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를 방콕 시내 쪽으로 옮겼다. 카오산로드가 볼거리가 많긴 해도, 방콕의 번화가도 볼만할 것 같아서 과감히 숙소를 옮기기로 한 것이다. 하루를 보내본 결과 ‘대만족’은 아니다. 일단 숙박비가 시내라서 카오산로드보다 더 비쌌고, 이동시간 절약 차원에서 숙소를 옮긴 건데, 그냥 카오산로드에 머무르면서 버스로 다녀와도 됐을 것 같았다.
터미널21은 숙소랑 조금 떨어져 있어서 못 갔지만, 씨암센터(Siam Center)나 마분콩(MBK, 이름이 마분콩ㅋㅋ, 너무 웃긴 이름인 듯)을 비롯해서 돌아오는 길에 빅C까지 숙소를 오가며 주변의 쇼핑몰 4-5곳은 들어가 본 것 같다. 그래도 못 들어간 곳도 있긴 하지만... 일단 그 규모에 너무나도 놀랐다. 나도 뭐 우리나라의 큰 백화점이나 쇼핑몰을 다 가본 것은 아니지만, 동대문이나 이런 곳 보다 더 큰 것 같았다. 엄청난 규모의 쇼핑몰들이 줄지어 있으니 이건 뭐... 씨암이였나, 여기는 지나가다보니까 아시아 최고 쇼핑몰 수상도 받았던데, 역시 우리나라보다 한 수 위인 것 같았다.
다만, 조금 우리에게는 재미가 없는 곳이었는데, 규모에 놀라긴 했어도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모습이라 금세 실증이 난 것 같다. 마분콩은 그냥 지하상가, 씨암은 그냥 백화점 딱 이런 느낌. 특히 마분콩에 들어갔을 때는 순간 용산 전자상가에 온 줄 알았다. 물론 돈을 쓰면서 이것저것 산다면야 재미있겠지만, 우리는 앞으로 한 달 남짓 여행이 남았는데, 여기서 이것저것 사버리면 갖고 돌아다니는 게 너무나도 큰 일이였다. 그래서 쇼핑은 하지 않았고, 그래서 재미가 없었나보다. 쇼핑천국이라 불리는 곳에서 쇼핑을 안 했으니 천국은 아니었겠지...
그래도, 밤이 되어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빅씨를 지나 시내 길거리에 펼쳐진 작은 야시장(?)은 매우 재미있었다. 여기서도 물론 돈은 쓰지 않았지만 볼거리가 아주 흥미진진했다. 처음에는 탁탁탁탁(?)하는 소리에 뭐하나 해서 보니까 가죽에 이름을 새겨주는 것이었다. 구경을 하다 보니 주변에 거의 모두 다 이름을 새겨주거나 하는 그런 노점들이 많았다. 여권케이스, 지갑, 가방, 티셔츠, 신발, 모자 등등에 이름을 새기거나 달아주거나 찍어주는 그런 것. 오후에 구경했던 쇼핑몰보다 나는 이게 훨씬 재미있었다. 내 생각에 방콕 시내는 낮져밤이 스타일인 것 같다.
아침밥은 길거리에서 현지식으로 어떤 밥을 시켜 먹었다. 여기서도 태국 고추의 공격을 피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조심해서 먹었다. 볶음밥에 여러 반찬과 무국 같은 것을 줬는데, 뭐, 먹을 만 했다.
체크아웃을 하고 15번 버스로 방콕 시내로 들어왔다. BTS가 다니고 높은 빌딩도 있고 확실히 카오산로드 쪽과는 느낌이 다르다. 여긴 서울 시내에 들어온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시내라서 큰 길에 있는 숙소는 너-무 비싸서 좀 후미진 곳에 숙소를 알아봤더니 조금 걸어야 했다. 무거운 배낭을 매고 아고다에서 알아본 숙소로 갔는데, 200밧이나 높여서 부르는 것이었다. 헐. 아고다에서 수수료까지 하면 그 가격이 되지만, 왜 아고다에 고지된 금액과 다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그러냐고 하니까 자기네들은 그냥 오프라인 가격은 다 똑같고 할인은 안 된다고, 아니면 아고다에서 지금 예약해도 된다는 배짱아닌 배짱(?)을 부린다. 헐... 일단 알겠다고 하고 주변 숙소들을 다시 쭉- 알아보기 시작했다. 가격대는 카오산로드보다 저렴한 곳은 없었으나, 그래도 와이파이 무료인 숙소를 잡아서 일단 하루 머물기로 했다. 돈이 없어서 일단 보증금만 내고 짐을 풀고 나왔다.
환전해온 돈이 다 떨어져 씨티은행을 찾아 다시 큰 길로 갔다. 가는 길에는 쇼핑몰 앞에 천막을 많이 쳐 놓고 무슨 박람회 같은 행사를 했는데, 열쇠고리 만들기 체험이 있어서 우리 둘이 한 개씩 만들었다. 하얀 가죽 열쇠고리에 풀을 발라 문양이 있는 휴지를 붙이고 코팅액을 바르는 것이었는데, 이게 무슨 미술 기법 중에 한 개였다. 나름 이쁜 기념품이 생겨서 기분이 좋았다.
씨티은행에 가서는 돈을 출금하려고 했는데 한도 초과라고 되지 않았다. 분명 잔액은 엄청 많이(?) 있는데 되질 않는다. 그래서 점원을 불러 짧은 영어로 설명을 하니, 우선 카드가 활성화가 안 되어 있을 수가 있고, 또는 네가 다른 곳에서 돈을 뽑아서 한도 초과인 것일 수도 있다고 했다. 1월 1일에 하노이에서 돈은 잘 뽑았으니 1번은 아니었고, 방콕에서는 오늘이 처음이니 2번도 아니었다. 이렇게 말하니 다른 직원이 왔다. 사복을 입고 있어서 낯선 사람인 줄 알았는데 더 높은 사람이었다. 이 사람은 내가 뽑으려는 금액보다 적은 금액을 뽑아보라고 해서 그렇게 하니까 되었다. 휴- 큰일 날 뻔했다. 돈을 뽑고 나오는데는 관광영어가 아닌 뭔가 은행영어를 쓰니 머리가 좀 아픈 것도 같았다.
돈이 많아져서 그런지 그동안 못 먹었던 것을 먹어보기로 했다. 그래서 쇼핑몰 구경을 하다가 블로그에서 많이 봤던 뿌빳뽕커리(이것도 이름이 마분콩만큼이나 웃기다ㅋㅋ)와 아내가 좋아하는 모닝글로리를 먹기로 했다. 그동안 카오산에 먹던 20~60밧짜리 식사에 비해 뿌빳뽕커리만 280밧이라는, 엄청난 금액 차이가 있었지만, 그냥 먹었다. 모닝글로리는 이 야채가 뭔지 모르지만 마늘에 볶아주는 그냥 채소 맛인데 맛있었고, 뿌빳뽕커리는 게살에 카레가루랑 파프리카랑 마늘 등을 볶은 거였는데, 맛있었다. 게살과 카레가루, 한국 가서도 도전해봐야겠다. 다행히 향이 강하지 않아 아내도 입맛에 잘 맞는 듯 했다.
다 먹고 계산을 하는데, 부가세 7%랑 봉사료 10%가 붙어서 순식간에 70밧 정도가 늘어나버렸다. 헐. 미리 알았다면 여기서 안 먹었을 텐데, 사기를 당한 것은 아니지만 괜시리 기분이 나빴다. 우리가 그동안 길거리음식에는 부가세와 봉사료가 포함되어 있었다니, 정말 싼 거네...
잘 걸어 다닐 수 있게 되어 있어서 씨암이랑 마분콩까지 돌아다녔다. 마분콩을 돌아다닐 때는 너무 기대보다는 실망이 커서 서로 조심스레 마음을 열어 카오산을 추억하기도 했다. 그냥 버스타고 왔다가도 됐을 뻔 했다고... 그래도 배낭 다 싸서 숙소까지 잡았는데 어찌 한담, 어쩔 수 없지.
저녁을 먹기 전에는 버블티랑 동글동글한 와플 같은 것을 사먹었는데, 75밧, 3,000원도 나오지 않았다. 게다가 버블티는 완전 크고 버블도 완전 많이 들어있었는데! 이런 즐거움이 있다니, 내일 또 사먹어야겠다. 저녁은 아까 먹었던 씨암으로 가서 이번엔 푸드코트에서 주문을 했다. 뭘 먹어야 하나 고민하다가 그냥 익숙한 팟타이로... 카오산에서는 작은 새우 들어간 팟타이 50밧이지만, 여기는 왕새우 두 마리 들어간 거로 150밧을 줬다. 그래도 음식 견본과 실물에 있는 새우 크기가 똑같아서 좋았다. 아내는 역시 제일 무난한 팟타이가 제일 낫다며 싹싹 집어 먹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는 마사지를 받을까 했는데 아내가 별로일 것 같다고 해서 받지 않았다. 말을 듣고 나니 그런 것이, 다 젊은 애들이라 전문적이지 않을 것 같았고, 다들 짧은 치마나 바지 같은 것을 입고 있어서 퇴폐는 아니더라도 약간 그런 냄새가 나는 곳 같다고 했다. 그리고 정중히(?) 손님을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핸드폰 게임을 하면서 놀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 마사지는 패스~!
그래도 돌아오는 길에 슬라이스 옥수수와 석류쥬스를 먹어서 입은 즐거웠다. 옥수수는, 그냥 찐 옥수수인줄 알았는데 칼로 옥수수 알만 잘라줬다. 가격도 카오산보다 저렴하다. 신기한 것은 먹는데, 옥수수 심지(?)도 칼로 좀 베여서 씹히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알만 슥슥 잘라줘서 먹기 너무 편하고, 심지어 맛도 있었다. 이건 마치 옥수수계의 혁명 같은 느낌? 석류쥬스도 카오산에 많이 있었지만 사서 마시진 않았는데, 100% 석류에서 추출한 액기스만 있어서 그런지 맛있었다. 시중의 석류쥬스의 그런 시중의 맛(?)이 안느껴져서 좋기도 했고, 석류를 까서 먹는 귀찮음도 없어서 좋았다.
숙소에 돌아와서는 내일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 아유타야, 파타야, 에라완, 어디를 가야할지, 그리고 우리는 다시 카오산로드로 돌아가야 할지 등등... 그러다 결정한 것은 내일 이곳에서 하루 더 머물고(와이파이가 너무 빵빵한 게 일단 큰 역할을 함), 오전엔 짜뚜짝 주말시장, 점심 먹고 이쪽으로 돌아와서 터미널 21에 가기로 했다. 그리고 내일 모레 카오산으로 옮겨서 숙박비를 절약하면서 다음 일정을 생각해보기로...
그리고 아내는 아침에 매운 것을 먹어서 그런지 이상하다는 배를 움켜잡고 자고, 나는 여태 블로그... 그동안 밀린 것 다 쓰고 인터넷에도 올리고... 현재 새벽 2시 30분... 내일 일정 소화 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