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75
로마인 이야기 4 - 율리우스 카이사르 (상)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한길사 펴냄
2012년에 로마인 이야기 1, 2, 3권을 읽은 이후 3년 만에 다시 4권을 손에 잡았다. 그 때, 4권은 카이사르의 이야기라서 기대가 된다는 점을 마지막으로 독후감을 썼었는데 이제야 읽게 되다니. 어쨌든, 3권과 4권 사이에 텀이 길었지만 여전히 카이사르의 이야기는 기대가 되었고 읽는 내내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카이사르에 대한 내용은 로마인 이야기 4, 5권에 걸쳐 상, 하로 나뉘어 있다. 이번에 읽은 (상)은 카이사르의 유년시절부터 중년시절, 딱 루비콘 강을 건너는 시점까지 쓰여 있다. 주로 카이사르에 대해 서술했지만, 중간 중간 계속 로마와 주변국에서 발생하는 정세까지 서술하고 있다. 그래서 두 내용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이해도 더 잘 되고 재미있었다.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전, 머리말이 나의 기대감을 쭈-욱 끌어 올렸는데, 특히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의 평이 가장 놀라웠다.
“인간의 약점에 대해서는 그토록 깊이 통찰한 셰익스피어였건만, 율리우스 카이사르 같은 인물의 위대함에 대해서는 이해하지 못했다. 『리어왕』은 걸작이지만 『줄리어스 시저』는 실패작이다.” 버나드 쇼 (1856~1950)
셰익스피어도 제대로 알지 못한 카이사르라니. 여튼, 책을 읽으면서 메모한 인상 깊었던 부분이 꽤 많이 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카이사르와 동시대 인물들의 ‘야심’과 ‘허영심’에 대해 다룬 부분이었다. 나는 카이사르에만 집중해 보려고 한다.
여기서 ‘허영심’이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허영된 꿈, 뭐 이런 의미라기보다는 좀 더 넓게, ‘남들이 좋게 생각해주는 것을 기뻐하는 심정(p. 265)'을 의미한다. 허영심에 사로잡혀서 행동하는 게 어쩌면 남들이 좋게 생각해 줄 것이란 기대에서 출발한다고 보면 어느 정도 시오노 나나미의 허영심에 대한 정의는 이해가 된다. 즉 ’허영심은 남에게 좋게 여겨지고 싶은 것, 야심은 남에게 좋게 여겨지지 않더라도 이루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카이사르의 경우 허영심도 컸지만 야심이 조금 더 컸다. 이런 카이사르의 야심과 허영심에 대해 알고 나면 책 전반에 걸친 갈리아 전쟁 이야기와 책의 마지막, 루비콘 강을 건너기까지의 결심에 대해 어느 정도 해석이 된다.
카이사르는 갈리아 전쟁을 통해 자신의 야심을 실현하면서도 원로원을 무시까지 한 것은 아니지만 원로원보다는 항상 로마 시민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 갈리아 전쟁 내내 원로원의 승인으로 전쟁을 진행하는 것 보다는 확실한 승리와 자신의 판단력 앞에 독자적인 판단을 갖고 일을 추진하였다. 이건 어쩌면 카이사르의 야심이라고 볼 수 있겠다. 물론 이로 인해 점점 원로원의 미움을 사고 나중에는 결국 역적으로 몰렸지만 말이다.
그러나 로마 권력의 기반은 원로원 중심인 듯 보여도 시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 시민들의 인기를 얻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때로는 세금이 아니라 빚을 내 자비를 들여서까지 공공사업에 투자했다. 루비콘 강을 건너는 것도 카이사르는 야심과 허영심 사이에서 고민을 한 듯 보인다. 로마 국가체제의 개조를 통한 새로운 질서 수립이 먼저인지, 원로원 최종 권고에 굴복하여 보람 없는 인생으로 남을 것인지. 아마 야심과 허영심, 어떤 것이 사람에게 더 좋게 보일지 고민한 것은 아닐까. 결국 반역자로 몰린 카이사르는 유명한 말을 남기며 군단을 이끌고 루비콘 강을 건넌다.
“나아가자, 신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우리의 명예를 더럽힌 적이 기다리는 곳으로. 주사위는 던져졌다!” (p. 508)
이 외에도 기억에 남는 부분이 많이 있다. 이런 게 많은 관계로 그냥 순서에 따라 나열하고자 한다.
“그는 어머니의 애정을 한 몸에 받으며 자랐다. 평생 동안 그를 특징지은 것 하나는 아무리 절망적인 상태에 빠져도 유쾌한 기분을 잃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렇게 낙천적일 수 있었던 것은 흔들리지 않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나이에게 최초로 자부심을 심어주는 것은 어머니의 애정이다. 어릴 때 어머니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면, 자연히 자신감에 뒷받침된 균형감각을 얻게 된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를 바라보는 적극성도 어느새 저절로 몸에 배게 된다.” (pp. 28-9)
카이사르의 유년시절 이야기이다. 이런 걸 보면 역시 자녀 교육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어머니의 사랑인 듯하다. 그래서 카이사르가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 된 것은 아닌지. 그런데, 양반집 자제였지만 지극히 평범하게 자라났다고 하는 카이사르, 유복한 환경의 은수저는 아니었다고 하지만(p. 38), 양반집 자제인 것 자체가 은수저 아닌가?
“그리스인과 로마인의 차이는 이 점에도 있는 것 같다.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불문하고, 그리스인의 계급투쟁은 어느 한쪽이 승리할 때까지 계속되어 승자가 패자를 복속시켜야만 비로소 끝났다. 스파르타의 계급구조는 계속 고정된 채였고, 아테네에서는 계급투쟁에서 평민 쪽이 이기면 평민의 독재체제인 데모크라티아가 되고, 귀족이 반격하여 성공을 거두면 평민 쪽은 귀족의 독재에 묵묵히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와는 반대로, 한동안은 격렬하게 싸우더라도 결국에는 공존공영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로마인의 성향이었다. 이런 성향이야말로 로마인들이 광대한 제국을 이룩하고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었던 요인이 아닐까. 덧붙여 말하면, 대결주의로 일관한 그리스인들 가운데 유일한 예외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p. 41)
로마가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상대 국가를 통치하는 방식에 대한 것이다. 군사력을 앞세워 상대를 억눌러 지배하고 착취하는 방식이 아니라, 승자가 패자를 동화시키는 공생을 추구하는 것이다. 어쩌면, 로마 롱 런(long run)의 비결이 이것 때문은 아니었을까? 함께 살기.
들어보기만 했었던 ‘삼두정치’에 대한 내용도 흥미로웠다. 머리가 세 개라는 삼두는 각각 카이사르, 크라수스 폼페이우스를 말하는 것인데, 기원전 60년에는 폼페이우스의 군사력, 크라수스의 경제력, 카이사르의 인기(민중의지지)를 기반으로 로마의 통치가 이뤄진 것이다. 중앙에서는 카이사르가 집정관으로, 배후해서는 알게 모르게 크라수스와 폼페이우스가 삼두정치 체제를 통해 법안이 통과되는 이야기는 지금과 다를 바 없는 듯 보였다. 원로원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농지법을 민회의 결의를 민회의 결의를 얻어내면 가결된다는 호르텐시우스 법을 이용하여 가결시키는 카이사르의 강행돌파나 집정관 이후 자신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한 속주 통치권에 대한 법 등등 마치 뭔가 ‘날치기’로 법안이 통과되는 것 같은 흥미진진함이 있었다.
반면 당시 집정관이던 비불루스는 전혀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자 사람들은 ‘카이사르와 비불루스가 집정관이었던 해’가 아닌 ‘율리우스와 카이사르가 집정관이었던 해’라고 했다고 한다. 이런 삼두정치는 몇 년간 계속 되었는데, 기원전 56년에는 세 사람이 모두 속주 통치를 하게 되며 군사력을 갖게 되어 북쪽의 카이사르, 서쪽의 폼페이우스, 동쪽의 크라수스로 각각 나뉘게 되었다.
이 책의 주요 내용은 사실 ‘갈리아 전쟁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이 전쟁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내가 마치 그 당시의 사람이 된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빠른 상황판단과 뛰어난 결정력으로 군단을 지휘하는 카이사르를 보면서는 내가 마치 카이사르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또, 게르만족과의 전투를 앞두고 사기가 떨어진 군사들을 독려하기 위해 카이사르의 연설을 들을 때는 내가 마치 제10군단의 병사가 된 것 같았다.
“키케로에게 호의적이었던 '영웅전'의 저자 플루타르코스조차도 키케로가 역경에는 약했다고 평했을 정도다. 그러나 관점을 바꿔 생각하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키케로라고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p. 238)
이 부분에서는 키케로의 인간미를 볼 수 있었다. 키케로의 집정관 시절 ‘카탈리나 역모사건’의 주동자(로마 시민권자)들을 재판도 하지 않고 사형에 처한 적이 있는데, 호민관 클로디우스가 재판도 하지 않고 로마 시민권자를 사형에 처한 자는 추방을 한다는 법안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로 인해 키케로는 맞서지 못하고 망명을 가게 되었는데,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전투를 준비할 겨를이 없었는데다 적이 너무나 갑작스레 공격해왔기 때문에 로마군 병사들은 부대기를 내걸 틈도, 투구를 쓸 겨를도, 방패 덮개를 벗길 여유도 없었다. 제각기 칼을 집어든 곳에서, 눈에 들어온 부대기가 자기 부대의 깃발이 아니더라도 그 주위에 모여 싸웠다. 소속 부대를 찾느라 우왕좌왕하다가는 싸움도 못해 보고 당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p. 258)
갈리아 전쟁의 네르비족 토벌 중 기습공격을 당한 전투 중간에 있던 모습인데, 갑작스런 공격을 당했을 때 규범과 규율을 준수하는 로마군의 임기응변에 대한 것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규범과 규율보다 다른 것이 앞설 수 있다는 것. 뭔가 그냥 멋져 보였다.
이런 ‘변칙’은 대서양 연안에서 벌어진 베네티족 토벌 중 적군과 브리타니아 지원군을 물리쳤던 해전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지중해 해전 당시 배에 갈고리 같은 것을 달았던 ‘까마귀’에 이어 기발한 해전이었는데, 이번에는 적선에 접근해서 밧줄 끝에 날카롭게 간 낫을 던져 돛 줄이 잘리게 한 무기를 개발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활대가 갑판 위로 떨어지면서 범선인 갈리아 선박이 움직일 수 없게 되어 해전에서의 승기를 거둘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까마귀’에 이어 기발한 해전에서의 아이디어. 역시, 창의적인 로마군이었다. ‘규칙’ 속에서도 이런 ‘변칙’을 둘 줄 아는 로마인들의 능력이 어쩌면 이들을 강한 로마군으로 만드는 것은 아닌가 싶기다.
이 외에도 아직 더 남았는데(ㅋ), 로마는 전쟁의 승리를 통해 인질로 잡은 청소년 볼모들을 이탈리아 각지에 있는 유력자들의 집으로 보내 교육을 받게 하고 로마의 동조자로 키워내는 동시에 문명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이 성장하여 귀국하면 자기 고장 각 분야에서 활약하게 되고. ‘인질’, ‘볼모’ 같은 단어는 적합하진 않지만, 어쩌면 나중에 통일 한국에 있어서도 활약하게 되는 사람들은 자기 고장에서 내려온 탈북자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마지막으로 ‘갈리아 전쟁기’를 기록한 카이사르에 대한 이야기인데, 일반적으로 보통 장군이라면 전쟁기에서 지형이나 적군의 규모만 기술한다고 한다. 그러나 카이사르는 전쟁과는 전혀 무관해 보이는 민족의 성향이나 종교, 풍습까지도 자세히 기록하는 버릇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전쟁기 중간 중간에, 전쟁 이야기가 한창일 때, 뜬금없이 갈리아 민족과 게르만 민족의 차이점에 대해 서술하는 등 밀당을 하며 기록했다.
그런데 오히려 컵라면에 물을 붓고 기다리는 시간이 설레는 것처럼, 전쟁 전의 이런 이야기들도 재미있었고 이 시작되고 나서는 더 재미있었다. 시오노 나나미는 이런 갈리아 전쟁기를 두고 전쟁기인지 여행기인지 알 수 없다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풋’하고 웃고 말았다. 나도 꼼꼼한 성격 때문에 여행 중 쓴 돈의 지출을 모두 기록하는데, 나중에 보면 이게 여행기인지 회계장부인지 하는 게 있어서. ...
책을 읽으며 기나긴 인상 깊었던 점을 이렇게 마무리 하고, 다시 ‘야심’과 허영심‘ 이야기로 돌아오면, 카이사르의 경우를 보니 나의 야심과 허영심은 어느 정도일지 생각해 보았다. 원의 크기를 1~10점 척도로 해서, 카이사르의 경우를 10, 9라고 했을 때, 나의 야심은 7 정도(?), 허영은 6-7 정도(?) 될 것 같다.
내가 이루고 싶은 일이 카이사르처럼 어마어마한 것은 아니지만, 10까지는 안되니 그쪽으로 너무 치우치지는 않을 것 같고, 그렇지만 현실에 순응하는 것은 싫으니 보통인 5점보다는 좀 더 클 것 같다. 허영의 경우, 다시 정의를 정리해 보자면, 남들 눈치를 약간 보면서 칭찬 받기 좋아하는 걸 의미하는 것 같은데, 나의 경우에는 이게 야심과 비슷하거나 조금 더 작은 수준일 것 같다. 카이사르처럼 10, 9는 아니고, 나는 7, 6정도, 작은 카이사르, 카이사르 유형이라고 봐도 될까? 야심 실천에 있어서 독자적으로 밀어붙이는 것 보다는 남들에게도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항상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카이사르가 루비콘 강 앞에서 고민했던 것처럼, 나도 항시 고민과 생각이 많다!)
로마인 이야기를 오랜만에 다시 읽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나를 돌아보고 로마인들의 지혜를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다음, 카이사르 (하) 편에서는 내전을 통해 카이사르가 어떻게 로마에서 그의 ‘야심’과 ‘허영심’을 실현할지 정말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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