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에 있는 작은 화로(?)에서 베트남 아줌마가 뭘 태우고 있어서 살펴보니 돈과 부적이었다. 돈은 미화로 100달러짜리였고, 당연히 가짜 돈이었다. 부적과 100달러짜리 몇 장을 한 세트로 해서 파는 것 같았다. 특별한 의식은 없었고 그냥 불타는 화로에 부적과 돈을 막대기로 집어넣는 게 전부였다.
숙소로 돌아와서 찾아보니 설에 하는 제사 비슷한 거라고 한다. 찾아본 정보에 의하면 음력으로 1월 5일 정도까지 제사가 계속되는 거라고 했는데, 오늘이 딱 1월 5일이긴 하다. 양력으로. 음...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비슷한 거 같다.
베트남 설에는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전통음식도 만들어 먹고 세배는 하지 않아도 세뱃돈 같은 것도 준다고 한다. 그래서 돌아다니면서 시장에서 빨-간 봉투를 그렇게 많이 파는 모습을 볼 수 있었나보다. 제사는 신들이 많아서 뭐 부엌 신부터, 무슨 신, 무슨 신, 쭉- 돌아가면서 제사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우연찮게 떡 안에 소시지(?)가 들어 있는 음식도 사먹었는데, 이것도 역시 설에 해 먹는 전통음식이라고 한다. 바나나 잎 안에 찹쌀과 콩 같은 것을 넣어서 하루 정도 쪄서 먹는다고...
그런데 요즘 들어 이런 설 풍속들이 많이 없어지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그런데 난 운 좋게 본 것인가? 신기한 경험이었다.
조금 좋은 호텔 방으로 옮겼지만 창문이 없었다. 아니 있었어도 창을 열면 건물이 보이는 창이라 사실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완전 깜깜한 상태로 오래 잘 수 있었다. 7시부터 10시까지 호텔 조식을 준다고 했는데, 9시가 조금 넘어서 내려갔다. 뷔페식이었는데 밥 두 종류, 구운 소시지, 과일 몇 종류, 반미, 커피와 차 정도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래도 조식으로 먹기에는 부족함 없이 괜찮은 수준이었다. 나는 맛있게 먹는데 아내는 속이 안 좋다고 조금 먹고 방으로 올라갔다. 나만 혼자 남아서 커피랑 빵, 과일을 더 먹었다. 커피는 계속 마시고 싶었는데 기회가 오지 않아서(?) 못 마셨는데, 여기서 베트남 스타일로 커피를 마실 수 있어서 세 잔이나 마셨다. 진한 커피에 연유를 타먹는 방식인데 정말 맛있었다. 커피에 연유를 탄 그 맛인데, 맛있다. :)
아내 속이 안 좋아서 점심에 특별한 것을 먹을 순 없을 것 같았고, 오늘은 그냥 계속 숙소에서 쉬기로 하고 나는 밖에서 점심거리를 사오기로 했다. 어제 먹은 소이가 찰밥이라서 괜찮을 것 같아 밖으로 나갔다. 아내는 나 혼자 그냥 한 두 시간 정도 돌아다니다 오라고 했다. 자유시간...? 올 때 포카리스웨트도 사오라는 특명이 떨어져서 일단 포카리를 찾아 나섰다. 그런데 가게마다 찾는데 없었다. 어떤 가게에서 냉장고에 포카리가 한 개 남아서 들고 오니까 이건 파는 게 아니라 했다. 음...
소이를 찾아 물어물어 가는데 어떤 곳에서 20,000동이라 해서 그냥 갔다. 어제 10,000동에 먹었는데 너무 비싼 것 같아서다. 그런데 어제 소이를 파는 할머니 있는 곳으로 갔는데 이미 다 팔고 철수하셨는지 자리에 없었다.
오면서는 만약 아내와 함께라면 사지 않았을 것 같은 바나나 잎에 싸인 뭔가를 샀다. 자전거에 바구니를 매달고 팔고 다니는 아주머니한테 샀는데, 주먹 크기 정도 되는 게 5,000동(250원)이었다. 과연 이것은 무엇일지... 소이와 포카리를 찾아 동수언시장 쪽으로 갔다. 신기한 거, 먹고 싶은 거 정말 많았지만 참았다. 나 혼자 이렇게 밖에 나와서 이러는 게 좀 미안하기도 하고, 그냥 같이 먹고 싶었다. 사진만 많이 찍으면서 돌아다녔다. 동수언시장 내부는 나도 처음 들어가는데, 이곳엔 포카리가 있을 것 같았지만 특별한 건 없었다. 그냥 평화시장건물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결국 못 사고 돌아가는 건가 했는데, 이 때, 호안끼엠호수 근처에 있다는 K마트(한인마트)가 생각났다.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K마트는 작았지만 한국의 것들이 매우 많이 있었다. 포카리 캔만 봐서 큰 건 없냐고 하니까 찾아줬다. 가격은 37,000동(1,850원). 한 개 사고 나오는데, 어떤 할머니가 여기 직원에게 뭘 파는 걸 봤다. 바구니에 들어 있는 길쭉한 바나나 잎에 싸인 것을 칼로 잘라서 무슨 떡 같은 것에 싸주는데 신기했다. 뭐냐고 물어보니 뭐라고 대답은 했지만, 항상 난 뭔지는 모르고, 그냥 얼마냐고 물어보니까 10,000동이라고 했다. 그래서 한 개 달라고 하니 바나나 잎 안에 들어있는 소시지 같은 것을 잘라주더니 떡에 싸줬다. 완전 신기, 무슨 맛일지 궁금했다.
소이는 못 샀지만 숙소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에 아까 처음에 갔던 소이 집을 지나치게 되어서, 그냥 20,000동이여도 사기로 했다. 그래서 소이 한 개를 달라고 하니까 어제 먹었던 거랑 좀 달랐다. 그래서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을 보여주니 이건 다른 소이라고 한다. 아, 알았다. 쌀국수도 포 가, 포 보, 하는 것처럼 소이도 소이 뭐, 소이 뭐, 이런 식으로 붙는 것 같다. 아, 그러고 보니까, 첫 날 먹은 닭고기 밥도, 소이 가(XOI GA)였던 것 같다. 여기서는 밥을 카페에서 주는 컵에 담아주는데, 무슨 국물도 선택하라고 했다. 처음엔 밥만 달라고 했는데, 국물도 먹는 거라고 하는 것 같아서 무슨 맛일지 모르겠단 표정(?)을 지으니까 수저로 한 입씩 먹게 해줬다. 맑은 것, 붉은 것, 팥죽색이 있었는데, 붉은 것을 처음에 줬는데 생강 맛이 너무 많이 나서 이상하다고 했다. 다음 팥죽색은 정말 뭔가 단팥죽 맛이었다. 그래서 맛있어서 이거로 달라고 했다. 처음엔 밥만 10,000동에 줄 것 같았는데 다 해서 30,000동이란다. 갖고 있는 돈은 48,000동. 20,000동짜리를 깨기 좀 애매해서 28,000동, “하이 므어이 땀” 이라고 외치니 할머니들이 막 웃으면서 알겠단다. 흥정이 재미있었나보다. ㅎㅎㅎ
나름 모든 임무를 한 시간 정도에 마치고 숙소로 가니 아내는 자고 있었다. 나도 침대에서 그동안 못 쓴 블로그를 좀 쓰고 여유로운 자유시간을 보냈다. 점심때가 되어서 아내와 사온 음식들을 먹었다. 다들 기름진 것은 아니고 그래서 그런지 잘 먹고, 맛있다고 했다. 나도 맛있게 잘 먹었다. 그리고 어제 사온 망까오도 잘 익어서 먹었다. 밥을 먹고 아내는 계속 자다 깨다 자다 깨다 했고, 나는 블로그를 했다.
그러다 어떤 블로거가 8살 난 아들과 1박 2일 전주 여행 간 이야기를 올렸는데, 작년에 갔던 추억도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뭔가 내용이 감동적이었다. 감동적인 내용은 없었지만 그냥 어린 아들과 여행을 다닌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나에겐 감동이었다. 나도 앞으로 몇 년 후에 저럴 수 있을까, 저렇게 자녀와 여행을 다니면 좋겠다, 뭐 이런 생각들에 젖어서 눈물이 핑 돌기도 했다.
저녁이 되어서도 아내는 호전되지 않아서 나 혼자 밖에서 저녁을 먹고 오라고 했다. 그리고 포카리 한 병을 더 부탁했다. 밖에 가서도 뭐 먹을지 별로 혼자 고민하기 싫어서 착한식당에 갔다. 신나게 인사를 하니, 꼼 장(COM RANG)을 먹으로 왔냐고 웃으면서 물어봤다. 나는 포 싸오를 주문했고, 이번엔 만드는 과정을 동영상으로 찍으면서 기다렸다. 5분 정도 기다리니 주문한 음식이 나왔는데, 혼자 와서 그런지 정말 많이 줬다. 나에게 걸프렌드 어디 있냐고 물어봐서 베트남어 사전에서 ‘배탈이 났어요’를 보여주니까 ‘오~’이러면서 웃는다. 혼자 포 싸오를 먹었는데, 맛있긴 맛있었지만, 처음에 먹었던 것만큼 감동은 아니었다. 그래도, 정말 맛있었다. 짜고.ㅋ
포카리를 사러 K마트에 가서 혹시 죽이 있는지 물어봤다. 아까 베트남 편의점 같은 곳에서 죽이 있었는데, 입에 맞지 않을까봐 사지는 않았었다. 직원이 햇반을 꺼내줘서 그거 말고, rice soup을 달라고 하니 단팥죽을 준다. 고민 끝에 단팥죽과 포카리를 사서 가는데, 괜히 단팥죽도 먹으면 안 될 것 같아서 환불을 하러 갔다. 다행이 영수증을 받아서 처음엔 안 된다고 하면서 전복죽을 내밀길에, 인상을 좀 쓰니 해줬다.
숙소에 가니, 아내는 배고프다고, 힘이 없고 물하고 포카리만 마셔서 속도 쓰리다고, 죽이라도 먹고 싶다고 해서, ... 나는 다시 진상을 부렸던(?) K마트로 갔다. 그래서 얼굴도 보지 않고 햇반과 전복죽을 사서 서둘러 숙소로 갔다. 커피포트가 있어서 물을 끓여 전복죽을 데우고, 아내는 그 자리에서 한 그릇을 다 먹었다. 정말 배고팠나보다. 나는 오면서 산 동그란 빵을 먹었다. 길거리 돌아다니면 바구니에 동그란 빵을 파는 아줌마들이 정말 많은데, 그동안 한 번도 안 사먹어서 무슨 맛일지 궁금했는데, 아내가 없어서 냉큼 샀다.
빵 살 때도 처음엔 고민했는데, 뭐 바가지 써봤자 얼마나 쓸까 하고 다시 발걸음을 돌려 아줌마한테 얼마냐고 물어보니까, 꼬치에 있는 빵은 한 개에 10,000동이고, 동그란 빵은 5,000동이란다. 그래서 꼬치 빵 1개, 동그란 빵 2개를 샀다. 그리고 기념촬영도... 베트남 말로 능숙하게(?) 가격을 묻고 알아듣고 하니까 아줌마가 베트남 말 잘 하냐고 물어보는 것 같았는데, 이런 말은 알아들을 수 없어서 그냥 얼버무리면서 빵이나 샀다.
돌아가는 길에 아주머니 모습을 다시 찍으려고 돌아서니 아줌마가 포즈를 취해준다. 그러면서 동그란 빵 한 개를 서비스로 더 줬다. 내친김에, 아까 같이 찍은 셀카가 초점이 안 맞아 다시 찍자고 하니 흔쾌히 허락해줬다. 그러면서 10,000동 어치 더 사라고 했는데, 배부르다고 하니까 동그란 빵 한 개를 웃으면서 또 넣어줬다. 어라? 동그란 빵은 2개에 10,000동에 샀는데 2개를 서비스로 더 받다니... 아주머니가 착하신거라고 생각해야겠다. 바가지를 씌우려다가 셀카도 같이 찍고 베트남 말도 잘하는 젊은 남자가 순순히 비싼 가격에 군소리 없이 사가니까 미안하셨나보다. 아니면, 그냥 밤 시간이니 얼른 없애고 집에 가시려는 것일 수도 있지... 바가지든 아니든, 그냥 기분이 좋았다.
밤 까지 아내는 시름시름, 나는 컴퓨컴퓨. ㅎㅎㅎ
아-무 것도 안 한 하루였지만 그냥 잘 보낸 것 같다. 한국에서의 휴일이었다고 생각하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