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이야기/태아일기

[아빠가 쓰는 태아일기] 출산 D-1부터 출산의 순간들

inhovation 2016. 11. 26. 10:30


2016. 11. 16. 수 [예지몽과 진통의 시작]
꿈에서, 자다가 갑자기 하나가 진통이 왔다고 하면서 끼룩이 손 같은 게 나왔다고 해서 완전 호들갑스럽게 일어나면서 불 켜고 안경쓰고 보니까 주먹 반만한 끼룩이 얼굴이 보여서 병원에 전화하는데 잘못 누르고 엄청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 깼는데 너무 생생한 느낌이었다. 하나는 쌔근쌔근 자고 있었다. 휴... 만약 실제로 진짜 진통이 시작된다면 침착해야겠다.
점심에는 산후조리원과 연결된 스튜디오에 가서 사진을 찍었다. 두 번째 촬영&회사도 돌아가야 하는 것 때문에 마음도 급하고 그래서 대강 찍은 듯. 그런데 까만 원피스 입은 하나는 완전 예뻤다. 가격이 너무 싸서 할까도 했지만 그냥 샘플만 받기로. 회사 가는 길에 하나는 판교역 현대백화점에 내려줬다. 여기저기 재미있게 구경하면서 돌아다녔다. 그런데...


PM 4:55 [흐르는 양수]

하나한테 연락이 왔다. 집으로 가는 길에 지하철, 버스에서 물 같은 게 흘러내렸다고. 양수 일 수도 있으니까 얼른 병원에 전화해 보라고 했다.


PM 5:00 [조퇴]

다시 연락을 받으니 병원에서는 와 보라고 했다고. 팀장님께 말씀드리고 환호(?)를 받으며 집으로 서둘러 향했다.


PM 6:00 [병원 도착]

병원에 도착했다. 검사 결과 양수가 맞았다. 입원 수속을 밟았다. ㄷㄷㄷ 완전 떨렸다. 하나 먼저 들어가고 혼자 남아서 사람들에게 연락을 하고 하는데 눈물이 마구마구 나려고 했다. HJ목사님이 두려워말라 는 성경 구절을 보내주셨을 때는 진짜 펑펑 울 뻔 했다. 하나 준비 다 끝나고 나서 나도 가운을 입고 들어갔다. 아, 이제 시작되는 건가?



PM 8:00 [최후의 만찬]

지금 밥을 먹지 않으면 내일 아침까지 아무 것도 못 먹는다고 해서 든든하게 비빔밥을 먹었다. 하나는 죽을 먹었다. 진통이 조금씩 있었지만 셀카를 찍으면서 놀았다. 아직은 제정신인 것 같다. 둘 다.


PM 9:00 [가진통]

잔잔한 진통이 계속 이어진다. 끼룩이가 딸국질을 한다. 밖에서 애기 나오는 소리는 계속 들린다. 벌써 3명째다. ㅎㄷㄷ


PM 10:00 [대기중]

아직 상태는 정상인 것 같다. 진통 주기는 7분 정도 되는 것 같다. 나는 빵을 먹었다. 맛있다. 열심히 하나 곁에서 지켜주는 중!


PM 11:00 [잠과의 싸움]

졸음에 지쳐간다. 바닥에서 아주 잠시 잠도 잤지만 오래 못자겠다. 하나는 힘들어한다. 끼룩아, 얼른 나오렴.



2016. 11. 17. 목 [출산]



AM 12:00 [진통 100]

하나가 너무 아파서 누워있기 힘들 정도다. 진통 100을 막 찍기도 한다.


AM 1:00 [ing]

하나는 많이 아픈데 간호사는 아직 진행이 덜 됐다고 한다. 양수는 계속 나오니까 걱정 말라는 투로 얘기하는데 나는 걱정이 된다.



AM 1:15 [3cm, 분만실로]

진통 100을 몇 번 찍고 나서 내진을 했다. 안쪽에서 3cm 열렸다고 한다. 분만실로 이동했다. 진통 100은 몸을 부르르 떨 정도의 고통 같다. 잠은 좀 달아났는데 1시 쯤에 하나가 화장실 간 동안 좀 자서 그런 듯 하다.


AM 1:20 [무통 라인 삽입]

내진 하고 적당히 열린 것 같아서 무통 주사 라인만 일단 잡았다. 하나는 너무너무 아파한다.


AM 1:50 [4.5cm, 무통 투입]

무통 주사를 투입했다. 안쪽에서 4.5cm 열렸다고 한다. 진통 100을 계속 찍고 하나는 신음을 내기 시작했다. 무통 주사 들어갈 때 하나는 약간 숨을 못 쉴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한다.산소 마스크를 꼈는데 이건 끼룩이를 위한 것이라고 한다.


AM 2:30 [7-9cm, 빠른 진행]

내진을 해서 안쪽에서 7-8cm 열린 것을 확인했다. 조명을 설치하고 분만 준비를 시작했다. 진통은 계속 되고 내진을 또 했는지 갑자기 8-9cm라고 하면서 진행이 잘 된다고 했다. 끼룩이도 많이 내려왔다고 한다. 빠르다...


AM 3:00 [산모의 힘겨운 싸움]

간호사가 알려준 침대 잡고 힘 주는 운동을 계속 했다. 하나만의 힘겨운 싸움이 계속 되고 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 자꾸 말도 하는데, '아 진짜 너무 아프다', '무통 없이 어떻게 하냐', '왜 수술 해 달라고 하는지 알 것 같다.' '왜 주사를 놨는데 아픈거지, 이게 안 아픈 건가?' ... 그러다가 갑자기 '아, 못하겠다' 라고 말 할 때는 정말 가슴이 출렁 했다. 하라고 강요하기에도 하나 표정을 보면 이런 말을 할 수가 없고, 그렇다고 수술을 하자고 할 수도 없고...


AM 3:45 [골반에서 쉬다 갈게요]

끼룩이가 내려오다가 골반 뼈에 꼈다고 한다. 조금만 더 내려오자 끼룩아!


AM 4:10 [누르기]

간호사가 배를 누르면서 밀어내가 시작했다. 밖에서 1.5~2cm 정도 머리가 보인다고 했다. 3cm가 되면 의사를 부르고 분만을 시작한다고 했다.


AM 4:15 [침대 변신]

레알 분만준비가 시작되었다. 의사 콜이 들어갔고 잠시 나갔다 왔는데 침대가 트랜스포머처럼 변신해 있었다. 드라마, 다큐에서만 보던 그런 모습이었다. 뭔가 좀 멋있기도 했다. 하나 표정 빼고. ... 힘들어 하는 아내를 보며 나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며 손만 잡아줬다.


AM 4:27 [응애응애]

끼룩이가 세상으로 나왔다! 힘차게 우는 모습에 나도 눈물이 흘렀다.
정신 없는데 사진 촬영 할 거라고 해서 카메라를 들고 있는데, 끼룩이가 나오고 하나한테 수고했다고 위로해주며 손을 잡아주는데 얼른 사진 찍으라고 해서 막 찍다가 갑자기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노래가 나오고 가위를 잡으라고 하면서 탯줄을 자르라고, 그러면서 또 카메라는 달라고 하고, 동영상 녹화 중이냐고 물어보는 사이에 나는 또 탯줄을 자르고 갑자기 가위는 뺏어가고 다시 하나 손을 잡고 눈물을 닦는데 사진 지금 더 찍어도 된다고 하고 진짜 완전 정신이 없었다.
끼룩이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모두 정상인 것을 확인 시켜 주는데, 알고는 있었지만 또 이렇게 실제로 눈으로 보니까 너무너무 감사했다. 하나가 끼룩이를 처음으로 안은 모습은 진짜 감동 그 자체였다. 끼룩이를 천으로 감싸고 가족사진을 찍어줬다. 우린 그냥 침대에 머리를 모으고 있는데 간호사가 똑같은 사진을 한 10번 정도 찍었다. 내 생각에, 끼룩이도 이때는 울지 않았는데 정신이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우린 생이별ㅠㅠ
아내에게 고맙고 말은 못하겠지만 힘들었을 끼룩이에게도 너무 고맙다. 사랑한다, 우리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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