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켓은 바다만 있는 줄 알았는데 올드타운이라는 숨겨진 여행지가 있어서 매우 흥미로웠다. 올드타운이란 이름에 걸맞게 오히려 이곳이 푸켓의 원조인 셈. 파통비치를 비롯한 개발된 해변가와는 달리, 이곳에서는 오래된 듯한 옛날 풍의 건물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1층에는 원단을 비롯한 각종 스카프를 파는 가게들도 죽 이어져 있었고, 커피와 차, 간단한(?) 식사를 즐길 수 있는 이쁜 카페들도 많이 있었다.
추천을 받아서 간 i46카페를 경험한 것은 정말 우리에게 행운이었다. ‘엔틱’하다는 표현을 거의 쓰지 않지만 ‘엔틱한’ 카페의 중국계 사장님은 정말 친절했고, 여기서 만난 일본인 친구 아저씨와의 수다도 잊지 못할 것이다. 부드러운 향이 풍기는 커피와 익숙한 맛이지만 맛있게만 느껴졌던 토스트가 너무 좋았다. 더 좋았던 것은 우롱차를 계속해서 따라주는 서비스, 최고였다.
오늘 아침은 그동안 ‘엄청난 짐’이었던 햇반이다. 호텔에 전기포트가 있어서 햇반을 얼른 먹어버리기로 했다. 방비엥에서 받아서 보름 정도 힘들게 들고 다녔던 햇반 두 개, 참치캔 한 개, 육개장 비슷한 것 두 개. 액체류는 비행기에 갖고 타지 못해 육개장은 방콕에 버리고 햇반이랑 캔은 가지고 왔는데 드디어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물 끓이는 전기포트에 딱 들어가서 데웠는데 아주 잘 데워졌다.
이렇게 간단히 아침을 먹고 숙소 옆에 오토바이 빌리는 곳에서 24시간 렌트를 했다. 상한 곳들은 없는지 직원이 아주 꼼꼼히 체크를 하는데 이게 오히려 뭔가 더 불안하다. 기스 하나라도 놓쳤다간 반납할 때 오해받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 기름 양까지 보더니 반납할 때는 맞추라고 한다.
다행히 기름은 1/4에 체크해서 빌렸는데 조금 달리다보니 절반 정도가 있었다. 올드타운에 가는 게 목적이지만 일단 파통비치 한 바퀴를 돌아보기로 했다. 해변으로 가서 바다에 발도 담궈 봤는데 약간 미지근했다. 수영복은 안 입고 나와서 그냥 오토바이를 타고 갔다. 언덕을 넘어 올드타운으로...
가는 길이 조금 멀고 힘겨운 듯 했으나, 이런 생각이 들 때 쯤 올드타운에 도착했다. 어제 소개받은 i46 카페를 아내가 딱 발견해서 가게 앞에 주차하고 들어갔다. ‘농’이라는 중국인 아저씨가 하는 곳인데 카페는 완전 좋았다. 무슨 잡지 같은 곳에 소개된 것도 보여줬는데, 푸켓에 5대째 살고 있으며, 고조할아버지가 중국의 스님이었는데 푸켓으로 와서 태국 여자랑 결혼(?)하면서 자리를 잡았고, 증조할아버지는 광산업으로 푸켓에서 완전 유명하고 영향력있는 부자가 되었으며, 이 아저씨는 이곳에서 공부를 하다가 방콕으로 올라가지 않고 지역사회의 문화나 뭐 이런 거를 알리기 위해 카페를 차렸다고 소개가 된 것을 번역해서 힘겹게 읽었지만 재미있었다. 카페 구경을 하며 차도 마시고 샌드위치도 먹고 신나게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어제 소개시켜준 장씨 아저씨와 통화도 하게 되었다. 농 아저씨가 우리와 일본인 아저씨 사진을 찍어서 장씨 아저씨에게 보내준 것 같았다. 투어 아직 결정 못했는데;;;
한참을 일본인 아저씨와 떠들다가 우리는 올드타운을 구경하러 나왔다. 이 길은 농 아저씨의 추천 코스. 일단 사원에 오토바이를 주차하는 것이 무료니까 여기다 사원 구경하는 겸 오토바이를 세우고 ㅁ자로 걸어 다니면 멋지다고 했다. 걸어다녀보니 파통비치와는 확실히 다르고 약간 루앙프라방 느낌이 나면서 조용하고 예쁜 가게와 카페, 식당들이 많아서 구경하기에 좋았다.
점심을 먹을까 하다가 특별히 먹고 싶은 게 없어서 그냥 오토바이를 타고 출발했다. 기름을 조금 넣고 이제 산으로 올라가보기로 하고 산 방향으로 무작정 달렸다. 오르막을 조금 오르다보니 이곳도 어제 장씨 아저씨가 얘기해준 원숭이산이었다. 원숭이들이 그냥 길가에 있다는 그 산. 아내는 무섭다고 뒤에서 완전 난리였는데 나는 신나서 더 빨리 오토바이를 몰아 오르막을 오르고 싶었지만 속도가 더 이상 오르지 않았다. 한참을 올라가니 오토바이 몇 대와 서양 관광객 네다섯 명이 원숭이를 구경하고 있었다. 푸켓 시내가 한 눈에 보이기도 하는 전망대인 이곳에 원숭이들이 적게는 삼삼오오 많게는 십수마리가 무리지어 있었다. 아내는 완전 무서워하면서도 신기해했다.
이제 남쪽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지루한 길을 한참이나 달려 남쪽 끝에 있는 라와이해변에 도착했다. 배 타는 곳으로 길게 걸어가게 되어 있어서 잠시 걸어가 보기도 했다. 바닷물이 정말 맑았고, 아래에 떼 지어 다니는 멸치(?) 비슷한 것들의 점프도 볼 수 있었다. 서쪽으로 오토바이를 몰아 산을 넘으면서 각종 뷰포인트마다 잠시 멈춰 아름다운 푸켓의 바다들을 감상하기도 했는데 너무 좋았다. 중간에 어떤 해변에서는 비키니 상의를 입지 않고 돌아다니는 할머니들을 봤다. 문화충격이었다. ...
카론비치와 카타비치도 지나 파통으로 산을 넘는데 아까부터 떨어져가던 기름이 이제 정말 바닥을 드러낼 것 같았다. 제대로 된 주유소가 없고 길거리에서 파는 기름병(?)만 보여서 안 넣고 있었는데 이제 기름병에 담긴 휘발유라도 넣어야 할 것 같았다. 사는 데 돈이 없으면 안 되듯이, 오토바이 타는 데 기름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며 산을 내려오는데 반대쪽에 기름병 파는 곳이 있어서 바로 가서 한 병을 넣었다. 게이지가 올라가니 다시 안심이다. 마지막 언덕을 넘어 복잡한 파통비치에 도착했다.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가는 길에 투어를 어떻게 할지 고민이 되어서 보이는 여행사마다 다 물어보고 다녔다. 정실론에서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도 계속 물어봤다. 정실론에서는 공짜로 투어 보내준다길레 알아보니까 무슨 다단계같은 곳이라서 한참을 설명 듣다가 빠져나왔다. 투어, 돈이 애매한 것이 약간 문제가 되었다. 팡아만, 라차섬 두 곳을 다 갈 수는 있는데 그렇게 되면 먹을 것을 엄청 아껴야 했다. 길거리음식만 먹으면서... 대신 한 곳만 가면 먹는 것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 수 있었다. 이거 때문에 아내와 의견 조율이 계속 잘 되지 않았다.
숙소에 들어와서도 한참을 이거 때문에 얘기하다가 결국 라차섬 한 곳만 가기로 했다. 그리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기로... 그래서 가는 길에 오는 길에 물어본 여행사를 들려서 예약을 했는데 늦어서 내일 투어는 다 찼고 모레로 하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 장씨 아저씨게에 굉장히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큰 차이가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제한된 예산으로 여행을 다니고 있는 우리에게는 두 명에 대한 비용 차이가 꽤 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어쨌든 일단 큰 건을 한 개 마치니 다시 마음이 가벼워졌다.
아내와 조금 기분을 내기 위해 정실론에서 가장 비싸 보이는 카페로 가서 딸기빙수를 시켰다. 거의 두 명 밥값 정도 하는 빙수, 나는 보지 못했었는데 아내는 지나다니다 눈여겨 봤었나보다. 주문한 빙수가 나왔는데 굉장히 맛있었다. 딸기와 같은 ‘베리 종류(?)’의 과일은 엄청나게 새콤달콤했고, 내부가 얼마나 추웠는지 끝까지 녹지 않는 빙수를 먹을 수 있어서 더 좋았다. 오는 길에는 바나나 팬케이크까지 사먹는 작은 사치(?)를 좀 부렸다. 라오스에서 먹어본 맛과 비슷하면서도 정말 다르고 맛있는 맛이었다.
아내가 나에게 고민하는 것은 좋은데 왜 그렇게 심각해 지냐고 한 말이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그런 것 같다. 사실, 여행지에 대한 호불호는 사람마다 모두 다르고, 좋게만 마친 여행이면 그냥 다 좋은 여행인데 왜 그렇게 고민하는 것인지... 아마 비용대비 최고의 만족도를 계산하기 때문이겠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행에 와서 도둑질 안 당하고, 사기 안 당하고, 아프지만 않으면 ‘뭘 하든’ 좋은 여행일 텐데 왜 그렇게 내가 혼자 심각해지는 것일까. 이제는 조금 더 마음을 내려놓고 생각하기로 했다. 한국에서 그냥 일 하며 살 때처럼 치열하게 계산적으로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상황 되는대로, 좋은 시간들 보내며 좋은 느낌 좋은 감정 갖고 여행하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