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13 미국 서부

<미국여행 18일차> 샌프란시스코 - 롬바드길, 금문교

inhovation 2016. 9. 29. 00:00

2013년 1월 28일 월요일

 

  6시 알람에 일어나자마자 씻고 내려가서 밥을 먹었다. 그리고 점심을 만들었다. 점심은 어제 사온 베이글에 크림치즈. 쿠키도 챙기고 비타민워터도 챙겼다. 미국산 원조 비타민 워터. 호박파이도 어제 사와서 한 조각 넣었다. 오늘은 그림도 그릴 예정이므로 클립보드 두개랑 A4 용지 몇 장, 그리고 색연필도 가방에 넣었다. 모든 준비를 끝내고 출발. 이제 익숙해져버린 메가버스를 타고 야상 모자를 접어 안대를 대신하여 눈을 가리고 눈을 감았다 뜨니 베이브릿지를 건너고 있었다. 좋다. 아침에 버스를 타자마자 잠자고 일어나면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해 있으니. 저 멀리로는 금문교가 보인다. 오늘 우리가 갈 곳. 이번 일주일 내내 날씨가 좋다고 해서 참 다행이다. 한국에서 우산을 챙겨왔는데 쓸 일이 없다. 앞으로도 계속 안썼으면 좋겠다.

 

  칼트레인 정류장에 버스를 내리고 마켓 스트리트까지 걸어갔다. 여기가 중심가. 바트랑 온갖 버스 등등이 다니는 거리다. 일차 목적은 뮤니 3일 패스를 사는 것. 가다가 중간에 월그린에 들려서 있냐고 물어보니까 교통카드를 주면서 3일 쓸수 있게 해준다고 했다. 그런데 카드 값이 3달러. 둘이 하면 6달러. 우리는 분명히 어제 종이로 된 것을 보았는데 여기에 물어보니 종이로 된 것은 없다고 했다. 교통카드값까지 내면서 저걸 사긴 상당히 아까운데... 일단 알겠다고 하고 나갔다. 지금 당장 살 필요는 없으니 몇 군데 더 둘러보기로 했다. 마켓스트릿 파웰역 앞에 있는 가장 큰 월그린에 들어가서 물어보니 종이로 된 것은 없다고 했다. 어디서 파는지 아냐고 물어보니 나가서 오른쪽으로 걸어가면 부스가 있다고 했다. 알겠다고 하고 가게를 나왔다. 일단 갔다. 쭉쭉쭉 걸어서. 부스는 안보였지만 한 블럭을 가라고 했으니 갔는데... 종이로 된 것을 내가 샌프란시스코에 처음 온 날도 누가 사는 것을 봤는데 없다고 하니 참 이상하다. 다른 월그린으로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가볼까 하다가 고개를 돌렸는데 부스가 보인다! 티켓이라고 적혀있고 시티패스 광고가 붙어있는 것을 보니 틀림없는 뮤니패스 파는 부스이다. 줄을 서서 매표소 안을 살펴보니 종이로 된, 인터넷에서만 보던 여행객이 가지고 다니던 뮤니패스 종이가 보인다. 우리 차례가 되어서 3일권을 달라고 하니 친절히 오늘 날짜를 긁어서 설명도 다 해주면서 준다. 3일권은 22달러. 1일권은 14였나 그랬고 7일권은 27인가 그랬는데 우리는 월화수만 시내를 돌아다닐 것이므로 7일권 욕심도 났지만 3일권으로 했다. 자세한 것은 구글에 munipass라고 치면 영어 홈페이지가 나오는데 겁먹을 것 없이 대강 해석하면 다 해석된다. 미국여행을 하다보니 왠만한 정보는 구글에서 미국 홈페이지 들어가서 얻는게 더 빠르고 정확했다. 네이버나 다음에서 검색해서 국내 여행자들의 블로그를 보면 많은 것을 얻을 수는 있지만 정확하지 않은 정보들이 많이 있었다. 그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가격. 기간이 지나면서 오른 것들도 상당히 많은데 모두 다 당시의 내용이 적혀 있으므로. 뭐, 나의 블로그도 그 중에 하나겠지만 말이다. 이래서 고기를 잡아주는 것이 아니라 고기잡는 법을 알려주는 것이 낫다고 하나보다.

 

  기분 좋게 뮤니패스를 사고 나서는 버스를 타고 금문교로 가야 했는데 바로 앞에 샌프란시스코의 명물, 우리는 그동안 눈으로만 구경했던, 그래서 엄청나게 타고싶었던 케이블카가 회차를 하고 있었다. 종점에서는 사람의 힘으로 원형의 판 위에서 돌려 앞뒤를 바꾸는데 항상 종점에서는 사람이 많이 기다리고 있어서 다 안태운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우리 눈 앞에는 줄도 짧은 것 아닌가. 3일동안 무제한으로 뮤니 교통수단을 탈 수 있겠다, 모든 것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일단 줄을 서서 올라탔다. 여자친구는 바깥 자리에 앉고 나는 그 앞에 매달려 탔다. 케이블카는 매달려서 타는게 또 묘미 아니겠는가. 사람들이 이렇게 타는 모습들을 보면서 얼마나 부러웠는지. 우리는 힘들게 두 다리로 걸어다니고 있었는데...

  잠시 후 출발했다. 원리가 정말 신기했는데 레일 중앙에 잇는 곳에 있는 케이블과 객차가 연결되어 언덕도 오르내리고 할 수 있는 것 같다. 작동하는 것도 앞뒤에서 레버를 잡고 돌리고 했는데 도통 어떻게 하는 것인지 보고 있는데 너무 신기했다. 마주오는 케이블카가 등뒤로 지나가는 짜릿함도 느끼면서 바람을 가르며 매달려 가는데, 여기서 보는 샌프란시스코는 걸어다닐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신이나서 사진을 마구마구 찍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은 비단 우리뿐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여행객이 셀카에, 친구들의 모습에, 케이블카에 탄 관광객들은 한 순간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우리와 같이 셔터를 눌러댔다. 샌프란시스코의 명물, 케이블카를 타는 기분은, 타본사람끼리만 알 것이다.

  언덕을 다 오르자 저 밑으로는 바다가 보였다. 걸어가면서도 봤던 모습인데 또 여기서는 왜이렇게 다르게 느껴지는지. 언덕이 많아 힘든 도시라고 하지만 언덕이 많아 경치가 좋은 도시가 샌프란시스코 아니겠는가. 굽이굽이 언덕을 오르내리는 것도 여행객들에게는 많은 재미를 선사하는 것 같다. 조금 있자 차장이 롬바드길이라고 말했다. 롬바드길? 굽이굽이 내리막에 꽃밭으로 아름답다는 롬바드길, 우리가 가려고 했던 곳인데. 이미 이곳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자리를 잡고 사진을 찍으면서 몰려있었다. 사람도 많이 내리긴 했다. 금문교에 가려는 우리는 종점까지 가서 버스타고 가자는 계획을 또 까맣게 잊고 바로 내렸다.

 

  롬바드길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샌프란시스코의 모습은 너무 아름다웠다. 빽빽히 박혀있는 집들 사이로 자로 그은듯한 언덕길, 꼭대기에는 우리가 가 보았던 코이트 타워, 그 뒤로 펼쳐진 바다와 만 건너편 흐릿한 육지의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롬바드길은 소문대로 정말 가파랐다. 듣기로는 너무 경사가 급해 차들을 서행하게 만드려고 굽이굽이 길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일방통행 오르막으로 만들면 되지 왜 그랬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래도 이것 때문에 이렇게 멋진 관광지가 되었으니 손해는 아닌 셈이다. 꽃길이라고 하지만 지금은 겨울, 꽃은 한송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멋있었다. 사진을 찍고 우리도 내려갔다. 내려가는데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예정에 없던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오늘은 롬바드길에 올 생각도 안했는데...

  중간 쯤에 자리가 잘 보이는 곳에 앉아 일단 베이글을 먹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오르내리는 계단을 피해 그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그림그릴 준비를 했다. 앉은 장소는 코이트타워, 성베드로바울교회, 베이브릿지가 삼각형 구도를 이루는 멋진 풍경이었다. 그런데 그림에서는 충분히 표현이 되지 않은 것 같아서 아쉽다. 그래도 그림을 그리면서 마음이 평안해 지는 것 같았는데 흥분되는 마음도 가라앉게 되었고 그리려는 곳을 자세히 관찰하면서 집중을 하게 되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따금씩 인사를 해 주기도 했고, 그림을 그린다고 말하며 지나가기도 했으며 어떤 사람은 우리 뒤에 몇 분 동안 서서 우리를 지켜보기도 하였다. 뭔가 예술인이 된 듯한 느낌? 그림을 좀 잘 그렸으면 그리면서 옆에 모자나 깡통을 준비해 놓고 돈이라도 던져주길 기대했을 수도 있겠는데, 그러기엔 너무 미안한 그림실력이다.

  30분 쯤 그렸을까. 우리의 그림이 완성이 되었다. 여자친구랑 나랑 같은 곳을 바라보고 그림을 그렸는데 서로의 그림은 확연히 차이가 났다. 나는 대부분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려고 했고 여자친구는 중심이 되는 것들과 자신이 바라보고 표현하고 싶은 것을 '강조'해서 표현했다. 신기했다. 같은 것을 다르게 표현할 수도 있다는 것이. 서로 잘그렸다고 칭찬을 하는 것은 자신이 그림을 잘 못그렸다는 생각이 깔려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미술관에서 경험하고 느꼈던 것 처럼 이건 누가 잘그리고 못그리고의 차이가 아니라 표현하는 방법의 차이일 뿐, 모두 다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재미있었다. 3초 짜리 사진을 십수장 찍는 것 보다 30분 짜리 그림을 한장 그리는 것이 이렇게 신선한 재미를 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롬바드 길 아래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서는 케이블카를 기다렸다. 저 멀리는 알카트라즈섬이 정면으로 보였다.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은 경치 하나는 정말 끝내주는 곳에 사는 것 같다. 다만 안타까운 점은 케이블카 소리가 너무 시끄럽다는 점. 대신 집값은 저렴할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다.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케이블카를 타고서는 종점까지 갔다. 처음 샌프란시스코에 온 날 왔었던 피셔맨스 와프. 스타벅스 고객만 이용할 수 있다는 화장실 안내문구를 못 본척 무시하고 화장실을 들렸다가 30번 버스를 타러 정류장을 찾아갔다. 지난주에 시청에서 뜯어온 지도가 제일 유용하다. 버스 노선이 잘 나와 있고 크기도 작아서 들고 다니면서 보기에 딱이다. 다른 관광객도 우리랑 같은 지도를 많이 들고 다니는 것을 보면 잘 집어온 듯.

  가는 길에는 기라델리 초코렛 공장이 보였지만 구경은 다음에 하기로 하고 지나갔다. 30번 버스를 타는 곳에 도착하니 때마침 버스가 왔다. 그런데 타려고 하자 운행을 마쳤다고 그냥 가버렸다. 종점도 아닌데 운행을 마쳤다니, 이것은 무슨 상황인지 어리둥절해 하면서 버스 정류장에 붙어있는 노선표를 다시 꼼꼼히 보는데 옆에 있는 중국인 느낌의 아저씨가 말을 걸었다. 골든 게이트 브릿지에 가냐고 하면서 먼저 30번을 타고 라구나 스트리트에 내려서 28번을 타라고 했다. 우리도 알고 있던 방법인데 한 번 더 이렇게 알려주니까 안심도 되었지만 항상 여행지에서 만나는 친절한 외국인을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면서 과도하게 친해지지는 않기로 했다. 조금 기다리자 30번 버스가 왔는데 이 버스는 태워준다. 여기까지만 운행하는 차가 있는가 보다. 조금 지나자 라구나 스트리트가 나왔고 아까 중국인 아저씨가 기사아저씨한테 말해주어서 기사 아저씨는 라구나 스트리트에 왔다고 큰 소리로 일어나서 공지를 해 준다. 나 말고도 여러명이 내렸다. 골든 게이트 브릿지에 버스를 타고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인가보다. 28번 버스밖에 가지 않으니.

  정류장 이름이 항상 길 명칭으로 되어 있어서 길찾기가 매우 쉽다. 예를 들어 마켓 스트리트와 4번가가 만나면 정류장 이름은 그냥 'Market st & 4th ave'다. 또 길이 일자로 쭉- 잘 뻗어 있어서 길을 잃을 염려도 적다. 내가 아는 길만 찾으면 그 길로 쭉 가면 아는 장소로 갈 수 있으니까. 굉장히 편하다. 우리나라도 새주소로 바꾸면서 길 이름을 많이 하고 있는데 편할 듯 하면서도 골목길이 많은 우리나라에 잘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기다리자 28번 버스가 왔고, 아까 내렸던 사람들이 다 탔다. 만약 나 혼자 왔다면 자전거를 차고 금문교(Golden Gate Bridge)까지 갔겠지만 그렇지 않으니 버스를 탔는데, 역시 차가 편하다. 그래도 자전거는 자전거 나름대로의 묘미도 있지만. 시가지를 벗어나자 고속도로 같은 곳을 금새 달려 금문교에 도착했다. 금문교를 지나가려면 통행료를 내야 한다. 물론 차의 경우에만. 그래서 그런지 이 버스는 바로 아래 주차장으로 가서 회차를 해서 다른 방향으로 계속 간다. 차를 타고 금문교에 가까워질수록 내 마음이 떨려 왔는데 버스를 내리자 마자 그 마음이 폭발할 것처럼 기뻤다. 그토록 보고싶었던 금문교. 이렇게 내 눈으로 직접 보게 될 줄이야. 작년에 말레이시아에서 쌍둥이빌딩을 보았을 때 벅차오르던 그 감격이 다시 재연되는 듯 했다. 이곳저곳에서 금문교를 배경으로 사람들이 사진을 찍었다. 우리도 사진을 찍는데 옆에 중국인 가족이 사진을 찍길래 찍어준다고 하니까 먼저 찍어주겠다고 해서 우리를 먼저 찍어줬다. 흔들리게. 물론, 흔들린 것은 집에 와서 알았지만. 그래도 우리를 찍어줬으니까 나도 사진을 찍어주고 바이바이. 우리도 번갈아가면서 이 포즈, 저 포즈, 온갖 포즈를 취해가며 사진을 찍고 삼각대를 세웠다가 접었다가, 금문교에 올라가보지도 않고 앞에서만 사진작가 놀이를 했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이제 올라가보기로.

  바로 옆에는 기념품 샵이 있는데 금문교 관련 기념품들을 '비싸게' 많이 팔고 있었다. 그래도 모든 기념품 샵이 그렇듯이 다 사고 싶은 것들... 나중에 사기로 하고 금문교로 올라갔다. 올라가는 길에도 사진을 찍기 좋은 장소들이 많아서 사진은 계속 찍었다. 절반이 넘는 사람들은 금문교를 건너지 않고 조금만 가 보고 다시 돌아오거나 아니면 아예 앞에서 사진만 찍고 가는 듯 했지만 우리는 금문교를 건너갔다 오기로 했다. 걸어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도 많았지만 우린 자전거가 없으니. 거대한 주탑이 내 눈 앞으로 다가올수록 멀리서 보던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들었다. 거대한 탑 꼭대기를 보고 있노라면 어지럽기도 했고 무섭기도 했다.

  다리를 건너면서 볼 수 있는 경치도 일품이었다. 오른쪽으로는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의 높은 빌딩들이 보이고 정면으로는 바다가, 왼쪽으로는 소살리토 작은 마을이 보였다. 소살리토도 가고 싶었지만 일정을 짜다보니 패스. 여행을 하면서 버리는 것도 매우 중요하므로 과감히 포기했다. 이렇게 보면 '선택과 집중'이라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 같다. 학교 구조조정 하면서 학과를 없앤다, 만다 하면서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인데, 좋은 단어라고 본다, 나는. 살면서 하고 싶은 것을 꼽으라면 모든 것을 다 해보고 싶은 것이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그럴 수 없는 것이 현실이고 또 그런 것이 인생이기에 반드시 살면서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오는데, 이 순간이 참 '고통'스럽다고 표현할 만큼 힘든 순간인 것 같다. 많은 것들 중에서 어떤 것을 '포기'한다는 것. 그러나 포기한 만큼 '선택'한 것에 '집중'을 해야만 선택한 것이 가치있는 것이 되고 보람된 것이 된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하겠다. 인생의 교훈을 여행하면서도 느끼게 된다. 이미 우리는 많은 것들을 포기했지. 대신 선택한 것들에 대해서 집중하고 있는 것 같고, 또 그러면서 많이 누리고 있는 것 같다. 지금 금문교를 걸어서 건너는 것도 다른 볼거리들을 많이 포기한 대신 하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대신 또 걸어서 건너지 못하면 볼 수 없는 것들을 누리고 있으니 결국 쌤쌤인가? 참... 써놓고도 복잡하다, 뭔가.

 

  바닷바람을 맞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며 어느샌가 금문교를 다 건너왔다. 사진을 찍고 건너느라 50분 정도 걸린 듯. 건너편에도 주차장이 있고 비스타 포인트(vista point)가 있었다. 여기서 보는 것도 정말 장관이다. 멋있다. 동상이 있어서 사진을 찍는데 흑인 남자가 와서 말을 건다. "곤니치와" 반사적으로 한국인이라고 말하자 한국에 가 본적이 있다면서 친한척을 한다. 미국인들은 길거리에서 만나도 친구라고 하던데 우리에겐 익숙치 않다. 종로 3가에 가봤다고 하면서 어쩌구저쩌구. 비행기 타고 오면서 북한의 모습을 봤다는데 무섭다고 해서 "Me too"라고 하자 깔깔 웃으며 내 어깨를 툭 친다. 그러더니 굿바이. 바로 가방이랑 지갑, 여권 등등을 확인했다. 깊숙히 넣어 놓아서 안전했지만 혹시나 해서. 디카랑 핸드폰까지 다 확인을 하고 나서야 안심이 되었다.

  경치를 조금 더 감상을 하다가 자리를 잡고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담벼락 위에 올라 앉아 여유를 가지고 그림을 그리는데 이 때도 관찰력 상승. 건너오면서 계속 봤던 풍경이지만 그리려고 보니까 신기하게도 안보이던 것들이 새록새록 보이기 시작한다. 주탑의 모양도 정확히 다시 보게 되고 건너편에 있는 빌딩의 배치와 모양들, 저 멀리 보이는 산도 눈에 안보였는데 보이게 되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인사도 해주고 말도 걸어주었다. 기억나는 중년의 백인 아주머니가 "What are you doing?"이라고 해서 "Drawing."이라고 하니까 한 마디 했는데 아직도 그 억양과 말투가 기억에 남는다.

 

"Gorgeous!"

 

  몰랐는데, 최고의 칭찬의 의미로 쓰이는 말이라고 여자친구가 말해줬다. 아... 완전뿌듯. 즐거운 마음으로 그림을 완성. 롬바드길에서 그린 것 보다는 시간이 짧았다. 바다랑 하늘이 많이 있어서 난이도는 아까보다 낮았던 것 같다. 그리고 나서 서로 또 그림을 비교해 보니 완전다르다. 나는 사실주의인 듯 하다. 보는 그대로를 그림으로 그려냈는데 여자친구는 이번에도 그리고 싶은 것들만 강조해서 표현을 했다. 놀란 것은 땅과 바다가 일직선으로 가로로 보이는데 여자친구는 둥글게 표현하고 오른쪽에는 금문교를, 왼쪽에는 저 멀리 아주 작게 보이는 베이브릿지를 그린 것이었다. 틀에 맞게 사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렇게 그림을 그린다는 것을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인데, 참 놀랍다.

 

  그림을 다 그리고 나서는 다시 열심히 다리를 건넜다. 사진 안찍고 얼른 건너기로 하니까 30분만에 건넜다. 조깅을 하면서 운동을 하는 사람도 종종 볼 수 있었는데 부러웠다. 조깅으로 왕복 한 시간 정도 태평양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금문교에서 운동을 하는 느낌이란 어떨까.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송글송글 맺힌 땀도 말려주면서. 기분이 정말 좋을 것 같다. 다 건너 와서는 해가 조금씩 저물고 있어서 약간 어둑해졌다. 야경도 보고 싶지만 그럴 수 없기에 아쉬운 마음을 카메라 셔터로 달래본다. 기념품 샵에 들려 아까 사고 싶었던 금문교 모양 사진 꽂이를 사려고 했는데 '혹시 시내에서도 더 싼 가격에 팔지 않을까?'하는 마음이 들어서 다시 놓아두었다. 피어39에서도 머그컵을 많이 봤는데 시내에 있는 월그린(Walgreens)가 훨씬 쌌기 때문이다. 안팔면 나중에 다시 오기로 하고.

  버스를 기다리고 다시 되돌아갔다. 전차처럼 위에 전선이 연결되어 있는데 버스처럼 움직이는 이 차는 정말 신기하다. 전깃줄이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탈선도 안되고... 일자로만 되어 있으면 이해를 하겠는데 다른 노선들하고 겹치기도 하면서 교차로에서는 정말 거미줄이 따로 없는데 어떤 원리로 움직이는지 가까이서 탐구해 보고 싶다. 케이블카도 마찬가지. 도로 아래로 케이블이 움직인다는데... 교통수단마저도 신기한 샌프란시스코이다. 어쨌든 우리는 버스를 내려 피셔맨서 와프 근처에 인앤아웃 햄버거가 있는 것을 알아두었기 때문에 내려서 조금 걸어 햄버거를 먹으러 갔다. 미국 와서 제일 맛있는 것이 인앤아웃인 듯. 나도, 여자친구도 너무 좋아해서 햄버거에 감자튀김까지 두개씩 시켜서 다 먹는다. 오늘은 집에서 가져온 음료수가 남아서 음료수컵은 따로 시키지 않았다.

 

  케이블카를 타러 돌아오는 길에서는 열쇠고리를 샀다. 3월 초에 친척들이 다 집에 모인다고 해서 유초중고등학생 동생들 줄 것이 필요했는데 이게 딱인 것 같다. 많은 곳들 돌아다녔는데 여기가 제일 싼 듯. 6개에 4.99달러. 이쁜것들이 너무 많아서 다 사고 싶었지만 어짜피 내 것도 아닌데 적당히 골랐다. 증정용 12개를 사고 소장용 6개는 심혈을 기울여서 골랐다. 작은 것이지만 쇼핑은 기분을 좋게 만든다. 왜일까.

  멀지 않은 곳에 종점이 있어서 오늘의 마지막 케이블카를 타고 언덕을 넘어 파월역으로 갔다. 그리고 걸어서 칼트레인, 메가버스 정류장으로. 오늘도 어김없이 타자마자 잤다. 오늘은 처음으로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샌프란시스코를 돌아다니니 세 번 만에 샌프란시스코 적응을 다 한 듯 했다. 샌프란시스코, 올 때 마다 새로운 것 같고 매력이 넘치는 도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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