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13 미국 서부

<미국여행 14일차> 샌프란시스코 - 현대미술관, 시청, 산왕반점

inhovation 2016. 9. 25. 00:00

2013년 1월 24일 목요일

 

  어제 늦게자서 아침에도 일어나는데 참 힘들었다. 점점 몸이 지쳐가는 것 같은 느낌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밥을 하고 베이글을 구웠다. 나파밸리 갈 때 조금 해 가서 오후 되서는 배가 너무 고팠기 때문에 오늘은 다섯 개나 구워서 크림치즈를 발랐다. 그리고 바나나랑 쿠키도. 점심으로는 든든하겠다 정말. 해도 뜨기 전에 올드 새크라멘토로 갔다. 메일로 메가버스 정류장이 조금 바꼈다고 해서 근처를 조금 돌아다녔다. 주소를 보고 찾는데 길 주소라 편하긴 한 것 같은데 번호 방향을 잘 모르니까 이리갔다 저리갔다 했다. 그러면서 새벽 미명의 올드새크라멘토 사진도 많이 찍었다. 낮에 오는 느낌하고는 완전 달랐다. 약간 으슥하기도 하면서 뭔가 느낌이 있는게 멋있었다. 그러다가 원래정류장 쪽으로 가고 있는데 줄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물어보니까 메가버스 기다리는 사람들이란다. 뭐지, 정류장이 바꼈다고 메일이 왔었는데 그대로라니. 뭐, 그래도 찾은 거니까 우리도 뒤에 섰다. 사오십대 정도 되 보이는 아줌마들이었는데 아시안계 사람 같았다. 대장격으로 보이는 아줌마가 먼저 물어 보았다.

 

"Are you Korean?"

"Yes, are you Chinese?"

 

  아줌마가 자기들은 아메리칸이라고, 홍콩 사람인데 30년 동안 여기에 살았다고 한다. 미국 국적을 취득했나보다. 이 짧은 대화가 인연이 되어 이야기를 이어나갔는데 가장 기본적인 대화, 학생이냐, 왜, 얼마나 왔냐 등등을 물어봤다. 나는 또 아는 중국어 몇 마디 해줬다. 조금이라도 외국어는 알고 있는게 참 재미있는 것 같다. 이렇게 좀 떠들다가 아까 대장 아줌마가 '자기가 한국에 갈 때 언제 가는 것이 가장 좋은지' 물어봐서 나는 "한국은 사계절이 뚜렷해서 언제 와도 멋지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겨울에 오면 눈을 볼 수 있고, 여름에 오면 푸른 산을 볼 수 있다."고 했다. ... 그게 그말이니까, 뭐... 그런데 아줌마가 갑자기 "쭈쭈?" 이런다. 뭘까. 자기 친구가 쭈쭈를 추천해 줬다고 하는데 왠지 제주도를 말하는 것 같아서 "제주?" 이러니까 맞다고 하면서 완전 좋아한다. 제주. 발음이 어렵나?

  차에 타서는 2층 맨 앞자리에 앉아보았다. 저번부터 앉고싶었던 자리. 앞이 훤하게 트인 것이 너무 시원하다. 2층 버스에서 이런 자리도 앉아보다니. 기분이 좋았다. 다만 불편한 것이 한 가지 있었는데 발을 앞으로 펼 수가 없다는 것. 다른 자리는 앞좌석 아래 공간으로 다리를 조금 펼 수 있는데 여긴 막혀있어서 그러질 못했다. 버스 출발을 기다리면서 아까 그 아줌마들이 사진을 찍길래 앉으라고 하고 내가 찍어주었다. 내 옆 맞은편 맨 앞자리에는 백인 여성이 탔는데 앉자마자 신발을 벗고 대각선으로 발을 쭉 뻗어 올려 앞에 있는 봉 위에 다리를 걸친다. 안전벨트도 안하고. 처음으로 본 비매너 미국인이었다.

  오늘은 버스가 정각에 출발하였다. 버스가 움직이는데 마치 공중에 떠 가는 느낌이다. 재밌었다. 한국에서 버스 맨 앞자리에 타는 것과는 느낌이 정말 다르다. 고속도로에 접어들고 차가 정속으로 움직이자 나도, 여자친구도 골아떨어졌다. 이제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풍경 구경은 많이 해서 더이상 흥미를 잃었기 때문에 미련없이 잠을 청하나 보다. 얼마나 잤을까, 아침에도 흐리긴 했는데 샌프란시스코는 맑을 줄 알았더니 구름이 잔뜩 끼었다. 오늘 금문교 가기는 글렀다. 날이 좋으면 금문교에 가고 흐리면 현대미술관을 가려고 했는데, 오늘은 실내에 있어야겠다. 베이브릿지를 건너는데 옆에 공사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베이브릿지 바로 옆에 똑같이 다리를 하나 더 놓고 있었다. 제2베이브릿지인듯 하다.

 


  버스를 내리고 나서는 다운타운으로 걸어갔다. 저번에는 신기해서 구경하면서 걸어갔는데 오늘은 후다다닥. 샌프란시스코에는 홈리스들이 많았다. 새크라멘토 다운타운에서는 볼 수 없었는데. 노숙자들은 대개 굴다리 밑에서 마트 카트에 잔뜩 짐을 싣고 잠을자거나 돌아다녔다. 옆을 지날 때 나는 냄새는 정말, 이것도 상상을 초월한다. 온갖 그 땀에 쩔은 체취가 풍기는데, 토나오기 일보 직전이다. 개를 끌고 다니는 홈리스들도 많았는데 이유는 잘 모르겠다. 나는 개가 있으면 덜 외롬고 심심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여자친구는 홈리스들 끼리 시비가 붙었을 때 개도 한 편이 되어 싸우기 위해서 일거란다. 정말... 기발하다.

  날은 흐렸지만 비가 올 것 같지는 않았다. 바닥을 보면 어제도 샌프란시스코엔 비가 많이 온 듯 했다. 오늘의 첫 번째 목적지는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an Francisco Museum of Modern Art, SFMOMA)'이다. 유명하다고 하지만 우리는 어제 알았다. 크로커박물관의 꿈을 안고 선택한 모마! 특별히 매 월 첫째주 화요일은 무료 입장이라고 한다. 입장료는 18달러. 다다음주가 바로 이 날이지만 우리는 이 날 LA로 떠난다. 그래도 이 날은 사람이 바글바글할 것이라는 가정을 하며, 오늘 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합리화를 하며 미술관으로 갔다. 버스도 40분 정도나 일찍 도착해서 구경을 하면서 천천히 갔는데 문을 아직 안열었다. 우리는 또 입구에 붙은 영어 안내문을 확인하며 번역 공부를 시작했다. 11시 오픈.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았다. 주변 구경을 하기로 하고 길을 건넜다. 건너편에는 모스콘센터가 있고, 한국의 코엑스 같은 곳이라는, 메트레온이라는 백화점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넓은 공원. 주변에 다른 미술관도 있었는데 왠지 우리의 미술코드(?)와 안 맞을 것 같은 요상한 그림들이 걸려있어서 가지 않기로 했다. 공원의 잔디밭 뒤로는 멋진 교회가 있었고 뒤로는 빌딩숲이 펼쳐졌다.

   

 

  사진을 찍으며 공원을 거닐다가 빌딩숲 사이로 들어갔다. 샌프란시스코에는 빌딩이 정말 빽빽히 있는데 모두 모양은 다 다르다. 최신식 건물은 거의 없고 다 옛날 풍으로 지어진 빌딩들 같은데 그 개성스런 빌딩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겁다. 입구부터 꼭대기까지 어쩜 그 모양들이 각양각색한지. 다음 주에 UC버클리를 갈 때 탈 bart라는 지하철 한 번 구경해 보기 위해 역으로 들어갔다. 우리나라 지하철역과는 별다른 것이 없었지만 상점들이 많지 않았다. 커피숍 한 개만 있어서 은은한 커피향이 지하철 역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그 옆에는 홈리스의 암내가 가득. 한글 안내서도 있어서 한 개 가지고 나왔다. 항상 영어만 보다가 한글로 된 안내서를 보니 무지 반갑다.

  지하철역을 나와서는 서점으로 들어갔다. 한국에도 이쁜 서점이 많지만 여기도 서점들이 다 이쁘다. 어쩌면 뭔가 '있어보이는' 영어 책들만 가득한 공간이라서 그런 신비감이 있는 것일 수도. 책을 좋아하기 때문에 서점 구경도 상당히 재미했다. 엽서들도 이쁜 것이 많이 팔아서 사고 싶었지만, 쇼핑은 항상 관광 마지막 날에 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구매를 할 수 있으므로 자제했다. 다음 주에 왕창 지르겠다. 계단으로 지하도, 2층도 연결되어 있어서 모두 가 보았다. 앉아서 책을 읽는 사람도 꽤 있었다. 흥미로웠던 점은 '게이&레즈비언' 코너가 따로 있었다는 것. 무슨 내용의 책들인지는 모르겠다. 서점 구경을 다 하고 나왔는데 여자친구가 한 한 마디 말이 내 가슴에 완전 꽂혔다.

 

작은 문으로 들어갔는데 넓은 세계가 있다.

 

정말 그랬다. 우리는 작은 문으로 들어갔는데, 세 층 구조로 되어있는 것을 떠나서 모든 분야의 책들, 동서양을 아우르는 온갖 지식이 들어있는 서점이야 말로 온 세계를 품고 있는 곳은 아닌지. 그리고 우리는 이 작은 공간에서 온 세계를 경험하고 누빌 수 있는 것 아닌지. 어쩌면 서점에 들어온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런 엄청난 '권리'를 부여받는 것 아닌지. 이런 생각을 하니 가슴이 뛰어왔다. 그동안 서점을 많이 다녔어도 이런 생각은 못했는데. 멋지다. 내가 나중에 써먹어도 되는지, 블로그에 올려도 되는지 허락을 받으면서 우리는 다시 모마로 향했다. 작은 문으로 들어가서 넓은 새계를 구경하고 나오니까 이미 11시가 넘었기 때문에.

 

 

  매표소 앞에 도착했을 때는 깜짝 놀랐는데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곳의 연령대는 다양했다. 새크라멘토에 있는 크로커박물관은 시골이라서 노인들이 많았었나? 아이를 데려온 젋은 부부부터 대학생 자녀를 데리고 온 중년의 어머니, 할머니, 할아버지도 많이 있었다. 표를 사고 안으로 들어가니 넓은 로비에 저 높은 곳에서 부터 한문으로 무언가 적힌 큰 종이가 드리워져 있는 것이 가장 눈에 띄었다. 잠시 앉아서 가방을 정리하는데 왼쪽에 보니 사람들이 코트를 벗어서 맡기는 모습이 보였다. 돈을 내는 것인까. 궁금해서 가서 물어보니 무료라고 했다. 냉큼 입고 있던 야상하고 백팩을 건네주고 번호가 적힌 라벨을 받았다. 가벼워진 몸으로 입장! 계단을 올라가니 버섯에 눈이 달린 큰 그림이 있었다. 표를 살 때 받은 지도를 보니 5층으로 되어 있었는데 엘리베이터가 보여서 꼭대기로 올라가서 내려가면서 구경하기로 했다.

 

  5층에 내려서는 구름다리를 통해 4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는데 이 구름다리가 철로 되어있는데 아래가 다 보이는 곳이었다. 정말 이런거 정말 무서워하는데, 그래도 사진은 찍고 얼른 안전한 곳(?)으로 대피했다. 그래도 멋지긴 멋졌다. 야외정원으로 가는 길에는 선글라스를 낀 할아버지 조각상이 보여서 똑같이 나도 선글라스를 끼고 사진을 찍었다. 청남방을 입고 왔으면 싱크로율 100%였을텐데, 아쉽다. 야외정원으로 가는 길에는 넓-은 통유리로 다운타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이것 역시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아래에서 올려다보기만 했던 건물들을 5층 높이에서 바라보니 느낌이 또 새로웠다. 현대미술관에서 이렇게 볼 수 있는 것도 현대미술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카페를 지나 야외정원에 가니 도심 숲의 한가운데에서 여러 조각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조금 구경을 하다 카페로 들어와서 큰 거미 조각을 감상했다. 총 5마리의 거미들이 층층이 만들어져 있었는데 발걸음을 잡고 감상하라는 듯한 이끌림이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엄청 유명한 작품. 사실 이 카페도 나중에 알고 보니 엄청 유명한 카페였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엄청 유명한 블루바틀커피(blue bottle coffee)란다. 이건 집에 가서 알게 되서 꼭 가자고 하고 검색을 했는데 현대미술관 안에도 있다고... 그래도 미리 알고 가는 것도 재미있는데, 이렇게 나중에 뒷북치는 것 처럼 알게 되는 것도 꽤 재미있다.

 

 

  4층으로 내려 와서는 지도를 보고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세 장소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두 곳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유명한 작가의 작품 전시 기간이었다. 첫 번째로 간 곳은 '그림자 방' 이었는데 프로젝트가 쏜 빛이 벽에 그림자로 상이 맺히면 크기를 측정해서 라디오 주파수를 잡아주는, 매우 신기한 방 이었다. 앞뒤로 가는 것에 따라 크기도 변하고 몸의 모양에 따라서도 주파수가 바뀌니 정말 재미있었다. 나도 재미 있었는데 나중에 들어온 아이들은 감탄사를 연발하며 춤을 추고 난리도 아니었다. 밖에 있는 방송실 같은 곳은 들어갈 때는 지나쳤는데 나오면서 다시 보니 안에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에 따라 아래 볼륨 노브 같은 것이 자동으로 움직이며 주파수를 맞추었다. 대박 신기했다.

 


 

  첫 번째로 감상한 작품은 제이 드페오의 작품들이다 사진은 찍을 수 없었고 입구만 찍는 다는 것도 허락을 받고 찍었다. 아래 있는 작품은 장미라는 작품인데 안쪽에는 실제 작품이 걸려 있었다. 8년동안 물감을 칠하고 벗기고를 반복해서 1톤도 넘는다고 한다. 사후에 무너져 내리는 작품을 복원했다고. 이 모든 내용을 방금 알았다. 입은 쩍 벌어질 수 밖에. 그래도 모마에서 돌아다니면서는 정말 꼼꼼히 보았다. 나의 생각은 이런 작품의 배경들도 중요하지만 내가 작품을 보고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 때 받은 생각은 '나도 예술을 할 수 있겠다'는 것이었다. 오만한 소리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미술관에서 본 것들이 만만하게 보여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이 화가 말고 다른 화가의 작품도 많이 감상하고 아래 층에 있는 사진전도 꼼꼼히 보았는데 모두 이해하기에는 난해한 것들이 많았다. 다만,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소재들, 물안경도 작품으로 그려내고, 쉽게 볼 수 있는 장소들, 푸른 하늘이라도 표현하는 방법이나 구도에 따라서 모두 나에게 신선함을 안겨주었다. 피카소의 작품들도 볼 수 있었고, 이름은 생각이 안나지만 일자로 선을 그어 놓고 파란, 노란 물감을 모자이크 처럼 칠해 놓은 작품들, 그리고 정말 뭔지 모를듯한 추상적인 작품들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이런 작품들을 보면서 '작가는 과연 무엇을 표현하려고 했을까?'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면서 미술관을 돌아다녔다.

  크로커박물관 이야기 할 때도 썼지만, 어느 날 부터인가 예술이라는 것이 나에게 '잘해야 하는 영역'으로 자리잡은 것만 같은 것이 안타까웠다. 미국에 오기 전 어머니께서 일하시는 곳에서 미술치료 관련된 것을 체험하시면서 그려온 그림들, 만들어온 작품들을 보았을 때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 보아오던 어머니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마치 초등학생 정도의 아이가 만들었을 법한 그림과 작품을 보면서 어머니께서 무엇을 표현해서 그린 것이라는 설명을 해 주시는데, 뭔가 설명할 수 없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냥 지금 떠오르는 말로는 '아, 어머니 안에도 이런 모습이 내재되어 있구나.' 정도라고 하면 적당할지 모르겠다.

  미국에 오면서 그림을 몇 장 그려가야겠다는 나의 생각은 아직 완전히 깨어지지 않고 자꾸 주저하게 되었지만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에 와서 이런 생각을 한 번 더 깨뜨릴 수 있게 되었다. 미술이라는 것을 내가 이제 와서 잘 해야 할 필요도 없거니와 그렇다고 일부러 피할 것까지는 없지 않을까? 내 기분이 좋을 때 또는 기분이 아주 침체되어 있을 때 연필이든 붓이든, 손에 잡고 종이든 어디든 그려내는 것이 나의 내면의 무언가를 표현해서 남들에게 보여진다면 이런 것도 하나의 작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런 의미에서 '나도 예술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지 절대 화가들의 그림 실력을 비하한 것은 아니었다.

  사진전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맞는 말이고 교과서에 실리는 말이었지만, 항상 사진은 흔들리지 않아야 하고 수평이 맞아야 하며 신체는 어설프게 잘려져 나가면 안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사진전에서 보는 사진들은 흔들려서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사진도 있고, 그러나 무엇을 표현한 것인지는 알 것 같은, 수평이 안맞는 사진은 흔했으며 꼭 몸이 다 나오고 반만 나오고 하는 법칙을 깬 것들도 다수 있었다. 그리고 꼭 멋있는 사진들 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술집에서 여자들과 노는 남자들의 사진도 굉장히 흥미로웠으며 길거리의 사람들을 찍은 사진들도 하나 하나 구경하면서 재미를 느꼈다. 이렇게 보면 나도 내가 찍은 사진들을 잘만 조합하고 사진전을 한다면 남들에게 하나의 재미를 안겨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결혼 할 때 사진전 비슷한 것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방법을 잘 연구해 보아야 하겠다.

 

 

  이렇게 미술관에서 매우 많은 것들을 느끼고 두 시간 반에 걸쳐 구경을 다 하고 1층으로 내려왔다. 사실 더 볼 수도 있고 제대로 본다면 하루 종일도 부족할 것이다. 그러나 배가 너무 고파서 어쩔 수 없었다. 베이글을 먹고 싶었지만 안에서는 먹을 수도 없을 뿐더러 가방 속에 있어서 만져보지도 못했다. 1층에 내려와서는 옆에 있는 기념품 가게를 구경했다. 미국에 와서 또 느낀것은 이런 기념품이 정말 잘 되어 있는 것 같다. '브랜드화'라고 해야 할까? 도시 이름들도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어서 여러 물건들을 파는데, 특히 옷이나 모자 같은 것은 사람들이 많이 입고, 쓰고 다닌다. 여튼, 고가의 미술품부터 다양한 종류의 기념품들이 있는 넓은 매장을 가로질러 우리는 그냥 나왔다. 위에 있는 LOVE 붉은 메탈 조각 장식은 70달러가 넘었다. 정말 완전 예뻤는데.

 

 

  겉옷과 가방을 찾고 미술관을 나와 앞에 있는 공원으로 갔다. 주린배를 채우기 위해 벤치에 앉아서 베이글과 쿠키를 한 개 먹었는데 어디선가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왔다. 그리고 머리를 흔들며 우리에게로 걸어왔다. 몇 초 지나지 않아 두세마리가 더 왔다. 조금 지나자 수십마리가 몰려들었다. 어디선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가 빵을 먹으니까 단체로 부스러기라도 얻어먹으려고 몰려든 것이다.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미국 비둘기는 사람도 별로 안무서워하고 너무 가까이 다가와서 발로 땅을 '빵' 하고 밟아도 잘 도망가지를 않는다. 영화에서나 보는 비둘기 모이주며 산책하는 사람들 때문에 길들여진 것 같다. 공원은 우리가 마음놓고 점심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메트레온 백화점으로 들어갔다. 푸드코트가 많아서 식당 의자 앞에 앉는 것은 조금 눈치보였는데 영화 매표소 앞에 의자랑 테이블이 있어서 여기 앉았다.

  미국은 매표소 직원이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이다. 아까 갔었던 모마 역시 안에 있는 안내원들이 모두 할머니나 할아버지였다. 우리나라 같으면 젊은 사람들이 모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법한 곳인데 미국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노후에 간단한 소일거리로 이런 일들을 하기 위해 노인들이 나오는 것일까? 생각하다보니 경비원은 모두 젊은 남자였다. 우리나라에선 경비원이 모두 할아버지들인데. 왜 우리나라랑 이렇게 다른 직업에 따른 연령배치가 나타나는 것일까? 남은 기간동안 좀 더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다.

 

  메트레온에 앉아서는 오랜 시간 박물관에서 굶주리며 걸어다닌 육신을 달랬다. 그리고 오후에 어디를 갈지 정했다. 바로 옆에 있는 다운타운 백화점 구경과 떨어져있는 시청, 재팬타운, 산왕반점 코스를 두고 고민을 했는데 멀리 가보기로 했다. 가장 큰 길 중 하나인 마켓거리(Market st.)를 걸어 내려갔다. 높은 빌딩가가 이어졌지만 중심가에서는 조금씩 벗어나는 느낌이었다. 흑형들이 점점 많아지고 무리지어 다니는 사람들이 길을 막고 큰 소리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이사이로 샥샥 피해가며 갈길을 바삐 갔다. 느긋하게 구경하면서 가고 싶었는데 혹시나 눈이라도 마주친다면...

  시청 앞에 큰 분수대와 공원에도 홈리스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길을 누비는 홈리스와 누워있는 홈리스들이 가로수등 좌우로 삼삼오오 모여있었다. 사진을 마음놓고 싶었지만 렌즈 방향이 홈리스들에게 향하면 안되니까 참 사진도 대놓고 마음껏 찍을 수 없었다. 그래도 저 멀리 보이는 시청은 나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멀리서 봤을 때 '저 건물은 무엇일까?' 궁금했는데 가까이 가 보니 시청이라는 것을 알고 많이 놀랐다. 시청 건물이 이렇게 멋있어도 되는 것인가. 무슨풍의 건축양식인지는 몰라도 마치 이슬람이나 아시아 동쪽, 저기 터키 쯤 되는 곳에서나 볼 법한 멋진 시청 건물은 우리 말고도 관광객이 꽤 있었다. 도시를 도는 시티투어 차도 꼭 들리는 필수 코스일 만큼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광장을 가로질러 시청으로 다가가니 멀리서만 보이던 웅장함이 배나 더해졌다. 높은 지붕 꼭대기의 세세한 무늬까지 샌프란시스코 전체에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시청 안으로 들어가 볼 수 있을지 궁금해서 입구에서 서성이다가 계단을 올라 들어갔다. 비행기 탈 때 검사하는 게이트가 세워져 있고 경비원이 양쪽에서 가방과 옷 검사를 하였다. 시청을 들어가는데 이런 검사까지 해야 하나 싶었지만 밑져야 본전, 경비원에게 가서 물어보니까 들어가서 얼마든지 돌아다니고 구경할 수 있다고 해서 얼른 가방을 벗고 검사에 순순히(?) 응했다.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한 경비원은 들어가라고 사인을 해 주었고 우리는 입이 벌어진 채로 시청으로 들어갔다. 화려했던 외부만큼이나 내부 역시 우리 입을 쩍 벌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특별히 오늘은 무슨 행사가 있는지 내부 홀은 식탁과 기본 반찬(?)인 치즈로 세팅이 되어 있었고 들어갈 수는 없었다. 다만 둘레로는 돌아다닐 수 있어서 내부를 구경하는데는 큰 지장이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행사는 발레파티라고, 저녁에 큰 행사가 있다고 직원들도 다 퇴근하면서 신기해서 사진을 찍을 정도였다. 참석자들은 웨딩드레스보다 더 화려한 드레스들을 입고 행사장을 미리 돌아다녔다. 다들 키도 크고 얼굴도 이쁘고 늘씬한 여자들, 마치 영화배우 같은 사람들이었다. 정말 영화배우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2층, 3층, 4층까지 올라갈 수 있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고 계단으로도 올라갔다. 여기 시청은 엘리베이터도 멋지다. 한층, 한층 올라가서 볼 때마다 새로운 느낌이 물씬 풍겨왔다. 높은 곳에서 행사장을 바라보니 더 넋이 빠지는 것 같았다. 행사 때 사용할 조명 덕분인지 시청 내부의 조각들이나 창문 디자인, 그 외에세 세세한 것들 모두가 돋보였다. 어떻게 우리는 날도 딱 이런 날을 맞춰서 왔는지, 정말 기분이 좋았다. 멋진 시청을 꼼꼼히 돌아보는 것은 미술관을 돌아보는 것 만큼이나 재미있었다. 샌프란시스코 시청은 관공서라기보다 하나의 거대한 미술관, 박물관의 느낌이 더욱 강했다.

  우리나라도 서울 시청을 이런식으로 꾸몄으면 어떠했을까 싶다. 어렸을 적에 서울시청 첨탑에 있는 어떤 조각을 떼 낸 것으로 기억한다. 일제의 잔재라고 해서 분리하는 작업을 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람마다 의견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런 것도 그냥 원형 그대로 보존해 놓고 있는 그대로의 문화재로서 관광지로 활용했으면 어땠을까도 싶다. 그리고 최근에 지어진 신청사에 대해서도 말이 많은데 개인적으로는 별로인 것 같다. 신청사를 꼭 구청사와 어우러지지 않게 이렇게 지었어야 했을까. 샌프란시스코의 시청을 보면서는 이런 것들을 느꼈다.

 

 

  시청을 통과해 후문으로 나왔다. 후문 역시 정문과 같은 양식으로 지어져 있어서 앞에서 보던 아름다움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시청 뒤편에는 전쟁기념 오페라하우스가 있었는데 시청을 보고 나서 그런지 별로 멋있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한국에 있을 때 계획을 짤 때는 이곳에서 공연도 보기로 했었는데... 물론 이런 상황이 될 것이라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지만. 오페라하우스를 지나 북쪽으로 계속 올라가다가 서쪽으로 꺾었다. 바로 오늘의 마지막 코스, 김대중대통령이 망명시절 즐겨 먹었다는 산왕반점으로 향했다. 발걸음은 지칠대로 지쳐 있었지만 힘을 내서 언덕을 올랐다. 깜박하고 오늘 돈을 안챙겨와서 그동안 놀았던 돈에서 남은 돈만 갖고 있었기 때문에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 사먹고 싶은 욕구도 떨쳐냈다. 대강 짜장면, 짬뽕 값 계산을 하고 이 정도면 되겠다 싶어서 가고 있는 것인데...

 

  산왕반점은 재팬타운 안에 위치해있다. 차이나타운과 비슷하게 이곳은 일본느낌이 물씬 풍겨왔다. 작은 공원도 있었는데 여긴 일본식 탑이 세워져 있었다. 일본 간판도 보이면서 한국말로 된 간판도 보였다. 가장 먼저 본 것은 '도레미 노래방' 지도에 표시된 대로 가고 있었는데 산왕반점이 보이지 않는다. 없어진 것인가 궁금해 하면서 너무 많이 온 것 같아서 뒤로 다시 가 보기로 했다. 지도에는 1680번지로 되어 있어서 옆을 봤는데 1700번대. 벽을 보면서 주소를 찾아갔다. 그러다가 1680을 보고 위를 봤는데 친숙한 우리말로 '산왕반점'이 적혀있는 것 아니겠는가. 뒤를 보니 한문으로 적혀있어서 아까는 못봤나보다.

  안으로 들어가니 세네 테이블에 손님들이 있었고 가게는 한적했다. 자리에 앉으니 따뜻한 차를 주어서 쟈스민차일줄 알고 따랐는데 보리차다. 그래도 바람이 쌀쌀해서 몸이 얼어있었는지 따뜻한 보리차를 먹으니 온 몸이 녹는 느낌이다. 조금 있자 메뉴판을 가져다 주었는데 한글로도 적혀 있었다. 많은 것을 구경하기 보다 우리는 짜장면과 짬봉을 주문하고 기다렸다. 우리나라 중국집처럼 음식이 빨리 나오지는 않았다. 피로를 풀며 담소를 나누다 보니 주문한 짜장면과 짬뽕이 나왔다. 맛있겠다. 짜장면은 약간 짠듯 했지만 짜장의 깊은 맛이라고 해야할까, 그런 맛이 강했다. 짬뽕은 돼지고기로 국물을 했다는 것이 한 숟가락만 떠 먹어도 알 정도로 한국의 짬뽕과는 다른 맛이었다. 매콤한 맛도 덜하고. 돼지고기로 국물은 냈지만 들어 있는 것은 각종 해산물. 이 짬뽕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래도 내가 국물을 한 수저 먹자마자 내 뱉은 말은 "맛있다" 였다. 다 먹고 나서 맛 평가를 하자면 '한 번쯤 먹어볼 만한 정도'라고 하겠다. 다만 다운타운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에 뮤니패스 같은 것을 이용해서 버스를 타고 가는 것이 괜찮지 우리처럼 걷는 것은 시간이 많은 사람들이 아니라면 비추. 그래도 지구 반대편에서 느껴보는 짜장면과 짬뽕의 맛을 느껴보기 위해서는 산왕반점을 추천!

 

  지는 해를 바라보며 우리는 바쁘게 다시 메가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갔다. 다음 주에는 뮤니패스를 살 것이니까 이제 이렇게 힘들게 하루종일 걷는 것도 끝이다. 재팬타운을 벗어나서 다운타운 쪽으로 갈 때는 어둑한 길거리에 흑형들이 많이 몰려 있어서 길거리가 조금 위험해 보이기도 했다. 내가 경험해 보지는 못했지만 단지 길거리에 이런 사람들이 많다는 것 만으로도 왜 위험하다고 하는 것일까? 이것도 약간은 인종차별적인 생각은 아닐까? 미국에서 본 흑인들은 모두 개성이 너무 강했다. 옷차림이나 행동들 하나하나가 한국에서 이러고 다닌다면 조금은 심하게 말해 '미친놈' 소리를 들을 정도로. 그런데 이곳에서는 이런 사람들이 너무나도 흔했고 주변에서 뭐라고 하는 사람도 못봤다. 속으로는 뭐라고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는 사람도 없었고. 오히려 각자의 개성이 모두 존중받고 인정되어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거대한 다인종사회인 미국이라는 나라가 건재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어쨌든, 우리는 이런 흑형들 사이를 지나 무사히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자마자 시내를 벗어나기도 전에 눈은 감겼다. 오늘도 제대로 구경했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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