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18일에 써 놨던 일기에서 3가지를 뽑아 재구성 했다. 아내가 겪은 생생함을 전하고자 내가 쓴 일기는 아래쪽에 붙였다. 병원이나 부서명, 다른 사람 실명 등은 블라인드 처리 했다.
1. 진짜 너무 힘들어 했다.
3교대라는 게 육체적으로도 힘들지만 정신적으로도 진짜 힘든 것 같다. 구체적으로 뭐가 힘드냐면,
불규칙한 출퇴근 스케줄은 몸을 상하게 만들고, 첫 출근의 긴장감이 정신적으로도 지치게 만든다. 게다가 다른 회사도 마찬가지겠지만, 생명을 다룬다는 직업 특성 상 이런 것들은 배가 되는 것 같다. 퇴근하고 매일 공부하고 스트레스 받는 모습이 진짜 안쓰러웠다. 나는 그래도 회사 첫 출근하고 그랬을 때 일반 사무직이라 그런지 첫번부터 이렇게 빡세게 그러지 않았는데...
2. 남편인 내가 해줄 수 있는게 그리 없었다.
3교대의 힘든 시간들이 지나고 나중에 아내한테 그랬다. 만약 내가 남자친구면 계속 받아주기 힘들었을 것 같다고. 아마 연애할 수 있는 시간도 거의 없었겠지. 남편이니까 집에서 같이 있는 시간이라도 있고 끼니라도 조금 챙겨주고 했지, 남자친구면 이러지도 못하니까 말이다. 아내가 힘들 때 장모님은 힘든 일이 어딨냐며 잘 견디라고 하셨다 했다. 어머니의 마음으로 딸이 조금 힘들어도 간호사로 잘 견뎌내길 바라시는 마음에 그러신 것이겠지만, 나는 항상 반대였다. 그냥 그만 두라고 했다. 나중에는 그만두지 않을 거 아니까(?ㅋㅋㅋ) 위로 겸 그만 두라고도 했던 적도 있지만(ㅎㅎ), 진짜 그냥 이렇게 힘들바에는 그만 두고 다른 일 하는게 더 낫다고 생각 했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내가 도와줄 수도 없으니까... 뭐, 지금 보면, 나는 그냥 옆에서 묵묵히 있었던 것이 도와줬던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3. 힘이 되는 건 그래도 동기 뿐이다.
나도 가끔 회사에서 힘든 일을 말 할때, 아내에게 배경설명을 너무 장황하게 해야 할 때가 있는데, 이게 참 쉽지 않다. 그래서 나도 회사 사람들하고 힘든 일을 말하면, 끼리끼리니까 척 하면 척 통하고, 배경설명 안해도 되고...ㅎ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집에 와서 계속 동기들하고 카톡만 했다. 동기들을 넷으로 나누면, 데이, 미드, 나이트, 오프. 만약 아내가 데이 근무를 마치고 오면 미드 간호사들은 일하고 나이트, 오프인 간호사들은 다같이 데이 근무동안 있었던 말도 안되는 이야기들(?)을 다같이 공유하는거다. 누가 태웠네, 무슨 일이 있었네, 환자가 어땠네, ... 나에게 말 해도 전문용어 나오고 또 뭔지도 잘 모르는 그런 병원 시스템이나 환경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니까, 동기들에게 말하는게 간단하기도 하고 그러겠지. 다 이해한다. 조금 심심했어도, 그래도 동기들 덕분에 아내는 조금이나마 더 잘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동기고 뭐고 한 달도 안되서 그만 두는 동기 간호사들도 있었다. 그 분들의 행방은...
이정도로 정리 하고, 아래는 일기는, 전반적으로 어둡다...ㅎ
2015년 7월 18일
기다리고 기다리던 하나의 병실 근무가 시작되었다. 이 때가 오기만을 간절히 바란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작년 부터 1년 넘게 병실 배치는 어제 되나 기다렸던 것 만은 사실이다. 사실, 졸업을 하고 병실 배치는 금방 될 줄 알았다. 그래서 결혼도 그렇게 서둘렀던 건데, 1년 넘는 시간이 걸릴 줄이야... 그래도 병실 배치는 기다리는 기간동안 알차게 보낸 것 같다. 00과에서 일을 하다가 연구간호사로 잠시 알하고, 00병원에서 교대근무를 해 보기도 하고, 00병원 외래 계약직은 붙었다가 포기한게 지금 좀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00에서 일 하다가 올 초에는 두 달 가까이 여행도 다녀오고, 그리고 다시 00과에서 몇 개월 동안 일을 하고, 드디어 지난 주 교육 1주일을 받고 병실로 배치된 것이다.
좋은 사람 만나길, 좋은 병실(?) 배치되길 그렇게 기도했건만, 하나가 배치받은 곳은 00병동이란 곳이다. 내과. 00형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어서 마음에 위안은 조금 되었지만 00병원에서 악명높기로 소문난 곳이라고 했다. 00형에게 물어봤을 때도 아 쩜쩜쩜(아...)만 답으로 올 뿐, 좋은 얘기는 들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번 일 주일이 지나고, 우려는 곧 현실로 드러났다. 하나가 점점 힘들어 하는 것이다.
다행히 이번주에는 팀장님이 아디스아바바에 간 바람에 나도 야근을 하지 않고 집에 일찍 왔다. 회화학원도 수목금은 방학이라고 해서 일주일을 휴강해 버렸다. 그래서 하나랑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다른 주보다 많았다. 월요일에는 그래도 첫 날이라 그런지 하나의 기분이 썩 그렇게 다운 되 있지는 않았다. 금요일에 인사는 했지만,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와 아직 만나지 못한 프리셉터에 대한 이야기 등등, 그러나 베게 사건(?)으로 성질을 죽이지 못한 에피소드 등등을 이것저것 많이 들을 수 있었다. 화요일에는 나랑 얘기를 하기 보다 동기 애들과 카톡으로 얘기를 더 많이 했다. 아무래도 나보다는 공감을 더 잘 할 수 있는 친구들이었고 말도 더 잘 통하니까 그랬겠지. 일주일 내내 새벽에 일어나야 하는 일이 참 고되었지만 새벽에 꼬박꼬박 일어나긴 했다. 월요일에는 빵을 준게 좀 그래서 화요일에는 밥을 해 줬지만 아침에 밥 먹기 힘들다고 그냥 빵을 해 달라고 했다.
수요일에도 빵을 먹고 카카오택시를 타고 하나는 병원으로 갔다. 아침에 약을 정리해야 하는게 너무 어렵다는 말과 함께 전날 밤 늦게까지 병원 업무 파악을 하느라 피곤한 몸을 이끌고... 저녁에 집에 와서는 밥을 먹으면서도 거의 말을 못했다. 밥을 먹으면서도 동기들과 연락을 하느라고 거의 내 얼굴은 안 본 것 같았다. 그리고 방에 들어가서도 계속 공부... 내가 침대 옆에 계속 누워 있었지만 하나는 공부만 했다. 나는 계속 핸드폰으로 이것저것 보기만 하고. 그리고 그냥 잤다. 내일은 더 일찍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목요일 아침에도 빵을 먹고 카카오택시, 퇴근해서는 동기들과 연락을 하며 공부하는 하나. 너무 힘들다며 눈물을 훔치기도 했지만 그래도 계속 공부만 했다. 사람들이 너무 차갑다는 둥, 다른 일을 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둥 여러 이야기들을 했지만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이 딱히 없었다. 이렇게 사는 것이 과연 '옳은' 삶일까에 대한 의문을 품은채 우리는 서로 할 수 있는 말이 많지 않았다. 과연 불확실한 미래의 행복을 위해 지금 이렇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일지, 아니면 지금 당장의 행복을 위해 살아야만 하는 것일지 우리는 잘 몰랐다.
금요일, 나는 새벽에 일어나지 못했지만 하나는 일어났다. 준비를 하고 있는 하나를 보고 뒤늦게 나는 일어났고, 아침, 비록 빵 한 장에 계란 프라이가 전부이지만, 배를 채울 수 있는 음식을 해 주지 못한 게 미안했다. 이미 하나는 준비를 다 마쳤고 빵 한 조각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오늘은 택시 타는 곳까지 데려다 주지도 못했다. 나는 집에서 잠도 다시 깊이 들었고, 한시간 조금 못 된 시간을 다시 자고 출근을 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그래도 이틀의 오프를 얻은 하나와 함께 조금은 마음 편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한 주동안의 병실 일이 많이 힘들었는지 하나는 너무 힘들어했다. 본격적인 휴일이 시작된 것도 아니지만 벌써 다음 주 출근을 걱정하며...
남편으로서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많이 없는 것 같다. 다만 그래도 하나가 이렇게 힘든 일을 할 때 결혼을 한 상황이라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연애를 하고 있었다면, 하나가 이렇게나 많이 힘들어 하는 것을 '남자친구'로서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피하고 싶어 했을 것 같다. 뭐가 다른지 그래도 '남편'이니까 이렇게 받아들일 수는 있는 듯 하다.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어도.
다음 주 한 주가 어떨지 모르겠다. 하나 스케줄은 여전히 새벽출근이다. 4일 새벽출근. 하루 오프, 3일 나이트. 너무 이른 걱정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지내는 것이 맞는 삶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중에 어떻게 될지도 모르겠고, 뭘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날 그날 아내를 위로해 주는 것 뿐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루 하루를 성실하게 살아나가야 하는 게 전부일 뿐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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