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76
체 게바라 평전
장 코르미에 지음
김미선 옮김
실천문학사 펴냄
“그때 정찰중인 군인들 셋은 아래쪽에 어른거리는 그림자를 본다. 그림자 하나가 흔들리고 절뚝거리며 다른 그림자에 의지하고 있다. 총을 지팡이 삼아 땅을 짚으며 기어오르고 있다. 그림자는 여전히 흐릿하다. 체 게바라 대장이 다가온다. 하지만 군인들은 아직 그가 게바라라는 것을 모른다.” (pp. 633-4, 체 게바라가 붙잡히기 직전 체의 마지막 모습)
게릴라전의 실패로 인해 위대한 혁명가의 마지막 모습은 처참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그런 걸까. 군인들은 그가 체라는 것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총을 짚고 마지막 힘을 다하는 흐릿한 그림자는 그가 꿈꿔왔던 혁명의 정신이 강렬하게 내뿜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체 게바라. 나와 체의 첫 만남은 화장실에서였다. 역사, 정치와 거리가 멀었던 대학생 시절, 도서관 화장실에서 작은 종이에 붙은 한 동아리의 광고에서 ‘체 게바라’라는 단어를 봤었다. 당시 이게 뭔지 전혀 몰랐던 시절, 무슨 뮤지컬 홍보인가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 얼마 전 서점에서 그를 다시 제대로 만났다. 서점 한 귀퉁이에서 빠알간, 정확히 말하면 새빨갛지는 않지만 뭔가 ‘혁명스러운’ 붉은색 책을 보게 되었고, 제목이 ‘체 게바라 평전’인 것을 확인하고는 화장실에서의 오해를 풀고자 바로 사서 읽기 시작했다.
그래서 알게 된 체의 기본적인 신상은, 일단 남미 사람이고, 혁명가이며, 특히 쿠바 혁명을 성공으로 이끈 주역이라는 것, 그리고 남성미를 팍팍 풍기며 엄청 잘 생겼다는 것, 게릴라 활동을 하다 젊은 나이에 죽었다는 것 정도를 알게 되었다. 원래는 의대생이었지만 오토바이를 타고 친구와 남미 여행을 하다가 당시의 남미 상황들을 접하면서 혁명가의 길로 전향했다는 것도. 굉장히 유명한 사람인데 나는 여태 뮤지컬 정도로만 생각했었다니.
이 책은 평전이다 보니 체 게바라의 출생부터 사망까지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프랑스 작가 장 코르미에가 사료를 통해 정리한 책이고, 그냥 링컨 전기, 이순신 뭐 이런 거 같은 위인전 느낌이 나서 크게 읽는데 거부감은 없었다. 다만, 뭔가 ‘빨간 책’(?)을 읽는다는 두근거림 정도? 중간 중간 기억에 남는 부분들을 위주로 감상을 정리하면 이렇다.
먼저 이름이 왜 ‘체 게바라’인지에 대한 설명이 있는데, 원래 그의 이름은 체 게바라가 아니다. 태어날 때의 이름은 ‘에르네스토 게바라’였지만, 후일에 ‘체’라는 단어가 ‘에르네스토’ 대신에 붙어서 ‘체 게바라’로 불리게 된다. ‘체’라는 음절은 원래 아르헨티나에서 말을 시작할 때나 강조할 때 쓰는 감탄사라고 한다. 또 아르헨티나 북동부 파라과이에서 통용되는 과라니어에서는 ‘체’는 ‘나’ 또는 ‘나로서는’ 이라는 뜻으로 쓰인다고 한다. 그리고 원래 ‘체’는 c'c 였는데 언제부턴가 che로 바꿔 썼다고.
실제로 체 게바라는 자신의 말 마지막에 ‘체’라는 말을 자주 붙이는 습관이 있어서 에르네스토 게바라는 점점 체 게바라로 바꾸어 불리게 되었다. 그래서 책에서도 언젠가부터 에르네스토를 체로 스리슬쩍 바꿔서 그를 지칭하기 시작했다.
체 게바라는 부르주아지(중산층, 마르크스주의 이후 자본가 계급)의 아들이지만 안락한 생활을 하지 않고 부모의 용돈에도 기대지 않았다. 대학 친구들과의 토론을 즐기고 사서, 선원, 구두 파는 일 등등 다양한 일을 하며 스스로 벌이를 했다. 천식을 심하게 앓고 있었지만 펜싱, 권투, 지방 민속 경기인 펠로타까지 여러 가지 운동에도 매달렸다. 또한 왕성한 독서열로 밤을 새기도 하는 등 과도한 활동성도 가졌다. 이런 그를 가리켜 저자는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보다는 길지 않은 삶을 살았지만―한편으로는 질병이 이유가 됐을 수도―매 순간이 마지막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 누구보다도 꽉 찬 시간을 살았다.” (p. 60)
이렇게 빡빡한 삶을 사는 체의 성격은 올곧았던 것 같다. 친구 알베르토와 남미 여행 중 리마 의과대학 학장인 페스체 박사의 집에 머물 때의 일이었다. 페스체 박사는 자신의 책 ‘침묵의 땅’을 이 둘에게 보여주었다. 그러나 둘 모두는 허풍으로 포장된 이 책에 대해 실망하여 끝까지 책에 대한 이야기는 서로 꺼내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마지막 날, 페스체 박사는 책에 대한 감상을 확인하고자 물어봤는데 알베르토는 아주 아름답고 모든 게 적절히 표현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체는 식사가 끝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책의 감상에 대해 또 물어본 교수의 물음에 체는 책의 목차를 펴고 이 책은 대안 제시도 하지 않는 비생산적인 책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친구는 먹여주고 재워주고 지프까지 빌려준 교수에게 이렇게 말 할 수 있나 싶었지만 체의 신념에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
“누군가를 판단하는 것으로 상처를 주는 일을 에르네스토는 무척 싫어했다. 하지만 그를 더욱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거짓말이었다.” (p. 107)
자녀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는 혁명가로서의 그의 신념을 볼 수 있었다. 여느 부모와 마찬가지로 공부를 많이 하라고 강조하고(...), 그러나 혁명의 중요성에 대해 항상 기억하기를 부탁하고 있다. 그리고 혁명가가 가져야 할 가장 아름다운 자질로 ‘세계 어딘가에서 누군가에게 행해질 모든 불의를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을 들고 있다.
“아빠는 너희들이 훌륭한 혁명가들로 자라나기를 바란단다. / 자연을 정복하기 위해, 꼭 필요한 기술을 정복하기 위해 많이 공부하여라. 그리고 혁명이 왜 중요한지, 그리고 우리 각자가 외따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점을 늘 기억하여 주기 바란다. / 특히 이 세계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행해질 모든 불의를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을 키웠으면 좋겠구나. 누구보다 너희들 자신에 대해 가장 깊이, 그것이야말로 혁명가가 가져야 할 가장 아름다운 자질이란다.” (pp. 518-9)
앞뒤로 내용은 더 있지만 짧은 편지에서 느낄 수 있는 체의 신념은 스스로 품은 질문에 완벽히 답을 내린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인한 체력 뿐 아니라, 젊었을 때 깨달은 가치를 가슴 속에 품고 혁명가로 살아가는 체는 분명하고 선명한 신념까지 갖추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이 편지에서는 자신이 품었던 불의에 대한 의문, 그리고 스스로 결론을 찾아내기까지의 과정을 그의 자녀들도 경험해 보길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체의 타인에 대한 관심은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더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인간이 권력의 자비에 매달려 사는 사회가 아니라 공적인 생활의 중심에 있게 되는 새로운 사회’를 만들겠다고 그는 맹세했다. 그리고 ‘테러리즘은 어떤 방식으로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고, 결정된 혁명운동에 반감을 살 수 있는 부정적인 형식’이라고 확신했다.” (p. 663)
“사람들은 더러 체를 자유분방한 무정부주의자라고도 하지만 체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영혼의 순례자였다. 사랑이 담긴 희망을 내보였고, 타인의 삶을 개선시키려는 격렬한 의지를 가지고 타인의 삶에 관련된 것들에 무한한 관심을 보였다. 그러기 위해 그는 투쟁을 선택하는 용기를 보였다. 그가 ‘모든 진실된 인간은 다른 사람의 뺨이 자신의 뺨에 닿는 것을 느껴야 한다’고 단언했을 때 이것은 ‘함께한다’는 것을 뜻한다. 체는 모든 것을, 다른 사람들의 고통까지 함께했다.” (p. 664)
이처럼 체는 기본적으로 타인의 삶을 우선순위에 두었다. 인류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타인을 품었던 예수와 비슷하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체는 스스로 예수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음을 어머니에게 보내는 옥중서신에 적었다. 그리고 자신을 십자가에 매달게 하지도 않을 것이며 모든 무기를 동원하여 싸우겠다는 변치 않는 결심과 함께. (p. 188)
이런 체의 이야기를 죽- 읽으면서 나의 혁명가적 자질(?)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사실 나는 집회, 시위 등 이런 데에는 아직까지 전혀 참석해 본 적이 없다. 아, 대학교 때 위안부 할머니들과 함께 하는 수요집회에 한 번 가본 적 말고는. 관심은 항상 있다. 그런데 그 관심이 외적인 결과에 대한 관심이다. 지난주에 벌어졌던 시위도 경찰이 차벽을 어떻게 했는지, 사람들이 얼마나 폭력적으로 경찰에 접근하고 경찰이 어떻게 반응했는지 등등.
지금으로 따지면 체는 어쩌면 시위집회의 선봉장에 섰던 사람일 것 같은데. 나도 타인을 품는다면 체처럼 행동으로 옮겨야 하나 하는 의문도 들었다. 허나 반대로 생각하면 그런 것만이 어쩌면 해법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사실 엄청 어렵다) 다시 한 번, 체의 가르침을 생각해 보면 그는 ‘함께함’을 추구한 사람이다. 이 ‘함께함’을 추구하기 위해 당시로서는 무기를 들 수밖에 없었을 수도 있고. 그럼 지금 이 시대에 내가 ‘불의를 깨달아 약자와 함께함’을 실천하기 위한 것은 무엇이 있을까. 진지하게 앞으로 고민하며 살아야 하겠다.
체 게바라.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에는 화장실에서 만났던 체가 아닌 뜨거운 혁명 정신으로 무장한 그와의 만남이 가슴 속 깊이 자리 잡은 느낌이었다.
+ 덧 1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체의 이성관도 엿볼 수 있었는데, 묘하게 설득력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가 한평생 한 여자하고만 살아야 한다고 어느 누구도 정해 놓은 바 없다. 이 제한을 스스로에게 부과해 놓은 동물은 인간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인간은 더러는 몰래, 더러는 보란 듯이 이를 어기곤 한다. 우리는 이 점에 관해서 규제를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 규율에 따라 행하는 행동이 오히려 편협한 사회주의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실상 각자의 삶이 사회 전체의 틀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일 때 누가 그 첫 돌을 던질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p. 367)
흥미로운 점은, 체는 이 제한을 본인의 삶에서 스스로 풀었다. ㅎ
+ 덧 2
정치, 특히 사회주의를 공부해 본 적이 없어서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물리학도인 나에게 뉴턴과 아인슈타인, 플랑크를 예시로 든 점은 굉장히 흥미를 끌면서 이해하고 싶은 욕심을 불러일으키는데 충분했지만, 결국 마르크스주의자로 넘어가는 경계는 내가 넘지 못했다. 이건, 나중에 언젠가 알게 되겠지.
“혹시 우리에게 마르크스주의자인지 아닌지를 묻는 것은 물리학자에게 뉴턴주의자냐고 묻는 것이나 생물학자에게 파스퇴르주의자냐고 묻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사실 인간들의 지식에 너무도 깊숙이 침윤되어 있어서 이견의 여지조차 없을 만큼 익숙한 진실이 있게 마련이다. 새로운 현상이 새로운 개념을 규정한다 하여도 뉴턴을 믿는 물리학자나 파스퇴르의 영향을 받은 생물학자가 결코 과거를 제외하고 생각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보자면 우리가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어야 함은 너무도 당연한 가정이다. 뉴턴의 발견과의 관련성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나 플랑크의 양자이론의 경우에도 적용된다. 이 이론들이 그 영국 과학자의 위대성을 전혀 침해하지 않았던 것이다. 물리학이 새로운 공간개념까지 발전할 수 잇었던 것은 뉴턴 덕분이었다. 그는 필수불가결한 사다리 역할을 했던 것이다. / ...”
음. 이후에는 마르크스도 자신이 살았던 시대의 자본주의와 사회적 독트린(교리, 교훈, 주의, 학설, 또는 국가 외교정책의 원칙)을 분석하고 고찰하였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라틴 아메리카와는 맞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 엥겔스에 의해 사상과 정치적 경향이 형성되고 단계를 거쳐 발전했다고 한다. 그래서, 혁명적 개념을 추구하는 마르크스를 우리가 따라야 한다는 것인가? 이 부분 다음부터 이해가 잘 안되었다.
뉴턴으로 시작한 개념이 아인슈타인, 플랑크의 개념이 발견됨에도 불구하고 성립될 수 있듯이, 여기서 뉴턴이 사다리 역할을 한 것처럼, 마르크스의 개념이 각기 다른 나라들에도 사다리 역할처럼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인 것 같기도 하고.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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