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야기/독후감 IV

과학기술의 발전을 이끌어 내는 것은 결국 소설?

inhovation 2015. 9. 28. 15:27

No. 170

나무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뫼비우스 그림
이세욱 옮김
열린책들 펴냄

  프랑스 소설작가로 유명한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소설 '개미'를 통해 많이 알려졌지만, 나는 이 책, '나무'를 통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을 처음 읽어봤다. 사람들이 열광한다는 이 사람의 책은 어떨까 하는 기대를 안고...
  우선 책에 대한 소개를 간략히 하자면, '나무'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짧은 소설들이 묶여 있지만 '나무'라는 제목을 가진 소설은 없다. 책 제목만 그냥 '나무'인 것이다. 책의 주요 내용은 일상적이면서도 시공간을 초월하며 무한한 상상력이 가미된 내용이다. 예를 들면, 20 이상의 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들, 사람을 다스리기 위해 천사들이 다니는 학교, 경제적인 이유에서 장수를 허용하지 않게 된 사회, 장난감 세트로 판매되는 우주 창조 기구 이야기 등등 진짜 기발한 내용들이다. 이런 종류의 책을 처음 읽어봐서 그런지 초반에는 '이게 뭔가?'하는 생각과 함께 뭔가 어색한? 적응이 안되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빠져드는 재미와 '이 다음엔 어떤 기발한 내용이 나올까?'하는 기대감이 생겨났다. 내용들이 기발하다 못해 정말, 어떻게 글로 표현해야 할 지 모르겠지만,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쭉쭉 펼쳐나가면서 전개하는 이야기가 정말 시원시원 했다고 하면 적당할까?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세 개가 있다. 이 중 두 개는 같은 주제인 '나무'로 묶을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가능성의 나무'와 '말 없는 친구'이다. 가능성의 나무는 쉽게 말해 '미래를 예측해 주는 나무'이다. 나무의 잎사귀에 미래에 생겨날 수 있는 일들이 예측되어 적혀나가는 것이다. 그럼 인간들은 이 나뭇잎을 보고 미래를 준비할 수도 있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미리 찾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가능성의 나무는 우리가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언제나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도록 도와줄 것"(p. 132)이라고 한다. 작가는 이러한 모티브를 컴퓨터와 하는 체스 게임에서 찾았다고 한다. 항상 몇 수 앞을 내다보고 경기를 진행하는 체스 게임 프로그램처럼 인류가 나아가는 방향을 알려주는 가능성의 나무. 꽤 흥미롭다.
  또 다른 나무 이야기, 말 없는 친구는 '조르주'에 대한 이야기다. 조르주는 주인공 아나이스가 항상 찾아가는 나무에게 붙여준 이름이다. 아나이스는 어렸을 때 부터 숲 속으로 찾아가서 한 나무를 아끼며 말도 건내며 지냈었다.

"오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 할아버지는 너랑 무척 비슷하셨어. 말씀은 별로 안 하셨지만 모든 걸 환히 꿰뚫어 보는 분이셨어. 나는 할아버지를 무척 좋아했어. 늘 내 말에 귀를 기울여 주시고 나를 이해해 주셨지. 내가 할아버지 이름을 따서 너를 조르주라고 불러도 괜찮겠니?" (p. 255)

  흥미롭게도 아나이스는 두 친구와 함께 금은방을 털어 다이아몬드를 숨길 장소로 조르주로 정하고 이곳에 다이아몬드를 숨긴다. 그러나 친구들이 각자 몰래 이곳에서 보물을 빼가려는 것으로 인해 서로를 죽이게 되고 결국 아나이스는 총에 맞아 죽는다. 수사 과정 중에 식물의 특이현상(반응을 하는 것)을 연구하는 사람이 개입되고 조르주의 반응을 이끌어 내지만 조르주는 뜻대로 잘 반응을 할 수 없어 사람들이 포기하고 가려고 한다. 그 순간, 조르주는 잎사귀 하나를 힘겹게 떨어뜨리게 되고 여기에 실마리를 얻은 사람들은 핏자국과 머리카락을 발견하여 친구의 자백을 받아내게 된다. 이런 과정들 속에서 조르주의 내면의 외침(나무인데 말을 하는...), 그리고 나무들끼리의 대화가 재미있었다.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서 폭력을 사용해. 하지만 인간의 폭력에는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어. 인간은 왜 서로 싸우고 죽이는 걸까? 너무 수가 많아서 스스로 수를 조절하려고 그러는 것일까? 아니면 삶이 너무 따분해서일까?

수세기 전부터 인간은 우리를 땔감이나 종이의 원료로만 생각해 왔어. 하지만 우리는 죽어 있는 물건이 아니야. 지구상에 있는 모든 것이 그렇듯이 우리는 살아 있고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지각하고 있어.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 고통을 받고 기쁨을 느껴. (p. 285)


  나무와 관련된 것은 아니지만 기억에 남는 또 다른 이야기 하나는 '완전한 은둔자'라는 이야기이다. 주인공 귀스타브는 그의 아버지가 어렸을 때 자기에게 말 한, '네 안에는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 태어날 때부터 이미 그러했다. 네가 하는 일은 그저 네가 알고 있는 것을 다시 배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말에 빠져 명상(사고)에 푹 빠져들었다. 그래서 그는 육체의 한계를 벗어나기로 결심하고 뇌만 분리하여 영양액 속에 보관하기로 했다. 육체는 사라졌지만 그의 뇌(사고)는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다. 그의 사고는 점차 깊어지고 넓어졌지만 그의 가족들은 죽고, 그를 직접적으로 모르는 후손에까지 영양액에 뇌가 담긴 병(사고로만 존재하는 귀스타브)이 전해졌다. 어느 날, 그의 자손이 친구들과 노는 중에 친구들은 귀스타브의 뇌를 공처럼 가지고 놀다가 쓰레기통에 버려지게 되고 허무하게 개에게 먹혀 귀스타브는 사라지고 만다.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우선, 너무 재미있었다는 기분이 첫째였다. 그리고 과연 이 소설을 통해 일차적인 재미 그 이상의 것은 무엇일까 하고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가능성의 나무, 이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 같다. 최근에 빅데이터 관련 책을 읽었는데, 데이터를 통해 세상의 현상들을 예측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말 없는 친구, 조르주의 이야기도 과학적으로 명확히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관련된 실험들이 이미 충분히 있다. 소설의 내용에서도 나왔지만, 식물과 비 언어적 의사소통, 교감이라고 해도 될까, 이런 것들이 명확하게 설명은 되지 않아도 어느 정도 가능성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완전한 은둔자, 이거는 현실의 과학적인 세계 보다는 철학적인 문제랑 조금 더 가까울 것 같다. 이 이야기 역시 얼마 전에 읽은 '죽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에 있는 내용과 연관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몸이 죽는 것이 죽음인지, 아니며 우리의 생각, 사고까지 죽는 것이 완전한 죽음인지 철학적인 난제는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귀스타브는 과연 죽은 것인가?'라고 했을 때, 귀스타브의 사고를 벗어나면 그는 일반적으로 죽은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사고는 여전히 존재하며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결코 죽은 것이 아니다.


  조금 복잡해 진 것 같기도 한데, 결국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이 우리의 삶과도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초판이 2003년, 지금보다 12년 전에 나왔는데 그 땐 훨씬 더 상상 속의 이야기로만 존재하며 현실화 될 생각을 하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12년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 실현 가능한 이야기가 되었다는 것은, 또 다시 10여년이 지나면 이미 실현 된 이야기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음, 과학기술의 발전을 이끌어 가는 것은 그럼 소설이란 것인가...?




나무

저자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출판사
열린책들 | 2013-05-3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개미], [뇌] 등으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전세계적으로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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