더 전문적인 영어 단어를 구사하면서 인터뷰를 해야 할텐데... 하, 영어를 정말 열심히 해야 겠다는 다짐도 많이 하게 되었다.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기차는 급행열차를 타서 금방 올 수 있었다. 30-40분 정도 걸렸나? 6시에 기차를 내려서 시간이 애매해서 앞에 있는 큰 마트에 들어가서 이것저것 구경을 하다가 인도 무슨 음식을 두개 사서 기차역에서 먹고 메가버스타고 집으로. 내일부터는 열심히 일을 하면서 다음 주에 LA 갈 준비를 해야지. 미국 여행도 이렇게 절반이 지나가다니. 이제 온 날을 세지 않고 갈 날을 세고 있다. 아쉽기도 많이 아쉽지만 그래도 한국에서의 삶도 기대된다.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느낌보다는 '새로운 삶'으로 돌아갈 것 같다는 느낌? 어떻게 될지는 그 때 가봐야 알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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