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기차. 침대칸으로 변한 기차 2층에 올라와 오늘 하루를 정리하고 있다. 외국에서 기차를 탄 것도 신기한데, 그것도 침대칸 2층이라니... 1층보다 싼 이유가 단지 그냥 불편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정말 왜 싼지 몸소 체험하고 있다. 일단 제대로 앉기도 힘들고 1층보다 좁다. 흔들리는 것은 뭐 1층도 비슷할 것 같다.
비엔티엔에서 어떻게 하다 찾게 된 한국 여행사에서 표 예약이 안 돼서 듣게 된 정보, 직접 농카이를 가야 한다는 말에 무작정 오게 되었는데 이렇게 기차 안에서 흔들흔들 하고 있을 줄이야... 비엔티엔에 도착해서 한 시간도 채 되기 전에 터미널을 찾아가고, 또 20분 후에 출발하는 농카이 가는 버스표를 남은 돈 안에서 구하게 되고, 남은 돈 전부로 꼬치도 맛있게 사먹게 되다니 정말 모든 일이 척척 잘 되었다.
아내는 무거운 배낭을 메고 있으면서도 모든 과정을 재밌어 했는데, 그 중 가장 재미있었던 일이 육로로 국경을 넘은 일이었다. 처음으로 육로로 출국과 입국 수속을 밟았는데, 버스 타고 다리만 건너면 이렇게 쉽게 다른 나라로 갈 수 있다는 게 참 그랬다. 우리나라에서는 항상 비행기만을 타야 된다는 생각과 또 그렇게 해야 할 수밖에 없는 일이... 분단국가의, 반도 안에 갇힌 국가의 한계구나.
어쨌든 라오스에서의 9일을 이렇게 후다닥 마무리하고 우리는 방콕으로 향하고 있다. 개학 하고 ‘방에 콕’있었다고 농담하던 그 방콕을 지금, 흔들흔들 기차를 타고...
새로 옮기 숙소에는 닭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멀리서 닭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그런데 여긴 개소리 때문에... 숙소 앞에 개가 유난히 많이 있었는데 복도로도 개가 뛰어다니고 막 싸우고 그래서 좀 그랬다. 여기 방비엥의 숙소는 도대체 어딜 가야 조용히 잘 수 있을까...
아침에 일어나서 샌드위치를 한 개 사왔다. 나 반절, 아내 반절, 그리고 짐을 챙겨 체크아웃을 하고 여행사로 갔다. 방콕으로 밤기차를 타고 간다는 아주머니 두 분을 만났는데, 이분은 바로 농카이로 가신다고 했다. 우리에게도 왜 농카이로 안가냐고 했지만, 우리는 별 생각이 없었다. 비엔티엔에서 갈 생각만 했지, 방비에에서 농카이로 갈 생각은 없었던 거다. 그냥 뭐, 이따 만나게 되면 만나고 아니면 우린 비엔티엔에서 하루 잘 거라고 했다. 기차표가 없을 수도 있다는 말에 조금 불안하기도 했지만 뭐 안되면 하루 자면 되니까 마음이 편했다.
미니버스는 사라들을 태워 버스정류장에 내려줬다. 9시가 넘었는데 버스는 오지 않았다. 아내는 이런 면에서 오히려 여유로워졌다. 그냥 기다리자고... 그래, 기다리면 언젠가 오겠지. 기다리면서는 재미있는 것을 보았는데, 물통에 물을 채워서 버스에 넣고 있는 모습이었다. 저게 기름은 아닐테고, 워셔액 아니면 냉각수 같은데, 워셔액을 버스 뒤편으로 넣는지는 잘 모르겠고 왠지 냉각수 대신 물을 넣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냉각수를 넣지 않을까... 저래서 버스 엔진 덮개를 다 열고 다니는 것인가?
버스가 오자 아내는 재빨리 맨 앞자리에 앉았고 나는 짐을 가지고 뒤따랐다. 비엔티엔 가는 버스도 미니버스였는데 우리가 앉고 사람들이 타는데 간이의자까지 다 펴서 꽉 찼다. 같은 돈 내고 가는 사람들일 텐데... 뭐 별수 있나, 우리가 새치기 한 것도 아니고 버스 서 있는 곳으로 조금 빨리 가서 탄 것뿐인데...
루앙프라방에서 방비엥 오는 길과는 다르게 방비엥에서 비엔티엔으로 가는 길은 매우 편했다. 산길도 별로 없없고 길도 대부분 쭉쭉 뻗어있었다. 물론 도로 상태는 좋지 않았다. 우리나라 아파트 단지보다 포장 상태가 더 좋지 않다. 이런 포장상태는 우리나라 시골에서도 보기 힘들 정도? 풍경은 우리나라 옛날 시골 같았다. 70년대를 살아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70년대라고 해도 괜찮을 정도, 아니면 내가 기억하는 90년대 시골 모습만 해도 이정도 될 것 같았다.
중간에 휴게소에서 한 번 비엔티엔으로 들어왔다. 아내는 계속 자다가 깼다. 비엔티엔에서는 확실히 차가 많아졌다. 신호등도 있었고 루앙프라방, 방비엥과 비교해서 복잡해 보였다. 버스는 우리를 버스정류장이 아닌 어느 공터에 내려줬고, 갈 곳 없는 우리는 툭툭 기사를 무시하고 그냥 일단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약간 헤매며 여행사를 찾아 나섰다.
우연찮게 들어간 골목에 호텔과 여행사가 많이 있었는데, 첫 번째 여행사는 비행기표만 다루는 곳이었고, 호텔에서는 오늘 표는 다 끝나서 예매해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다가 들어간 한국 여행사. 이곳도 알아보더니 예매할 수 없어서 농카이로 직접 가보라고만 했다. 우리는 모닝마켓 뒤에 있는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가는 길에 빠뚜사이를 비롯해 유명한 관광지는 그래도 다 봤다.
한국에서 비엔티엔에 대해서 알아볼 때는 ‘비엔티엔은 한 나라의 수도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높은 건물도 없고 여유로운 곳’이라고 했는데, 나는 이 말이 믿기지 않을 만큼 수도다운 모습을 본 것 같다. 그래도 어느 정도 높은 건물들도 있었고, 차들도 많고 오토바이도 좀 다녔다. 뭔가 비엔티엔에 머무르지 않고 지나가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물론 있어서 경험하는 것이 있었다면 좀 다르긴 하겠지만 말이다.
버스정류장에서 농카이 표를 사고 15,000킵과 10분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아내는 차에 타 있고 나는 나가서 먹을 것을 사오기로 했다. 옥수수 같은 먹거리를 살까 했지만, 버스정류장에서는 팔지 않아서 오징어 꼬치를 샀다. 2개에 5천킵. 그래서 6개를 샀다. 사려고 기다리는데 꼬마애게 옆에서 돈을 달라고 계속 구걸을 해서 무시하고, 꼬치 6개 중에 한 개를 건네줬다. 돈을 주는 것 보단 나을 것 같아서... 꼬치를 들고 버스로 가는 길에 뒤를 돌아보니 한쪽에 가서 꼬치를 먹고 있었다. 들어와서 아내에게 말하니 잘 했다고 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런 아이들을 너무 이상하게 생각할 것까진 없을 것 같다. 우리나라도 해방 이후 미군에게 ‘Give me the chocolate'이라고 말하면서 다녔다고 하는데, 비슷한 거 아닌가 싶다. 그땐 우리도 가난한 나라였으니까.
라오스-태국 국경으로 오는 데는 30분 정도밖에 걸리진 않았다. 버스정류장에서 1시간 반 걸린다는 말은, 아마 국경 통과 시간까지 다 포함해서 농카이 도착까지 걸리는 시간을 말한 것 같았다. 내려서 무슨 카드를 받고 출국 도장을 받았다. 그리고 그 카드를 전철 표 내듯이 기계에 넣으니 끝. 이건 왜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여튼, 이렇게 출국 수속이 끝나고, 다시 버스를 타서 메콩강을 넘었다. 다리 한 개만 넘으면 이렇게 나라가 쉽게 바뀌다니, 예전에 대학원에서 압록강 건너 다롄으로 세미나를 갔을 때가 생각났다. 그때도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두 나라가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북한과 중국. 중국은 휘앙찬란한 건물과 높은 빌딩들이 있었는데 북한은 정말 아무 것도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모습, 게다가 압록강이 범람할 때를 대비해서 중국은 높은 담도 쌓아 놨는데 북한은 없어서 오히려 그 물이 북한 쪽으로 더 많이 범람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마음이 좀 아프기도 했다.
강을 건너서 도착해서는 간단한 서류를 작성하고 입국 수속을 무사히 마쳤다. 보안검색대는 고장이 났는지 청소를 하고 있어서 하지 않았다. 원래 안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이렇게 태국에 왔다는 게 신기했다. 태국 행 버스를 타자마자 뭔가 벌써 태국에 온 것 같다는 느낌은 받았지만 이렇게 육로로 국경을 넘는 것은 마치 처음 해외여행 갈 때의 기분을 들게 했다. 라오스 국경에서는 면세점도 봤는데 뭔가 어색하기도 했다.
버스를 타고 오면서는 아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우선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것이었다. 구체적인 것은 아니었고, 기차표를 예매하지 않고 농카이로 가는 길에 만약 우리가 기차표를 예매해 놓은 상태였으면, 뭔가 라오스에서 버스 시간이 늦어지고 가는 길이 왠지 초조하고 불안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그런데 또 동시에, 지금 우리처럼 예매해 놓지 않고 가는 것 역시 불안하기는 매 한가지였다. 다만 우리에겐 표가 없으면 비엔티엔에서 머무르거나 우돈타니로 가서 놀자는 대안이자 자유가 있었다. 이러면서 우리의 삶도 이런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계획해 놓은 삶, 정해져 있는 길을 간다는 것이 안정적이라고 하지만 꼭 그렇게만 사는 것이 불안한 마음 전혀 없이 사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것이다. 다가오는 미래에 대해서 누구나 대비하며 살고 싶어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이 삶 아닌가.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해서도 조금 고민하게 되었다. 뭐, 극단으로 가지 말고 적당히 섞어가며 살아야 하지 않나 싶기도 하고...
그리고 또 2주 정도가 지나서 우리가 이렇게 여행하고 있는 것이 너무 신기한 것에 대한 것이었다. 우리가 여행을 떠나지 않았다면 지금 아내나 나나 일을 하면서 그저 평범한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여행을 마치고 우리의 미래가 불확실하다고 해도, 그래도 우리는 50일 가까운 시간 동안 젊은 날 이렇게 여행을 했다는 경험, 이 사실 하나가 남는 것이니 꼭 손해보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어떤 비유에서 20대에 차를 산 친구와 돈을 모은 친구 이야기가 있었는데, 할부 5년 간 차를 산 친구는 진짜 힘겹게 살고 5년 후 돈은 많이 모으지 못했어도 차는 남았는데, 차를 사지 않은 친구는 5년 후 보니 돈도 많이 없고 차도 없었다는, 지금 현실을 풍자한 이야기가 생각났다. 우리도 비슷한 것 아닐까. 인생에 대한 후회는 한 것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라는데, 우리가 지금 이렇게 여행 한 것에 대 한 후회는 없을 것 같다. 황금 같은 신혼에 이렇게 함께 여행을 했으니까 말이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도 시나브로 들었다. 나는 인생을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적어도 누구 보다는... 그런데, 작년에 교수님과 했던 말이 생각이 났다. 내가 뭔데 그 사람과 비교를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 내가 참 못하는 것 같다 하는 것도 비참하지만, 잘 산다고 우월하게 느끼는 것도 참 없어 보이는 것 아닌가. 이런 면에 있어서는 모두가 잘 산다, 못 산다로 평가하는 게 아니라, 각자 모두 나름의 ‘자기 자신의 인생’을 살고 있는 것 아닐까. 여행을 하지 않는 사람보다 내가 잘 산다고 평가할 잣대나 근거는 어디에도 없는 것 이니까. 이런 면에서 보면 다른 사람의 인생을 부러워 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 우리의 여행에 대해서도 많은 사람들이 ‘부럽다’는 말을 많이 했는데, 처음엔 이 말에 조금 우쭐해지기도 했으나, 나중에는 너무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처음에 가졌던 우쭐한 마음이 불편할 정도로... 물론 우리는 일을 잠시 멈춘다는 힘든 결정을 한 것이었지만, 그들도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우리와는 다른 선택을 한 것이지, 누가 잘 한 선택을 한 것은 아니니까...
그리고 우리는 평범한 인생을 살지는 말자고 했다. 물론 평범하다고 하는 인생을 선택한 사람에 대해서는 그들의 선택을 존중하고, 우리 부부의 삶에 대해서만 말을 한 것이다. 그런데 내가 좀 들떠서 좀 많이 나갔는지, 아내는 그래도 남들이 하는 기본정도의 삶은 살면서 나중에 그렇게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며 살짝 브레이크를 걸며 타협점을 내 놓았다. 역시, 극단으로 살수는 없겠고, 적당히 현실과 타협할 수 있는 것은 타협해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객기만 가지고 살기는 힘들겠지.
이런 이야기들을 하면서 우리는 비엔티엔에서 농카이 버스터미널로 도착했다. 터미널에 내려서는 기차역으로 가야 했는데, 농카이로 오는 버스를 같이 탔던 남자 친구들 셋이 보여서 한 번 물어봤다. 다행히 이분들도 방콕가는 기차를 탄다고 해서 툭툭을 같이 타기로 했다. 정해진 요금대로라면 2명 이상부터는 1명에 50밧인데 저분들이 흥정을 해서 200에 타기로 했다. 가는 길에 이야기를 해보니 부랄 친구 세 명이 열흘간 여행을 하는 거라고 했다. 루앙프라방은 가지 않고, 방비엥에서 즐기다가 한국 사람들이 너무 많아 그냥 비엔티엔으로 미리 넘어와서 여기저기 구경을 했다고 했다. 우리가 봤던 거는 거의 다 봤는데, 야경이 이쁘다고 했다. 야시장도 재미있었는데 우리는 비엔티엔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 남자 셋이라 그런지 확실히 어느 정도 정해진 틀을 넘어서 놀았다. 현지 학교 운동회를 구경가고, 야시장에서 대신 물건을 팔아주고 하면서... 정말 재미있는 경험이었을 것 같다.
기차역에 도착해서 표를 알아보는데, 1등석은 다 나갔고, 2등석 침대칸도 2층만 남았으며 마주보는 자리는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뭐 어쩌나, 그냥 할 수밖에. 그래도 싸게 구했다. 1인당 688밧, 여행사에서 대신 예매하는 거품은 다 빠진 가격이다, 완전 현지식으로.
기차표도 다 예매하니 점심 생각도 났고, 같이 온 친구들이 기차 안에서 파는 밥이 맛이 없어서 본인들도 샌드위치를 사왔다고 해서, 우리도 짐을 맡기고 아주 늦은 점심을 먹고 밥을 사러 나갔다. 바로 앞에 식당이 있어서 들어갔는데, 아침에 비엔티엔에서 만났던 아주머니 둘을 만났다. 역시, 뭔가 여행 전문가이셔서 그런지 늦지 않게 도착해서 스테이크까지 드신 후였다. 우리는 천 원 정도 하는 팟타이 두 개를 시켜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그리고 볶음밥 두 개와 스프라이트는 포장.
기차역으로 들어오니 잠시 후 탑승 안내 방송이 나왔고, 설레는 마음을 안고 기차를 탔다. 우리 자리는 2층 앞뒤자리였다. 다른 사람과 바꿀까도 했었는데, 너무 애매해서 그냥 앉기, 아니 눕기로... 그래도 앞뒤라서 커텐만 살짝 들추면 바로 보였다. 기차는 일단 의자 상태였고, 출발하고 잠시 후 승무원이 돌아다니면서 표 검사를 하고 침대로 바꿔줬다. 완전 신기. 처음에는 2층 내 자리에 우리 둘 다 앉아있다가, 나는 머리가 닿아서 불편해 누워있다가, 완전 좁고 다른 사람들도 타고 그래서 아내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1층이면 둘이 누워도 충분해서 같이 잘 수 있을 것 같았는데, 2층은 1층보다 조금 좁아서 둘이 자기에는 좀 부족했다.
나는 누워서 노트북으로 사진 정리와 밀린 블로그를 썼고, 아내는 잤다. 8시도 안 되었는데... 9시 반에는 저녁을 먹으려고 깨웠다. 식당 칸으로 갔는데 정리가 끝났는지 먹지 말라고 해서 아내 자리로 올라가서 조금은 힘겨운 자세로 먹었다. 베트남이나 라오스보다 향신료를 덜 넣는 것 같아서 아까 팟타이도, 볶음밥도 아내 입에 잘 맞는 것 같았다. 다행이다.
내일 아침 6시면 방콕에 도착한다. 시내로 들어가서 일단 숙소를 정하고 푸켓 가기 전까지 뭘 할지 계획을 세워야겠지. 12일이나 여유 있네. ... 이럴 거면 루앙프라방에나 조금 더 있을 걸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라오스 남부가 좋다는 말도 들어서 생각해 봤는데, 비엔티엔에서 12시간이 넘는 버스를 타기가 지금은 조금 엄두가 안 나서 그냥 포기했다. 캄보디아로 넘어가기에는 편한데, 우리 계획엔 캄보디아가 없었고, 물론 수정할 수 있긴 하지만, 팍세나 시판돈에서 방콕 가는 길이 또 만만치 않을 것 같아서... 이건 나중 여행에 넣어야겠다. 친한 사람들 끼리 렌트카로 돌아다녀도 괜찮을 듯...?
이제 자야겠다. 블로그 내용 다 쓰니까 노트북 배터리도 딱 10%남았다고 경고 문구가 뜨네. 하루하루 시간 정말 잘 간다. 벌써 2주. 곧 1/3이 지나가다니... 벌써부터 아쉬울라 그런다. 큰일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