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집행이 엄격하기로 소문난 싱가포르. 길거리에 쓰레기를 버리거나 침을 뱉어도 벌금을 낸다는데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공항에 내려서 거리로 가는 동안 받은 첫 느낌은 역시나 깔끔함이었다. 전철 안에서도 뭘 먹으면 500달러의 벌금을 낸다는 안내판도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길거리로 나와서 보니 깔끔하긴 한데 너무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 있었으니, 바로 여기저기 공사하는 곳이 너무 많은 것이었다. 제일 먼저 본 것 역시 우리나라 건설사가 길거리에서 공사를 하는 모습이고, 공원을 가로지르는 동안에도 건물 보수와 새로운 건물을 짓고 있는 모습이었다. 큰 길거리라고 해도 다를 것은 없었고 빼곡한 빌딩들 사이에 새로운 고층 빌딩을 세우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공항에서 전철을 타고 오면서도 창밖으로 공사하는 모습을 봤었다. 그래도 싱가포르는 깔끔하다는 선입견 때문에 그런 건지 몰라도, 공사도 굉장히 깔끔하고 조용하게 진행되는 것 같았다. 작은 도시국가인 싱가포르, 발전이 많이 되어있는 것 같아도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공사를 하면서 계속해서 변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싱가포르는 언제까지 공사중일까?
아침 일찍 일어나 로비에서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오셨다. 택시 기사분이였다. 친절하시기도 하고 뭔가 안심이 되었다. 공항까지 가는 길은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다녔던 익숙한 언덕을 넘어 북쪽으로 향했다. 길이 전혀 막히지 않아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다. 밖에서 뭘 사먹을까 하다가 안에도 있을 것 같아서 그냥 말았다. 조금 기다리니 체크인 창구가 열리고 표를 받을 수 있었다.
출국심사를 하고 면세점 구경하려고 했는데 헐, 별게 없었다. 밖에 있었던 서브웨이도 없었고 허접스러운 가게들뿐이었다. 생수 가격도 3배나 오르고 정말 말도 안 된다. 어떻게 이게 ‘면세’점인가. 남은 돈으로 최대한 효율적으로 먹기로 하고, 비행기에서 먹을 점심 대용으로 빵, 핫도그, 스프라이트, 물을 사서 비행기에 탔다.
밥을 먹으면서 한 시간 남짓 날아가자 싱가포르 창이공항에 도착했다. 출국심사를 받는 곳에서 싱가포르에서 홍콩에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도 아무 문제없는지 물어봤는데 괜찮다고 했다.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입국심사를 받고 MRT를 타러 갔다. 가는 길은 정말 멀었다. 그만큼 공항이 컸다. 인천공항보다 더 큰 것 같기도 하고, 더 좋은 것 같기도 했다.
표를 사기 전에 또 다시 고민에 빠졌다. 교통카드를 살 것인지, 6회만 충전하는 카드를 살 것인지. 한참 고민하다 창구에 물어보니 6회 사는 게 여행자에게는 더 싸다고 해서 바로 구입했다. 전철 표 구입부터 탑승까지 우리나라 전철과 거의 똑같아서 매우 편했다. 전철을 타고 두 정거장을 갔는데 사람들이 다 내려서 영문을 모르고 있었는데 아내가 반대편 것을 타야 한다고 해서 우리도 서둘러 내렸다. 이해가 안됐다.
부기스에 도착해서 밖에 나오자 매우 더웠다. 푸켓보다 더 더운 것 같았다. 그런데 난 긴팔 점퍼를 입고 있었다. 비행기에서 추워서... 지도를 보며 숙소를 찾아갔다. 10분 정도 걸어서 숙소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해서 방을 봤는데, 16개 침대가 있는 도미토리형식이었지만 상당히 깔끔하고 괜찮았다. 다만 배정받은 자리가 문 바로 앞이라서 바꿔달라고 하자 제일 안쪽으로 줬다.
반대쪽에는 독일인 젊은 커플이 있었는데 구텐탁, 아우피더젠을 하면서 인사를 나눴다. 독일인 커플이 먼저 나가고 우리도 어디를 갈까 고민을 하다가, 홍콩을 가려면 비행기 일정을 하루 앞당겨야 해서 마지막 날 예약해 놓은 조금 좋은 숙소를 하루 앞으로 변경할지 물어봐야 해서 한 번 가보기로 했다.
나온 김에 옆에 있는 리틀인디아를 구경하기로 했다. 그냥 차이나타운처럼 인도사람이 많이 사는 곳인데 그래도 익숙한 중국이 아니라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뭘 먹을까 엄청 고민하다가 인도음식을 먹기로 했다. 뭐, 인도음식밖에 없었다. 식당을 골라서 들어갔는데 베지테리안 식당이었다. 메뉴를 줬지만 죄다 인도말, 영어도 인도발음 그대로 써 놓은 것 같아서 주문을 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 사진이 있어서 맛있어 보이는 것으로 시켰는데 맛있는 편이었다.
리틀인디아를 나와 걸어가기로 해서 공원을 지나 호텔로 향했다. 가는 길에 공원 나무 사이로 마리나베이샌즈랑 플라이어가 보였는데 완전 신기했다. 또 다리를 건너는데도 더 가까이 보여서 감탄사 연발. 가는 길에 다른 건물들도 형형색색 칠해진 것들이 예쁜 것들이 많았고, 현대식 빌딩 뿐 아니라 유럽풍의 옛 건물들도 있어서 뭔가 도시가 멋있었다. 우리나라 빌딩 숲 한복판에 한국은행이 있는 것처럼?
마지막 날 머무를 호텔에 도착해서 일정이 변경 돼서 하루 앞당길 수 있냐고 물어보니 명함을 주며 이곳으로 연락해보라고 했다. 전화는 6시까지 받는데, 아마 지금은 6시가 다 되어서 안 될 거라고 했다. 이메일도 가능하냐고 물으니 된단다. 일단 알겠다고 하고 호텔을 나왔다. 엄청 친절해서 어려운 미션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기분이 좋았다(?)
숙소로 다시 돌아가는 길에는 옆에 있는 차이나타운을 구경했다. 명절이 가까워서 그런지 엄청 많은 빨간 등이 있었고 양의 해라고 했지만 큰 염소 조형물이 있는 게 이해는 되지 않았다. 엄청난 인파의 중국사람들을 헤쳐 나가다 보니 여기가 싱가포르인지 중국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기념품을 저렴하게 파는 것 같아서 나중에 이곳에서 사기로 하고 지하철을 타고 다시 부기스로 갔다.
숙소를 가는 길 지하철 매장에 5달러에 머리를 잘라주는 곳이 있어서 한 번 잘라보기로 했다. 어떻게 잘라달라고 할까 하다가 그냥 숏 앤 니트, 짧고 깔끔하게 잘라달라고 말하기로 했다. 짧은 투블럭 머리를 한 친구가 물어봐서 저렇게 말했는데 잘 이해를 못했다. 그런데 그럴지도, 너무 애매한 주문이었다. 나에게 자기 머리를 가리키며 “Same me?” 라고 했는데 그냥 괜찮은 것 같아서 OK OK 했다. 아내는 너무 짧은 것 아니냐며 걱정을 했는데, 이 때 아내 말을 듣고 주문을 수정했어야 했었다. ...
일단 옆머리가 투블럭으로 쭉 밀리고 남은 머리를 자르는데 상당히 많이 자르는 것 같았다. 안경을 안 쓰면 보이지 않는 관계로 나는 어떻게 되고 있는지 전혀 몰랐다. 중간중간 안경도 씌워주고 체크도 했지만 괜찮게 되고 있는 것 같아서 계속 잘랐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거울을 봤는데, 헐. ... 너무 짧았다. ... 완전 군인머리였다. ... 머리는 안 감겨주지만 얼굴에 머리카락이 너무 많아서 세수는 하게 해 줬다.
미용실을 나오는데 후회가 밀려왔다. 세상에 돌려놓을 수 없는 것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엎어진 물이고, 다른 하나는 잘려나간 머리카락이다. ... 정말. ... 아내는 웃으면서도 이상하다는 말은 안했다. 괜찮다고는 말 했지만 정말 괜찮아서 괜찮다고 하는 것처럼 들리지는 않았다. ...
숙소 가는 길에 부기스 스트릿을 지나갔다. 여행자들 추천 코스지만 카오산로드를 엄청 다녔던 우리들에게는 카오산 뒷골목 정도로만 느껴져서 그냥 쉭 지나가기만 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저녁을 먹지 못해서 다시 리틀인디아로 갔다. 다른 인도음식점에 가서 치킨티카마살라와 난을 시켰다. 맛있어서 난 말고 다른 밀가루 빵을 시켜서 더 먹었다.
숙소에 돌아와서는 예약을 변경해달라는 메일을 보냈다. 홍콩으로 가는 저가항공 표는 확인해 두었고 숙소 예약 변경이 가능하면 결정만 하면 되었다. 정말 이렇게 홍콩과 마카오를 가게 되는 것인가. 아내가 처음 여행을 생각하던 곳이었는데 이렇게 가게 될 줄이야. 생각지도 않은 경제적인 지출이었지만, 베트남 비자 때문에 꽁돈 30만원 쓰는 것 보단 훨 나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