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야기/독후감 IV

쉽고 재미있게 읽는 노인과 바다

inhovation 2016. 7. 24. 19:35

No. 181

노인과 바다

헤밍웨이 지음

민우영 옮김

휘닉스 펴냄


중학교 때 읽었어야 할(?) 법한 이 소설을 나는 이제서야 읽어보았다. 내용은 대충 알고 있었다. 노인이 바다에 가서 큰 물고기를 잡았는데 상어한테 다 잡아먹힌다는 내용. 읽게 된 계기는 특별한 건 없었고, 어느날 퇴근 길에 알라딘 중고서점에 가서 이런저런 책을 사다가 그냥 옆에 있어서 집은 것 같다. 2-3천원 뿐이 안한 것 같고, 읽어보지도 않았는데 한 번 사서 읽어보자 하는 가벼운 생각으로.


그래서 며칠 동안 정말 가볍게 읽었다. 좀 어려운 책들 읽으면서 이해하려고 하고 생각하려고 하고 그런게 없으니 머리도 뭔가 책을 읽고는 있지만 쉬고 있는 느낌. 소설만이 줄 수 있는 그런 거겠지? 책의 앞부분에는 온갖 해설, "인간 의지의 세레나데 - 희망을 부르는 고독한 인간 승리, 노인과 소년의 우정, 헤밍웨이의 자연관" 같은 2-3페이지의 글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지금 이런걸 공부하려고 이 책을 편 것도 아니고, 고등학교 때 언어영역 공부하는 것 처럼 이 책을 다시 읽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좀 읽다가 여기부터 골치아파지는 것 같아서 다 넘겼다.


소설의 주인공은 노인 산티아고, A급 조연으로 소년 마놀린이다. 노인은 84일째 아무 고기도 잡지 못하고 85일째 다시 작은 배를 타고 출항한다. 그리고 마알린이라는 아주 큰 참치(?)와의 사투를 시작한다. 바로 고기를 낚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하루 종일 마알린과의 싸움을 하고 3일째 되는 날 드디어 물고기와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둔다. 그러나 피 냄새를 맡고 몰려든 상어떼의 수차례 습격에 의해 결국 물고기는 뼈만 남는다. 항구로 돌아왔을 때 사람들은 거대한 뼈만 보고도 놀란다. 노인이 얻은 것은 아무 것도 없지만 정신승리(?)만 한 것이다.


뭐, 앞에 있는 해석처럼 여러가지 관점으로 이 소설을 다소 '어렵게' 바라볼 수도 있겠지지만 내가 제일 인상깊었던 부분은 마알린이 노인의 손에 완전히 죽게 되는 부분, 그리고 상어떼의 습격을 외롭게 상대하는 모습이었다.



<마알린을 잡는 순간>

  노인은 낚싯줄을 내려놓고 발로 밟고서 작살을 높이 쳐들어 있는 힘을 다해서, 아니 젖먹던 힘까지 짜내어 노인의 앞가슴 높이만큼 물 위로 드러난 거대한 가슴지느러미 바로 뒤 옆구리를 내리 꽂았다. 노인은 쇠작살이 고깃살을 뚫고 들어가는 감촉을 느끼며 있는 힘을 다해 내리밀었다.

  그러자 치명상을 입은 마알린은 죽게 되었음을 느꼈는지 갑자기 날뛰면서 물 위로 높이 솟구치면서 거대한 몸길이와 넓이, 온갖 힘과 아름다움을 남김없이 드러내 보여 주었다. 고기는 배에 타고 있는 노인보다 더 높이 공중에 걸려 있는 듯 하더니 꽝하고 물 속으로 잠기자 노인과 배 전체가 온통 물벼락을 맞고 말았다. (p. 117)


<첫 번째 상어떼: 덴투소>

  상어는 빠른 동작으로 고물 가까이 바싹 다가와서, 상어가 고기를 덮칠 때 노인은 상어의 쩍 벌린 입과 이상한 두 눈과 이빨로 찰칵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꼬리 바로 윗부분을 향해 달려드는 모습을 보았다. 상어의 머리와 등이 물 밖으로 나와 있었다. 노인은 고기의 가죽과 살점이 뜯기는 소리를 들었을 때, 상어 머리의 코로부터 곧장 올라오는 선이 두 눈 사이의 선과 만나는 부분을 향해 작살을 꽂았다. 그러나 사실 그런 선은 없었다. 노인의 눈앞에는 날카로운 푸른 머리와 커다란 눈과 거친 이빨을 찰칵거리며 무엇이든 삼켜버리려는 툭 튀어나온 주둥이가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 곳이 상어의 골이 있는 부분이었으며, 노인은 바로 그 곳을 내리쳤다. 노인은 전력을 다해 피투성이가 된 손으로 작살을 던졌다. 희망은 전혀 없었지만 각오와 격렬한 적개심으로 작살을 꽂았던 것이다. (p.126)


<두 번째 상어떼: 갈라노>

  상어가 다가왔다. 그러나 마코상어처럼 달려들진 않았다. 한 놈이 몸을 돌려서 배 밑으로 들어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거기서 그놈이 고기를 흔들고 잡아끌어 배가 흔들리는 것을 노인은 느낄 수 있었다. 다른 한 놈은 가늘게 찢어진 노란 눈으로 노인을 노려보다가 반달모양의 주둥이를 크게 벌리고 이미 물어뜯긴 부분으로 날쌔게 덤벼들었다. 갈색 정수리와 골과 척추가 만나는 줄이 선명하게 이어져 있었다. 노인은 노에 달린 칼을 이용하여 그 교차점을 찔렀다가 다시 뽑아내어 고양이같이 생긴 상어의 누런 눈을 향해 칼을 내리 꽂았다. 상어가 고기를 놓고 떨어져 나갔다. 그러나 그놈은 죽어가면서도 물어뜯은 고기를 삼켰다. 그러나 다른 한 놈이 여전히 고기를 물어뜯고 있어서 배는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다. 노인은 돛을 풀어 배를 옆으로 빙 돌게 해서 상어가 물 밖으로 드러나도록 했다. 상어가 보이자, 뱃전에 몸을 기대고 찔렀다. 살을 찔렀으나 피부가 어찌나 단단한 지 겨우 칼이 들어갔을 정도였다. 너무 힘껏 찌르느라 손뿐만이 아니라 어깨까지 욱신거렸다. 그러나 상어는 머리를 쳐들고 쏜살같이 올라왔다. 상어의 코가 물 밖으로 나와 고기를 물어뜯을 때 노인은 평평한 정수리 한가운데를 정면으로 찔렀다. 계속해서 칼날을 뽑아서 다시 같은 곳을 찔렀다. 그래도 상어는 갈고리같은 주둥이로 고기에 매달려 있었다. 이번에는 왼쪽 눈을 찔러 보았다. 그래도 상어는 떨어지지 않았다.

...

  노인은 화가 치밀었다. 칼날로 척추골과 두개골 사이를 찔렀다. 이번에는 칼이 쉽게 박히며 상어의 연골이 쪼개지는 것을 느꼈다. 노인은 노를 거꾸로 돌려 칼날을 주둥이 속으로 집어넣어 비틀어 돌리자 상어가 힘없이 떨어져 나갔다. (p. 132-3)


<세 번째 상어떼: 쥐상어>

  그놈은 사람의 머리라도 들어갈 만큼 넓은 주둥이를 벌리고 여물통에 덤벼드는 돼지처럼 달려들었다. 노인은 상어가 고기를 물게 놔두었다가 노에 붙들어맨 칼로 단 한번에 골통을 찔렀다. 그러나 상어가 몸통을 뒤틀며 퉁겨 나갔기 때문에 칼을 빼았기고 말았다. (p. 137)


<네 번째 상어떼: 갈라노>

  상어 두 마리가 나란히 달려들었다. 가까이에 있는 상어가 고기의 은빛 나는 배에다 주둥이를 들이받는 것을 보자 노인은 몽둥이를 높이 들고 상어의 넓은 머리를 힘껏 내리쳤다. 몽둥이로 내리칠 때 노인은 고무처럼 단단한 감을 느꼈다. 동시에 딱딱한 느낌도 들었다. 고기를 물었다가 놓고 물러나는 그놈의 코끝을 다시 한 번 세차게 갈겼다.

  또 한 마리 상어는 물 속으로 들락날락 하다가 주둥이를 벌리고 달려들었다. 고기에게 달려들어 주둥이를 다물 때 턱밑으로 하얗게 살점이 삐져 나와 바닷물 속에서 너울거리는 것이 보였다. 노인은 몽둥이를 휘둘러서 놈의 머리를 치자 상어는 노인을 노려보듯이 쳐다보더니 다시 고깃점을 물러 뜯었다. 상어가 물어뜯은 그 살점을 삼키려고 물러섰을 때 다시 한번 몽둥이로 내리쳤다. 그러나 단단하면서도 고무 같은 부분을 때렸을 뿐이었다.

...

  상아가 쏜살같이 덤벼들었고, 다시 고기를 물고 주둥이를 다물었을 때 또다시 몽둥이를 높이 올렸다가 세차게 내리쳤다. 이번에는 뒤통수 뼈에 몽둥이가 닿는 것이 느껴졌다. 그놈이 살점을 뜯어먹고 천천히 떨어져 나갈 때 또 같은 곳을 후려쳤다.


<다섯 번째 상어떼: 갈라노>

  그러나 한밤중에 노인은 또 싸워야만 했다. 이번에는 승산이 없는 싸움이라는 것을 알았다. 상아가 떼를 지어 몰려 왔고 그놈들의 지느러미가 물 속에서 일으키는 선과 고기에게 덤벼들 때의 안광만이 보일 뿐이었다. 노인은 몽둥이로 상어의 머리를 후려갈겼다. 주둥이가 살점을 뜯어먹는 소리가 들렸으며, 배 밑에서 있는 놈은 고기를 물어뜯을 때마다 배가 흔들거렸다. 노인은 몽둥이로 육감과 소리만으로 짐작되는 곳을 필사적으로 후려쳤다. 그러다 마침내 몽둥이마저 빼앗기고 말았다.

  노인은 키에서 손잡이를 떼어내어 두 손으로 움켜잡고는 놈들을 닥치는 대로 마구 내리쳤다. 그러자 상어떼는 이제 이물 쪽으로 몰려가더니 서로 번갈아 가며, 또는 한꺼번에 덤벼들어 고기의 살점을 뜯어내는 것이었다. 그들이 다시 달려들려고 돌 때 뜯긴 고기 조각이 바닷물 속에서 하얗게 빛나는 것을 보았다.

  마침내 한 놈이 고기의 머리통을 향해서 덤벼들었다. 이제 노인은 모든 것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놈은 뜯기지 않는 고기 머리까지 물고 늘어졌다. 노인은 상어의 머리를 향해 필사적으로 내리쳤다. 한 번, 두 번, 계속 휘둘렀다. 키 손잡이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노인은 부러진 키 손잡이로 상어를 찔렀다. 그러자 부러진 끝이 예리하게 파고드는 것을 느꼈다. 노인은 끝이 뾰족하다는 사실을 알고사 다시 한 번 찔렀다. 상어는 물었던 것을 놓고 맥없이 떨어져 나갔다. 그것이 몰려든 상어떼 중에서 마지막 놈이었다. 고기는 더 이상 뜯어먹을 것이 없었던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이물과 고물이 뭔가 했더니 각각 선수와 선미, 배의 앞부분과 뒷부분을 가리키는 단어였다. (몰랐...ㅋㅋ) 단어 공부하게 해준 책. 그리고 책 표지에는 '절망의 시대를 넘어 내일을 여는 메시지!'라고 써있는데, 이정도까지인지는 잘 모르겠고...ㅋㅋ 그냥 난 책 뒤표지에 있는 문구가 더 맘에 든다. '쉽고 재미있게 읽는 노인과 바다' ㅋㅋ 기나긴 지루함 끝에 마알린을 잡을 때 나도 기뻤고, 안타깝지만 초반에 상어떼를 속 시원하게 죽여나가며 물리치는 모습에 짜릿함을, 후반부로 갈수록 마알린의 살점이 뜯겨나가지만 상어떼를 물리치지 못하는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책이었다. 앞으로도 종종 이런 쉬운 책들을 읽어봐야겠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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