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야기/독후감 IV

공산주의자는 아니지만 공산당 선언을 읽어보았다

inhovation 2016. 6. 26. 13:33

No. 179

공산당 선언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

이진우 옮김

책세상 펴냄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니라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사도행전 2:41-47)


공산주의라는 '개념' 정도만 알게 됐을 때, 나는 위에서 언급한 성경 말씀이 공산주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닌가 궁금했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민주주의 국가에 살아서 공산주의를 경험해 본 적은 없지만, 민주주의의 사회 안에서도 발생하는 사회적인 문제, 물론 이건 경제체제(자본주의)에 따른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런 것들을 해결하기 위해 사회적 체제가 계속 발전하고 고도화되면 성경의 저 말씀처럼 될 수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석사 때 북한학을 공부하며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 대해 완벽히는 아니지만 좀 더 자세히 알게되고 나서 조금 더 이 분야(?=공산주의)를 공부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몇년 전,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친구가 '공산당 선언'을 아무 선입견 없이 읽으면 정말 책을 덮고 나서 이렇게만 될 것 같고 가슴이 뛸 정도라고 얘기 해 준 적이 있는데 나는 이제야 이 책을 일게 된 것이다. 앞에서 말한 궁금증들을 가지고, 또 방금 말한 조금 더 알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그런데 사실은 매달 북한 관련 콘텐츠로 연재를 하고 있는 큐티진에 이 책의 내용을 인용할 수 있을까 해서 읽기 시작한건데 인용은 안하고 내 견문과 이해를 넓히기만 했다.


얇은 책이지만 총 세 번을 읽었다. 첫 번째 읽을 때는, 내용은 정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전문용어라면 전문용어인, 내게 익숙하지 않은 용어들이 많이 있었고, 당시의 역사적 사실이나 배경지식도 많이 부족해서 이해가 잘 안 됐다. 두 번째 읽을 때는 내용보다 구조가 잡혔다. 같은 내용을 말하고 있는 문단이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 등등. 그리고 마침내 세 번째 읽을 때는 내용이 슬슬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실 더 이해하려면 열 번은 더 읽어야 하겠지만, 그렇게까지 읽기에는 여유도 없고(ㅋ), 지금 읽은 수준에서 정리라도 해야겠다는 차원에서 이렇게 독후감을 남긴다. 그러나 여전히 완벽히 이해 되지 않고 어려운 부분이 있다.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떠돌고 있다ㅡ공산주의라는 유령." (p. 15)

책은 이와 같은 문구로 시작하고 있다. 당시에 유령이 떠도는 것 처럼 공산주의가 파급력이 있었나보다. 이후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가 생겨난 배경에 대해 역사적인 설명을 이어간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부르주아지>

"근대의 부르주아지 자체가 장구한 발전 과정의 산물이며, 생산 및 수송 방식에서 일어난 일련의 변혁의 산물임. ... 부르주아지의 발전 단계마다 이 단계와 일치하는 정치적 진보가 병행했다. 부르주아지는 봉건 영주의 지배 아래에서는 억압받는 신분 계급이었고, 중세 자치도시 코뮌에서는 무장한 자치 연합체였으며, 어떤 곳에서는 독립적 도시 공화국이었고, 어떤 곳에서는 군주국의 납세 의무를 지닌 제3의 신분이었다. 매뉴팩처의 시기에는 신분제 군주국이나 절대 군주국에서 귀족에 대한 평형추이면서 대군주국들의 주요한 토대였다. 그리고 마침내 현대적 대의제 국가에서 그들은 대규모 산업과 세계 시장이 갖추어진 이래 배타적인 정치적 지배권을 쟁취했다." (p. 18)


<프롤레타리아>

"부르주아지, 즉 자본이 발전하는 정도에 비례하여 프롤레타리아트, 즉 현대의 노동자 계급도 발전한다. 이들은 일자리를 찾는 한에서만 생존하며, 자신들의 노동이 자본을 증식시키는 한에서만 노동을 발견할 수 있는 계급이다. 자신을 한 조각씩 팔아야 하는 이 노동자들은 다른 여느 판매품과 같은 상품이며, 그래서 마찬가지로 경쟁의 모든 부침, 시장의 모든 변동에 내맡겨져 있다." (p. 24)


<공산주의자들의 목적>

"공산주의자들의 다음 목적은 나머지 모든 프롤레타리아 정당들과 동일히다. 즉 프롤레타리아트를 계급으로 만들고 부르주아지 지배를 타도하며 프롤레타리아트를 통해 정치 권력을 정복하는 것이다." (p. 33)


우리나라의 계급과 비교하자면 부르주아지는 약간, 최고계급은 아니지만 양반 정도, 프롤레타리아트는 노동자(=노비?) 정도 되지 않을까 싶다. 여튼, 그리고 나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혼동해서 많이 쓰긴 하는데 내가 배운 바로는 사회주의에서 더 고도화 되면 공산주의로 넘어간다고 했는데, 사전적인 의미를 찾아보니 아래와 같은 것 같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사회주의 : 모든 사람은 그 능력에 따라 일하고 노동에 따라 분배한다.

공산주의 : 모든 사람은 그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한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_철학사전)


공산주의 = 필요에 따라 분배. 이게 맞다면 맨 위에서 인용한 성경의 말씀은 '필요에 따라 나누어 준다'고 하니까... 성경에서 말하는 이상향(?)은 공산주의? 음... 약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는 것 같은데, 어느 정도 이상향에 있어서 비슷한 점이 있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같다'라고 한다면 모든 것이 같아야 하니깐. 그래서 '공산당 선언'을 조금 더 살펴보면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점이 나온다. 몇 가지 있겠지만 대표적인 것으로는 '부인 공유제'에 대한 것이다.


이 부분은 이전에 '체 게바라 평전'을 읽을 때도 봤던 것이다. 그 때는 공산주의에서 추구하는 것이 '부인 공유제'라는 것은 몰랐고, 체 게바라가 왜 한 명의 부인만을 두어야 하는지, 여러명을 두어도 된다고 했던 것을 보면서 단지 체 게바라의 개인적 의견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런 것이 '공산당 선언'에서는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었다.


"시민적 결혼은 실제로 아내를 공유하는 것이다. 공산주의자들에게서 비난할 수 있는 점은 기껏해야 위선적으로 감춰진 부인공유제 Weibergemeinschaft 대신 공식적이고 공명정대하게 부인 공유제를 도입하려 한다는 것이다. 아무튼 현재의 생산 관계를 철폐하면서 여기서 파생된 부인 공유제, 즉 공식적, 비공식적인 매춘도 사라질 것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p. 40)


이뿐 아니라 '공산당 선언'에서는 가족 폐지(p. 38)까지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주장들이 성경과 맞지 않는다고 본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아담과 하와를 지으시고, (죄의 산물이긴 해도) 둘 사이에서 가인과 아벨이 생겨 최초의 가족이 생겼기 때문이다. 또한 결혼식에서 많이 인용하는 마태복음 19장 6절 말씀에서는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라고 했다. 그리고 성경을 몇 번 읽어봤지만 가족을 폐지하는 것에 대해서도 보지 못했다.



성경과 다른 부분이 있었다고 해서 뭐 혼란스럽거나 내가 흔들렸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고, 이렇게 비교해 볼 수 있고 공산주의가 뭔지 알아가는 것이 재미있었고 그랬다. 사실 '공산당 선언' 본문보다는 해제가 더 흥미로웠는데 실패한 공산주의에 중요한 의미가 담겨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나 예언이 실현되지 않았다는 것은 반드시 예언의 지식이 잘못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누가 알겠는가. 그리스도가 언젠가 재림하여 인간을 구원할지. 마찬가지로 마르크스의 예언이 실현될 수도 있을 것이다." (p. 114-5)


또한 공산주의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다루었는데...


"마르크스가 예리하게 분석한 자본주의의 문제점들은 모두 해소된 것일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오늘날 유령처럼 우리의 영혼을 잠식하고 있는 것은 바로 공산주의가 아니라 '공산주의의 평범화'일 것이다. 희망의 잠재력과 비판의 파괴력이 모두 박탈된 박제로서의 이념, 그것이 공산주의일 것이다. 만약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현실적 문제를 은폐하는 수많은 기제 속에서 우리의 인간성을 여전히 훼손하는 문제들을 함축하고 있다면, 우리는 아직 희망과 비판의 방향이 될 수 있는 이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공산주의 이념의 일상화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를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봐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p. 117)


공산주의, 결과를 알고 나면 망한 거지만 이런 점들을 봤을 때 공산주의에서 말한 개혁정신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도 계승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민주주의, 자본주의 사회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결론은 절대 공산주의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사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안정적으로 자리잡기 위해 개혁해야 하는 것은 과감하게 바꾸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에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하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공산주의에서 말하는 것이 어느 정도는 사도행전에서 추구하는 모습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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