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바이디. 사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넌지시 건네는 한 마디. 시장이라고 하지만 소란스러움은 없고, 소란스러움은 없어도 흥정은 얼마든지 가능한 생기 넘치는 루앙프라방 야시장이다. 메콩강 너머로 해가 떨어지기 시작할 때, 길거리에는 빨강 파랑 천막들이 하나 둘씩 펼쳐진다. 순수한 눈망울을 가진 꼬마부터 주름진 이마의 할머니까지, 손수 만들어 온 물건들을 가지런히 정리하며 하루 장사를 준비한다. 작은 것 하나까지 가지런히 정리하는 손길과 그 손길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미소. 말은 통하지 않아도 오가는 계산기에 적힌 숫자는 모두가 만족하는 값을 찾아간다. 흥정을 마치면 서로가 건네는 한 마디. 컵짜이.
새소리와 빗소리에 살며시 잠이 깼다. 흐린 날씨 탓에 해는 보이지 않아도 창문으로 스며드는 밝은 기운, 아무 걱정 없이 시작하는 하루에 눈을 뜨자마자 기분이 좋아진다. 별다른 계획이 없어도 한가로이 머무를 수 있는 곳. 계속 여기에만 있고 싶지만 그래도 갈 준비를 해야 한다.
아내 몸이 괜찮아 지는 것 같아서 오늘은 아침을 라오스 식으로 먹어보기로 했다. 축축한 운동화에 우비를 걸치고 길을 나선다. 비가와도 뭔가 운치 있는 루앙프라방 골목길. 하늘을 보며 아내가 말한다.
“여기는 구름도 여유롭네. 하나도 안 움직여.”
허름한 식당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라오스 쌀국수라고 하는데 과연 어떤 맛일까. 자리에 앉아서 잠시 기다리니 국수 두 그릇을 내어 준다. 다른 사람이 먹는 것을 보니 라면사리 같은 과자를 넣어 먹기에 우리도 한 개 넣어봤다. 베트남에서 먹던 쌀국수와는 보기에도 다르고 맛도 달랐다. 선지 두 덩어리에 큼직한 돼지고기 덩어리들, 국물은 갈색에 가깝다. 뜨겁지 않아서 그런지 숙주가 익지 않아 조금 비릿한 맛이 많이 났다.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 것을 보이 맛없는 집은 아닌 것 같은데 기대했던 것 보다는 조금 실망이다.
아침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는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어제 계속 실패했던 마사지. 아침에는 사람이 없어서 한가하다. 남녀 마사지사 각각 1명씩 있다고 해서 함께 받았다. 전신 오일 마사지로 했는데, 90분 코스로 온 몸을 그냥 아로마 오일로 문질러주는 마사지였다. 나는 조금 더 주물러주고 강력한 그런 것(?)을 원했는데, 조금 아쉬웠다. 반면에 아내는 계속해서 살살 문질러주는 마사지가 너무 좋았다고 한다. 뭐, 아내가 좋았으면 그냥 나도 좋았던 거로...
마사지를 받고 나오니 뭔가 몸이 쭉- 풀리는 느낌이 나면서 빨리 걸을 수가 없는 느낌이다. 가는 길에는 샌들을 샀다. 비가 오기 전날 갔던 가게, 진작 샀더라면 운동화가 젖지 않았을 텐데... 샌들 가격을 물어보니 15만킵, 우리 돈으로 20,000원 정도다. 조금 비싼 것 같아 아내 것과 내 것, 두 개를 산다고 하고 흥정을 했다. 처음에는 실세 같은 아주머니께서 28만킵이라고 했지만 아저씨가 몰래 소심하게 계산기에 27만킵으로 보여줬다. 우리는 25만킵까지 깎을 요령으로, 메모장에 라오사전을 찾아서 ‘학생 가난함 250,000’을 써서 아저씨에게 몰래 전달했다. 다행히(?) 아주머니는 다른 손님을 대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저씨는 260,000까지 내리다가 우리가 좀 더 웃으면서 사정을 하자 25만킵으로 OK 했다. 아주머니 몰래...ㅋㅋㅋ
젖은 운동화를 벗으니 뭔가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숙소로 가는 길에는 조마베이커리에 가서 망고쥬스와 당근케이크를 먹었다. 당근케이크는 당근 맛은 나지 않았지만 달콤하고 맛있었다. 우리는 방비엥으로 언제 갈지 고민을 하다가 내일 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하루 더 있고 싶었지만, 다른 여행지에서도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기에...
비가 계속 와서 점심을 먹으러 나오기 귀찮을 것 같아, 숙소 들어가기 전에 단골 샌드위치 가게에서 샌드위치 한 개를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우리를 기억하고 이제는 바나나 2개 서비스를 또 넣어준다. 숙소에서는 샌드위치를 먹고 아내도 나도 그냥 잤다. 마사지를 받아서 그런지 온 몸이 나른해 진 것 같다.
얼마나 잤을까, 비는 조금 그친 것 같고 아직 해는 지지 않은 것 같다. 얼른 나가서 방비엥 표를 예약해야 한다. 미니밴이 조금 빠르다고 해서 원래는 버스를 타려고 했지만 오전에 출발하는 미니밴 표로 예매했다. 대행사마다 가격들이 조금씩 다 달랐는데, 알아본 것 중에 제일 저렴한 가격, 120,000킵으로 구했다. 툭툭으로 픽업하는 것 까지 포함해서.
푸시산에 올라가질 못해서 올라가려고 했는데 이미 해가 넘어가서 어둑어둑해지는 바람에 그냥 포기했다. 내일 아침에 갈 수 있으면 가고, 못가면 뭐 못 가는거지... 다음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있겠지. 저녁으로는 어제 먹고 싶었는데 못 먹었던 꼬치를 먹으러 레스토랑에 갔다. 지금까지 갔던 곳 중에 제일 괜찮은 레스토랑. 입구부터 왕꼬치구이를 굽는데 가격도 괜찮았다. 손님이 많이 없어서 좋은 자리에 앉았는데, 손님이 계속 들어와 자리가 어느새 꽉 찼다. 좋은 레스토랑인가보다. 돼지/닭 꼬치구이 한 개만 시키고 다른 것은 먹어보고 시키기로 했다. 양파, 파인애플, 방울토마토, 고기를 꼬치에 꽂아서 구워주는 건데, 예상하는 그 맛이지만 맛있었다. 둘이서 꼬치 한 개씩 다 먹고 나서 조금 부족한 듯 해, 밥 한 공기랑, 메콩강 물고기구이를 한 개 더 시켰다. 밥은 완전 큰 그릇에 나와서 둘이 먹기에도 충분했고, 물고기구이도 큰 기대는 안하고 그냥 한 번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에 주문한 건데 기대 이상이었다. 마늘과 함께 구워서 비린 맛도 안 나고 맛있었다.
배부르게 밥을 먹고는 야시장을 구경했다. 비가 그쳐서 어제보단 야시장 구경이 훨씬 수월했다. 아쉬운 것은 가게가 처음 봤을 때처럼 꽉 차지는 않았다는 것. 오늘이 마지막 밤이니 마구마구(?) 질렀다. 사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돈 문제보다 남은 한 달 동안 들고 다니는 게 더 문제였다. 그래서 그냥 라오스 상징적인 기념품으로 몇 개만 샀다.
시장 구경을 하고 나니 아내가 배고프다 그래서 크레페를 사먹었다. 누텔라 바나나, 맛있을 수밖에 없는 맛이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입맛 없어서 뭐 먹고 싶은 게 없다고 하더니, 이제 이것저것 다 먹고 싶다는 아내, 물갈이는 다 끝났나보다. 다행이다. 크레페를 먹고 돌아오는 길에는 또 다시 단골 샌드위치 가게를 갔다. 10개 넘는 똑같은 가게가 일자로 있어서 조금 헷갈렸는데, 우리가 근처에 가자 이번엔 오히려 가게 주인이 먼저 헬로~ 하면서 손을 흔든다. ㅋㅋㅋ 사과 레몬 쥬스를 시켜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마셨는데, 아, 대박 맛있다. 그리고 내일 방비엥 가는 차에서 먹을 과자랑 음료수를 샀다. 점심으로는 먹을 샌드위치는 내일 아침에 사야지.
숙소에 돌아와서는 가방에 짐을 챙겼다. 이럴 수는 없겠지만, 뭔가 가벼워지는 것 같기도 하고 짐이 없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아마도 며칠 동안 이동하면서 가방을 계속 정리하면서 노하우가 생긴 것 같아서 일 듯 하다.
루앙프라방에서의 마지막 밤. 아쉽다. 정말 아쉽다. 그래도, 새로운 곳을 기대하며 아쉬움을 두고 이곳을 떠나야겠지. 기대된다. 정말 기대된다. 새로운 곳에서는 무엇을 보고 느낄 수 있을까?
다시 지붕으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들리지만 두렵지 않다. 이제 우리에겐, 샌들이 있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