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화창해지니 기분도 좋아지는 것 같다. 자전거 페달을 밟고 블루라군 가는 길이 힘들어도 신난다. 맑은 강가를 지나 시골길로 접어들어 가는 길은 불편해도 재미있고 신났다. 혼자라도 신나겠지만 아내와 함께 라서 더 즐거운 것 같다. 어제의 그 한국 같은 분위기와 북적함을 떠나서 그런 건가. 다시금 여유를 찾은 것 같다. 파아란 하늘, 신기하게 솟아있는 바위산, 맑은 물. 루앙프라방이 여전히 최고이지만, 그래도 방비엥도 재미있네.
기분이 좋다. 오늘 밤, 아내가 자전거 때문에 몸져눕기(?) 전까진...
깜깜한 새벽부터 닭들이 울어대느라 잠도 제대로 못잔 것 같다. 정말 새벽 2-3시쯤 이었을 것 같은데, 닭들이 여러 곳에서 번갈아가면서 울어댄다. 당장이라도 일어나서 ‘닭 모가지를 비튼다’ 는 표현은 딱 이럴 때 쓰는 것 같았다. 그래도, 어떻게 또 자고 일어났다. 일어나서는 한인 게스트하우스답게 거금 3만킵에 한국식 백반을 먹었다. 조금은 초라해 보이는 그런 백반. 반찬 리필이 되긴 하는데 소시지야채볶음은 안된다고 한다. ... 먹으면 얼마나 더 먹는다고. 정이 뚝. 숙소를 옮기긴 하지만 빨래는 맡기고 저녁에 찾으러 오면 되니까, 물어보니 빨래는 해 주는데 다 해서 마른 것을 한 곳에 모아두면 알아서 찾아가면 된다고 한다. 헐... 이런 빨래 서비스가 다 있었나? 조금 어이가 없어서 알겠다고 하고 그냥 얼른 짐을 쌌다. 또 정이 뚝뚝. 나는 아침 먹은 거만 계산하고 그냥 나가는데 아내는 아침 잘 먹었다고 인사도 한다. ㅎㅎ... 아내는 한국식 밥을 좋아하지. 지금까지 여행가서 한식을 안 먹은 적이 없었다.
어제 저녁에 알아본 곳으로 숙소를 정했다. 하루에 10달러. 루앙프라방보다 방비엥이 방값이 대체로 저렴한 것 같았다. 라오스 킵이 얼마 남지 않아서 그냥 달러로 결제했다. 남은 라오스 체류 기간 동안 100달러 이상 환전하기에는 너무 많이 남을 것 같고, 숙소 같은 곳만 달러 섞어서 결제하다가 필요하면 10~20달러 정도만 환전 더 하면 될 것 같다. 숙소로 올라가서 짐을 풀고 빨래도 맡겼다. 그리고 우리의 숨은 빨래, 운동화를 빨기 시작했다. 날이 좋아서 잘 마를 것 같았다. 비를 맞고 돌아다닌 채 며칠을 묶혔는지 모른다. 그것도 습한 날씨 속에서... 잘 숙성된 냄새가 난다. 비누로 깨끗하게 빨아서 발코니 난간 옆 햇볓이 아주 잘 드는 남쪽에 세워놓았다. 잘 마르길 기원하면서...
방비엥의 상징이랄까, 블루라군에 가기로 하고 짐을 챙겨서 나왔다. 백팩에 있던 여행 짐을 다 꺼내고 수영복하고 중요한 것들만 다시 백팩에 넣고 내가 멨다. 자전거 빌리는 곳으로 가니 15,000킵이었는데, 옆집은 10,000킵이다. 오토바이를 빌리고 싶었으나 아내의 만류로... 자전거 두 대를 빌렸다. 아내는 잘 못 탄다고 했는데 곧잘 탄다. 선글라스까지 끼고 출발! 기분이 좋아진다.
블루라군까지 7km정도 떨어져있다고 표시된 지도를 들고 페달을 밟았다. 유료다리와 무료다리가 있는데 우린 당연히 무료다리로 간다. 조금 허술하게 지어진 듯해도 무너질 것 같진 않았다. 맑은 강이 흐르고 뒤에는 멋진 산이, 그리고 그 위로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들, 그리고 우리는 자전거를 탔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러나, 한 가지 완벽하지 않은 것이 있었는데, 바로 블루라군 가는 길이었다. 완전 비포장도로에 중간에 파인 곳은 물웅덩이가 크게 있었다. 울퉁불퉁 길을 가다보니 엉덩이가 너무 아팠고 가는 길이 너무 길긴 했다. 사실 자전거로 7km면 먼 것 같지는 않은데, 길이 너무 안 좋았다, 정말. 그래도 가는 길은 멋졌다. 시골길의 여유로움을 즐기며 경치 구경하는 게 정말 짱이었다. 오히려 이런 길에 콘크리트가 깔리고, 아스팔트로 길이 새로 들어선다면 너무나도 어색하고 재미를 반감시킬 것 같은...?
사진도 찍으면서 쉬엄쉬엄 힘겹게 블루라군에 도착했다. 중간에 꼬마가 길을 잘못 알려줘서 속을 뻔 했지만 아내가 속지 말라고 해서 다행이다. 블루라군을 물어봐서 꼬마가 손짓을 했는데 다른 갈림길이었다. 알아본 정보에 의하면 이런 식으로 하고 가이드 비용을 삥뜯긴다(?)고 하지... 입장료 10,000킵씩 내고 자전거도 안전하게 주차!
사실 이곳은 블루라군보다 동굴이 더 유명했던 것 같다. 입장료도 동굴에 대한 입장료이고 블루라군은 서비스다. 동굴로 올라가는 길에 있는 파란 시냇물 정도? 꽝시폭포에 비하면 그 규모가 엄청나게 작았다. 그래서 꽝시폭포를 같이 갔던 친구들이 블루라군 보면 실망할 수도 있다고 그랬나보다.
블루라군은 일자로 깊이 4m에 달하는 시내와 여길 가로지르는 다리, 그리고 풀밭이 있다. 그 뒤로는 동굴에 올라가는 길이 있고. 풀밭에 깔린 돗자리 위에서는 대부분 비키니를 입은 서양 여자들이 선탠을 했고, 블루라군에서는 대부분 한국사람들이 튜브와 구명조끼를 빌려서 물놀이를 했다. 물 반 고기반이 아니라 물 반 한국사람 반이었다. 뭐, 저들도 우리를 보면서 똑같은 생각을 했겠지, 한국사람 커플이이라고. 우리도 무리지어(?)왔다면 똑같았을지 모르겠지만, 그냥 너무 시끄러운 것 같았다. 다이빙도, 물놀이도 너무 요란하게 하는 것만 같았다. 나는 가보지 못했지만, 아내는 그냥 한국의 한 워터파크 같다고 했다. ㅎㅎㅎ 블루라군 한국지점.
우리는 동굴에 먼저 올라가기로 했다. 가는 길은 매우 높고 험준했으나 동굴로 들어가니 생각보다 신기한 건 없었다. 그래서 들어가다가 중간에 그냥 나왔다. 어둡고 위험해 보였다. 힘겹게 내려와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우리도 조용히 물놀이를 했다. 아내는 수영을 전혀 할 줄 몰라 그냥 얕은 바위 위에만 서 있었고, 나도 수영을 할 줄 모르지만 그래도 어떻게 그냥 할 줄 알아서 왔다갔다도 하고 그랬다. 아내의 걱정 속에... 줄을 잡고 물속으로 뛰어드는 것도 한 번 해 보았다. 다이빙도 하고 싶었으나 아내가 엄청 말려서 하진 않았다.
기대보단 별로였던 블루라군을 뒤로하고 다시 자전거에 몸을 실었다. 엉덩이가 잘려져 나갈 것 같은 아픔이 전해져 왔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다시 7km를 가야한다. 가는 길에 보이는 시골 풍경은 정말 다시 봐도 일품이었다. 한 시간 반 동안 페달을 밟아 겨우 강가까지 나왔고, 우린 여기서 다시 물놀이를 조금 했다. 그냥 발만 담그고 노는 정도... 그래도 물이 맑고 시원해서 기분이 좋았다. 카약을 타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는데, 우리도 할지말지 조금 고민이 되었다. 하롱베이에서 카약을 타봐서 뭐 어떤 건지는 대충 알겠는데, 엄청 막 하고 싶거나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시 다리를 건너 을왕리(?)로 들어왔다. 시원하게 스프라이트를 사서 마시고, 늦은 점심으로 샌드위치를 먹었다. 루앙프라방과 메뉴 이름은 비슷한 것 같은데 만드는 방식이 달랐다. 여긴 양파를 볶아서 넣어주고 기름을 굉장히 많이 쓴다. 신선한 샌드위치는 루앙프라방이 더 가까워 보였다. 그래도 맛있게 먹고...
시내를 조금 더 구경하다가 힘들어서 숙소로 돌아왔다. 운동화가 잘 말랐는지 확인했는데, 오메, 완전 바짝 말라버렸다. 오예. 기분 캡짱 좋았다. 루앙프라방에서도 기분이 조금 다운된 게 운동화가 젖기 시작하면서부터였는데, 방비엥이 운동화를 바짝 말려주다니... 하루 동안 마르기 힘든데 정말, 대박이다.
발코니에서 운동화 끈을 매면서 조금 쉬다가 밖으로 나갔다. 자전거로 한 바퀴 더 돌고 반납. 8시까지지만 8시까지 탈 자신은 없었다. 나도, 그리고 아내도. 걸어 다니는데 아내가 몹시(?) 힘들어했다. 저녁을 먹어야 하는데 메뉴 정하기가 힘들었다. 현지식은 아내가 입맛에 맞지 않다고 하고, 평범식(?)은 한국에서도 먹을 수 있지 않냐 하고. 그럼 도대체 뭘 먹어야 하는 것일까...
결국 돼지고기 숯불구이 집으로 왔다. 한국식 돼지고기 구이라고 간판에 한국말로 친절히 적혀있었지만 이곳에서도 유명하다고 하니 그냥 먹어보기로... 돼지, 오리 이렇게 시키려고 했는데 오리는 끝났다고 해서 돼지, 닭으로 시켰다. 숯불구이와 양배추와 상추, 민트향이 나는 작은 풀과 오이, 면을 줬다. 그리고 소스도. 면이 밥 대신인 것 같았고, 쌈싸먹는 것 처럼 먹으면 됐다. 다행히 아내도 맛있다고 해서 나도 잘 먹었다. 아내는 물갈이 사건(?) 이후로 먹는 것이 걱정된다고 한다. 또 배탈이 날까봐... 하긴, 7년 동안 연애 할 때도 가리는 게 없었던 아내였고, 베트남으로 들어와서도 탈나기 전까지는 정말 잘 먹긴 했다. 살면서 이런 적이 처음이었다고 하니 얼마나 걱정되었을까... 나는 몇 번 장염도 걸려보고 그래서 알긴 했지만... 앞으로 남은 여행이 한 달인데, 뭘 먹으면서 지내야 할지 걱정이다
아, 아침에 숙소를 옮길 때는 갑자기 길거리에서 한국 여자 대학생으로 보이는 친구들이 갑자기 한국분이냐 묻더니, 한국음식 필요하지 않냐 하면서 햇반이랑 육개장 같은 것들을 한 봉지 줬다. 순간 고민이 되었다. 우리도 한국에서 가져온 짜파게티랑 너구리를 계속 짐만 되다가 루앙프라방에서 겨우 먹었는데, 또 이런 ‘짐’을 받아야 한다니... 그런데 아내에겐 한국 음식이 필요할 것 같고... 처음엔 우리도 짐이 될 것 같다고 거절했는데 조금, 한 5초 정도 생각을 하다가 그냥 받았다. 아내는 역시나 좋아했다. 나는 고민이다. 언제, 어떻게 먹어야 할지... 행복한 고민인가...ㅎㅎㅎ 그런데 생각해보니 정말 집에 가는 길인데 우릴 준건지, 아니면 방비엥에서 가면 루앙프라방이나 비엔티엔으로 갈 건데, 본인들도 짐이라서 우릴 준건지는 잘 모르겠다. 뭐, 일단 받았으니 우리가 알아서 잘 먹으면 되지.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는 아내가 걷는데 너무 힘들다고 하면서 고통을 호소(?)했다. 그래서 숙소에 앉아있으라고 하고 내가 바나나 팬케이크(에그 코코넛 밀크 마일로)와 환타를 사왔다. 나는 비어라오 골드. 방에 들어와서는 내가 마사지 좀 해주고 사온 음식들을 먹었다. 나도 많이 피곤한지 아내가 씻는 동안 깜빡 잠이 들었다. 그러다 깨서 나도 씻고 나서 밀린 블로그... 아내는 잔다. 내일 과연 아내의 몸 상태가 어떨지...
방비엥에서의 둘째날 밤, 지금은 자정을 넘어 12시 30분인데, 좀 전까지만 해도 밖에서는 음주가무의 장이 벌어졌다. 시끄러운 음악소리와 사람들이 크게 떠드는 소리... 정말 루앙프라방과는 몹시 다르다. 상상할 수 없었던 모습. 자연 환경은 너무 좋은데 이런 분위기는 적응이 안 된다.
비엔티엔에 언제 갈까. 고민이다. 하루 더 있기에는 뭔가 할 일이 없고(카약킹과 튜빙을 하면 되긴 하지만...), 내일 떠나기엔 뭔가 아쉽고... 아내와 오늘도 이야기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루앙프라방에 며칠 더 있었을 텐데... 사실 돌아가고 싶기도 하지만, 돈이 아까운 것 보다, 그 산길을 6시간동안 다시 가기가 너무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