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야기/독후감 IV

세상은 11분을 축으로 돌아간다

inhovation 2015. 9. 28. 17:24
No. 172
11분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문학동네 펴냄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살까? 파울로 코엘료의 이 책, '11분'에 따르면 사람들은 11분을 위해 산다고 할 수 있다. 책에 있는 이야기를 인용해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렇다.

  "하룻밤? 마리아, 과장을 해도 정도껏 해야지. 그건 사십오분 정도에 불과해. 아니, 옷 벗고, 예의상 애정 어린 몸짓을 하고, 하나마나한 대화 몇 마디 나누고, 다시 옷 입는 시간을 빼면, 섹스를 하는 시간은 고작 십일 분밖에 안 되잖아."
  11분. 겨우 11분을 축으로 세상이 돌아가고 있었다.
  하루 24시간 중 그 11분 때문에(말도 안 되는 소리긴 하지만, 모든 사람이 매일 밤 아내와 사랑을 나눈다고 가정할 때) 결혼을 하고, 가족을 부양하고, 아이들의 울음을 참아내고, 늦게 귀가하게 되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함께 제네바 호숫가를 거닐고 싶은 수십 수백 명의 다른 여자들을 훔쳐보고, 자신을 위해 값비싼 옷을, 그 여자들을 위해서는 더 비싼 옷을 사고, 채우지 못한 것을 채우기 위해 창녀를 사고, 피부관리, 몸매관리, 체조, 포르노 등 거대한 산업을 먹여살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일반적인 주장과는 달리 남자들끼리 만나면 여자 얘기는 하지 않았다. 그들은 일, 돈, 스포츠에 관한 얘기만 했다. (p. 117-8)


  옛날 옛적에 마리아라는 창녀가 있었다. (p. 15) 마리아는 브라질 동북부에 있는 작은 마을에 살았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버스로 48시간을 달려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일 주일의 휴가를 맞이하게 된다. 이곳에서 그녀는 스위스에서 왔다는 한 남자의 제안, 스위스에서 일자리를 준다는 제안에 그를 따라 스위스로 건너가게 된다. 이런 일기를 남기고...


  스위스 남자를 해변에서 만나기로 한 날, 마리아는 일기에 썼다.


  아무래도 내가 옳지 못한 결정을 내리려는 것 같다. 하지만 실수 역시 앞으로 나아가는 한 방식 아닌가. 세상은 나에게 뭘 원하는 걸까? 위험을 무릅쓰지 말라고? 삶에게 용기 있게 '그래'라고 말 한 번 못 해보고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라고?

열한 살 때, 소년이 다가와 연필을 빌려달라고 했을 때, 나는 이미 실수를 저질렀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때로 두번째 기회란 아예 없기도 하다는 것 세상이 주는 선물을 망설이지 않고 받아들이는 편이 더 낫다는 것을. 물론 위험하다. 하지만 그 위험이 이곳에 오기 위해 버스를 48시간이나 타면 무릅썼던 위험보다 더 심각한 것일까? 누군가에게 또는 무언가에 충실하려면, 우선 나 자신에게 충실해야 할 것이다. 진정한 사랑을 찾으려면, 내가 했던 보잘것없는 사랑들과 먼저 결별해야 할 것이다. 많은 경험을 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경험을 통해 배웠다. 뭔가에 대한 확실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모든 것이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물질적인 부나 정신적인 부나 마찬가지다. 내가 종종 겪었던 것처럼, 확실히 자기 것이라고 여겼던 뭔가를 잃은 사람은 결국 깨닫게 된다. 진실로 자신에게 속하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그리고 나에게 속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나에게 속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 구태여 걱정할 필요가 뭐 있는가. 오늘이 내 존재의 첫날이거나 마지막 날인 양 사는 것이 오히려 낫지 않은가. (p. 44-5)


  이렇게 마리아는 스위스로 가게 된다. 물론 이곳에서 하게 된 일이 몸을 파는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더 큰 수익을 위해 자발적으로 몸을 파는 곳으로 가서 창녀라는 직업을 선택하고 1년 정도 이 일을 하게 된다. 그녀는 앞에서 언급한 '11분 생활'을 통해서 돈만 벌 뿐 아니라 그 이상의 것들을 알게되고 깨닫게 된다. 자신이 만나는 사람들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고, 이로 인해 그들에 대해 맞춤 전략(?)까지도 마련한다. 또한 독서를 통해 여러 가지 지식을 쌓게 되고 자신이 집으로 돌아갔을 때 할 일들에 대한 준비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알려진 것과는 달리 이런 곳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가능한 것 같다. 뭐, 소설 안에서는 스위스의 성산업이 법적으로 보호까지 되고 있었으니...) 더불어 프랑스어를 잘 하게 되는 것은 덤이라고 해야 할까?

  지금까지의 마리아의 행동을 본다면 쾌락을 추구하는 삶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가 정기적으로 만나는 남자, 랄프와의 대화를 통해 세상은 결코 쾌락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녀는 고통받길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통받길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하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아픔을, 희생을 추구하고 있소. ...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쾌락의 추구가 아니라 중요한 모든 것에 대한 포기라는 사실만 알아둬요. 군인이 적을 죽이기 위해 전쟁터로 나간다고 생각하고? 아니, 그는 조국을 위해 죽으러 가는 거요. 아내가 남편에게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지 보여주고 싶어한다고 생각하고? 아니, 그녀는 그의 행복을 위해 자신이 얼마나 헌신적으로 고생하고 있는지 그가 알아주기를 바라오. 남편이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 직장에 나간다고 생각하고? 아니, 그는 가족의 행복을 위해 피땀을 바치는 거요. 자식들은 부모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또 부모는 자식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 꿈을 포기하오. 아픔과 고통이, 오로지 기쁨만을 가져다주어야 마땅한 사랑의 증거가 되는 거요." (p. 261-2)

  이후, 그녀와 그의 로맨스가 계속되고, 마지막엔 운명적인 사랑의 장면까지 연출이 되지만, 내용에 대한 논의는 이 쯤에서 접기로 하고, 쾌락과 고통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싶다. 과연 삶은 쾌락을 추구하며 살아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중요한 것에 대한 포기를 하며 살아야 하는 것일까. 먼저 마리아의 경우를 살펴보면 그녀는 작은 마을을 떠나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그리고 스위스에서 멋지게 살고 싶은 욕심까지도. 그리고 그녀는 과감한 결단을 통해 스위스로 건너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을 포기한 것은 부모님과 떨어져 살아야 하는 것일 것이다. 익숙했던 생활과 작별하는 것을 동시에 의미하기도 한다. 앞에서는 쾌락과 포기에 대해 양자택일의 문제처럼 언급했지만, 어떻게 보면 이런 것들은 우리 삶에 동시에 따라오는 문제이고 동시에 발생하는 요소들인 것 같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이 선택에는 항상 쾌락을 추구하는 것과 중요한 것에 대한 포기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삶에서 다가오는 선택의 문제를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단순하게 대답해 본다면, 고민하고 선택해야 하겠지만, 너무 고민하면서 그 고민이 삶을 뒤엎게 만들 필요는 없지 않을까?
  다시 마리아의 경우를 살펴보면, 몸을 파는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한 윤리적인 문제와 가치판단이 개입되어야 하겠지만, 마리아 스스로 고민하고 선택하고 행동으로 옮겼다는 것은 멋진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운명적인 사랑까지 만나게 되었으니 말이다. 소설 안에서 이런 이야기가 더욱 현실적으로 들리는 것은 어쩌면 마리아가 창녀였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아메리칸 드림처럼, 외국에 나가서 멋진 직업까지 갖게 되어 성공하고 돌아오는 스토리였다면 독자는 어쩌면 비 현실적인 이야기로 내용을 치부해 버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럼, 우리 삶에 현실적으로 적용한다면 저렇게 외국에 나간다는 것은 힘든 일로 성공해야 한다는 것인가?;;;)

  그럼, 내 삶에 적용해보자. 고민이 많다. 무엇을 해야 할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 말이다. 가능하면 여러 경우의 수를 만들어 보려고 노력하고 그에 따른 예상 결론까지 시나리오를 짜본다. 그러나 지금 뭐 실행한 거는 특별히 없다. 고민만 하면서 시간은 지나갈 뿐이다. 예를 들어, 이민을 간다고 하면, 지금 집은 어떻게 할지, 차는? 짐은 얼마나 가져가야 하는지, 가구는 어떻게 처분하며, 여기서 갖고 있는 직업과 거기서 할 직업들... 복잡하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서 이민을 가지 않은 지금도 '나름대로는 잘' 살고 있으니까 그냥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쁜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그냥 이렇게 사는 것을 선택한 것이고, 여기에 맞춰서 그냥 살고 있을 뿐인 것이다. 하지만 뭔가 일, 이민을 하기 위한 일을 저질렀다면? 뭐 그냥 거기에 맞춰서 살지 않았을까 싶다. 저지른 일에 맞춰 살기(수습 하기?) 위해 뭔가를 했겠지. 어떻게든 소유를 처분하고 다른 나라에서 살 준비를... 마치 '11분'의 마리아 처럼 말이다. 

  여전히 선택에 대한 고민을 하고 행동을 하는 일이 어려운 일이긴 하다. 하지만, 마리아의 일기처럼 세상을 살면서 진실로 나에게 속하는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한다면 걱정할 게 무엇이 있겠는가. 내 것에 대한 포기가 힘드니 선택에 어려움이 따르는 것이겠지. 음, 쾌락을 추구하지만 포기하는 것이 어려워 삶에 이렇게 고민이 많은 것으로 정리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포기하는 연습을 해 보자.




11분

저자
파울로 코엘료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4-01-27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2003년 전 세계 대다수 나라에서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한 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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