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또 하노이로 가게 되는 것인가. 왜 베트남은 항상 신정, 구정 기간에만 방문하게 되어 이렇게 어려운 것일까. 다낭으로 가고자 했던 꿈(?)은 3배나 올라버린 버스 가격 덕분에 과감히 포기하게 되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하노이를 선택했다.
그래도 가고 싶은 곳을 못가는 것이 예전보다 괴롭지는 않았다. 한 달 넘는 여행이 우리의 마음을 단련시켜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게 됐을 때의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 뭐, 다낭으로 가든 하노이로 가든 어디든 즐거울 수 있으니까 다낭에 못 간다고 해서 나라 잃은 것 같은 슬픔까지 느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20대를 살아오면서 꿈이 좌절 되어 다른 일을 하게 되면서도 새로운 경험을 하며 나름 잘 지냈던 것처럼, 여행에서도 이 길로 가지 못하면 저 길로 가면 될 것 같다.
아침은 어제 점심에 갔던 식당으로 가서 샌드위치 두 개를 사먹었다. 어제 아침에 먹은 길거리 샌드위치는 고수도 많이 넣어주고 했는데, 역시 게스트하우스에 딸린 식당이라 그런지 현지인의 맛이 아닌 관광객의 맛으로 바뀐 것 같았다. 입에 잘 맞으면서도 현지의 맛은 좀처럼 느껴지지 않는 그런 샌드위치.
어제 방값을 내고 짐을 모두 다 챙겨 한인쉼터로 갔다. 10시 반에 딱 맞춰서 갔는데 주인아저씨께서는 우리가 안 오는 줄 알았다고 했다. 다른 아저씨 한 분이 더 타서 네 명이서 한인교회로 출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한인교회는 엄청 작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큰 규모는 아니었다. ‘그 사랑’이란 찬양을 듣고 시작한 설교, 선교사로 오셔서 10명이 넘는 현지 학생들과 함께 살고 있다는 말씀은 감동이었다. 1시간 정도의 예배가 끝나고는 점심을 먹었다. 방비엥 게스트하우스 이후로 얼마 만에 먹어보는 쌀밥에 김치인가, 고등어조림과 밑반찬들도 너무 맛있었다.
카페 주인아저씨가 우리를 태워다주셔야 해서 밥을 얼른 먹고 나갔다. 갈 때는 비엔티안으로 이민(?)오신 아저씨, 아줌마랑 같이 왔다. 우리는 딸랏싸오 터미널에 내려주시고 작별인사를 했다. 나중에 비엔티안에 가게 된다면 다시 한인쉼터로 가서 인사를 해야지.
베트남으로 가는 버스는 저녁에 있을 것인데 점심을 막 먹은 지금 터미널로 가는 것은 너무 일찍 같아서 남은 돈도 다 쓸 겸 딸랏싸오 터미널 옆에 상가를 구경했다. 우리나라 남대문 시장 같은 느낌인데, 좀 옛날 남대문 시장 느낌이었다. 이것저것 구경하다가 그동안 시식으로만 조금 먹어봤던 왕귤 한 팩이랑 가방에 채울 작은 자물쇠 한 개를 샀다. 자물쇠...ㅋㅋㅋ 여행 거의 다 끝나가는 데 이제 산다.
간단한 쇼핑을 마치고는 터미널로 가서 남부터미널 가는 시내버스를 탔다. 29번 시내버스가 분명히 남부터미널에서 나오는 것을 봤는데 물어보니 남부터미널까지는 가지 않는단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그래도 근처까지 가서 툭툭을 타든지 하기로 하고 일단 버스를 탔다. 길은 알고 있으니... 사람이 많이 타 있었는데, 자리에 앉아서 졸다보니까 어느새 거의 다 와서 얼른 내렸다. 걸어갈까 하다가 정류장 옆에 툭툭 기사가 있어서 터미널까지 얼마냐고 물어보니 3만킵이라고 했다. 나는 한 사람에 5천킵을 생각해서 그냥 갔는데 자기도 아쉬운 거는 없는지 잡지 않는다. 잉? 잡아주면 흥정 하려고 했는데... 뭐, 나도 그냥 갔다.
조금 걸어가다 보니 트럭툭툭이 지나가면서 빵빵을 해서 내가 터미널이라고 소리를 지르니 조금 앞에 가서 멈췄다. 사람들이 이미 꽉 차있었고 거의 우리 둘만 탈 자리가 있었는데 기사는 타라고 했다. 나는 둘이 해서 만킵을 이야기 했는데 기사가 이만킵을 불렀다. 그러나 능숙한(?) 라오스말로 흥정을 해서 두 명에 만킵으로 터미널로 향했다. 걸어갈 때는 멀어보였는데 차를 타고 오니 엄청 가까웠다.
내려서 돈을 내고 터미널로 갔다. 역시나 익숙한 한국 관광버스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 매표로로 가기 전에 버스 기사들(?)이 달려들어서 가격을 한 번 물어보니 거의 2-3배 가격을 말했다. 다낭이나 하노이나 똑같이. 헐... 약간 멘붕이 왔다. 돈은 있었지만 그래도 그렇게까지 내고서 베트남으로 가기는 싫었다. 터미널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매표소로 갔는데 창구에 아무도 없었다. 점심이라 그런가... 다시 약간 멘붕이... 뭐, 안되면 남은 돈 환전해서 다시 시내로 가서 하루 더 자고, 조금 비싸긴 해도 확실한 여행사를 통해 예매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진정시켰다.
다시 버스 기사들한테 가서 자세히 물어봤는데, 다낭 가는 버스 한 개는 자리가 다 차서 복도에 누워서 가야 하는데, 가격은 두 배 정도였고, 다른 버스는 자리가 있어서 그런지 세 배 정도 가격이었다. ㅎㅎㅎ 정말, 말도 안 된다. 다시 돌아와서 왕귤을 먹으면서 매표소 직원을 기다렸다.
직원이 돌아오고, 아주머니에게 다낭 가는 버스를 물어보니 어딘가로 전화해서 확인 후 나에게 다 차서 가지 못한다고 알려줬다. 그래서 하노이를 물어보니 자리는 있고 28달러라고 한다. 오, 적당한 가격에 여행사보다 저렴했다. 그래서 몇 가지를 더 확인했다. 자리는 지정석인지, 어느 버스를 타게 되는 것인지 등등. 아주머니는 지정좌석이고 버스도 지금 바로 확인해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엊그제 봤던 젊은 남자 직원을 따라서 버스를 확인했는데 꽤 좋은 편이었다. 자리도 2층이었지만 앞자리에 두명이 같이 누울 수 있는 버스였다. 그래서 바로 예매! 돈은 달러랑 베트남 돈을 섞어서 냈다.
큰 일을 해내고 다시 기쁜 마음으로 대합실에서 기다렸다. 티비를 보면서 기다리다가 5시쯤 버스로 가 봤는데 사람들이 타고 있어서 우리도 얼른 짐을 챙겨서 탔다. 버스표에는 원래 6시에 체크인이라고 되어 있었지만 5시부터 사람들을 태우고 슬금슬금 움직이고 있었다. 자리는 맨 앞자리라 그런지 앞으로도 꽤 길어서 다리도 벋을 수 있고 좋았다. 그리고 깨끗했다. 다만, 뒷 자리 아저씨 발냄새가 너무 심하게 나서 에어컨을 뒤쪽 방향으로 돌려놨다
이제는 필요 없는 라오스 돈이 조금 남아서 얼른 밖으로 다시 나가서 반미 큰 거를 한 개 샀다. 원래는 작은 거 여러개 사려고 했는데 돈도 조금 부족한데다가 흥정도 실패해서 큰 빵으로 샀다. 버스에서 기다리는 시간 동안에는 재미있는 구경도 했는데, 버스 기사(직원?)이 지나가는 사람을 거의 반 강제적으로 호객행위를 하는 것이었다. 대부분 젊은 여자를... 그런데 뭔가 하는 사람이나 당하는 사람(?)도 익숙한(?)듯한 느낌... 그리고 다른 어떤 버스는 거의 무질서의 끝을 보여주는 듯 한 탑승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이건 뭐 베트남에서 익숙하게 느끼던 것인데, 또 이렇게 보니 신기했다. 이런 재미있는 구경을 하면서 시간은 6시가 다 되어서는 버스는 터미널을 완전히 출발했고 거리에는 금방 어둠이 내렸다. 이렇게 베트남으로 가는 것인가...
어둠을 헤치고 버스는 잘 달리고 있었고 우리는 잠이 들었다. 그러다 화장실을 가라고 해서 내렸는데 다들 길에서 일을 보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같이... 조금 늦게 나와서 제일 마지막까지 쉬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버스가 움직였다. 헐! 바지도 못 올리고 한 손으로 버스를 치면서 소리를 질렀다. 어어어어어어!!!!! 황급히 마무리를 하고 버스를 탈 수 있었다.
한참을 가다가 저녁을 먹는다고 하면서 식당에 내려줬다. 라오스였지만 베트남돈을 쓸 수 있었다. 식판에 밥이랑 반찬을 받아서 먹었는데 괜찮았다. 제대로 된 화장실도 가고 이도 닦고 다시 버스를 타고 출발. 직원에게 몇 시에 하노이에 도착 하냐고 물어보니 7시라고 했다. 헐? 정말 7시? 진짜 7시에 도착하면 최곤데... 아내는 말도 안된다고 하면서, 국경에 도착하는 시간일 것이라고 했다. 그래도 작은 기대와 희망을 갖고...
가는 동안에 베트남 사람들은 여권과 돈을 걷었는데, 우리와 옆자리에 중국 아저씨 여권은 걷지 않았다. 신기한 것은 중간에 검문소 같은 곳을 몇 군데 지났는데 그때마다 직원이 내려서 경찰들에게 뇌물을 주는 것 같았다. 뭔가 통과하지 못하는 곳인데 빨리 갈 수 있게 하는 것인가, 이렇게 해서 내일 7시에 도착할 수 있다고 한 것인가 싶었다.
비엔티안에서 나가는 길은 산길이 아니라 그런지 잠은 잘 왔다. 이렇게 우리는 다시 베트남을 향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