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경 넘을 때 대기시간, 버스에서의 지루함, 고속도로도 제대로 달리지 못하는 답답함, 뒷자리 아저씨의 발 냄새 등등 거의 모든 것
그래도 좋았던 것
: 기대 이상의 버스 시설, 물 및 담요(베트남항공) 제공, 친절했던 기사 및 직원
기타
: 지나고 나면 그래도 좋았던 추억이지만, 또 만들고 싶지는 않은 추억
잠에서 깼는데 산길을 가고 있었다. 어딘가 해서 지도를 봤는데 국경을 넘지도 못했다. 잠에서 깼을 때 혹시 국경을 넘지는 않았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봤지만 부질없는 짓이었다.ㅋㅋㅋ 7시에 하노이에 도착한다는 것은 어림도 없어 보였다. 아내 말대로 7시에 국경에 도착하는 것 같아 보였다.
버스가 잠시 멈춰서 내려서 쉬하고 다시 탔다. 여기서는 아예 멈춰있는 것 같았다. 안개가 자욱한 산 속에 버스가 줄지어 서 있었고, 저 앞에 국경으로 보이는 건물이 있었다. 잠을 좀 자고 있는데 6시가 조금 넘으니 기사가 깨워서 나가서 도장을 받으라고 했다. 사람들이 많이 가는 건물로 들어가니 도장 받는 곳이 있었다. 이렇게 많은 인파 속에 있었던 때가 언제였나를 생각하며 나도 치열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베트남 사람들이 어떤 창구로 여권 뭉탱이를 들이밀기에 나도 같이 밀어 넣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나는 옆 창구라고 해서 얼른 옮겼다. 이미 여권 뭉탱이가 있었지만 그 위에 올렸다. 라오스 직원이 오고 우리의 여권은 뭉탱이 위에서 2등, 3등으로 처리가 되었다. 오예!
무사히 라오스 출국 도장을 받고 버스로 돌아가니 국경을 걸어서 넘어가라고 했다. 산길이었는데 엄청 멀지는 않았지만 비가 와서 그런지 땅이 엄청 질퍽거렸다. 베트남 국경 건물은 새롭게 가까이 공사를 하고 있었고, 우리는 여기를 지나 조금 더 걸어가 허름한 건물 앞으로 갔다. 입국 도장을 받는 것이 맞나 고민이 돼서 기다리고 있는데 옆자리 중국 아저씨가 도장을 받으러 가자고 해서 같이 갔다. 그런데 너무나도 당당하게 요구하는 1달러. 허허허... 중국 아저씨는 베트남 동으로 내고 우리는 내기 싫었지만 1달러 두 장을 냈다. 잠시 후 입국 도장이 무사히 찍히고 여권을 받아 들었다.
아, 베트남 입국 도장. ... 눈물이 앞을 가린다. 이 도장 한 개 받으려고 비행기 표 취소하고, 30만원 들어서 쿠알라룸푸르를 경유해 비엔티안에서 3박이나 하고... 그래도 바뀐 일정으로 인해 깨달은 것도 많고 소중한 인연도 만나게 되어서 아쉬운 것은 없었다. 그냥 기분이 좋기도 하면서 뭐 그랬다.
이제 국경을 넘어야 하는데 저기는 짐을 갖고 넘어야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버스를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아무리 기다려도... 다른 버스들은 산더미처럼 쌓인 버스 위에 짐들을 내리기 시작하는데 이게 장난이 아니다. 정말 엄청 많은 짐을 다시 내려서 사람들이 짐을 찾아 국경을 넘고 버스가 거길 지나가고 다시 짐을 싣는데... 엄청났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이런 구경을 하는데도 우리 버스는 오지 않았다. 배고파서 과자도 사먹으면서 중국 아저씨랑 궁금해서 다시 라오스쪽으로 갈 수는 없는지 물어보니 안된다고 했다. 그런데 그 옆에 우리 버스 직원이 여권 뭉탱이 들고 뭐 하고 있었다. 헐, 여기에 있었다니...ㅋㅋ 곧 올테니 기다리라고 해서 다시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가 와서 가방을 메고 짐 검사하는 곳을 통과하고 또 기다렸다. 우리 버스는 저 뒤에 있었는데 올 기미가 안보였다. 엄청 또 기다리고 겨우 버스가 와서 타려고 했는데 우리는 대기소 같은 곳으로 가서 타라고 했다. 처음엔 우리만 불려가서 한국사람은 뭐가 있나 했는데 중국 아저씨도 오고 다른 외국인도, 심지어는 몇몇 베트남 사람들도 불려왔다. 뭐지, 도통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잠시 후, 버스가 오고 국경에서만 5시간이 걸려서 겨우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버스는 다시 산길을 내려갔고 우리는 잠이 들었다. 자고 일어나니 점심을 먹으라고 내리란다. 여기서는 주문을 해야 해서 쌀국수랑 밥을 시켜 먹었다. 밥을 먹고 버스를 타고 다시 하노이로 출발. 가는 길에는 속도를 전혀 내지 못했고 중간 중간 사람을 태우기도 하고 내려주기도 했다. 옆에 있는 중국 아저씨 자리에는 국경에서 새로 탄 사람이 있었는데, 침대의자 두 자리에 세 명이 올라가 있었다. 엄청 불편해 보였다.ㅋㅋㅋ
버스는 느릿느릿 갔고, 언제 하노이에 도착 하냐고 하니까 잘 모른다고 했다. 10시쯤에 도착한다고 말해줘서 내가 깜짝 놀라니까 8시로 바꿔서 말해줬다. 도착 시간을 물어보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 같았다. 체념하고 블로그나 써야지 하고 노트북을 열었는데 버스라 그런지 멀미가 나서 오래 쓰지도 못하고 접었다. 지도를 보는데 일자로 가면 되는 길을 돌아서 가기도 하고 시간은 어느새 버스탑승 24시간을 지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8시 도착은 아닌 것 같았다.
닌빈쯤 와서는 고속도로로 쌩쌩 달렸다. 그런데 고속도로 중간에서 멈춰 서서 사람을 내려주기도 했다. 하노이에 거의 다 와서 버스 직원에게 호안끼엠으로 가냐고 물어보니까 안 간다고 하고, 택시로 20만동이면 간다고 했다.
10시가 넘어서 하노이 남쪽 끝에 있는 터미널에 도착했다. 내리면 어떻게 할지 아내와 전략을 짰다. 일단, 호객행위는 무시하고 주변에 게스트하우스를 알아보기로 했다. 시간이 늦어서 호안끼엠까지 가기는 힘들 수 있으니 일단 자고 내일 아침에 가는 것으로... 버스가 멈추고 우리는 얼른 짐을 챙겨서 내렸다. 예상대로 택시 기사들이 엄청 달라 붙었지만 안들리는 척 옆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로 갔다. 그런데 사람이 없었다. 잉... 그래서 그냥 우선 화장실으로 갔다.
일을 보고 나와서는 어떻게 할지 고민을 했다. 시내버스는 안다니는 것 같고, 여기서 호안끼엠까지 가는 버스를 알아보기도 힘들 것 같았다. 외곽이라 그런지 뭔가 황량해 보이고 위험할 것 같이 느껴졌다. 아내는 얼른 그냥 택시를 타고 가자고 했다. 다시 택시 쪽으로 가니 한 명이 우리에게 다가온다. 호안끼엠까지 얼마냐고 물어보니 미터로 간다고 했다.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얼마냐고 하니까 30만동이라고 했다. 우리가 20만동을 부르니 25만동을 부르다가 결국 20만동으로 가기로 했다. 구글 지도를 보니 일직선으로 쭉 올라가기만 하면 돼서 확인하면서 갔다. 다행히 잘 가고 있었다. 거의 다 와서는 항박거리로 가자고 하니 그럼 25만동을 달라고 했다. 그래서 그냥 됐다 하고 호안끼엠 제일 남쪽에서 내렸다.
거리는 얼마 되지 않으니 얼른 호텔만 구하면 무사히 도착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들뜬 마음으로 아내와 걸어가는데 뭔가 허전했다. 배낭은 메고 있었고... 담요, 담요가 없었다. 아내에게 담요 어디있냐고 물어보니 챙긴 것 같다고 했지만 우리에게 없었다. 택시에서는 없었다.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버스에 놓고 내린 것 같았다. ㅋㅋㅋㅋ 제일 더운 나라들을 이동할 때는 무거워도 그렇게 들고 다니면서도 버릴까 했지만 아까워서 버리지 못했는데, 쌀쌀한 하노이로 오니까 이렇게 버리게 되다니...ㅎㅎㅎㅎ 아내도 나도 둘 다 웃음밖에 안 나왔다. 그래도 이렇게 웃는 것이 즐거웠다. 한 달 넘게 여행하다 보니 이제 이런 일도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숙소를 구하기 위해 첫 번째 호텔에 들어갔는데 예상외의 답변, 방이 있다는 것 이었다.방이 딱 한 개 남았는데, 꼭대기 층이지만 화장실 포함에 가격도 12달러 정도. 방을 확인하니 괜찮은 것 같아서 하루 머물기로 하고 짐을 놓고 바로 내려왔다. 그러고 나서는 밥을 먹으러 KFC로 갔다. 햄버거랑 콜라를 시켜 놓고 하루 넘게 하지 못한 와이파이를 연결했는데, 걱정이 되셨는지 본가랑 처가 둘 다에서 연락이 와 있었다. 안전하게 도착했음을 알려드리고 다시 숙소로 갔다.
남은 일주일 계획을 세우고 바로 잤다. 12달러 방에 걸맞게 침대가 조금 딱딱했지만 버스보다는 훨씬 좋았다. 잠은, 엄청 잘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