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야기/독후감 III

인간으로서의 황장엽을 만나다

inhovation 2016. 3. 3. 15:05

No. 128

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황장엽 지음

한울 펴냄


  황장엽이라는 사람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평가할지 잘 모르겠다. 북한에서 김일성과 김정일을 도와 소위 북에서 끝발좀 날리던 사람, 그러다 갑자기 우리나라로 망명해와 다시 우리나라에서 대북정보를 공개하며 살다 죽은 사람. 한 시대에 적이라고 할 수 있는 두 국가에서 충성을 다 하던 사람에 대해 사람들의 평은 여러 갈래로 나뉠 것 같다. 이 가운데 내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나는 '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황장엽 지음, 한울 펴냄)을 통해서 '그도 똑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우선 느꼈다. 이 책은 황장엽의 회고록으로 그의 탄생부터 망명까지 그가 직접 집필한 내용이다.

 

  그는 북에 있는 동안 항상 사상과 북한 정권에 대한 갈등을 달고 살았다. 그는 인민을 위하는, 다 같이 잘 살 수 있는 공산주의 사상을 신봉하고 심화, 발전시켰지만 김일성과 김정일의 정권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고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아래는 황장엽이 김일성과 김정일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품었음을 고백하는 내용이다.

 

"1992년의 그 추태를 보면서 내 마음은 김일성 부자를 떠나기 시작했다. 나는 쓸데없는 것에 시간과 정열을 허비하기보다는 두 가지만을 해야겠다고 작정했다. 하나는 시간을 쪼개어 어떻게든 내가 개척한 인간중심의 사상을 정리해서 후대에 남겨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주체사상을 국제세미나를 이용하 여 주체철학을 좀더 적극적으로 선전하는 일이었다" (p. 246)

 

  이와 같은 황장엽의 갈등은 책의 중간중간에 계속해서 나타난다. 그러나 그는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는다. 일당체제인 북한에서 그의 생각을 말한다는 것은 반동분자임을 드러내는 것이며, 이는 본인의 생명은 물론 가족의 생명까지도 직결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상의 갈등은 결국 황장엽을 망명길에 오르게 하는데 가장 큰 계기가 되었던 것은 위에서 언급한 김일성 부자의 쓸데없는 짓 때문이었다. 1990년대 북한에 발생한 식량난으로 인해 수백만의 아사자가 발생하고 있었지만 김 부자는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들의 안위와 실리만을 챙기며 북한 인민들을 돌보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김 부자의 이기적인 모습은 황장엽의 마음을 완전히 돌려 놓았고 그는 사랑하는 가족들을 떠나 망명길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왠만하면 자신의 뜻을 조금 굽히며 김정일에게 충성을 다 하며 살 수도 있었다. 그래도 그와 그의 가족들은 평생 어렵지 않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나 개인의 생명보다는 가족의 생명이 더 귀중하고

가족의 생명보다는 민족의 생명이 더 귀중하며

한 민족의 생명보다는 전 인류의 생명이 더 귀중하다.

   이와 같은 그의 신념 때문에 황장엽은 가족 대신 민족을 선택한다. 자신의 뜻을 굽히며 김정일에게 동조하는 것은 민족의 생명을 저버리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상황 하에 북한 정권은 곧 붕괴될 것이라는 예측을 하고 민족의 생명을 귀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대한민국으로 망명을 한다.

  

  이 책을 통해 황장엽의 일생을 자세히 알 수 있다. 또한 북한의 사정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 수 있다. 심지어는 우리가 접할 수 없는 비하인드 스토리(김정일과의 술파티 이야기나 가족사 등)도 알 수 있어 흥미를 불러 일으킨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내용도 유익하였지만 이 책을 통해 '황장엽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북한 정권에 충성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저 사람은 정말 비 정상적이고 이상한 인간이라고 생각하기만 하였는데, 황장엽도 그곳에서 고민하고 갈등하는 모습을 통해, 또 망명 후에는 남겨놓고 온 가족들에게 용서받을 수 없는 미안함과 죄책감을 느끼는 모습을 통해 그의 속마음을 알 수 있었다(어쩌면 지금 북한 정권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 중 상당수도 김정은 체제에 동조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나보다는 가족을, 가족보다는 민족을, 민족보다는 인류를 선택한 황장엽. 역사와 민족 앞에 그가 어떻게 평가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북에 있었든, 남에 있었든 남과 북에서 항상 고민하고 갈등하는, 민족의 구원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다.


2012년 3월 26일 @inho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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